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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16화)
5장 대연문의 위기(2)


섬서성 위남에 위치한 대연문은 마치 공동묘지처럼 스산한 느낌을 풍기고 있었다.
새벽이라 그런지 출입하는 이들도 없었고, 작은 소리 하나 새어나오지 않았다.
멀리 백 장 거리에 위치한 언덕에 도착한 천성이 영안을 열어 대연문을 살폈다.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영안은 장원의 상황을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음…….”
대연문의 상황은 참혹했다.
장원 마당에는 치우 일족으로 보이는 열 명 정도의 흑의인들이 경계를 서고 있었는데, 그들을 제외하고는 살아 있는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지 않았다.
마당 한쪽에는 대연문 무사인 듯한 자들의 시신이 산처럼 쌓여 있었고, 건물 곳곳에는 치열했던 전투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설마…… 모두 죽인 것인가.’
섬뜩한 생각에 천성은 영안의 범위를 더욱 확장시켜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다행히 뒤쪽에 위치한 가장 큰 전각에서 사람의 기척이 느껴졌다.
천성이 그곳으로 영안을 집중했다.
전각 밖에는 다섯 명의 흑의인이 경계를 서고 있었고, 안쪽에서 다시 삼십여 명의 기운이 느껴졌다.
영력을 더욱 끌어 올린 천성이 미간에 정신을 집중했다.
화아아아악!
순간, 전각의 벽이 회색으로 변하면서 점차 투명해지더니, 그 뒤로 형상들이 흐릿하게 잡혔다.
어설프게나마 투시가 이루어진 것이다.
두 번째 단계에 올라선 성과 중 하나임에 틀림없었다.
전각에는 다섯 개의 방이 있었는데, 그중 한곳에 몸이 결박된 채 주저앉아 있는 여덟 명의 남녀가 보였다.
‘살아 있는 사람이 있다!’
천성은 그제야 비로소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비록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으나 아직 구해 낼 수 있는 이들이 있음에 천성은 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다.
살려 둔 것을 보면 아마도 대연문에서 중요한 위치에 있는 인물들일 것이다.
문주와 가족, 혹은 수뇌부임에 틀림없었다.
생존자를 확인한 천성이 다른 방들의 상황을 살폈다.
‘가만! 저 여인은!’
옆방에는 놀랍게도 천성이 아는 이가 침상에 잠들어 있었다.
상이 명확하진 않았으나 충분히 얼굴을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운현에서 마련과 정파 참가자들 간의 싸움을 일으켰던 홍의여인.
스물다섯의 흑의인이 두 개의 방에 나뉘어 자고 있는 반면, 그녀와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내 한 명은 방 하나씩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것으로 보아 홍의여인과 정체불명의 사내가 흑의인들의 지휘자인 듯했다.
대연문 내의 상황을 어느 정도 파악한 천성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
다행히도 경계가 생각보다 심하지는 않았다.
아마도 천성이 이렇게 빨리 도착할 줄은 상상도 못했기 때문일 것이다.
일단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해 내는 것이 먼저였다.
그러기 위해서는 놈들이 천성의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상황에서 순식간에 여덟 명을 밖으로 빼내야 했다.
경계를 서고 있는 열다섯 흑의인의 눈을 피해 인질들에게 접근할 방법을 생각해 내야 했다.
‘지금으로서는 한 번에 기껏해야 두세 명밖에 옮길 수 없는데…….’
접근을 한다 해도 여덟이라는 인원이 문제였다.
천성이 최대한 인질들을 들쳐 메고 온다 해도 두 번은 움직여야 되는 상황이었다.
그사이, 놈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젠장! 머리를 쓰자, 머리를!’
한참을 고민하던 천성이 한순간 탄성을 내뱉었다.
‘그렇지!’
순간, 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 * *

대연문과 삼십 장 정도 떨어진 건물의 지붕 위에 올라선 천성의 손에는 어느새 두 개의 밧줄이 들려 있었다.
앞서 길을 물었던 포쾌들에게서 가져온 것이었다.
천성이 다시 돌아오자 화들짝 놀란 두 사람은 군소리 없이 포승줄을 천성에게 바쳤다.
천성은 두 개의 포승줄을 단단히 연결한 후 어깨에 멨다.
‘자, 이제 시작해 볼까!’
잔뜩 웅크린 천성이 영력을 끌어 올렸다.
[다시 한 번 고려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 대연문의 생존자들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뭔가 마땅치 않다는 듯 무숙이 꺼림칙한 목소리로 말했다.
‘어차피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나 단번에 구하지 못하면 모두 죽게 될 것입니다. 이 방법이 최선입니다. 자, 그럼 갑니다!’
파아아아아앙!
대기를 가르는 장소성이 울려 퍼지며 천성의 신형이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슈아아아아아앙!
하늘 위로 백 장 넘게 솟아오른 천성은 대연문이 한 손에 들어올 정도로 작게 보일 때가 되어서야 움직임을 멈추고 다시 아래로 떨어져 내렸다.
그러면서 영안을 열어 인질들이 갇힌 방의 상황을 살폈다.
여덟 사람은 방의 중앙에 모여 서로 몸을 기댄 채 잠들어 있었다.
다행히도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은 없었다.
‘좋아!’
천성의 몸이 그대로 전각으로 내리꽂혔다.
콰아아아아아아앙!
“허억!”
“꺄아악!”
난데없는 굉음에 놀란 인질들이 잠에서 깨며 비명을 질렀다.
“놀라지 마십시오! 도와주러 왔습니다! 몸을 최대한 맞대고 서로 꽉 붙잡으십시오! 어서!”
천성이 다급히 소리쳤다.
대연문주 감회성은 그 즉시 상황을 파악했다.
그는 대연문을 습격한 이들이 찾고 있는 정체불명의 흑의인이 천성임을 어렵지 않게 눈치챘다.
흑의와 큰 체구, 거기다 지금의 소란으로 볼 때 습격자들과는 적인 것이 분명하니 그 외에는 다른 사람을 생각할 수 없었다.
대연문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흑의인이 왜 자신들을 구하러 왔는지, 왜 습격자들이 알지도 못하는 흑의인 때문에 자신들을 공격했는지는 나중 문제였다.
이곳에 남는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했으니, 조금의 희망이라도 있다면 천성을 따르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어서! 저자의 말에 따르거라!”
감회성의 호통에 정신을 차린 대연문의 생존자들이 영문도 모른 채 얼른 서로를 꼭 껴안았다.
“누구냐!”
“침입자다!”
그때, 흑의인들과 홍의여인이 놀라 다급히 움직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순간, 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휘이이이이이익!
“엇!”
“허억!”
생존자들이 헛바람을 들이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느새 그들의 몸이 밧줄로 한데 묶여 있던 것이다.
두 가닥 밧줄의 끝은 천성의 손에 쥐어져 있었다.
“이, 이게 대체!”
당황한 감회성은 말을 잇지 못했다.
“마음 단단히 먹으십시오! 최대한 몸을 웅크리고 머리를 보호하십시오!”
콰아앙!
천성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이 부서지며 흑의인들이 난입해 들어왔다.
그 뒤로 홍의여인과 호랑이 가면을 쓴 자가 보였다.
유가장에서 지진을 일으켰던 사내, 바로 지인(地寅)이었다.
천성의 눈이 크게 뜨여졌다.
유가장의 원흉을 다시 만나게 된 것이다.
“바보 같은 놈! 스스로 함정으로 기어 들어왔구나! 크하하하하!”
지인이 웃음을 터뜨렸다.
“네놈은 이미 독 안에 든 쥐다! 순순히 항복하고 우리의 말에 따르도록 해라!”
어느새 얼굴에 곰 가면을 뒤집어쓴 홍의여인, 화웅(火熊)이 여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퍼퍼퍼퍼펑!
“엇! 피해라!”
그때, 천성이 쏘아 낸 기탄이 흑의인들을 덮쳤다.
“이놈!”
당황한 흑의인들이 황급히 뒤로 물러섰다.
“기다리고 있어라! 금방 다시 오마!”
이를 악문 천성이 영력을 끌어 올렸다.
당장에라도 놈들을 모두 쳐 죽이고 싶었으나 지금은 인질들을 구하는 것이 먼저였다.
자세를 낮추고 몸을 웅크린 천성이 구멍이 뚫린 천장을 한 번 바라보았다.
“당장 놈을 공격하라!”
무언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화웅이 다급히 외쳤다.
명을 받은 흑의인들이 천성에게 달려드는 순간, 천성의 신형이 지붕의 구멍을 향해 솟구쳤다.
파아아아아앙!
그와 함께 대연문의 생존자들이 밧줄에 줄줄이 매달린 채 천성을 따라 허공으로 날아올랐다.
“으어어어어어!”
“허어어억!”
“꺄아아아악!”
갑작스레 몸이 밧줄에 끌려 올라가자 감회성과 생존자들이 목이 터져라 비명을 질러댔다.
그의 부인인 양혜소는 이미 실신한 상태였다.
“저, 저!”
“저런! 잡아라!”
생각지도 못한 갑작스런 상황에 그제야 정신을 차린 흑의인들이 다급히 신형을 움직였다.
“지붕 위로 탈출하려는 듯하니, 담과 지붕 위를 막아라!”
수하들에게 명을 내린 후 밖으로 나온 지인은 멍한 표정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천성과 밧줄에 묶인 대연문 생존자들이 끝도 없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저, 저럴 수가! 사람이 하늘을 날다니!!”
자신의 상식으로는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에 지인은 말을 잇지 못했다.
슈아아아아아아악!
그러는 사이, 천성과 대연문 생존자들은 이미 백 장 가까이 공중으로 날아오른 상태였다.
“활을 가져와라!”
“이미 늦었어요. 화살로도 닿지 않는 거리예요.”
화웅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정말 대단하군요. 설마 하늘을 날 줄이야. 일단 놈이 향하는 곳을 확인하고 뒤를 쫓는 편이 최선이에요.”
“젠장, 그렇군.”
지인이 이를 악문 채 수하들에게 추적을 명했다.
잠시 후, 까마득한 허공에서 잠시 멈춰 섰던 천성이 섬전과 같은 속도로 남쪽으로 사라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