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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8화)
3장 천하영웅대회(3)
회천궁(回天宮).
천주 용천광을 중심으로 여러 인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그 중앙엔 한 팔이 잘린 채 붕대를 감고 있는 뇌룡(雷龍)이 용 가면을 벗은 채 창백한 얼굴로 대전 바닥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천황! 죽여 주십시오! 크흑!”
뇌룡이 바닥에 머리를 찧으며 울부짖었다.
“우선 어떻게 된 일인지 경과를 보고하라!”
구공이 흐느끼는 뇌룡을 제지하며 사건의 전말을 요구했다.
철혈문에 간 스물한 명의 전력 중 뇌룡 혼자만이 살아남아 돌아왔으니 우선은 그 이유를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만일을 대비해 차고도 넘치는 인원을 보냈다.
게다가 혹시나 흑의인이 있을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뇌룡을 보내지 않았는가.
무엇보다 뇌룡은 음후나 섬응과는 격이 다른 실력자였다.
화경고수와 대적해도 밀리지 않는 전사였다.
거기다 스무 명의 비영을 딸려 보냈다.
철혈문을 치고도 남는 전력이었다.
물론 흑의인 뒤에 또 다른 세력이 존재할 가능성도 있었으나, 그간의 모든 상황을 종합해 보면 그럴 가능성은 거의 희박했다.
두 달 가까이 그들을 면밀히 감시해 왔다.
혹시라도 뒤에 다른 세력이 있었다면 그동안 한 번이라도 그 모습을 보였을 터.
하다못해 최소한 낌새라도 눈치챌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뇌룡 홀로 팔까지 잃고 돌아온 것이다.
구공의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크흐흑! 갑자기 나타난 괴물 같은 세 노인 때문에 모든 것이 틀어졌습니다. 모두가 화경 이상의 고수였으며, 그중 한 명은 현경을 넘긴 듯합니다!”
“뭐라!”
눈을 부릅뜬 용천광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현경의 고수라면 현 무림에 단 두 명뿐이다.
현 구천마련의 련주인 구천마제 혁련우와 무림맹의 맹주 창천검제 남궁영이 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이 철혈문에 왜 나타났단 말인가.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일이었다.
“천황, 정확치는 않지만 아무래도 삼선이 나선 듯합니다.”
그때, 환사가 나섰다.
“무슨 말이냐?”
용천광이 환사를 보았다.
“철혈문의 애송이 녀석이 삼선의 제자로 밝혀지지 않았습니까? 세 명의 노인이라면 그들일 확률이 높습니다.”
환사가 조심스레 대답했다.
“그건 나도 안다! 하지만 알려지기로 삼선은 그저 초야에 묻혀서 도나 닦는 신비주의 노인네들에 불과하지 않더냐! 강호에서 많이 봐주더라도 화경에 겨우 이르렀으리라 보는 것이 중론인데, 현경이라니! 이건 일족의 계획을 전부 수정해야 할 문제가 아니냐!”
용천광도 삼선의 존재는 일찍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정마대전 당시 그들의 활약상을 지켜본 몇몇의 고수들조차도 삼선의 무공을 높게 봐야 화경에 이르렀다 여기고 있었다.
그런데 현경이라니.
어이가 없었다.
그 말인즉, 알려진 것보다 두세 배 더 높은 경지라는 이야기였다.
물론 자신이 직접 나선다면 제압할 수 있으리라.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황제의 무리들에게 먼저 정체를 드러내게 되는 셈.
겨우 철혈문 따위를 제압하기 위해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시킬 수는 없었다.
“앞으로 당분간 철혈문에서는 손을 뗀다!”
잔뜩 찡그린 얼굴로 용천광이 명령했다.
하나라도 아쉬운 전력을 함부로 낭비할 수는 없었다.
장로들이 폐관을 끝낼 때까지는 어떻게 해서든 손실을 줄여야 했다.
“존명!”
용천광은 눈살을 찌푸리며 대전에 모인 일족을 바라보았다.
이들 모두가 조상의 짐을 대신 짊어지고 태어났다.
참으로 불쌍하고 측은하지 않는가.
그러니 자신이 이들을 해방시켜 줘야 하는 것이다.
심호흡을 한 번 내쉰 용천광이 흥분을 가라앉혔다.
“대연문은?”
어느새 마음을 다잡은 용천광이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성공했습니다. 지금 화웅과 지인이 가솔들을 붙잡은 채 대연문에서 대기하고 있는 상태입니다.”
환사가 대답했다.
“어차피 철혈문은 현경고수가 지키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구차하게 복면까지 써 가며 정체를 감춘 채 뒤에서 도울 일은 없을 테니, 결국 대연문이겠군요.”
구공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혹시 삼선이 거느린 누군가가 몰래 뒤를 봐주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몸이 거의 회복된 섬응이 조심스레 말했다.
“알다시피 놈은 영력을 사용한다. 삼선과 관련 짓기는 어렵지. 둘 중 하나야. 황제의 무리가 영력을 사용할 수 있는 새로운 방법을 찾았거나, 아니면 복희께서 숨겨 둔 또 다른 수호자!”
구공이 잠시 말을 멈추었다.
구원자의 존재에 관한 것은 신농 일족만 알고 있었기에 치우와 헌원 일족은 그 사실을 알 수 없었다.
단지 복희가 신농 외에 또 다른 열쇠의 수호자를 안배해 두었을 수 있다 여기는 것이다.
“하지만 놈이 황제의 무리라고 생각하기엔 행적이 너무 오락가락해. 우리 일을 방해하는 듯하지만, 운현에서는 마교도들을 구하기도 했어. 간악한 황제의 무리가 일부러 정체를 드러내면서까지 그런 쓸데없는 일을 할 리는 없지. 그렇다면 복희께서 숨겨 놓은 또 다른 수호자라는 가정이 가장 이치에 맞는데…….”
잠시 생각을 정리하는 듯 구공이 머리를 갸웃거렸다.
“흠, 셋 중 하나군. 삼선과 관계없이 철혈문에 복희의 수호자가 존재하든가, 아니면 대연문이 복희의 수호자가 존재하는 곳이거나, 진정 우연의 일치로 애송이 놈들 일행과 동선이 맞았을 경우!”
용천광이 입을 열었다.
“그렇다면 일단 대연문을 족쳐 보면 답이 나오겠구나!”
분노에 찬 일성이었다.
흑의인 때문에 일이 조금씩 어긋나더니, 이젠 목에 걸린 가시처럼 성가신 존재가 되었다.
대연문에서 함정을 파고 기다리다 보면, 놈이 움직이든 움직이지 않든 답이 나오게 될 것이다.
어쨌든 놈을 처리하지 않고는 항상 뒤가 불안할 테니.
“일단 대연문 놈들을 심문해 보고, 입을 열지 않으면 애송이 일행에게 그 사실을 알려라. 만일 흑의인과 놈들이 연결되어 있다면 대연문을 구하러 오겠지. 단, 이 일은 절대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철저히 정보를 통제해야 한다.”
대연문 외부로 그 소식이 새어 나간다면, 자칫 치우 일족의 정체가 드러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존명!”
* * *
무림맹!
정도무림의 중심!
모든 후기지수들의 꿈이 향하는 곳!
대회를 이틀 앞두고 천성과 일행은 접수를 위해 무림맹으로 향했다.
사람들이 몰릴 것이라 여겨 미리 나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림맹 정문 앞에는 접수를 기다리는 참가 신청자들이 길게 늘어서 있었다.
접수를 하려면 추천서가 있어야 했는데, 추천서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천성 일행처럼 강호 명숙들의 추천을 받은 경우였고, 또 다른 하나는 운현에서 만난 양도문처럼 마인들을 잡아온 자들에게 무림맹이 발급하는 추천서였다.
정문 양옆으로 마련된 접수처에서 문사들이 참가자들이 가져온 추천서를 받고 참가증을 나눠 주고 있었는데, 무려 열 명의 문사가 접수를 위해 동원되었기에 줄은 생각보다 빠르게 줄어들었다.
“정말 대단하네.”
천성은 얼이 빠진 표정으로 여기저기를 살폈다.
무림맹의 규모는 천성과 천룡이 이제껏 봐온 선검문이나 화산, 무림맹 지부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무한이 워낙에 큰 도시였기에 그 자체로도 천성과 천룡에겐 눈이 휘둥그레질 일들이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백미인 무림맹은 하나의 거대한 성이나 다름없었다.
수많은 건물들이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늘어서 있어 길을 찾기도 쉽지 않을 듯싶었다.
몹시 들떠 있는 일행들과는 달리 서문유란의 표정은 매우 어두워 보였다.
자신의 오라비인 서문해광과 가문의 참가자 일행이 이미 무림맹에 도착해 있었기 때문이다.
찾아가 인사해야 함이 마땅하나, 가문의 허락도 받지 않고 참가한 서문유란의 입장에서는 마주쳐 봐야 좋은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천성이 힐끔거리며 그런 서문유란을 살폈다.
그녀의 어두운 표정을 보니 마음이 쓰렸다.
[저 아이는 무슨 고민이 그리 많길래 항상 얼굴이 똥 씹은 표정이냐?]
무숙이 잔뜩 불만 어린 목소리로 투덜거렸다.
도무지 왜 천성이 저런 여인을 좋아하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던 것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차분하고 청순한 제갈수련이나 활달하고 아름다운 화설련에 비해 나은 점이 하나도 없었다.
물론 화설련과 제갈수련이 천성에게 관심이 있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런데 하필 저 성격 나쁜 처자를 천성이 좋아하는 것이다.
참으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자, 이참에 무림맹 구경이나 합시다!”
마지막으로 접수를 마친 감석보의 호들갑에 정신이 든 천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 그거 좋겠네요. 천룡 공자와 천성 공자는 무림맹이 처음일 테니.”
화설련이 감석보의 제안에 맞장구를 쳤다.
일행은 대회가 열리는 곳도 미리 살필 겸해서 맹의 지리에 익숙한 제갈수련을 따라 무림맹 안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 * *
천룡 일행이 무림맹 내부에 막 들어섰을 때였다.
“유란이, 네가 이곳엔 어인 일이냐?”
앞쪽 건물을 돌아 나오던 스물 중반쯤으로 보이는 젊은 청년이 서문유란에게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린 서문유란의 눈이 커졌다.
“오, 오라버니!”
청년은 바로 서문유란의 친오라비이자 오룡의 일인인 서문해광이었다.
한데 서문해광의 표정은 차갑게 굳어 있었다.
“어찌 이곳에 있는 것이냐고 물었다!”
고압적인 물음에 서문유란은 안절부절못했다.
“해광 오라버니, 오랜만이에요.”
그러자 제갈수련이 얼른 나서서 인사하며 곤란해하는 서문유란을 막아섰다.
그제야 주위에 일행이 있음을 의식한 서문해광이 마지못해 마주 인사했다.
“그래, 오랜만이구나. 수련이와 설련이가 함께 온 게로구나. 왔으면 진작에 찾아오지 않고…….”
말을 하는 서문해광의 표정엔 불쾌함이 녹아 있었다.
서문유란이 가문의 허락 없이 몰래 이곳에 온 것을 은근히 질책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