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영웅재천 3(17화)
5장 대연문의 위기(3)


한편, 무서운 속도로 하늘로 딸려 올라가게 된 대연문 생존자들은 이미 혼백이 달아난 상태였다.
“사람 살려! 아아아악!”
“으허허허허허!”
“사, 살려 주세요!”
백 장이 넘는 높이까지 솟아오른 천성이 드디어 신형을 멈추었다.
“다들 괜찮으십니까?”
천성은 일단 생존자들의 상태를 확인했다.
비록 이들이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속도를 최대한 줄이고 영력으로 보호하긴 했지만, 상당한 충격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 중 세 명은 이미 거품을 입에 문 채 실신해 있었다.
“야, 이놈아! 죽이려면 곱게 죽여라! 알고 봤더니 원수 놈들과 같은 패거리구나!”
감회성이 악에 받쳐 소리쳤다.
아무래도 무슨 고문쯤 되는 것으로 오해한 모양이었다.
“죄송합니다. 탈출하려면 이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지금부터 안전한 곳으로 모셔다 드리겠습니다. 하니 마음을 놓으십시오.”
그 말에 감회성이 눈을 껌뻑이며 천성을 올려다보았다.
‘대체 적인가, 아군인가.’
천성의 진실한 정체가 무엇인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과 식솔들은 두 개의 밧줄에만 의지한 채 까마득한 하늘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었다.
밧줄이 끊어지기라도 한다면 목숨을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천성이 염동력을 사용하여 밧줄과 그들을 당기고 있음을 알지 못했기 때문이다.
잠시 아래쪽을 바라본 감회성이 가늘게 몸을 떨었다.
“우,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인가?”
잔뜩 겁먹은 목소리로 감회성이 물었다.
빨리 이 상태를 벗어나고 싶었기 때문이다.
“화산파로 갈 것입니다!”
어안이 벙벙해진 감회성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지금 이 상태로 화산파까지 움직인다는 말인가.
생각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상황이었다.
‘아니겠지. 어디 가까운 데 내린 후에 화산파로 움직인다는 이야기겠지. 그렇지. 맞아.’
“자, 이제 속력을 좀 더 낼 테니 단단히 마음먹으십시오!”
감회성의 바람과는 전혀 다르게 천성과 일행은 하늘을 날아 화산파를 향했다.
어차피 음속에 가깝게 움직이면 일각이면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다.
초음속으로 움직이지 않는 이상 그 정도는 두 번째 단계를 넘어선 천성에게 그다지 큰 무리가 되지 않았다.
천성의 신형이 점으로 화해 서쪽으로 사라지고, 화웅과 지인은 추격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직선으로 날아가는 자를 땅에서 뛰어 쫓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 * *

깊은 새벽의 화산파는 경계를 서는 몇몇 제자들 외에는 조용히 잠에 빠져 있었다.
산문에는 두 제자가 번을 서고 있었는데, 제대로 기강이 잡혀 있는 모습이 화산의 명성이 결코 허투루 얻은 것이 아님을 말해 주고 있었다.
“으아아아아아아!”
그때, 고요한 산문의 정적을 깨트리며 하늘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무슨 일이지?”
“누구냐!”
급히 자세를 고쳐 잡고 위를 올려다본 두 제자는 이내 할 말을 잃고 석상처럼 굳어 버렸다.
“저, 저것이 무슨 해괴한……!”
“요, 요괴!”
공중에서 머리가 여덟, 팔다리가 열여섯 개씩 달린 괴물이 떨어져 내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빠르게 떨어져 내리던 요괴가 점점 속도를 늦추더니 땅에 착지했고, 뒤따라 한 명의 흑의인이 내려섰다.
“저, 정체를 밝혀라!”
“어엇, 사형! 사, 사람입니다!”
자세히 살펴보니 요괴가 아니라 밧줄에 묶인 것은 여덟 명의 사람이었다.
“나는 할 일을 마쳤으니 이만 가 보겠소! 자세한 것은 이들에게 물어보시오!”
파아아아아앙!
말을 마친 천성의 신형이 도깨비처럼 사라져 버렸다.
“이게 무슨 변고란 말인가!”
“사형! 저분은 대연문주 아니십니까!”
그때, 감회성을 알아본 제자가 소리쳤다.
감회성과 대연문의 식솔들은 거의 음속에 가까운 비행의 공포로 이미 실신지경에 처해 있었다.
“어서 안에 이를 알려라!”
“네, 사형!”
사제인 듯한 청년이 산문 안쪽으로 급히 달려 들어갔다.
잠시 후, 조용하던 화산파가 소란스러워졌다.
“아니, 감 문주가 무슨 일로!”
접객당주 진명이 허겁지겁 산문으로 뛰쳐나왔고, 그 뒤를 따라 장문인 화선학까지 모습을 보였다.
워낙에 황당하고도 괴이한 일인지라 그날 화산은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 * *

화산을 빠져나온 천성은 다시 대연문으로 향했다.
치우 일족을 상대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천성이 대연문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그들의 모습이 사라진 뒤였다.
인질들이 빠져나간 이상 대연문의 상황이 밖으로 새어 나갈 것이 자명했기에 서둘러 몸을 피한 것이다.
그들로서도 아직은 외부에 함부로 정체를 노출시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젠장!”
천성은 영안을 확장시켜 찾아봤으나, 어디로 사라졌는지 놈들의 모습을 잡아낼 수 없었다.
기운이 감지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아마도 영력을 사용하지 않고 어딘가로 숨어들었을 것이다.
아무리 단계가 올라 영안의 범위가 넓어졌다지만, 모두 살피려면 그만큼 더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들과는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지금 무리할 필요는 없어. 어차피 오늘 온 목적은 달성하지 않았느냐?]
무숙의 말이 맞았다.
오늘 대연문으로 온 것은 자신으로 인해 인질로 잡힌 문도들을 구하기 위해서였다.
아쉬운 마음을 접은 천성이 다시 무림맹을 향해 신형을 쏘아 올렸다.
파아아아아아앙!
천성의 신형이 긴 꼬리를 남기며 남쪽 하늘로 사라져 갔다.

* * *

음속으로 날아가니 무림맹까지 반 시진도 걸리지 않았다.
기척을 들키지 않기 위해 무한 외곽에 착륙한 천성은 은밀하게 취선루로 돌아갔다.
어느새 동이 터 오고 있었다.
“흠흠, 이제 들어오는 거야?”
영호명이 기척을 느끼고는 어색한 표정으로 말했다.
기루에서 밤을 보낸 천성이 지금 들어온 것이라 짐작한 것이다.
“하하하, 내가 좀 강하거든! 다음엔 너도 같이 갈래? 정말 끝내준다니까! 응?”
천성이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능글맞게 웃자 영호명은 기겁을 하며 손사래를 쳤다.
“아, 아, 나는 괜찮아!”
“어허, 어차피 화산파 도사들도 결혼은 하잖아. 비교적 자유분방한 것으로 알고 있는데 뭘 그리 모범생 티를 내시나, 친구!”
“그, 글쎄, 괜찮대두!”
영호명이 당황한 표정으로 이불을 뒤집어썼다.
아무래도 이 모범생 도사에게는 아직 여인이란 존재가 어려운 모양이었다.



6장 위험한 거래(1)


밤을 꼴딱 샌 천성은 잠시 잠을 청한 후 일행과 함께 아침 일찍 무림맹으로 향했다.
비록 자신의 시합은 없었지만 다른 이들의 실력을 확인하고 일행을 응원하기 위해서였다.
천성은 조심스럽게 감석보를 살폈다.
역시나 아직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아마도 오늘 중으로 화산에서 연락이 오면 그도 대연문의 정확한 사정을 알게 될 것이다.
부모님은 무사했으나 수많은 문도들이 치우 일족의 손에 죽음을 맞이했기에 충격이 클 것이다.
어찌 되었든 당분간은 감석보를 지켜보기로 했다.

제일 먼저 비무대에 오른 것은 천룡이었다.
천룡은 이미 많은 무인들의 관심을 받고 있었다.
첫 대결에서 일 초 만에 상대를 제압하여 소문이 거짓이 아님을 증명했기 때문이다.
천룡의 이번 상대는 종남파의 제자였는데, 거의 절정에 이른 고수였다.
하지만 천룡의 상대가 될 수는 없었다.
시합은 너무도 싱겁게 끝났고, 종남파의 후기지수는 구파일방의 제자 중 가장 먼저 탈락하는 수모를 맛보아야만 했다.
종남파 제자의 실력이 없다기보다는 하필 천룡과 만난 불운을 탓해야 했다.
일행은 다음 순서로 경기를 치르는 서문유란의 시합을 보기위해 육번 비무대로 향했다.
서문유란은 자신의 순서를 기다리며 굳은 표정으로 서 있었다.
오라비를 만난 이후로 한 번도 얼굴을 편 적이 없는 그녀의 모습에 천성은 가슴 한구석이 답답해져 옴을 느꼈다.
그때, 누군가가 손가락으로 천성의 옆구리를 찔렀다.
“엇!”
놀란 천성이 돌아보니 모용혜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서 있었다.
“너…… 설마!”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눈을 빛내는 모용혜의 모습에 천성이 당황한 표정으로 손사래를 쳤다.
“무, 무슨 소리를 하려는 거야?”
“후후후. 성이, 너 잠깐 나 따라와 봐.”
모용혜가 사람들이 드문 구석으로 천성을 끌고 갔다.
“허험!”
구석에 이르러 주변을 한 번 살핀 모용혜는 헛기침을 한 번 하고는 천성을 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너, 거짓말 말고 이실직고해! 유란 언니한테 마음이 있는 거야?”
허리에 척 손을 올린 모용혜가 천성을 몰아붙였다.
“무슨 엉뚱한 소리야! 나, 난 그냥!”
얼굴이 벌게진 천성은 말조차 제대로 하지 못했다.
“쯧쯧, 표정관리도 못하는 거 보니 마음이 있네, 있어!”
모용혜가 다 안다는 듯한 얼굴로 말했다.
“그, 글쎄, 아니라니까!”
“어허, 당황할 필요 없어. 난 너를 탓하려는 것이 아니야. 그리고 이 사실을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을 테니 안심해. 후후.”
음산한 미소를 짓는 모용혜의 모습에 왠지 사악한 음모에 빠질 것 같은 예감이 천성의 온몸을 관통했다.
“아아, 두려워하지 말게, 친구. 난 단지 거래를 하고 싶은 것뿐이니. 호호호호!”
득의양양한 표정으로 웃음을 터뜨린 모용혜가 눈을 빛냈다.
“결코 성이 너도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야. 누이 좋고 매부 좋고, 꿩 먹고 알 먹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너와 내가 모두 만족할 수 있는 거래지. 후훗!”
천성으로서는 모용혜가 무엇을 원하는 것인지 알 수 없기에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자, 내 말을 잘 들어 봐. 내가 유란 언니랑 친한 거 알지?”
천성이 찝찝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성이, 너를 위해 내가 이 한 몸 희생해서 유란 언니와 다리를 놓아 주마.”
서문유란과 다리를 놓는데 왜 모용혜가 몸을 희생해야 하는지는 제쳐 두고라도 천성은 예상치 못한 전개에 잠시 멈칫할 수밖에 없었다.
“그게 무슨……?”
조금 관심을 보이는 듯한 천성의 모습에 모용혜의 눈동자가 빛났다.
“성이, 네가 유란 언니의 관심을 끌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는 거야. 예를 들면 유란 언니가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며, 생일은 언제고, 신체의 비밀…….”
“그, 그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겠으니…….”
천성은 다급히 모용혜의 말을 막았다.
사실 모용혜의 제안은 상당히 솔깃한 것이었다.
그동안 두 사람의 가문과 신분의 차이 때문에 서문유란을 반쯤은 포기하고 있는 상황이었는데, 모용혜가 이렇게 쉽게 자신의 친구가 될 수 있다면 서문유란과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제는 천룡의 활약으로 철혈문도 점점 성장하게 될 것이다.
또한 언젠가는 서문세가에도 크게 뒤지지 않는 문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 마음 한구석에서 욕심이 생겼다.
“가만, 거래라면 그 대가가 있다는 이야긴데?”
천성이 날카로운 눈으로 모용혜를 노려보았다.
또 어떤 엉뚱한 일을 벌이려는 것인지 불안했기 때문이다.
“호호호, 당연하지. 세상에 공짜가 어디 있나, 친구.”
천성의 어깨를 툭, 친 모용혜가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더니 속삭이듯 말했다.
“대신 너는 천룡 오라버니와 나를 이어 주는 가교 역할을 하는 거야.”
“헐!”
천성이 어이없다는 듯 모용혜를 바라보았다.
“잘 생각해 보라구. 우리 둘 모두에게 좋은 조건이니까.”
미간을 찡그린 천성이 고민에 빠졌다.
생각해 보니 제법 괜찮은 제안이었다.
천룡과 모용혜가 이루어지느냐 마느냐는 결국 그들의 문제다.
자신은 천룡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적절히 모용혜를 돕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모용혜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큰 부담을 가질 필요는 없는 상황.
하지만 제법 도움이 되는 거래였다.
상대에 대해 잘 알고 주변에서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지금에 비하면 몇 배나 좋은 조건인 것이다.
‘이래서 사랑하는 사람을 얻기 위해서는 그 주위 사람의 마음부터 얻어야 한다고 하는구나.’
“좋아!”
천성이 씨익 웃으며 모용혜의 제안에 동의했다.
왠지 악마와 손을 잡은 듯한 느낌도 들었으나, 당장에는 매력적인 제안임이 분명했다.
“잘 생각했어. 우린 이제 한 배를 탄 거라구, 호호호호!”
“후후후후.”
천성과 모용혜는 이 사실을 비밀로 하기로 굳게 약속하고 일행에게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