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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10화)
3장 천하영웅대회(5)
“제가 직접 마뇌에게 연락을 해 보겠습니다.”
제갈휘의 말에 다시 한 번 남궁영의 눈이 빛났다.
“마뇌에게?”
“그렇습니다. 마뇌라면 저와 뜻이 통할 것입니다. 어차피 전면전은 공멸을 뜻함을 그도 잘 알 테니까요. 분명 련주를 설득할 것입니다.”
마뇌 사마굉은 마련의 총군사였다.
현 강호에서 제갈휘와 쌍벽을 이루는 지자라 알려져 있고, 무너질 뻔한 마련을 지금의 상태까지 끌어 올린 장본인이었다.
“아무리 그렇다 해도 그들이 이대로 물러서지는 않을 터. 결국 우리 측에서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 텐데?”
“그것은 서로 조율해야 할 일이지요. 되도록 최소한의 대가로 서로 만족할 수 있는 결과를 얻게 될 수 있기 바라는 수밖에요.”
어차피 이대로 가만있으면 정마대전을 피할 수 없었다.
조금의 확률이라도 있다면 무엇이든 시도해 봐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마땅한 대안이 없군. 자네 생각대로 시행하게.”
결국 남궁영은 침중한 표정으로 허락을 했다.
온 강호가 전화(戰火)에 휩쓸릴 위기에 처해 있음이 그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저…… 그리고 그 아이가 도착했다 합니다.”
남궁영이 갑자기 무슨 소리냐는 듯 제갈휘를 바라보았다.
“공소추를 제압했다는 청년 말입니다.”
남궁영의 눈이 빛났다.
“그래? 어떤가? 보고가 사실인 것 같은가?”
“분명 뛰어나 보이긴 했습니다. 그리고 왕추와 맞서는 것을 목격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왕추의 암혼쇄심장을 받아 냈다 합니다.”
“허허, 약관의 나이에 왕추와 맞섰다? 참으로 믿기 어려운 일이군.”
남궁영은 허탈한 웃음을 지었다.
자신의 손자이자 현재 정도 최고의 후기지수인 남궁인도 스물다섯에야 초절정에 다다랐을 뿐이다.
그것도 상당히 빠른 속도였다.
그런데 그보다도 오 년 이상 빨리 초절정에 이른 기재가 나타난 것이다.
정파무림에 걸출한 인재가 나타났으니 기쁜 마음이 일었으나, 다른 한편으론 자신의 손자를 뛰어넘었다는 게 그리 맘이 편치는 않았다.
“그래, 당분간 지켜보도록 하지, 대회에 참가했으니 곧 실력을 보게 되겠지. 삼선, 그들은 참으로 신비한 자들이야. 대체 무슨 수로 그런 아이를 키워 낸 게야?”
남궁영은 새삼 삼선의 능력에 혀를 내둘렀다.
“일단 대회 기간 동안 불편함이 없도록 배려해 주고, 대회가 끝나면 내 직접 한 번 만나 보도록 하지,”
어찌 되었든 강호가 불안한 이 시기에 젊은 고수의 등장은 가뭄의 단비와도 같았다.
반드시 무림맹이 끌어안아야 하는 것이다.
“알겠습니다.”
제갈휘가 인사를 하고는 집무실을 나섰다.
* * *
드디어 천하영웅대회 당일이 되었다.
무림맹 중앙의 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대회에 참가하거나, 혹은 구경하기 위해 몰려들었다.
얼핏 보아도 만 명이 넘을 듯 보이는 어마어마한 군중.
광장의 크기가 백오십 장이 넘어갈 정도로 상당히 컸음에도 발 디딜 틈이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객석을 메우고 있었다.
참가자 수만 무려 칠백 가까이 되는 대회였다.
그것도 여러 조건을 통해 거르고 거른 참가자들이었다.
중추절에 시작된 대회는 무려 열흘 동안 치러지게 된다.
그때, 광장 입구로 천성 일행이 들어섰다.
광장의 규모와 객석을 가득 메운 관중들의 수에 압도된 천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절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웅지가 솟아올랐다.
‘과연 내가 무공 실력만으로 어느 정도 성적을 낼 수 있을까?’
무공만으로도 이류 끄트머리 정도는 오른 천성이었다.
거기에다 순수한 육신의 힘과 속도 역시 다른 이들을 훌쩍 능가했다.
감각과 육체의 한계를 확인할 최상의 기회였다.
아니, 어쩌면 오히려 싱거운 대결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자, 드디어 시작이로구나!”
그때 들려온 감석보의 목소리가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했다.
광장 북쪽 단상에는 정파의 명숙들과 무림맹 수뇌부가 자리하고 있었는데, 맹주 남궁영의 모습도 보였다.
잠시 후, 단상 앞 연단으로 무림맹 군사 제갈휘가 올라섰다.
“천하영웅대회를 빛내기 위해 이 자리에 모인 모든 젊은 영웅들에게 찬사를 드리는 바이오! 그대들이야말로 정도무림의 미래요, 강호의 정의를 지키고 협의를 세울 투사들이오! 부디 자신의 실력을 아낌없이 발휘하여 천하에 이름을 높이 알리길 빌겠소! 그럼 지금부터 천하영웅대회를 시작하겠소!”
“우와아아아아아아!”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의 함성이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가슴 가득 벅차오르는 감동이 천성의 온몸을 전율케 했다.
치우 일족이나 마련, 열쇠에 관한 모든 일들마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중요하지 않게 느껴졌다.
열정과 웅지가 천성의 가슴을 뜨겁게 불태우고 있는 것이다.
“좋구나!”
단상을 바라보며 천룡이 가슴을 폈다.
드디어 진정으로 세상에 이름을 알릴 순간이 왔다.
이제 사람들은 천룡이 공소추를 제압하고 왕추와 맞선 것이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될 것이다.
“대결 방식을 설명하겠소!”
공력이 실린 제갈휘의 목소리에 군중들이 입을 다물었다.
“예선은 광장에 위치한 여덟 개의 비무대에서 펼쳐질 것이오! 우선 예선에 참여하지 않고 본선으로 직행할 여덟 명의 후기지수를 호명할 것이오! 이들은 심사를 위해 참여하신 무림 명숙들과 맹의 지휘부에서 심사숙고하여 선정하였소. 하지만 혹시라도 이에 불복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도전의 기회를 주겠소. 이들 팔인에게 도전하여 승리를 거둔다면 그가 본선에 직행하게 되오. 물론 본선 직행자 결정전에서 패한 참가자도 다시 예선에 도전할 수 있소!”
제갈휘의 말에 군중들이 술렁였다.
칠백에 가까운 인원이 모였으니 본선에 들기 위해서는 수 많은 대결을 거쳐야 한다.
한데 번거로운 대결을 거치지 않고 본선에 직행할 기회가 열린 것이다.
자연 실력에 자신있는 참가자들이 눈을 빛내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금부터 여덟 명의 본선 직행자를 발표하겠소. 호명하는 이들은 순서대로 여덟 개의 비무대로 오르시오! 남궁세가 남궁인! 소림의 공현! 무당의 청명! 서문세가의 서문해광! 상관세가의 상관중혁!”
순간, 천성의 눈이 비무대로 오르는 상관중혁을 향했다.
‘저놈은!’
유가장에서 마찰이 있던 기억이 살아났다.
감숙의 망나니라는 소문답게 안하무인의 심성을 가진 놈이었다.
어차피 저런 놈과 상대해 봐야 귀찮아질 뿐이었다.
단지 곡용천의 모습이 다시 떠올라 착잡한 심정이 되었다.
그러는 사이에도 제갈휘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이어졌다.
“화산의 장일곤! 청성의 양만위! 공동의 도진백! 지금부터 이 여덟 명의 본선 진출자에 도전할 이들은 각 비무대로 오르시오! 단, 다섯 명을 이긴 경우에는 더 이상 도전을 받지 않겠소! 또한 여기 있는 여덟은 모두 절정을 넘긴 고수요! 그러니 절정에 못 미치는 이들의 도전은 금하겠소!”
그 말에 아쉬움에 혀를 차는 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운에라도 기대어 볼 양으로 한 번 도전해 보려던 이들이 제갈휘의 말에 포기를 할 수밖에 없게 된 것이다.
서른이 되지 않은 나이에 절정을 넘기가 쉬울 리 없었다.
당연히 그 숫자가 많지 않은 것이다.
대부분의 참가자들이 맹의 결정에 승복했다.
호명된 여덟은 모두 강호에 이름난 청년 고수들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이들도 존재했다.
그런 이들은 둘 중 하나였는데, 그동안 숨어 있던 실력자거나, 멋모르는 애송이들인 것이다.
“어허! 천룡 공자가 여덟 명에 들지 못하다니, 어이없군요! 초절정의 고수가 여덟 명에 들지 못한다면 누가 들어야 한단 말인가!”
제갈휘의 발표에 못마땅한 감석보가 목청을 높였다.
하지만 아직 천룡은 이름이 알려진 지 얼마 되지 않아 모르는 이들이 더 많았다.
또한, 그의 무공을 직접 확인한 이들도 적다 보니, 소문만으로 여덟 명에 꼽기는 무리였던 것이다.
“하하, 어차피 실력으로 보여 주면 될 일이지요. 여덟 명에 드는 게 무슨 소용입니까? 심심하게 기다리느니 몸이라도 좀 푸는 것이 오히려 즐겁겠지요.”
천룡이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참에 저 건방진 소림 땡중에게 도전해 봄이 어떻겠습니까! 후후!”
감석보가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천룡을 부추겼다.
공현이 곤란해하는 모습을 반드시 보고 싶은 그였다.
“형, 그것도 괜찮겠는데? 어차피 예선이라 봐야 절정도 안 되는 무사들과 상대해야 할 텐데, 그러면 너무 싱겁잖아.”
천성도 한마디 거들었다.
“물론 귀찮은 것은 질색이긴 하지만, 그래도 이런 기회를 놓칠 수는 없지. 언제 또 이런 큰 대회가 열리겠느냐? 일생에 한번 뿐일지도 모르는데, 하나도 놓치고 싶지 않구나.”
천룡에겐 천하영웅대회가 일종의 놀이인 셈이었다.
‘한 명, 한 명 강자들을 차근차근 꺾으며 예상을 뒤엎는 것이지! 무림의 신성이 탄생했구나 하고 말이지! 반전의 묘미랄까!’
주먹을 꽉 움켜쥔 천룡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 모습에 천성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혼자 쓸데없는 상상에 빠졌을 것이 빤했기 때문이다.
그때, 드디어 도전에 나선 인물이 나타났다.
“난 산동 조양문의 막여송이라 하오! 청성의 양만위 소협에게 도전하는 바이오!”
아무래도 오룡에게 도전하기는 무리라 여겼던지 청성파의 양만위에게 도전한 것이다.
양만위로서는 그닥 기분이 좋을 리가 없었다.
그만큼 자신이 만만하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만일 여기서 압도적인 실력을 보이지 못한다면, 계속해서 도전자들이 양만위에게 덤벼들 것이다.
얼굴을 굳힌 양만위가 포권을 한 후 검을 뽑아 들었다.
“잘 부탁드리겠소!”
산동 조양문은 그런대로 제법 강호에 이름이 알려진 문파로, 막여송은 조양문주의 둘째 제자였다.
그는 주로 권각을 사용한 박투에 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사람들이 첫 번째 대결을 흥미로운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핫!”
한마디 기합성과 함께 막여송이 먼저 몸을 날렸다.
아무래도 거리를 좁혀야 자신에게 유리한 싸움이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흥!”
코웃음을 친 양만위의 검이 호선을 그리며 막여송을 향했다.
“오!”
양만위의 검에서 반 장 가까운 검기가 아지랑이처럼 솟아오르자 관중들이 탄성을 토해 냈다.
아직 형상을 만들지는 못했으나, 이 정도면 오룡에 비해 뒤지지 않는 실력이었다.
쉬아아악!
검이 대기를 가르며 막여송의 명치를 찔러 갔다.
막여송은 감히 경시하지 못하고 몸을 비틀어 피했다.
팟!
순간, 놀랍게도 양만위의 검로가 급격히 변하더니, 섬전처럼 막여송의 옆구리를 베고 지나갔다.
“큭!”
신음성을 토해 낸 막여송이 고통을 참으며 그대로 앞으로 돌진했다.
잠시라도 머뭇거린다면 양만위의 빠른 검에 당하게 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쉬이이익!
예상대로 막여송이 있던 자리를 양만위의 검이 훑고 지나갔다.
“하압!”
그 틈을 타 거리를 좁힌 막여송이 오른 주먹을 무겁게 뻗어 냈다.
우우웅!
내기가 주먹에 집중되며 공기가 소용돌이쳤다.
강력한 일격에 양만위는 마치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태로워 보였으나, 그의 눈빛은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담담했다.
막여송의 주먹이 코앞에 도달하자 그제야 양만위의 신형이 슬쩍 옆으로 반 발자국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