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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7화)
3장 천하영웅대회(2)
“이런, 일행이 계셨군요. 처음 뵙겠습니다. 저는 남궁세가의 남궁인이라 합니다.”
남궁인이 정중히 포권하며 천룡과 그 일행에게 인사했다.
천룡 또한 남궁인이 자신에게 크게 뒤지지 않는 고수임을 알아차리고 눈을 빛냈다.
‘알려지기로는 이제 겨우 초절정에 들어섰다 했는데, 그 이상이구나!’
아마도 그간 삼 푼 정도 힘을 숨겼음이 분명했다.
“하하하! 남궁 공자, 이거 반갑소! 난 섬서 대연문의 감석보라 하오! 말씀은 많이 들었습니다그려! 현 무림의 최고 후기지수를 이렇게 뵙다니, 영광이오!”
감석보가 얼른 나서서 남궁인의 두 손을 잡고는 마구 흔들어댔다.
일행에겐 이미 익숙해진 일이었기에 모두 그러려니 했으나, 남궁인은 몹시 당황했다.
‘혹시 이자 역시 숨겨진 고수인가? 어찌 저 청년을 놔두고 대표로 나서는 것인가.’
남궁인이 진땀을 흘리며 감석보의 치근덕거림에 맞서고 있을 때, 남궁인과 함께하던 후기지수들 또한 호기심 어린 눈으로 천룡 일행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들은 이번 천하영웅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소림과 황보세가, 그리고 종남파에서 선발된 청년 고수들이었다.
그중 소림일재(小林一才) 공현은 오룡의 한 명으로, 절정 끝에 다다른 고수였다.
한자리에 오룡사봉 중 무려 다섯이 모인 것이다.
아무리 천하영웅대회 때문이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간단하게 숙소에 짐을 푼 천룡 일행이 남궁인 일행과 합석했다.
천룡도 상당히 수려한 외모였는데, 남궁인은 천룡을 뛰어넘고 있었다.
수수한 흰색 영웅건 아래로 길게 늘어뜨린 머리부터, 그야말로 반안, 송옥이 울고 갈 용모에 화려하지 않으면서도 고급스러운 옷차림까지.
별 중에 별이라 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었다.
“이거, 강호를 진동시킬 젊은 인재들이 한자리에 모이다니, 정말 즐거운 일이로군요!”
감석보가 다시 호들갑을 떨었다.
한데, 갑자기 혀를 차며 안타까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안타깝지만 이제 남궁 공자도 최고의 후기지수 자리를 내놓을 수밖에 없겠구려.”
감석보가 침을 한 번 꿀꺽 삼키더니 말을 이었다.
“여기 제 옆에 있는 천룡공자가 누구냐 하면!”
그때부터 감석보의 입에서 천룡을 칭송하는 말들이 소나기처럼 쏟아져 나왔다.
그동안 펼쳐진 천룡의 활약과 무공, 거기다 인품하며…….
그는 마치 천룡이 천하제일인이라도 되는 양 침을 튕겨 가며 소개했다.
천룡이 초절정의 고수라는 부분은 무려 여섯 번이나 강조를 해 듣는 사람들이 그 진위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였다.
천룡은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었다.
보다 못한 천성이 감석보의 입을 막고, 영호명이 멋쩍은 표정으로 두 사람을 소개시켰다.
“하하, 천룡 형님, 남궁 형님. 인사들 나누시지요.”
“정식으로 인사드리겠습니다. 삼선께 사사한 감숙 철혈문의 궁천룡이라 합니다. 강호에 명성이 자자하신 창천소룡을 이렇게 직접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천룡이 포권하며 남궁인과 그 일행에게 정중히 인사했다.
남궁인은 감석보 때문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천룡이 인사해 오자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는 일어나 마주 포권했다.
“이거, 만나서 반갑습니다. 삼선이시라면…… 그 신비에 싸인 세 선인분을 말씀하시는 것이지요? 호오, 천룡 공자와 같은 제자를 길러내신 것을 보아 알려진 것보다 훨씬 대단하신 분들임에 틀림없군요.”
호기심 어린 눈빛을 띤 남궁인이 천룡의 인사에 화답했다.
흑암문주를 물리친 청년고수에 대한 소문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그 주인공이 이토록 어릴 줄은 짐작도 못한 그였다.
“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아직 어리고 모자라니 편하게 대해 주십시오.”
멋쩍은 표정으로 천룡이 대답했다.
얼핏 보아도 남궁인은 천룡보다 나이가 예닐곱 살은 더 많아 보였다.
그런데도 자신에게 깍듯이 대하는 것을 보니 미안한 마음이 든 것이다.
사실 남궁인과 천룡은 무려 일곱 살이나 차이가 났다.
그러니 남궁인으로서도 더욱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자신은 스물다섯에야 초절정 초입을 돌파했는데, 천룡은 많아 봐야 이제 겨우 약관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흥! 나는 그말을 믿지 못하겠소! 그 나이에 초절정이라니, 허풍이 심하시구려!”
어딜 가나 눈치 없는 인간은 있기 마련이었다.
사실 조금만 생각해 본다면 감석보의 말이 허풍이 아님을 금방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천룡과 함께한 사람이 감석보뿐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삼봉 중 이봉과 서문유란, 오룡 중 한 명인 청명까지 천룡이 초절정고수라는 말에 이의를 달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는 법.
하지만 감석보의 입놀림이 사실도 허풍처럼 꾸며내는 수준에 이르러 있었고, 그런 감석보의 행동에 같이 엮이기 싫은 일행들이 조용히 고개를 돌리고 있었기에 의심이 많은 자라면 한번쯤 반발하게 되는 것이다.
나선 이는 의외로 소림의 공현이었다.
사실 이 젊은 소림승은 소림사 내에서도 골칫거리였다.
호승심이 강한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행동에 몇 번이나 파계의 위기를 맞이했으나, 그의 자질이 너무 뛰어나고 본성이 모나지 않음을 문파의 어른들이 인정해 그나마 여태껏 승적(僧籍)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소림일재 공현은 싸움을 좋아하고 나서는 것을 좋아하여 어딜 가나 말썽거리를 달고 다녔다.
하지만 타고난 성품은 못되지 않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다른 이를 돕는 것을 즐거워했다.
어쨌든, 이번에도 결국 호승심과 나서기 좋아하는 성격을 참지 못하고 감석보의 말에 반발한 것이다.
왠지 일이 귀찮게 꼬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을 느낀 천룡이 즉시 고개를 숙였다.
“하하. 이거, 부족한 저 때문에 괜히 심기를 어지럽혀 드린 것 같아 죄송합니다. 실력이야 어차피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이렇게 좋은 사람들끼리 만나 친교를 나눌 수 있다면 그것으로 좋은 것 아니겠습니까.”
하지만 그 말이 공현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마치 자신이 꼬투리를 잡아 천룡을 탓하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허허, 천룡 소협은 혓바닥이 제법 날카로우시오. 어디, 무공실력도 그와 같은지 이참에 나와 한 번 겨루어 봅시다!”
눈썹을 치켜올린 공현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사실 공현이 이토록 억지를 부리는 데는 워낙 싸움을 좋아하는 그의 성격이 한몫했다.
고수와의 무공 대결이야말로 공현이 가장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간 소림사에서 여러 어른들 눈치를 보느라 몸이 근질근질 했는데, 제법 강해 보이는 천룡을 만났으니 한 번 주먹을 맞대 보고 싶었던 것이다.
[허, 저놈은 정말 막무가내구나. 니가 기억하던 정보에 있는 스님들과는 전혀 다른 종자인데?]
무숙이 어이없다는 듯 천성에게 말했다.
‘어딜 가나 맞아야 정신 차리는 놈들이 한 명씩 꼭 있는 법이지요. 그런 놈들은 사람이 말을 하면 믿지를 않지요.’
[말한 사람이 감석보라면 이해는 간다만…….]
‘…….’
천성으로서도 반박할 수 없는 이야기였다.
“어허, 공현 스님께선 어찌 사람의 말을 믿지 못하는 것이오! 내가 설마 없는 이야기를 지어내기라도 했단 말이오?”
그새를 가만히 못 있고 감석보가 핏대를 올리며 공현에게 따졌다.
선검문에서 자신이 했던 행동은 어느새 까맣게 잊은 모양이었다.
“하하, 좋은 자리에서 다들 왜 이러십니까. 공현 스님께선 저를 보아 조금만 흥분을 가라앉혀 주시지요. 어차피 천하영웅대회 때 서로의 실력을 보이거나 손을 부딪쳐 볼 수 있을 터인데, 이런 곳에서 소란을 피워서야 다른 분들에게 피해만 주지 않겠습니까?”
남궁인이 재빨리 나서서 공현을 말렸다.
그러고는 감석보와 천룡에게도 정중히 사과했다.
“이거, 공현 스님의 무례를 제가 대신 사과드리겠습니다. 워낙에 성격이 불같은 분이라……. 하하! 나쁜 뜻으로 그러는 것은 아니니 너무 섭섭하게 생각 마십시오.”
“아닙니다. 감 공자님의 말이 좀 과장되기는 했지요. 제가 공현 스님이라도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하하.”
천룡이 멋쩍은 미소를 지었다.
“흠흠, 내가 너무 흥분한 건 조금 미안하오, 하나 정말 믿을 수 없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오.”
아직도 자신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하는 듯 공현이 말했다.
“흥, 그렇게 못 믿겠다면 내기를 하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때, 감석보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공현에게 제안을 했다.
“내기?”
“그렇습니다. 공현 스님께서 그토록 본인의 의견에 자신이 있다면 못할 것도 없지 않습니까?”
공현의 눈썹이 꿈틀했다.
이제 와서 물러서기엔 그의 뻣뻣한 자존심이 용납치 않았다.
“좋소! 까짓것, 합시다!”
“공현, 사실은…….”
그때, 보다 못한 청명이 공현에게 사실을 말해 주려 입을 열었다.
“어허! 청명 도사께서는 천기를 누설하지 마시오!”
다된 밥에 코 빠트릴세라 얼른 청명의 입을 틀어막은 감석보가 나머지 일행에게도 눈치를 주었다.
“크흠…….”
청명이 안타까운 표정으로 공현을 바라보았다.
“그럼 무엇을 거시겠습니까?”
“자, 잠깐! 저는 절대 내기 같은 거 할 생각은 없습니다!”
천룡이 당황해서 얼른 앞으로 나섰다.
당사자는 가만히 있는데 제삼자들끼리 북 치고 장구 치고 하는 모양새가 아닌가.
“그렇다면 천룡 공자는 지금 본인의 실력이 초절정이 아니라고 시인하는 것이오?”
“아, 그것은 아니고…….”
초절정이 맞는데 일부러 아니라고 말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럼 내기를 인정하는 것으로 하겠소!”
이건 또 무슨 말인가.
“아, 아니…….”
천룡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식은땀을 흘렸다.
“좋소! 그렇다면 천룡 공자가 질 경우, 그대를 사부로 모실 것이오!”
“헐.”
멋대로 천룡의 미래를 결정해 버리는 감석보였다.
“후후. 뭐, 어차피 천룡 공자가 이길 텐데 어떻소? 공현 스님, 자신 없으면 지금이라도 포기하시지요.”
감석보가 조소를 흘리며 공현을 도발했다.
얼굴이 붉게 상기된 공현이 코웃음을 치며 소리쳤다.
“흥! 좋소! 만일 천하영웅대회에서 그대의 실력이 초절정임을 증명한다면 앞으로 내가 그대의 동생이 되겠소!”
“푸읍!”
“켁!”
천룡의 실력을 알고 있는 일행이 공현의 선언에 놀라 마시던 술을 뿜어냈다.
공현은 후기지수들 중에서도 나이가 많은 편이라 올해로 스물여덟이었다.
천룡과는 무려 아홉 살 차이가 나는 것이다.
홧김에 여러 중인들 앞에서 선언한 말이 자신의 앞날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음을 공현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 섣불리 그런 약속을 함부로 하시면 나중에 후회하실 텐데…….”
청명이 얼른 나서서 공현을 말렸다.
“흥! 나보고 한 입으로 두말을 하란 말이오? 사내대장부로서 그렇겐 못하겠소!”
고집불통 공현의 대답에 청명은 입맛만 다셨다.
제갈수련과 화설련은 자신들이 적극적으로 천룡의 실력을 확인해 주지 않은 것이 공연히 미안해졌다.
사실 감석보가 하도 날뛰길래 똑같은 부류로 엮이게 될까 봐 가만히 있었는데, 그 때문에 공현이 천룡을 믿지 못하게 된 것이다.
일행 중 청명이나 자신들이 나서서 천룡의 실력을 증명했다면 간단히 끝났을 일이었다.
하지만 속으로는 왠지 재미있을 것 같다는 악마의 속삭임이 일행의 움직임을 막았던 것이다.
“이거, 참으로 재미있겠구려! 핫핫핫! 천룡 공자, 동생이 한 명 더 생긴 것을 미리 축하드리오! 으헤헤헤헤헤!”
감석보가 이미 승부에 이겼다는 듯 게걸스럽게 웃었다.
자신의 말을 믿지 않고 따지고 든 공현을 골탕 먹이게 되었다는 사실이 너무나 기쁜 것이다.
천룡은 난감한 표정으로 공현과 감석보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주변 사람들의 심상치 않은 분위기에 공현은 서서히 불안이 엄습해 옴을 느꼈다.
하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다.
“뭐, 최악의 상황이라 해 봐야 형 하나 새로 생기는 것 아니겠소? 아홉 살 어린 형. 하하하하!”
감석보가 공현을 한 번 더 놀렸다.
공현의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 되었다.
아무리 눈치 없는 공현이지만, 이제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청명을 비롯한 일행이 측은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으니 말이다.
‘아뿔싸, 내가 아까 왜 저들에게 물어보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 묻기도 자존심이 상했다.
그저 천하영웅대회까지 마음 졸이며 혹시라도 천룡이 초절정이 아니길 부처님께 기원하는 수밖에 없었다.
공현과 감석보 덕에 모임은 화기애애하게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