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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3(21화)
6장 위험한 거래(5)


광장은 흥분된 군중들로 인해 뜨겁게 들끓었다.
“지금부터 본선 대결을 시작하겠소!”
심판관의 선언과 더불어 본선 경기의 막이 올랐다.
첫 번째 대결은 이번 대회의 가장 강력한 우승 후보 중 한 명인 남궁인과 팽가의 마지막 남은 후기지수 팽만호가 맞붙었다.
“와아아아!”
남궁인이 등장하자 우뢰와 같은 함성 소리가 광장을 뒤덮었다.
인물이면 인물, 실력이면 실력.
어느 것 하나 흠잡을 데가 없는 최고의 후기지수가 바로 그였다.
이미 강호에 수많은 무명을 날렸으며, 팔대세가 중 제일세가라 할 수 있는 대남궁세가의 후계자였다.
무림인들이 열광할 수밖에 없는 현 세대의 별인 것이다.
모든 시선이 남궁인에게 집중되어 있는 상태에서 팽만호의 등장은 그만큼 더 초라해 보일 수밖에 없었다.
잔뜩 주눅이 든 표정으로 팽만호가 비무대로 올랐다.
본선 첫 대결에서 하필이면 남궁인을 만났다는 것이 못내 아쉬운 그였다.
초절정고수인 남궁인을 이제 겨우 절정에 오른 그가 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않은가.
“시작하라!”
심판관의 선언과 동시에 팽만호가 도를 힘껏 쳐 내며 돌진했다.
“으합!”
어차피 이기지 못할 거라면 자신의 모든 것을 한 수에 걸어 보겠다는 각오였다.
후우우웅!
도가 대기를 가르며 남궁인의 몸을 반으로 쪼갤 듯이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상대는 초절정고수.
쩌정!
유유히 뽑아 든 남궁인의 검과 팽만호의 도가 부딪쳤으나, 결과는 참담했다.
전력을 다했던 팽만호가 오히려 뒤로 밀려난 것이다.
“젠장!”
팽만호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욕지기가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남궁인의 신형이 사라졌다.
“엇!”
놀란 팽만호가 헛바람을 들이켰다.
번쩍!
검광이 번뜩인다고 여긴 순간, 어느새 남궁인의 검이 팽만호의 명치에 닿아 있었다.
단 이 초 만에 승부가 가려진 것이다.
“허어!”
눈으로 쫓지 못할 정도로 빠른 남궁인의 움직임에 관중들이 탄성을 질렀다.
“형, 남궁인도 제법인데?”
“좋은 승부가 되겠군.”
천룡은 씨익 웃으며 자신의 대전을 준비하기 위해 담담하게 비무대 쪽으로 향했다.
그 모습을 황홀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모용혜의 옆구리를 천성이 강하게 찔렀다.
“커억!”
“아예 이마에다 ‘난 천룡 공자를 사랑합니다!’라고 써 붙이고 다녀라.”
“흠흠, 내가 뭘!”
당황한 모용혜가 시치미를 떼고는 딴청을 부렸다.
“어머, 천룡 공자가 비무대에 올랐어요.”
화설련의 목소리에 일행의 시선이 비무대로 향했다.
천룡은 새롭게 떠오르는 청년고수였고, 공현은 오룡에 속하는 기존 후기지수의 대표 격이었다.
새로운 강자의 등장이냐, 기존의 아성이 그대로 유지되느냐의 흥미로운 대결이었기에 관중들의 관심도 그만큼 컸다.
두 사람이 비무대에 올라 자리를 잡자 심판관이 대회의 규칙과 몇 가지 주의사항을 일러 주었다.
공현의 눈은 호승심으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이미 절정의 끄트머리에 도달한 그였다.
그랬기에 남궁인을 제외하면 후기지수 중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물론 예선에서 보여 준 천룡의 신위는 상당했다.
하지만 상대들의 수준이 그리 높지 않았기에 진정한 실력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흥, 반드시 이겨서 내 말이 틀리지 않았음을 증명해 주지!’
공현이 각오를 단단히 했다.
자신보다 한참 어린 애송이의 동생 노릇을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한편, 이 대결을 유심히 지켜보는 자가 또 있었다.
바로 상관중혁이었다.
‘놈, 과연 얼마나 실력이 되는지 한 번 보자!’
천룡이 소문의 철혈신룡이라는 사실을 뒤늦게 안 그는 내심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만일, 소문처럼 천룡의 실력이 뛰어나다면 함부로 건들 수 없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노렸던 상대를 그대로 놔둬야 한다는 것은 그에게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시작하라!”
심판관의 선언과 함께 두 사람이 동시에 기세를 끌어 올렸다.
그런 다음 천룡은 검을 뽑아 들었다.
자신을 형님으로 모셔야 할 공현이 조금 불쌍하긴 했지만, 그렇다고 져 줄 수야 없었다.
공력을 잔뜩 끌어 올린 공현의 가사 자락이 펄럭였다.
직접 맞서 보니 천룡의 기세가 만만치 않음을 느낀 것이다.
강자와의 대결은 항상 그를 흥분시켰다.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 봅시다!”
공현이 즐거운 표정으로 천룡을 향해 몸을 날렸다.
“타앗!”
기합성과 함께 공현이 일권을 밀어냈다.
후우우웅!
힘차게 쳐 낸 주먹의 주변 공기가 회오리치며 강력한 권기가 천룡을 향해 쭈욱 뻗어 나갔다.
그 순간, 천룡의 눈동자가 빛났다.
공현의 실력이 예상보다 높았다.
이미 기를 유형화 시키는 경지에 근접한 것이다.
제법 재밌는 대결이 될 것 같았다.
씨익 웃은 천룡이 검면을 비틀어 공현의 권기를 가볍게 튕겨 냈다.
“하압!”
순간, 공현의 몸이 한 바퀴 돌며 왼발이 천룡의 머리를 향해 날아왔다.
상체를 숙여 발길질을 피한 천룡이 그대로 미끄러지듯이 앞으로 전진하며 검을 찔렀다.
하지만 발길질의 반동을 이용한 공현은 그대로 몸을 띄워 천룡의 검을 피해 냈다.
그렇게 몇 차례 공방을 주고받은 공현의 눈썹이 치켜올라 갔다.
상대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있음을 알아차렸기 때문이다.
천룡은 지금 검에 검기도 입히지 않은 채 공현의 공격을 피하거나 막아 내고만 있었다.
간만에 손을 섞어 볼 만한 상대를 만났는데, 빨리 끝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지금 날 상대로 장난을 하는 것이오? 제대로 덤비시오!”
잠시 뒤로 물러선 공현이 성난 목소리로 말했다.
“노여우셨다면 죄송합니다. 그저 잠시 소림의 무공을 견식하고 싶었을 뿐입니다. 이제 제대로 상대해 드리지요!”
화아아아악!
순간, 천룡의 몸에서 엄청난 기세가 뿜어져 나왔다.
“허억!”
놀란 공현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그간 절정 초입 정도로 느껴졌던 기운이 지금은 몇 배로 늘어나 있었다.
‘서, 설마 진짜 초절정이었단 말인가!’
공현의 얼굴이 흑색으로 변했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자신은 앞으로 천룡에게 형님이라 불러야 할 판이었다.
머리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흥! 어차피 부딪쳐 봐야 알 일!’
사실 이제는 그도 천룡의 경지가 초절정을 넘어섰음을 인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승부까지 질 수야 없었다.
물론 계란으로 바위 치기와 같은 일이었으나, 그의 성격상 이대로 꼬리를 말 수는 없던 것이다.
“이 공현이 오늘 망신 좀 당하겠구나! 크하하하하!”
호탕한 웃음과 함께 공현이 연속으로 권기를 날렸다.
하지만 천룡의 검이 긴 원을 그리자 그가 날린 권기들은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다.
“대단하군!”
탄성을 내뱉은 공현이 그대로 천룡을 향해 돌진했다.
거리를 좁히는 것만이 그나마 승부를 걸어 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천룡은 피하지 않고 검기를 쏘아 냈다.
파파파파팟!
다섯 줄기의 검기가 공현의 요혈을 노렸다.
“으랏차!”
공현이 전력을 다해 마주 권격을 날렸다.
퍼퍼퍼퍼펑!
하지만 천룡의 검기를 모두 소멸시키지 못했고, 그중 세 줄기의 검기가 공현을 향해 돌진해 왔다.
“이익!”
파앗!
있는 힘껏 몸을 틀었으나 어깨와 허벅지에서 핏물이 튀었다.
완벽히 피하기엔 천룡의 검기가 너무 빨랐던 것이다.
순간, 공현의 눈이 커졌다.
어느새 천룡의 신형이 코앞까지 다가와 있던 것이다.
퍼억!
천룡의 무릎이 공현의 명치를 찍었다.
“커헉!”
공현의 등이 기역 자로 구부러졌다.
하지만 미처 몸을 가누기도 전에 천룡의 팔꿈치가 다시 공현의 등을 내리찍었다.
퍼억!
“크윽!”
공현은 그대로 바닥에 철퍼덕 엎어졌다.
쉬익!
어느새 천룡의 검이 목에 대여졌다.
순간, 공현의 안색이 창백해졌다.
완벽한 자신의 패배.
앞으로 천룡을 형님으로 모셔야 된다 생각하니 눈앞이 캄캄했다.
“하하, 좋은 대결이었습니다. 내기는 웃자고 한 이야기일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마십시오.”
천룡이 사람 좋게 웃으며 공현을 안심시켰다.
사실 공현에게 형님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그로서도 무척 껄끄럽고 부담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공현의 얼굴에 희색이 돌았다.
“오, 그대는 무척 괜찮은 친구구려! 완벽한 나의 패배요! 하하하하!”
자신이 볼썽사납게 자빠져 있음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공현이 파안대소를 터뜨렸다.
상황이 한순간에 지옥에서 천당으로 변했으니, 그로서는 기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공현이 패배를 시인하자 관중들이 환호성을 질렀다.
“와아아아아아!”
본선 직행자 여덟 명 중 최초의 탈락자가 나왔다.
그것도 현 후기지수를 대표하는 오룡 중 하나였다.
강호에 새로운 강자가 탄생한 것이다.
“이거, 나중에 한 번 더 붙어 봅시다! 오늘은 내가 형편없이 졌지만, 다음엔 다를 것이오! 하하하하!”
공현은 매우 기분이 좋은 듯 천룡의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저야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천룡으로서도 한 짐을 내려놓은 듯한 기분이었다.
“대단하군!”
단상 위에서 지켜보던 무림맹주 남궁영과 강호의 명숙들도 천룡의 무위에 찬사를 보냈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천룡의 실력이 진실임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천룡은 일행의 축하를 받으며 비무대를 내려왔다.
한편, 상관중혁은 일그러진 표정으로 천룡의 모습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결국, 소문이 사실이었던 것이다.
‘젠장!’
초절정의 고수를 자신이 어떻게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놈!’
억울하지만 따로 방법을 생각해 내기 전까지는 함부로 손댈 수 없었다.
‘서문 계집도, 철혈신룡이라는 애송이 놈도 반드시 나를 능멸한 대가를 치르게 해 주겠다!’
상관중혁이 이를 악문 채 일행의 모습을 노려보았다.

이날 일어난 사건 중 화제가 된 또 다른 하나는 서문유란이 황보진성을 꺾은 일이었다.
황보진성은 황보세가의 후계자이자 이미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다.
그에 반해 서문유란의 실력은 강호에 그리 잘 알려지지 않았다.
서문세가 내에서 그녀가 무공에 너무 몰두하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겼기 때문이다.
누구도 예상 못한 서문유란의 승리.
광장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용혜란의 뒤를 이은 여성 고수의 탄생에 환호했다.
영호명 역시 치열한 접전 끝에 제갈규를 이기고 다음 경기에 진출했다.
그야말로 막상막하, 손에 땀을 쥐게 만드는 대결이었다.
백 초가 넘어가는 긴 공방 끝에 간발의 차로 영호명의 검이 제갈규의 목에 닿을 수 있었다.
이로써 본선 첫째 날의 대결이 모두 끝났고, 열여섯 명의 승자가 가려졌다.

* * *

본선 이틀째 대전은 어느 한 경기 빠질 것 없이 명승부가 펼쳐지리라 예상되었다.
열여섯 명에 든 후기지수들의 실력이 모두 뛰어났고, 남궁인과 천룡을 제외하면 우열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일행 중 가장 먼저 시합에 나선 것은 천룡이었다.
천룡은 모용혜를 이기고 본선에 진출한 무당의 청수와 만나 가볍게 승리를 거뒀다.
이젠 누구도 이변이라 여기지 않을 정도로 천룡의 실력은 인정받고 있었다.
두 번째로 나선 영호명의 상대는 서문해광이었다.
서문해광은 오룡의 일인이었으며, 절정 끝에 다다른 고수였다.
영호명에게는 무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영호명은 생각보다 선전을 해 일행과 화산의 어른들을 미소 짓게 했다.
아직 서문해광보다 여섯 살이나 적은 나이였기에 오히려 발전 가능성은 더욱 높았던 것이다.
일행 중 가장 마지막에 시합을 펼친 서문유란의 상대는 바로 같은 여성 출전자인 용혜란이었다.
당연히 이날 벌어진 시합들 중 가장 많은 관심을 받았다.
두 여인은 반 시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숨 막히는 대결을 펼쳤다.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치열한 공방은 결국 공력의 차이로 판가름이 났다.
서문유란보다 더 많은 내공을 가지고 있던 용혜란이 끝내 승리를 거둔 것이다.
광장을 가득 메운 관중들은 환호했다.
곳곳에서 용혜란에게 찬사를 보내는 관객들이 넘쳐 난 반면, 서문유란에겐 경멸의 시선만이 돌아왔다.
그녀의 사정을 알 리 없는 이들이 서문유란이 가문을 배신한 대가를 받았다 여긴 것이다.
서문유란은 입술을 깨문 채 묵묵히 비무대를 벗어났다.
천성으로서는 그런 그녀의 모습이 너무 안타까웠고, 도울 수 없는 자신의 입장이 참으로 답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