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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



영웅재천 4(1화)
1장 천의단(1)


전 강호를 뜨겁게 달구던 천하영웅대회가 철혈신룡 궁천룡이라는 새로운 영웅의 탄생을 알리며 막을 내렸다.
오룡을 비롯한 기존의 수많은 강자들을 물리치고 최고의 후기지수 자리에 오른 것이다.
거기다 선검문과 운현에서의 활약까지 알려지게 되자 천룡의 명성은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했다.
소문이라는 것이 항상 과장되기 마련인지라 개중에는 천룡이 왕추를 물리쳐 신강으로 쫓아냈다느니, 남궁인을 일 초에 제압했다느니 하는 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들도 있었다.
오히려 그 때문에 기존 세가나 명문대파의 제자들 중에는 천룡을 못마땅하게 여기는 이들도 제법 되었다.
삼선이라는 배경이 있기는 했지만, 결국 천룡의 출신은 변두리 삼류 문파인 철혈문이었다.
당연히 그들의 입장에서는 천룡이 자신들의 위에 서는 것이 기분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그렇다 해도 천하영웅대회 최고의 수혜자가 천룡임에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그 외에도 많은 이들이 이번 대회로 인해 새로운 기회를 제공받았다.
무림맹에서 이번 대회의 참가자들을 따로 모아 천의단이라는 단체를 만들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참가자 중 총 삼백삼 명의 후기지수가 천의단에 포함되었다.
천의단에 주어지는 혜택은 어마어마했다.
우선 구대문파와 팔대세가의 기본공을 익힐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것은 각 문파의 폐쇄적 특성을 감안할 때 상당히 파격적인 일이었는데, 그만큼 천의단을 맹의 중심으로 키우려 한다는 방증이었다.
후기지수들이 노력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무림맹의 주축으로 성장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이다.
외적으로는 숙소와 전용 연무장, 식당이 따로 배정되었고, 무림맹 장서각을 자유로이 출입할 수 있는 권한도 주어졌다.
그중에서도 가장 놀라운 것은 숙소였는데, 단원 모두에게 개인 숙소가 제공되었던 것이다.
물론, 한 명이 누울 수 있는 공간에 불과했지만, 삼백 명 모두에게 독실을 준다는 것은 천의단의 단원 한 명, 한 명을 최소한 하급 간부 수준으로 대우한다는 뜻과도 같았다.
한 번의 부전승이 포함되어 있었지만, 삼차까지 올라갔던 천성도 당연히 천의단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천룡 일행의 나머지 이들도, 심지어는 감석보마저 천의단에 들었다.
비록 대회 중간에 화산으로 떠난 감석보였지만, 가문의 특별한 사정을 인정하여 합류를 허락한 것이다.
천의단의 조직은 각 백 명씩 세 개의 대로 나뉘고, 다시 스무 명씩 열다섯 개의 조로 나뉘었는데, 단주는 모용세가의 장로 모용단천이 맡게 되었다.
아무래도 혈기 넘치는 후기지수들을 올바르게 인도할 경험 많은 이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모용단천은 화경에 근접해 있는 고수로, 강호에서 인망이 높고 협의를 좇는 대협으로 소문난 이였다.
정마대전을 직접 겪었기에 연륜이나 경험 면에서도 후기지수들을 이끌기에 전혀 손색이 없었다.
세 명의 대주는 천룡과 남궁인, 그리고 무당의 청명이 임명되었다.
천룡과 남궁인의 실력이 워낙 뛰어난 탓에 많이 가려지고 말았지만, 청명 역시 오룡의 일인인 동시에 초절정을 눈앞에 두고 있는 고수.
대주 직을 맡기에 전혀 손색이 없는 이였다.
단주와 대주를 선임한 천의단은 대회가 끝난 사흘 뒤에 단원들을 소집했다.

삼백여 명의 후기지수들이 기대에 찬 모습으로 천의단 숙소앞 연무장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지난 사흘간의 휴식 기간은 무림맹에 입맹하게 된 것을 축하하기도 하고, 새로운 앞날을 위한 계획을 세우며 마음을 다지는 기간이었다.
천성은 우선 집에 전서를 보내 천룡과 자신의 소식을 알렸다.
아무래도 변두리 지역이다 보니 직접 전서를 보낼 수는 없는 터라 선검문을 통해 연락을 하는 방법을 취했다.
아마도 답장이 오기까지는 닷새에서 엿새 정도 걸릴 것이다.
한편, 연무장에 모인 후기지수들은 상기된 얼굴로 삼삼오오 모여 수군대고 있었다.
대부분이 강호 경험이 적고 꿈이 큰 젊은이들이다 보니 다들 조금은 흥분된 상태였다.
그것은 천성도 예외는 아니었다.
천룡은 대주로 뽑힌 상태라 남궁인, 청명과 함께 단원들 앞쪽에 자리하고 있었다.
“호호호, 역시 천룡 오라버니야. 자세 제대로 나온다. 그치? 어쩜 저리 뭘 해도 멋있을까? 아, 하품하는 모습도 멋있어.”
몽롱한 눈빛으로 말하는 모용혜를 천성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천룡은 멋있다고 보기엔 전혀 거리가 먼 몰골이었다.
지난 사흘 동안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축하주를 마시느라 잠조차 재대로 잘 수 없었기 때문이다.
어제도 소림의 공현에게 끌려가 밤새도록 시달린 탓에 아침에 급하게 운기를 해 술기운을 밀어내고 이 자리에 나온 참이었다.
당연히 아직도 술 냄새를 풀풀 풍기고 있는데다, 머리는 헝클어지고, 수염은 덥수룩했으며, 옷도 형편없이 구겨져 있었다.
한마디로 모용혜의 시력을 의심해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엇, 저분은?”
그때, 연단으로 한 명의 중년인이 올라섰다.
천성의 시선이 연단을 향했다.
연단 위에 올라선 중년인은 강직한 인상에 단단한 체구를 가진 사내였는데, 그는 잠시 장내를 한 번 둘러본 후 나지막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반갑다. 나는 앞으로 그대들을 이끌 천의단의 단주 모용단천이다.”
모용단천이 자신을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일었다.
인의대협(仁義大俠) 모용단천.
강호에 몸을 담은 이들 중 그의 이름을 모르는 이는 아마 없을 것이다.
정마대전 당시 그의 활약은 아직도 많은 이들의 입에서 오르내리고 있었다.
“우선 천의단의 단원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 자리에 선 이들은 모두 정도무림을 대표하는 최고의 기재들이다. 이제 그대들의 어깨 위에 무림맹과 가문의 이름이 걸려 있음을 항시 명심해야 한다. 모두 자만하지 말고 앞으로 더욱 정진하여 천의단이라는 이름에 어울리는 인재가 되길 바라겠다!”
모두가 상기된 표정으로 모용단천의 한마디, 한마디에 귀를 기울였다.
“그럼 지금부터 각자 소속될 대와 조를 알려 주겠다. 대주들은 이리로 오라.”
모용단천이 대주들을 불러 각 대별로 소속 대원들의 이름이 적힌 세 장의 종이를 나눠 주었다.
이미 조까지 나뉘어져 있었고, 각 조를 맡을 조장의 이름도 적혀 있었다.
대주들의 호명에 따라 후기지수들은 각자 자신이 소속된 대로 향했다.
다행히 천성은 천룡이 대주를 맡고 있는 일대의 일조에 포함되었다.
일조에는 천성을 비롯하여 스무 명의 단원이 속했는데, 조장은 놀랍게도 천룡에게 패해 본선 첫 경기에서 탈락한 공현이었다.
비록 대회에서 일찍 탈락하긴 했으나 실력으로 따지자면 아직도 후기지수들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수 있는 강자였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느 누구도 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용혜도 천성과 같은 조에 배정받았다.
제갈수련과 화설련은 청명의 대에, 영호명은 남궁인의 대에 속해 있었고, 서문유란은 일대 오조의 조장이었다.
천성을 본 모용혜가 얼른 다가오더니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후후후, 내가 숙부님께 말씀드려서 천룡 오라버니의 대에 넣어 달라 특별히 부탁했지. 그리고 너두 같은 조에 넣어 달라고 했어. 어때, 고맙지?”
“글쎄?”
잔뜩 목에 힘을 주고 전형적인 인사 비리를 자랑처럼 이야기하는 모용혜를 사정없이 외면한 천성이 시큰둥한 표정으로 성의 없이 대답했다.
“어머, 설마 나와 같은 조가 된 것이 불만인 것은 아니겠지?”
“글쎄?”
“뭣이라!”
모용혜의 눈꼬리가 치켜올라 갔다.
갑작스런 소란에 조원들의 시선이 천성과 모용혜에게 향했다.
정확히는 모용혜에게 향했다고 해야겠다.
그녀의 미모가 워낙에 특출 났기 때문이다.
과연 사봉 중 하나의 자리를 아무나 차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이들을 천성은 안타깝게 바라보았다.
‘쯧쯧, 다들 겪어 보면 얼굴이 다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다.’
천성이 휑하니 고개를 돌려 버렸다.
그 순간, 천성의 눈에 이채가 일었다.
조원들 중 눈에 익은 이가 있던 것이다.
그는 바로 중소 문파의 제자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백담이었다.
대회 예선에서도 팽가의 참가자를 꺾어 잠깐 관심을 끌긴 했으나, 결국 본선에 오르지 못해 곧 세인들에게 잊혀진 이였다.
조원들을 둘러보던 백담 역시 천성과 시선이 마주쳤다.
당황한 천성이 어색한 미소를 짓자 백담은 고개를 숙여 아는 척을 했다.
서로 이야기를 나눠 본 적은 없었으나 그래도 한동안 함께 했기에 천성의 얼굴을 기억하는 모양이었다.
[그러고 보니 신기하구나. 함께하면서도 존재감을 거의 느끼질 못하다니.]
무숙조차 그렇게 느꼈던 모양이다.
물론 워낙 다른 이들에 비교해 비중이 떨어지는 인물이기에 일행의 관심을 끌지 못한 탓도 있지만, 그렇다 해도 무한에 도착해 헤어지기 전까지 그가 있는지조차 모를 정도였다는 것이 참으로 희한했다.
천성 역시도 예선 때 보지 못했다면, 별생각 없이 잊어버렸을 것이다.
“얼레? 누굴 그렇게 열심히 쳐다봐? 민망하게시리.”
모용혜가 고개를 빼꼼 내밀고는 천성의 시선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았다.
“아, 전에 알던 사람이 같은 조에 들어와서 잠깐 인사했을 뿐이야.”
“응? 누가? 아, 저 사람은 예선 때 팽가 대표를 이겨서 사람들을 놀라게 했던 그 남자구나?”
천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단주 모용단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자, 이제 모두 모였으면 여기를 주목하도록!”
삼백 명에 달하는 천의단 인원이 일사불란하게 정렬하며 모용단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자, 지금 이대로 각자의 대와 조를 확정 짓겠다! 모두 주위를 둘러보도록! 그들이 바로 너희와 생사를 함께할 동료들이다! 임무 중에 너희가 믿을 수 있는 유일한 사람들이 바로 그들이다! 서로 신의를 쌓아라! 서로 버팀목이 되어라! 너희가 단원으로서 가장 명심해야 할 것이 바로 이것이다!”
모용단천의 말에 모두들 가슴에서 무언가 뜨거운 것이 솟아올랐다.
“오늘은 이것으로 마치겠다! 대신 내일부터는 일정에 따라 한 달 동안 기본 훈련을 받을 것이다. 이후 각 대별로 조원들과 인사를 나누도록 하라!”
말을 마친 모용단천이 연단을 내려가자 각 대별로 인사를 나누는 자리가 마련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