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영웅재천 3(25화)
외전(2)
슈슈슈슈슈슉!
순간, 공기가 진동하며 은발사내의 몸에서 수십 개의 빛줄기가 쏟아져 나와 병사들을 강타했다.
“막아라!”
콰아아아아아앙!
병사들이 다급히 영력을 끌어 올려 방어를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외곽을 지키던 열 명의 병사가 삽시간에 형체도 남기지 못한 채 증발해 버렸다.
“어리석은 놈들! 그만 버티고 ‘태초의 파편’을 넘겨라!”
콰앙!
은발사내가 다시 한 번 건물의 입구인 듯한 곳을 향해 손을 살짝 들어 올리자 번쩍 빛이 일어나더니 금속으로 만들어진 듯한 문이 너무도 쉽게 찌그러져 뒤로 넘어갔다.
“로안! 악마 같은 놈!! 죽어라!”
순간, 안쪽에서 수십 가닥의 빛줄기가 로안과 그의 수하들을 향해 날아갔다.
슈슈슈슈슈슝!
하지만 은발사내의 눈에서 붉은빛이 번쩍이는 순간, 쏘아진 빛줄기들의 궤적이 휘어지며 허무하게 하늘로 흩어졌다.
“저럴 수가! 저자의 영력이 너무 높습니다!”
“당황하지 마라! 어떻게든 입구를 사수해야 한다!”
과학원 내부를 지키던 수비병들이 이를 악문 채 빛줄기를 쏘아 냈다.
그때, 로안의 두 손이 앞으로 뻗어졌다.
슈슈슈슈!
순간, 주변에 무너져 있던 건물의 잔해와 시신, 작은 돌조각들까지 모든 물체가 로안의 손짓에 따라 서서히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엄청난 염동력이다!”
인간이라고 할 수조차 없는 로안의 어마어마한 무력에 수비병들은 절망에 휩싸였다.
고오오오!
강력한 기의 파동이 로안의 두 손으로부터 시작되어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쿠쿠쿠쿠쿠!
순간, 허공으로 떠올랐던 모든 물체들이 건물 입구 뒤쪽에서 버티던 수비병들을 향해 무서운 속도로 날아갔다.
콰아아아앙!
“으악!!”
“크아악!”
폭음과 비명이 난무하고 폭발로 인한 연기가 사방을 뒤덮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잠시 후, 서서히 연기가 걷히고 드러난 곳엔 살아 있는 자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건물 입구를 지키던 자들은 모두 갈가리 찢겨 육편이 되어 흩어져 버렸고, 문이 있었는지조차 모를 정도로 파괴된 입구에는 커다란 반원형의 구멍만이 뚫려 있을 뿐이었다.
로안과 그의 무리들은 천천히 건물 안으로 들어섰다.
쏘론과학원 지하 삼층.
상당히 넓은 원형 공간의 중앙에는 지름이 다섯 장 넘는 커다랗고 하얀 원기둥 모양의 물체가 놓여 있었고, 그 물체의 표면엔 알 수 없는 문자들이 새겨져 빛을 내고 있었다.
대전의 중앙, 물체가 위치한 곳의 조금 앞쪽에는 한 중년인이 서 있었는데, 그는 바로 과학원의 원주이자 ‘태초의 파편’을 지키는 수호장 에리안이었다.
“수호장님! 큰일입니다.!”
대전의 입구로 피투성이가 된 사내가 위태롭게 달려 들어왔다.
“연방군 총사령관 로안이 공격해왔습니다! 이미 놈이 입구를 뚫었습니다! 수호장님, 피하셔야 합니다!”
에리안은 잠시 피투성이가 된 인영을 바라보았다.
이미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정신문명의 발달로 고도의 이성적 사고가 가능한 쏘론 인들이었지만, 거의 불사에 가까운 긴 생을 살다 보면 그 시간의 무거움을 이기지 못하고 가끔은 심마에 빠져 어둠에 잠식되어 버리는 자들이 발생하게 된다.
로안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로안은 생명의 말살을 통해 우주를 정화시키고, 정화된 우주는 정신과 육체적으로 완벽한 새로운 종이 이끌어 가야 한다는 이념을 가지고 있었다.
로안과 그 무리들은 스스로의 육체를 끊임없이 개조하고 변화시켜 자신들이 바로 그 새로운 종이 되려 하고 있었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바로 ‘태초의 파편’이었다.
새로운 창조를 가능케 하는 근원의 힘이 태초의 파편에 들어 있었기 때문이다.
결국 그는 쏘론의 통치 기관인 50인위원회를 제압하고 ‘태초의 파편’을 차지하기 위한 반란을 일으킨 것이다.
어쨌든 진즉부터 위험한 징조들이 보였기에 최대한 조심하고 대비했지만, 역부족이었다.
로안을 따르는 수하들은 연합군에서도 가장 뛰어난 전사들이었다.
평화에 안주한 다른 이들과 달리 그들은 한시도 쉬지 않고 육체와 영력을 단련했다.
일반 병사들이 막아 낼 만한 수준이 아닌 것이다.
영력의 무서운 점은 모든 기계들을 무력화시킨다는 것.
병사들이 모두 쓰러지고 나면 과학원의 모든 방어 수단들은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된다는 말과 같았다.
에리안이 비장한 얼굴로 병사를 바라보았다.
“어차피 도망가기엔 이미 늦었다. 너희들에게는 정말 미안하지만, 마지막으로 부탁한다. 최대한 시간을 끌어 다오. 결코 로안에게 파편이 넘어가게 해서는 안 돼!”
“크흐흑…….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피투성이 몰골의 병사가 통한의 눈물을 흘린 후 다시 대전 밖으로 걸어 나갔다.
홀로 남은 에리안은 뒤돌아서서 중앙의 원기둥을 향해 걸어갔다.
이제 그가 준비한 마지막 안배를 시행해야 할 때가 온 것이다.
“여보…….”
기둥 뒤쪽에는 아이를 안은 아름다운 한 여인이 서 있었다.
흑단 같은 검은머리를 길게 늘어뜨린 그녀는 마치 여신처럼 우아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에리안의 아내인 이레인이었으며, 품 안의 아기는 열흘 전에 태어난 두 사람의 아들이었다.
로안이 50인위원회를 습격했다는 소식을 듣는 순간, 에리안이 급히 이리로 데려온 것이다.
이레인이 슬픈 눈으로 에리안을 바라보았다.
아이가 태어나던 날부터 에리안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준비를 해 왔다.
이 모든 것이 과연 아이에게 해가 될지 도움이 될지 알 수 없어 그녀는 두려웠다.
기둥 앞에 다가선 에리안이 손을 들어 표면에 새겨진 몇 개의 문자를 순서에 따라 건드리자 기둥 아래쪽의 공간이 일그러졌다.
위이이이이잉!
동시에 빛이 뿜어져 나오며 일그러진 공간 속에서 투명하고 네모난 상자가 하나 나타났다.
상자의 표면에는 역시 기둥에서 본 것과 같은 문자들이 무수히 새겨져 있었다.
투명한 상자 안에는 형형색색의 빛들이 불규칙하게 이리저리 움직이고 있었다.
에리안은 조심스럽게 상자에 손을 댔다.
우우우우―!
낮은 울림이 대전 전체를 감싸자 상자를 든 에리안이 조심스럽게 대전의 뒤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으악!”
쿠아앙!
적들이 꽤 가까이 온 듯 폭음과 비명 소리가 이젠 제법 크게 들렸다.
에리안이 멈춰 선 대전 뒤쪽엔 타원형의 캡슐이 있었다.
“아이를 이리 눕히시오.”
잠시 머뭇거리던 이레인이 아이를 조심스럽게 캡슐 안쪽에 눕혔다.
이윽고 숨을 길게 내쉰 에리안이 캡슐 안에 누운 자신의 아들을 보며 상자를 들어 올렸다.
“태초의 의지여, 저를 용서하소서!”
화아아아아악!
에리안이 상자의 문자를 이리저리 건드리는 순간, 상자 안의 빛줄기들이 뭉쳐서 회오리치더니 상자 밖으로 빠져나왔다.
에리안의 눈에서 신광이 터져 나오고 입을 열어 무어라 알 수 없는 단어들을 중얼거리자 빠져나온 빛줄기들은 상자 위에서 잠시 멈추는 듯하더니, 이내 일직선으로 캡슐에 누운 아이를 향해 돌진했다.
빛줄기들이 향한 곳은 바로 아이의 목에 걸려 있는 목걸이였다.
파스스슷!
뇌전이 치듯 빛줄기들이 목걸이를 둘러싼 채 파지직거렸다.
잠시 주변을 돌던 빛줄기가 어느 순간 강력한 섬광과 함께 목걸이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타다다닥!
상자를 내려놓은 에리안의 두 손이 재빨리 움직였다.
순간, 허공에 수많은 문자들이 생겨나 아이의 육신과 목걸이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아들아, 부디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하게 살거라……. 너의 미래를 지켜보지 못하는 어머니와 아버지를 용서해 다오…….”
에리안은 슬픈 눈으로 아이에게 속삭였다.
“흐흑!”
그 순간, 이레인이 참았던 눈물을 기어이 터뜨리고 말았다.
그그그그그그그!
스팟!
캡슐의 문이 닫히고 점점 빠른 속도로 진동하던 캡슐이 눈부신 빛과 함께 사라졌다.
쿠아앙!
커다란 굉음이 울린 후, 부서진 입구로 붉은 안광을 줄기줄기 뿌려대며 로안이 들어왔다.
“파편을 내놔라!”
“이미 이곳엔 없소.”
에리안은 담담한 표정으로 로안을 맞이했다.
“혹여, 위치를 알고 싶다 해도 말해 줄 수 없소. 나도 어디로 갔는지 모르니 말이오.”
대전 안을 살피던 로안의 시선이 이레인에게서 멈췄다.
“아이는 어디 있느냐?”
로안은 두 사람 사이에서 얼마 전 사내아이가 태어났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에리안과 그 부인이 이곳에 있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따로 빼돌렸단 이야기였다.
“사령관님! 워프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은발사내가 기둥 뒤쪽에서 소리쳤다.
로안의 눈빛이 번뜩였다.
“후후후, 아이와 함께 빼돌린 것인가?”
한쪽 입술을 말아 올린 로안이 에리안을 노려보았다.
“워프라……. 이곳에서 워프가 가능한 거리는 최대 삼백 광년. 그 안에 생명체가 사는 행성이 몇 개인가?”
“서른다섯입니다!”
“당장 각 행성에 정보원들을 파견하여 아이의 위치를 찾아내라!”
“쏘론 정보국은 아직 우리 뜻에 확실히 따르지 않고 있습니다.”
은발사내가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따르지 않으면 따르도록 만들면 그뿐! 그 가족들의 목숨을 담보로 명을 전달하라!”
“존명!”
은발사내가 군례를 취한 후 대전 밖으로 나갔다.
어느 행성이 되었든 다른 행성의 군대가 함부로 들어가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런 까닭에 정확한 위치도 알지 못하는 상황에서 군대를 움직일 수는 없었다.
파편을 얻기 전에 전쟁을 벌이는 것은 승패를 장담할 수 없는 일.
천상 비밀리에 파편과 아이의 위치를 조사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로안의 수하들은 모두 전사들이라 정체를 숨기고 사람을 찾는 일에는 부적합했다.
해서 일부러 정보국 소속 대원들을 움직이려는 것이다.
특히, 신생 행성은 초월자가 보호하기 때문에 외부의 존재가 행성의 문명에 개입할 수 없었다.
영력이 그리 높지 않은 정보원들조차도 힘을 사용하지 않고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물론 초월자를 상대할 수 있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면 가능하다.
하지만 초월자가 초월자인 이유는 그 존재가 가지는 힘이 이미 생명체의 한계를 넘어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로안이 더더욱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것이었다.
초월자를 상대할 수 있는 힘을 가진다는 것은 ‘태초의 파편’을 이용하지 않는 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초월자의 힘을 얻게 된다면, 과연 무엇이 그들의 앞길을 막을 수 있을 것인가.
하지만 대부분의 ‘태초의 파편’은 초월자들이 보관하고 있다.
가끔 쏘론처럼 문명이 태초의 파편을 습득하는 경우도 존재했으나, 그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다.
그래서 사라진 아이에 대해 집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들은 감옥에 가두어라! 내가 직접 심문할 것이다! 어디, 네놈의 아내가 죽어가는데도 입을 열지 않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
로안이 이를 드러내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