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영웅재천 3(18화)
6장 위험한 거래(2)
그날의 예선 역시 일행은 한 명의 탈락자도 없이 모두 통과했다.
마음이 복잡한 감석보가 위험한 순간을 맞이하기도 했으나, 다행히 아슬아슬하게 상대를 제압할 수 있었다.
셋째 날의 비무 일정이 모두 끝나고 감석보는 화산파 어른들의 부름을 받았다.
천성은 아마도 어제의 일 때문일 것이라 짐작했다.
화산파 어른들을 만나고 온 감석보는 어두운 모습으로 감세령과 대화를 나누었고, 감세령은 목이 터져라 울음을 터뜨렸다.
일행들도 화설련에게서 감석보의 상황을 전해 듣고는 안타까운 마음을 금치 못했다.
삼백에 가까운 인원이 죽었으니 거의 멸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은 것이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유송문을 비롯해 문파에 없던 백여 명의 고수들이 화를 피할 수 있었다는 소식이었다.
일행은 감석보와 감세령 남매를 위로했으나, 둘은 천하영웅대회를 포기하고 화산으로 향했다.
* * *
회천궁.
대전 입구로 환사가 다급히 달려 들어왔다.
“전서입니다! 대연문의 일이 실패했다 합니다!”
용천광의 눈썹이 꿈틀했다.
“자세히 말해 보거라.”
“놈이 나타나긴 했으나, 인질들을 구해서 유유히 사라졌다 합니다.”
“아니, 화웅과 지인은 무얼 하고 있었던 것이냐!”
그때, 한쪽에서 이야기를 듣던 구공이 나섰다.
애당초 이 일은 자신의 책임하에 진행되어진 일이었기에, 만일의 사태까지 철저히 대비를 하여 전략을 구성했다.
또 화웅과 지인은 음후나 섬응보다 한 단계 위의 실력을 가진 이들이었다.
게다가 무려 오십의 비영을 보냈다.
화경고수 셋이 덤빈다 해도 막아 낼 수 있는 막강한 전력이었고, 혹시라도 있을 변수나 실수를 방지하기 위해 대부분의 대연문도를 척살하고 정보를 차단했다.
그런데도 실패했다면 자신이 무언가 잘못 생각했다는 이야기였다.
“우리 피해는?”
“비영 몇이 부상당했습니다.”
무언가 이상했다.
“대체 무슨 소리냐? 피해도 없는데 놈을 놓치다니!”
“그것이…….”
잠시 말을 멈추었던 환사가 다시 입을 열었다.
“놈이 하늘을 날았다 합니다.”
“하늘을 나는 것이야 무공이 높은 고수들이라면 어느 정도 가능한 일 아니냐! 그게 뭐가 문제라는 것이냐!”
“그게…… 진짜 하늘을 날았다 합니다. 하늘에서 떨어져 내린 후 인질들을 끌고 무려 백 장이 넘는 높이에서 유성처럼 사라졌다 합니다. 화웅과 지인은 닭 쫓던 개마냥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합니다.”
자신이 생각해도 어이가 없는 듯 구공이 말을 잇지 못했다.
“도대체 인간이 어찌 하늘을 난단 말이냐! 그놈이 무슨 손오공이라도 된다는 말이냐!”
이야기 속의 손오공조차 근두운을 타고서야 하늘을 날 수 있었다.
“저도 서찰로만 확인한 상황이라 정확한 것은 화웅과 지인이 도착해야 알 수 있을 듯합니다.”
환사 역시 난감할 수밖에 없었다.
그조차도 믿기 어려운 일인데 어떻게 설명을 한단 말인가.
“이렇게 된 이상 놈이 대연문과 관계가 있을 확률은 더욱 높아졌군.”
흑의인이 문주와 식솔들을 구출해 간 것을 보면 거의 확실했다.
“그렇습니다.”
“이제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나?”
용천광이 구공에게 물었다.
“대연문의 식솔들은 화산으로 피신을 했다고 합니다. 어차피 화산을 건드리기엔 아직 이릅니다. 당분간은 방법이 없지요. 거기다 혹시라도 놈이 진정 복희가 숨겨 놓은 또 다른 수호자라면…… 우리가 놈을 공격했을 경우, 복희의 노여움을 살 수도 있습니다. 물론 복희께서 그날 이후로는 한 번도 세상에 관여하지 않으셨지만, 일단은 더욱 은밀하게 움직이는 수밖에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인질극이 성공했다면 그것을 미끼로 놈을 이용하려 했다.
최소한 방해를 못하도록 회유할 생각이었던 것이다.
복희의 수호자라면 유물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것이 분명하니까.
하지만 인질극이 실패한 상황에서 다시 놈을 건드린다는 것은 너무도 위험했다.
복희의 노여움을 사게 되면 치우 일족의 계획은 모두 물거품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젠장 삼선 놈들도 걱정해야 하고, 빌어먹을 흑의인까지 피해 다녀야 하디니! 왜 이리 일이 꼬이는 것인가!”
울화통이 터진 용천광이 욕설을 토해 냈다.
‘휴, 천황께서 너무 일희일비하는구나. 무릇 우두머리란 중심을 지켜야 하거늘…….’
구공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용천광을 바라보았다.
전대 천황부터 이대를 모셔온 구공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지금의 천황은 너무 감정의 기복이 심하고 마음도 여렸다.
제왕이 되기에는 부족한 자질인 것이다.
‘부디 첫째 공자께서 빨리 폐관을 마치셔야 될 텐데…….’
현재 영력을 수련하기 위해 폐관에 들어간 첫째 공자 용문회야말로 진정한 제왕의 그릇이었다.
그가 나오게 되면 세상을 향한 치우 일족의 발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일단 화웅과 지인이 돌아오면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당분간은 열쇠를 찾는 데 집중하도록 하라!”
“존명!”
한참을 씩씩거리던 용천광이 명을 내린 후 수하들을 물렸다.
* * *
강호는 대연문의 습격 소식으로 인해 상당히 소란스러워졌다.
정체불명의 세력에 의해 대연문이 거의 멸문지경에 이르렀다는 소식은 상당한 충격이었다.
특히 화산파의 움직임은 몹시 분주해졌다.
속가 문파가 당했다는 것은 곧 화산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으니, 이를 그냥 묵과한다면 그간 충성을 바치던 다른 속가들마저 돌아설 것이 분명했다.
화산파는 급히 장로 급 고수 세 명과 일대제자 열 명으로 조사단을 꾸렸다.
또한 무림맹에도 지원을 요청했다.
무림맹으로서도 간과할 수 없는 일이었다.
현 강호는 겉으로는 평화로웠으나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과도 같았다.
이번 일이 그 도화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함부로 처리할 수 없는 것이다.
남궁영은 특별히 맹주령을 내려 무림맹 부군사 황보광을 직접 현장으로 파견했다.
천하영웅대회는 그 와중에도 성황리에 치러지고 있었다.
강호 정세가 불안해질수록 무인들에게는 기회가 찾아오기 때문이다.
대회 넷째 날, 일행은 다시 비무에 나섰다.
각 조별로 스물네 명씩의 참가자가 가려진 상황.
이제 세 번의 대결만 거치면 세 명의 본선 참가자가 확정될 것이다.
구파일방과 팔대세가의 제자들만도 오십 명이 넘게 참가한 대회에서 서른두 명이 경합을 펼치는 본선에 오른다는 것은 그야말로 대단한 일이었다.
두 번째 대결을 부전승으로 넘긴 천성의 상대는 하북에 위치한 정검문이라는 중소 문파의 제자로, 초윤이라는 자였다.
이름처럼 검에 능숙한 문파였으며, 중소 문파치고는 상당한 규모를 가져 하북에서 제법 유명한 곳이었다.
정검문의 대표로 나온 초윤은 절정에 근접했다 알려진 고수였다.
사실, 천성은 이번 대결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첫 번째 대결을 치르고 다른 이들의 실력을 지켜본 결과, 예선에서는 아무리 싸워 봐야 크게 얻을 것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본선에 진출하는 것은 정체를 숨겨야 하는 천성에게는 피해야 할 일이었다.
이번 대회에 출전한 목적도 결국 많은 무공을 접함으로써 경험을 쌓고 무림맹 무사가 되어 천룡을 돕는 것이 아니던가.
무공이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파악 가능한 상황이었고, 이미 삼백 명 안에는 들었으니 무림맹의 무사로도 거의 확정된 상황이었다.
그러니 이제 괜한 관심을 끌 필요는 없는 것이다.
해서 이번 대결은 대충 손을 맞춰 주다가 패배하기로 마음먹었다.
하지만 수많은 고수들이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너무 표시 나게 할 수는 없었기에 상당히 조심해야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천성의 내력이 미약해 겉으로 보기에는 일류도 못 되는 실력으로 보인다는 것이다.
“정검문의 초윤이라 하오!”
“철혈문의 궁천성이오!”
인사를 나눈 두 사람이 깃발이 올라감과 동시에 몸을 날렸다.
초윤의 검초는 제법 날카로웠지만 천성에게는 너무도 느렸다.
하품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참아 내며 천성이 크게 주먹을 휘둘렀다.
“하앗!”
위력은 상당했으나 동작이 너무 컸기에 초윤이 재빨리 몸을 낮춰 주먹을 피했다.
주먹이 허공을 가르는 순간, 천성의 옆구리가 훤하게 드러났다.
일부러 옆구리에 약점을 노출한 것이다.
“이얍!”
이를 놓치지 않고 초윤이 검을 찔렀다.
천성은 천천히―천성의 입장에서―몸을 옆으로 빼며 초윤의 검이 옆구리를 스칠 정도 되었다 싶을 때까지 움직였다.
스아악!
천성의 옷에 핏물이 묻어 나왔다.
관중들에겐 천성이 다급히 몸을 피하려 했으나 미처 초윤의 검의 속도를 이기지 못한 것으로 보였다.
“허엇!”
눈을 크게 뜬 천성이 헛바람을 삼키며 뒤로 물러섰다.
[후후, 연기가 많이 늘었구나.]
‘이쯤은 아무것도 아니지요.’
다급히 뒤로 물러서는 천성의 중심이 흔들리며 휘청였다.
그에 초윤이 틈을 주지 않고 곧장 공격해 왔다.
쉬아아악!
섬전 같은 검격이 이번엔 천성의 목으로 향했다.
몸을 급히 뒤로 젖혔으나 어느새 초윤의 검은 천성의 목에 닿아 있었다.
“허억!”
놀란 듯 눈을 부릅뜬 천성이 걸음을 멈추었다.
“져, 졌습니다!”
천성의 선언에 상대가 검을 거두고 포권을 했다.
“좋은 승부였소!”
‘좋기는 개뿔!’
속으로 코웃음을 친 천성이 마주 포권을 하고는 비무대를 내려왔다.
조금 아쉬움도 있었으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어차피 성격상 남들 앞에 나서는 것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천성이었기에 오히려 잘되었다 생각하고 미련을 접었다.
천성은 일행들의 비무를 지켜보기 위해 다른 비무대로 향했다.
물론 서문유란이 있는 육번 비무대였다.
이미 비무를 끝냈는지 그곳에는 천룡과 모용혜가 자리하고 있었다.
“어? 성이, 너도 끝난 거야? 결과는 어때?”
천성을 발견한 모용혜가 반가운 듯 물었다.
“어, 졌어.”
천성이 짐짓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잠시 멈칫한 모용혜가 씨익 웃음을 짓더니 천성의 어깨를 퍽! 쳤다.
“괜찮아, 괜찮아! 사내가 이깟 일에 좌절하지 말라구! 어차피 이제 열여덟일 뿐인데, 앞날이 창창하잖아! 이 누님께서 많은 가르침을 내려 줄 테니 금방 실력이 늘게 될 거야!”
천성이 속으로 피식 웃었다.
“그래, 천성아. 이 형님이 있지 않느냐. 내가 무림맹주가 되면 너를 맹주 전속 요리사로 넣어 주마. 하하하!”
천룡도 농을 건네며 천성을 위로했다.
“형하고 혜는 결과가 어때?”
“어, 둘 다 이겼다.”
그 말에 천성이 모용혜를 새로운 눈으로 보았다.
세 번째 대결까지 올라온 이들은 대부분 만만치 않은 자들이었다.
물론 두 번째 대결을 부전승으로 올라온 이들도 있었으나, 최소한 일류는 넘어선 이들이 많았다.
근데 덜렁대는 여자 감석보 모용혜가 의외의 실력을 갖추고 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