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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11화)
3장 천하영웅대회(6)


부우웅!
막여송의 권격이 애꿎은 허공을 격하며 바람 소리를 냈다.
회심의 일격이 너무도 쉽게 무산된 것이다.
막여송은 당황한 표정으로 급격이 몸을 뒤로 뺐다.
곧 있을 양만위의 반격에 대비한 것이다.
하지만 양만위는 기다렸다는 듯이 신형을 미끄러트리며 막여송의 왼쪽으로 파고들었다.
양만위의 움직임에 미처 대응하지 못한 막여송이 눈을 부릅떴다.
그사이, 양만위는 이미 검을 뻗어 내고 있었다.
번쩍!
순간, 검광이 번뜩이는가 싶더니, 양만위가 뒤로 물러섰다.
“이만하면 된 것 같소.”
검을 내린 양만위가 담담하게 말했다.
“크윽…….”
그와 달리 막여송은 침음성을 토해냈다.
어느새 그의 목에는 한 줄 혈선이 새겨져 있었다.
만일 양만위가 한 푼의 힘만 더 주었더라도 치명상을 입었을 것이 분명했다.
그러니 막여송으로서도 완패를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의 격차가 너무도 큰 탓이었다.
“졌소…….”
패배를 인정한 막여송이 쓸쓸한 모습으로 비무대를 내려갔다.
지켜보는 이들도 무림맹에서 뽑은 여덟 후기지수의 실력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단하군!”
상기된 표정의 영호명이 감탄을 했다.
“너도 만만치 않으니 한 번 도전해 보지그래?”
천성이 영호명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충분히 가능한 이야기였다.
영호명 역시 절정을 넘어섰고, 천룡과 함께 다니면서 실력이 진일보한 상태였다.
“아니야. 나도 천룡 형님처럼 좀 더 많은 비무를 경험해 보고 싶어.”
“하긴, 너에겐 그것이 더 나은 선택일 수도 있겠다.”
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막여송 뒤로는 딱히 나서는 도전자가 없었다.
절정고수 자체가 드문데다 양만위의 실력을 확인한 후에는 자신들의 모자람을 느낀 것이다.
“자, 그럼 더 이상 도전자가 없는 것으로 알고 본선 직행 참가자를 결정…….”
막 제갈휘가 결정을 내리려는 순간이었다.
“안휘 현검문의 용혜란이 공동의 도진백 공자께 도전합니다!”
여덟 번째 비무대로 훤칠한 키의 미녀가 올라섰다.
바로 치우 일족의 소공녀인 용혜란이었다.
“오!”
곳곳에서 감탄성이 흘러나왔다.
용혜란의 용모가 사봉에 못지않게 아름다웠기 때문이다.
육 척에 가까운 큰 키에 늘씬하게 뻗은 몸매, 차갑고 도도한 분위기가 감히 범접하지 못할 천상의 신녀를 보는 듯했다.
도진백이 눈살을 찌푸렸다.
요즘 강호에서 가장 이름을 날리고 있는 문파가 바로 공동파였고, 그곳의 대표로 나온 후기지수가 바로 자신이었다.
그만큼 실력도 뛰어나고 자존심 또한 높았다.
그런 상황에서 하필 여인이 자신에게 도전해 오다니, 난감했다.
사람들은 자신이 여인에게도 얕보였다고 생각할 것이 분명했다.
이긴다 해도 우스운 꼴이었다.
“방심하지 말고 상대하시길!”
차갑게 한마디를 내뱉은 용혜란이 검을 뽑아 들었다.
순간, 마치 날카로운 한 자루 검이 눈앞에 나타난 듯한 느낌에 도진백이 자신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이런!’
스스로의 실책을 깨달은 도진백이 굳은 얼굴로 자세를 잡았다.
가볍게 볼 상대가 아니었던 것이다.
시작을 알리는 징 소리와 함께 용혜란이 움직였다.
마치 한 마리 은어처럼 그녀의 검이 유려하게 도진백을 찔러 갔다.
상단전이 봉인된 용혜란은 영력을 사용할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치우 일족은 어렸을 때부터 영력 외에도 무공을 함께 익히고 있었다.
음지에서 활동할 수밖에 없는 그들의 특성상 지금처럼 정체를 숨겨야 할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서였다.
그녀 역시 이미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으며, 치우 일족 중에서도 손가락에 꼽히는 무공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쉬이익!
마치 살아 있는 듯 검끝이 흔들리며 도진백의 전신을 노렸다.
어느 곳을 목표로 하고 있는지 짐작하기 어려운 검초였다.
공동파의 검은 실용적이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으로 유명했다.
또한 정파의 것이라 말하기엔 살기가 짙고 날카로웠다.
그런 탓에 도진백이 검을 움직이기 시작하자 비무대 위로 서늘한 한기가 순식간에 돌았다.
검에서 뿜어져 나오는 매서운 검기가 주변을 장악한 것이다.
역시 명불허전의 실력이었다.
채채챙!
두 사람 모두 빠른 손놀림으로 검을 부딪쳤다.
일 초, 일 초 위험하지 않은 검초가 없었으며,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서로가 상대의 검을 피해 냈다.
삼십여 초가 흐를 동안 우열을 가리지 못할 정도였다.
비무대를 둘러싼 관중들이 놀람의 탄성을 토해 냈다.
그 누구도 용혜란이 이토록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줄 것이라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그녀의 뛰어난 미모에 찬사를 보내던 이들이 이제 그녀의 무위에 감탄하고 있었다.
파팟!
채채챙!
검과 검이 맞부딪치며 불꽃이 튀어 올랐다.
두 사람의 대결은 점점 더 열기를 더해 갔고, 검초 또한 더욱 강력해졌다.
자신들이 가진 마지막 절초들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십성 공력을 끌어 올린 용혜란이 눈을 빛내며 검을 대각으로 잡았다.
이제 승부를 보려는 것이다.
도진백 또한 피하지 않겠다는 듯 공력을 잔뜩 끌어 올렸다.
공동파의 절기 중 하나인 복마대구식을 시전하려는 것이다.
우우우웅!
두 사람의 공력에 의해 대기가 진동했다.
“핫!”
이어 날카로운 기합성과 함께 용혜란의 검이 크게 대각을 가르며 검기를 쏘아 냈다.
쐐애애액!
사나운 파공성과 함께 그동안과는 다른 패도적인 검격이 도진백을 향해 날아갔다.
도진백 역시 지지 않고 마주 검을 휘둘렀다.
쩌어어엉!
검기가 부딪치며 주변 공기가 터져 나갔다.
순간, 용혜란이 다시 한 번 반대쪽으로 검을 휘둘렀다.
쉬아아아악!
기울어진 십자 모양으로 또 하나의 검기가 도진백을 덮쳤다.
“우웃!”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도진백이 다급히 검을 움직여 막았으나 놀랍게도 용혜란의 공력은 그를 능가하고 있었다.
콰아아앙!
“헉!”
헛바람을 들이켜며 도진백이 뒤로 다섯 걸음이나 물러섰다.
옷과 머리는 헝클어진 상태였고, 찢어진 옷 사이로 간간이 핏물도 내비쳤다.
명백한 열세였다.
“졌소!”
결국 도진백은 침중한 표정으로 패배를 인정했다.
“좋은 비무였습니다!”
용혜란이 포권을 하며 답례했다.
예상과 달리 비무가 용혜란의 승리로 끝나자 단상 위의 고수들이 수군거렸다.
안휘의 현검문이라는 문파는 철혈문만큼이나 강호에 알려지지 않은 문파였다.
그런 곳에서 용혜란 같은 고수가 나타나다니,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거기다 여인이지 않은가.
“허허, 강호에 새로운 여협이 탄생하겠구려!”
소림의 방장 원혜 대사가 기꺼운 표정으로 말했다.
단상에 자리한 정파의 명숙들도 저마다 용혜란의 무공에 대해 찬사를 보냈다.
그들과 달리 제갈휘는 잠시 비무대 위의 용혜란을 날카로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갑자기 등장한 고수.
그것도 정체불명의 고수는 상당한 위험 요소를 내포하고 있다.
일단 그녀의 확실한 신분을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
“이번 천하영웅대회는 시작부터 사람을 놀라게 하는군. 게다가 공소추를 잡은 아이까지 등장하면 제법 떠들썩해지겠구만.”
남궁영의 말에 제갈휘가 눈살을 한 번 찌푸리고는 다시 연단에 올랐다.
“이로써 본선에 직행할 여덟 번 째 자리는 현검문의 용혜란에게 갔소! 혹시라도 더 도전할 참가자가 있다면 지금 나오시오! 징이 다섯 번 울릴 동안 아무도 도전하는 이가 없다면 지금 비무대에 서 있는 여덟 사람을 본선 직행자로 확정할 것이오!”
지잉!
첫 번째 징이 울리고 연달아 네 번의 징이 더 울릴 때까지 누구도 나서지 않았다.
“그럼 본선 직행자는 이상 여덟 사람으로 결정하겠소. 지금부터 각자 나눠 준 참가증 위쪽에 적힌 번호의 비무대로 향하시오! 그 이후의 일은 각 비무대의 심판관들이 설명해 줄 것이오!”
참가증에는 가장 위쪽에 일부터 팔까지의 숫자가 적혀 있었고, 그 밑에는 세 자릿수의 번호가 적혀 있었다.
윗 번호는 각자 시합을 하게 될 비무대를 가리키는 번호였고, 밑의 숫자는 참가 번호였다.
“어머! 저는 오번이네요!”
화설련이 참가증을 확인하고는 다른 사람들의 번호를 힐끔거렸다.
“나는 두 번째!”
감석보 또한 자신의 참가증을 활짝 펴 보이며 말했다.
천룡은 일번, 영호명은 사번, 서문유란은 육번, 제갈수련은 칠번 비무대였다.
천성의 참가증엔 삼번이 적혀 있었다.
모두들 다른 비무대에서 겨루게 된 것이다.
아마도 같은 문파의 참가자들끼리 겹치지 않게 하기 위해 중복되지 않는 번호를 나눠 준 듯했다.
천성의 참가증에는 삼과 삼백이십칠이라는 숫자가 적혀 있었다.
삼백이십칠은 아마도 접수 순서인 듯했다.
일행과 헤어져 세 번째 비무대에 이르자 팔십여 명 정도의 참가자들이 보였다.
비무대에는 심판관인 듯한 세 명의 무림맹 인사가 자리를 잡고 참가자들을 살피고 있었다.
“이제 다 모인 듯하니, 대회의 규칙을 설명하겠네.”
심판관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소란스럽던 이들이 삽시간에 조용해졌다.
“본선은 서른두 명의 무사가 경연을 펼치게 되네. 일단 본선에 직행한 여덟 사람과 각 비무대별로 세 명씩, 총 스물네 명의 무사가 대결을 펼치게 되네. 즉, 여기에 모인 그대들 중 세 명만이 본선에 진출할 수 있다는 이야기지. 여기 있는 인원이 모두 여든여섯이니, 일차 비무를 통해 마흔세 명이 남으면 부전승으로 올라갈 일곱을 제비뽑기한 후 나머지 대결을 치르도록 하겠네. 비무의 규칙은 간단하네. 암기나 독, 살인은 허용되지 않고, 당사자가 패배를 시인하지 않더라도 심판관의 재량으로 경기를 중지시키고 승패를 결정할 수 있네. 알다시피 비무가 과열되어 불상사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이네.”
참가자들은 진지한 표정으로 심판관의 설명에 집중했다.
그때, 나머지 두 명의 심판관이 상자 하나를 들고 왔다.
“자, 우선 내가 이 상자에 적힌 번호표를 뽑을 테니, 그에 해당하는 참가자는 비무대로 오르게.”
추첨에 의해 비무자를 결정하는 모양이었다.
긴장된 표정의 천성이 참가자들을 둘러보았다.
과연 자신과 대결할 자가 누가 될지 불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척 기대가 되었다.
[걱정 마라. 육신의 힘과 움직임만으로도 너를 따를 사람은 거의 없을 게다. 오히려 너무 차이가 날까 걱정이다.]
태초의 파편에 의해 재구성된 육신은 영력을 사용하지 않은 상태에서도 엄청난 능력을 발휘했다.
그런 까닭에 어지간한 고수는 우습게 상대할 수 있었다.
[그리고 치우 일족의 감시가 있는 이상 변신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영력을 절대 사용하지 말거라.]
‘알겠습니다.’
그때, 심판관이 첫 번째 비무자의 번호를 불렀다.
“삼백구십이번, 삼백이십육번!”
곧이어 두 명의 참가자가 비무대에 올랐다.
“청해 진도관의 장소팔이오!”
“광동 양춘문의 조평이오!”
두 사람의 인사가 끝나자 심판관이 비무의 시작을 알리는 깃발을 들어 올렸다.
“시작하라!”
두 사람은 일류 초입 정도의 무사들로, 제법 괜찮은 실력을 지니고 있었다.
장소팔은 검을 사용했고, 조평은 도를 사용했다.
양측이 실력이 비슷해서 만만치 않은 대결이 될 듯했다.
천성은 자신이 비무대에 올라섰다 가정하고 둘과의 대결을 상상해 보았다.
현재 천성의 공력은 이류 끄트머리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내공이 없어도 절정고수를 넘어서는 움직임을 보일 수 있었다.
‘육 할 정도의 힘을 사용하면 충분히 꺾을 수 있겠군.’
특별히 영력을 쓰지 않아도 두 사람 정도라면 쉽게 상대할 수 있을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