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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2화)
1장 천의단(2)
“모두 반갑소! 일대주를 맡게 된 궁천룡이라 하오!”
호기로운 소개에도 불구하고 단원들은 천룡의 몸에서 풍기는 술 냄새에 헛기침을 했다.
내공을 이용하여 술기운을 날려 버렸지만, 옷에 배인 냄새는 아직 남아 있던 탓이다.
“흥, 대주라는 자가 첫날부터 술 냄새를 풍기며 대원들 앞에 나타나다니, 우리를 너무 우습게 보는 것 아니오?”
‘저놈은?’
방금 나선 자를 확인한 천성의 눈썹이 위로 치켜올라 갔다.
상관중혁.
놈은 삼조의 조장이었다.
아마도 일전에 천룡과 마찰을 빚었던 기억을 아직 머리에 담고 있는 듯했다.
힘으로는 이길 수 없다는 사실은 알 것이니 어떻게든 천룡에게 흠집이라도 내보자는 심산일 것이다.
“아니, 그게 어찌 대주님의 잘못인가요! 워낙 흠모하는 이들이 많은지라 여기저기 부르는 데가 많으니 착하신 대주님께서 어찌 거절할 수가 있겠어요? 억울하면 상관 공자도 우승하지그래요?”
천룡을 헐뜯는 언사에 참지 못하고 후다닥 자리에서 일어난 모용혜가 눈에 쌍심지를 켜고는 따지고 들었다.
‘저년이 감히!’
갑작스런 모용혜의 반발에 상관중혁의 얼굴이 분노로 홍시처럼 붉어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전에 화설련을 만났을 때도 모용혜가 자신의 화를 돋운 기억이 떠올랐다.
상관중혁의 눈에서 살기가 일었다.
‘얼굴이 반반해서 그냥 넘어가려 했는데, 네년이 겁도 없이 제 무덤을 파는구나.’
“하하하, 다들 진정하시오. 요즘 술자리가 많다 보니……. 이거, 못난 모습을 보여 미안하오. 앞으로는 결코 이런 일이 없을 것이오.”
분위기가 험악해지자 천룡이 재빨리 나서서 두 사람을 말리며 대원들에게 사과했다.
어쨌든 자신이 대원들 앞에서 흐트러진 모습을 보인 것은 분명 잘못이었기 때문이다.
천룡이 순순히 사과를 하자 더 이상 억지를 부릴 수 없게 된 상관중혁이 이를 갈며 모용혜를 노려보았다.
아무리 모용가의 여식이라 해도 참을 수 없는 모욕이었다.
상관중혁은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한이 있더라도 이번 일에 대해 반드시 갚아 주리라 내심 다짐했다.
그렇게 잠깐의 소란이 끝나고 천룡이 다시 말을 이었다.
“우선 각 조의 조장이 먼저 소개를 하도록 하지요.”
다섯 명의 조장은 각기 소림의 공현, 곤륜의 진현, 상관중혁, 공동 도진백, 서문유란이었다.
조장들의 소개가 끝난 후, 후기지수들은 각 조별로 다시 인사를 나누었다.
결국 임무와 생활을 함께할 이들은 바로 같은 조의 조원들이었다.
서로에 대한 신뢰를 쌓을 필요가 있는 것이다.
“자, 다들 모이시오!”
공현이 걸걸한 목소리로 자신의 조원들을 불러 모았다.
모이고 나니 일조의 인원은 공현을 포함 모두 열아홉이었다.
다른 조에 비해 한 명이 모자랐다.
“아, 마지막 한 명은 대연문의 감석보 공자의 자리요. 여러분도 소문을 들어 아실 테지만, 가문에서 일어난 참사 때문에 잠시 자리를 비웠소. 아마도 칠 일 안에 맹에 도착할 것이니 그때 따뜻하게 맞아 주기 바라오.”
공현의 말에 조원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대연문의 참사는 이미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게다가 무림맹에서도 이번 사건을 중히 여겨 부군사까지 파견한 상황이었다.
“자, 그럼 거기, 천룡 공자 동생부터 순서대로 자기소개를 하도록 하지!”
한 번 안면을 익힌 터라 만만해 보였는지 공현이 대놓고 천성을 지목했다.
천룡의 동생이라는 소리에 조원들의 표정에 이채가 일었다.
“호오, 그럼 저 친구도 실력이 상당하겠는데?”
형이 초절정을 넘어섰으니 동생 역시 최소한 절정은 넘어섰을 것이 분명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일부는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일부는 경쟁자의 등장을 경계하는 눈빛으로 천성을 바라보았다.
‘끄응…….’
왠지 천성은 저 빌어먹을 땡중 때문에 앞으로 무림맹 생활이 제법 귀찮아질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에헷, 다들 속지 마세요. 얘는 대주님이랑 달리 약골이에요. 호호호호.”
모용혜가 결정타를 날리자 천성은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숙였다.
다음 순서로 모용헤가 자신을 소개하자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사봉 중 한 명과 같은 조가 되었다는 사실에 다들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것은 당연했다.
뒤이어 조원들이 순서대로 소개를 마쳤다.
천성이 살펴본 바로는 조원들 중 모용헤와 백담, 사천당가의 당위성, 곤륜의 우일이 가장 실력이 뛰어나 보였다.
그중에서도 사천당가의 당위성은 본선 서른두 명에 들었을 정도의 강자였다.
일조에는 모용혜 외에도 두 명의 여성 조원이 더 있었다.
아무래도 여인의 몸으로 삼백 명에 포함된 이들이니 그녀들 역시 실력이 상당했다.
이렇게 첫날은 각자 소속을 확인하고 상견례를 하는 것으로 일정을 마쳤다.
* * *
“두 번째 열쇠의 위치가 확인되었습니다.”
구공의 목소리에 용천광의 눈에서 기광이 일었다.
“드디어 찾았는가! 그렇다면 당장 팔신을 보내 회수해야겠군.”
“문제는 그 위치가 바로 동정호 군산(君山)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눈이 많은 곳이지요. 은밀히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확한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비영들과 함께 군산을 수색해야 하는데, 자칫 잘못하다 황제의 졸개들에게 우리의 움직임이 노출될 위험이 있습니다.”
“음…….”
군산은 동정호를 방문하는 여행객들이 한 번쯤은 꼭 들르는 명승지였다.
열쇠를 찾다 보면 신농 일족 수호자와 부딪치게 될 것이 분명한데, 그러다 보면 다른 이들의 이목까지 끌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일반인들이야 크게 문제될 것이 없겠지만, 무림맹이나 헌원 일족에게 뒤를 잡힐 수도 있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 섬이다 보니 배를 통해서만 출입이 가능했기에 혹시라도 포위된다거나 할 경우 탈출하기도 쉽지 않은 것이다.
악양(岳陽)에만 해도 무림맹 지부가 위치해 있고, 백검문이라는 제법 유명한 정도문파가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헌원의 무리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어느 곳에 그들의 눈과 귀가 있을지 짐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용천광은 고민에 빠졌다.
“문제로군…….”
그렇다고 열쇠를 포기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열쇠의 위치를 찾아내려면 얼마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가?”
“솔직히 얼마나 걸릴지는 군산에 가서 지형을 확인해 봐야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봉우리만도 일흔두 개에 다다른다.
명확한 지도가 없이 천률음보만을 가지고 찾아야 하는 그들의 입장을 생각하면 상당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그것도 마음 놓고 수색할 수 있을 때의 이야기였다.
화산의 경우, 무려 보름이나 걸려 첫 번째 열쇠의 위치를 알아냈던 전력(前歷)이 있었다.
용천광의 얼굴에 짙은 고뇌가 드리워지자 구공이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한 가지 방법이 있긴 합니다만, 그러려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열쇠가 아닌가.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반드시 확보해야 하니 어서 말해 보게.”
답답한 심정에 용천광이 구공을 재촉했다.
“수귀(水龜)를 움직여서 놈들의 시선을 돌리는 방법입니다.”
순간, 용천광의 얼굴에 회색이 돌았다.
“과연 그런 방법이 있었군! 수귀에게 수색 기간 동안 군산을 봉쇄해 버리도록 명하면 되겠군그래!”
수귀는 현재 동정수로채의 총채주가 되어 있었다.
동정수로채는 사혈맹의 여덟 문파 중 녹림십팔채, 오독문과 함께 가장 강력한 세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들이 군산을 봉쇄하고 통제한다면 누구도 함부로 접근할 수 없을 것이다.
“그것은 불가합니다.”
뜻밖의 대답에 용천광이 눈살을 찌푸렸다.
군산을 봉쇄하는 것이 아니라면 대체 수귀를 이용해 무엇을 하겠단 이야기인가.
“군산을 봉쇄하게 되면 오히려 강호의 관심이 집중될 것입니다. 잘못하면 열쇠를 찾기도 전에 무림맹과 헌원 일족을 상대해야 할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음…….”
구공의 말이 맞았다.
쓸데없는 관심을 불러일으킬 필요는 없었다.
자칫 황제의 개들이 군산에 열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기라도 한다면 열쇠의 확보를 장담할 수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그대의 생각은 무엇인가?”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려야지요. 악양에서 분란을 일으키면 군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을 것입니다. 거기다 악양과 동정호에서 난리가 일어났는데, 목숨 걸고 군산으로 가려는 정신 나간 이들은 없겠지요.”
“흐음…….”
용천광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치우 일족은 오래전부터 사혈맹을 장악하기 위해 계획을 진행시키고 있었고, 그 핵심에 동정수로채와 수귀가 있었다.
최근 들어 사혈맹 내에서도 위상이 상당히 높아진 상태였다.
구공의 계획은 동정수로채를 움직여 악양으로 강호의 시선을 돌리자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 정도 관심을 일으키려면 무림맹 지부나 백검문을 건드려야 했다.
백검문이나 무림맹 지부 모두 만만치 않은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물론 동정수로채에 비할 바는 아니었으나, 적당한 도발로는 이목을 집중시킬 수가 없으니 상당한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일을 크게 벌여야 하는 상황인 것이다.
거기다 그것은 사혈맹의 뜻과도 반하는 일이었다.
결국 그간의 투자와 노력이 허사가 될 확률이 높았고, 사혈맹 내의 위상에도 상당한 타격을 입게 될 것이 자명했다.
더욱이 자칫 수귀를 잃을 수도 있는 상황을 만들고 싶지는 않았다.
수귀는 팔신 중 용천광이 가장 아끼는 제자였다.
여덟 전사 중 그의 실력이 제일 위에 있었고, 성품 또한 강직하고 용맹했기 때문이다.
“최악의 경우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지만, 빠른 수습만 가능하다면 작은 피해로 끝날 확률도 있습니다.”
구공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동정수로채와 열쇠.
용천광으로서는 당연히 열쇠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잃게 되는 것이 너무도 많았다.
“그래도 열쇠를 포기할 순 없지…….”
이윽고 결심을 굳힌 용천광이 명령을 내렸다.
“수귀를 움직여라! 그리고 이번 열쇠는 반드시 확보해야 하니 섬응과 뇌룡, 풍마, 세 사람을 파견하고 혼천풍을 움직여 수귀를 지원하도록 하라!”
구공의 눈을 부릅떴다.
“혼천풍은 아직…….”
혼천풍은 치우 일족의 다섯 전투단 중 하나였다.
그간 움직였던 비영과는 달리 정예들로 구성된 치우의 진정한 전사들.
모두 영력을 통해 육신의 한계를 돌파한 자들이며, 무공 수준도 절정을 넘어선 강자들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헌원 일족과의 전쟁에 대비해 육성한 이들이라는 것이었다.
벌써부터 그들을 드러내게 되면 헌원 일족에게 자신들의 전력을 노출할 위험이 있는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측의 희생을 두고 볼 수만은 없네! 그깟 전력이 드러나는 위험 따위는 치우의 전사 한 명의 목숨보다 보잘것없는 것이야! 헌원 놈들이 아무리 간악한 술수를 부린다 해도 압도적인 힘으로 눌러 버리면 그만! 오히려 이번에 우리의 힘을 제대로 보여 줄 필요가 있어!”
구공은 가슴이 답답해 옴을 느꼈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그동안 자신들이 숨죽여 왔던가.
결코 힘이 없어서도 아니고, 놈들이 두려워서도 아니었다.
이미 한 번 그들의 술수에 당해 압도적인 힘을 가지고도 멸족의 길을 걸어야 했던 치우 일족이 아니던가.
과거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고자 오랜 시간을 인내하며 차근차근 복수를 준비해 왔던 것이다.
한데 용천광이 조급함을 이기지 못하고 이전과 같은 실수를 반복하려 하는 것이다.
“아아, 나도 자네의 걱정은 충분히 알고 있네. 하지만 다 드러내자는 것이 아니야! 단지 서른 명 정도만 움직인다면 놈들도 우리의 전력을 확실히 파악하기는 어려울 것이야. 나는 이미 결정을 내렸으니 그렇게 알고 시행하도록 하게!”
용천광이 더 이상 반론은 허락하지 않겠다는 표정으로 입을 닫았다.
“존명!”
결국 구공은 착잡한 표정을 지으며 용천광의 집무실을 나섰다.
‘그래, 그 정도면 큰 무리는 없겠지…….’
자신의 걱정이 기우이길 빌며 구공이 무거운 발걸음을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