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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10화)
2장 동정수로채(5)


한편, 천성은 밤을 틈타 군산에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내일부터 수적들을 공격하게 되면 따로 시간을 내기가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곤란한 것이, 바로 다섯 명이서 한방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이 빠져나가게 되면 함께 있는 조원들이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같은 방에는 감석보와 또 다른 세 명의 조원이 머물고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강행군으로 인해 모두 피곤한 상태여서 저녁 식사 후 숙소에 들어오자마자 자리에 드러누웠다는 점이었다.
오죽하면 그 말 많은 감석보마저 조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흠, 곤란하군.’
잠시 조원들을 둘러본 천성이 빠져나갈 방법을 찾기 위해 생각에 잠겼다.
[내가 대신 남아 있을 테니 갔다 오도록 해라.]
‘무숙이 제 모습으로 있을 수 있는 시간은 겨우 일각에 불과하잖아요?’
[그간 능력을 많이 회복해서 이제 한 시진 정도는 버틸 수 있다.]
천성의 미간에 주름이 일었다.
그나마 다행이긴 했으나 한 시진도 결코 충분한 시간은 아니었다.
군산에서 놈들을 만나 싸움이라도 일어난다면 얼마나 시간이 걸리게 될지 알 수가 없었으니.
고민을 하던 천성이 이윽고 결단을 내렸다.
‘일단 최대한 빨리 갔다 오는 수밖에 없겠군요!’
아무래도 오늘이 아니면 언제 시간이 날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빨리 움직일수록 놈들보다 먼저 열쇠를 확보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자면 최대한 속도를 내 한 시진 안에 돌아오는 방법밖에 없었다.
이제는 비행 능력을 사용할 수 있으니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을 것이다.
천성은 우선 인적이 드문 곳에서 변신을 하기로 했다.
‘뒷간이 좋겠군.’
다른 사람의 눈을 피하면서 무숙과 서로 교체할 수도 있는 장소였다.
뒷간에 도착한 천성의 몸에서 무숙이 빠져나왔다.
“일단 주변을 확인하고 움직여라. 혹시라도 치우 놈들이 감시하고 있을 수도 있으니.”
천성이 영안을 열었다.
이제는 영안을 연 상태에서는 상대방의 기척이나 수상한 움직임을 무숙보다 더 정확하게 감지해 낼 수 있었다.
‘가까운 곳에 특별한 움직임은 없습니다. 응?’
천성이 갑자기 눈살을 찌푸렸다.
‘이것은…….’
백검문에서 백 장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이질적인 기운이 잡혔기 때문이다.
명확하지는 않았으나 분명 자연스러운 현상은 아니었다.
천성이 수상한 기운에 영안을 집중했다.
‘엇! 저자들은 누구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괴인이 백검문을 주시하고 있었다.
영안을 상당히 집중해서야 존재를 파악할 수 있을 정도로 그들은 주변과 철저히 동화되어 있었다.
“음, 특이한 자들이구나.”
천성의 정신을 공유하고 있는 무숙이 그들의 존재를 느끼고 침음성을 흘렸다.
무숙으로서도 처음 접하는 독특한 자들이었기 때문이다.
‘살수나 은신술을 쓰는 이들과는 또 다르군요.’
“어쩌면 상당 시간 우리를 뒤따랐을 수도 있겠구나.”
천성이 두 번째 단계를 돌파하지 못했다면 결코 놈들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치우 놈들일까요?’
“음, 기운이 그들과는 달라. 영력도 느껴지지 않고. 물론, 일부러 기운을 죽이고 있을 수도 있겠지만…….”
무숙도 확신을 하지 못하는 듯했다.
그렇다고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암살자들도 아닌 것 같았다.
‘어쨌든 조심해야겠군요.’
“그래. 일단 백검문에서 어느 정도 떨어진 곳까지 움직인 뒤 영력을 사용하도록 해라.”
변신이나 영안에 사용되는 영력의 양은 상당히 미약했기에 상관없었으나, 음속을 돌파하거나 비행을 하는 경우는 놈들이 눈치챌 확률이 높았다.
‘네. 그럼 잘 부탁드릴께요.’
“그래, 조심하고, 되도록 빨리 돌아오거라.”
무숙과 헤어진 천성은 어둠 속에 몸을 숨긴 채 백검문의 담을 넘어 정체불명의 감시인들과 반대쪽으로 움직였다.
잠시 후, 백검문과 충분히 멀어졌다 생각한 천성은 걸음을 멈추고 영력을 끌어 올렸다.
후우우우웅!
두 번째 단계에 들어선 뒤 훨씬 많은 양의 기운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기문이 빠른 속도로 회전했고, 순식간에 천성의 온몸은 영력으로 가득 찼다.
‘간다!’
잔뜩 웅크렸던 천성이 땅을 박차자 충격파가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화아아아악!
슈우우우우―
마치 하늘을 뚫을 듯 비상하던 천성의 신형이 한순간 멈추더니, 섬전 같은 속도로 군산을 향해 날아갔다.

“엇! 이것은!”
진교의 손에 들린, 나침반과 비슷하게 생긴 원반의 바늘이 갑자기 한쪽으로 쏠리며 진동했다.
“엄청난 영력이군!”
자공이 굳은 얼굴로 원반을 쳐다봤다.
원반은 영력의 반응을 확인할 수 있는 특별한 나침반(羅針盤)이었다.
한데 바늘이 이토록 심하게 떨릴 정도면, 그야말로 어마어마한 양의 영력이었다.
“치우 놈들인가?”
“영침반(靈針盤)이 이토록 심한 반응을 보일 정도라면 그들밖에는 없지!”
“동정호 쪽이군!”
“놈들이 사라지기 전에 서두르지!”
두 사람은 그들이 영침반이라 부르는 물건이 가리키는 곳으로 서둘러 움직였다.

자공과 진교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 이미 천성은 군산으로 사라진 뒤였다.
“허, 흔적도 남지 않았군. 대체 얼마나 빠르게 움직인 거야?”
순식간에 영침반의 사정거리에서 사라졌다.
그것은 곧 상대가 이미 반경 삼백 장 밖으로 벗어났다는 이야기였다.
“음속에 가까운 움직임이군. 놈은 속도에 특화된 자가 분명해!”
자공이 이를 악물며 말했다.
“가만, 이 방향은……?”
진교가 영침반이 움직이던 방향을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영침반의 바늘이 서남쪽으로 돌았다.
그것은 곧 놈들이 서남쪽을 향해 움직였다는 말이었다.
“서남쪽이면…….”
그곳에는 포구가 있었다.
놈은 동정호를 향해 움직였다.
영침반이 놈의 흔적을 놓쳤다는 것은 이미 포구를 벗어났다는 이야기였다.
포구를 벗어나면 온통 물이다.
단 한 군데를 제외하고.
“군산이군!”
자공이 입술을 말아 올리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두 사람은 배를 타기 위해 포구로 향했다.
그때, 자공과 진교가 사라진 자리에 한 명의 흑의복면인이 나타났다.
“저놈들은 대체 누구인데 영력을 쫓는 것이지? 이 행성은 참으로 재밌는 곳이군.”
눈을 가늘게 뜨고 자공과 진교의 뒷모습을 살피던 복면인이 연기처럼 사라졌다.



3장 두 번째 열쇠(1)


비행 능력은 천성이 움직이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새가 아닌 이상 그 어떤 고수가 군산까지 거의 삼십 리에 달하는 거리를 날아갈 수 있단 말인가.
비행술이야말로 다른 이들보다 몇 배를 앞서 움직일 수 있는 가히 사기적인 능력이라 할 수 있었다.
그야말로 숨 몇 번 쉴 정도의 시간 만에 군산까지 도착한 천성은 즉시 영안을 열어 주변을 살폈다.
일단 치우 놈들과 열쇠의 흔적을 탐색하기 위해서였다.
곧 섬 전체가 천성의 심상에 점점 선명하게 잡혔다.
영력이나 특별한 기운이 느껴지면 그곳이 바로 치우 일족이 있거나 열쇠가 위치한 곳일 것이다.
섬 여기저기서 영력이 느껴졌다.
‘이것은…… 너무 많군.’
십여 군데가 넘는 곳에서 영력이 느껴지고 있었다.
때문에 어느 곳으로 움직여야 할지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일단 열쇠부터 찾는 게 낫겠다. 놈들도 결국 열쇠가 있는 곳으로 모이겠지!’
결국 열쇠를 먼저 찾기로 마음먹은 천성이 다시 영안을 집중했다.
두 번째 단계에 이른 영안의 능력은 상상을 불허해서, 땅 밑까지 투시할 수 있을 정도였다.
물론, 그러려면 상당한 집중력이 필요했기에 제법 긴 시간이 걸렸다.
일각 정도 시간이 흐른 후, 가까운 쪽부터 차례로 섬을 훑어가던 천성의 눈동자가 빛났다.
동쪽으로 이백 장 정도 떨어진 곳의 지하에서 미약한 화기(火氣)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이번엔 불의 열쇠인가!’
열쇠들은 마치 오행을 나타내듯 각각의 기운을 담고 있었다.
동정호 가운데에 불의 열쇠가 있다니, 누구도 쉽게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다만 시간이 많지 않았다.
이미 감시자를 피하고, 열쇠의 위치를 찾느라 이각 가까이 흐른 상태였다.
천성은 곧바로 열쇠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날렸다.

영안의 안내에 의해 도착한 곳은 군산에만 있는, 특이한 대나무 반죽(斑竹)이 군집을 이룬 숲이었다.
반죽은 이름처럼 표면에 적갈색 얼룩 반점을 가지고 있는 대나무였다.
전설에 의하면, 이는 순황제의 죽음을 애통해한 두 비(妃)가 흘린 눈물이라 전해진다.
숲은 의외로 고요했다.
주변을 확인했으나 다행히 치우 녀석들의 모습도 보이지 않았다.
아마 아직 여기까지는 수색을 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천성은 입구를 찾기 위해 다시 영안을 열었다.
아마도 화산의 경우처럼 진이 설치되어 있을 것이다.
진이라는 것은 결국 자연을 왜곡시키는 것.
주변과는 기운의 흐름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아니나 다를까, 숲의 기운은 확실히 주변과는 이질감이 느껴졌다.
천성은 조심스럽게 기운의 흐름을 살폈다.
입구를 찾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사람의 눈을 속이는 정도의 진으로는 천성의 영안을 벗어날 수 없었다.
진의 통로를 확인한 천성이 서서히 걸음을 옮겼다.
“그대는 누구인가!”
그때, 숲 안쪽에서 굵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열쇠의 수호자일 것이다.
천성은 걸음을 멈추고 앞을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적발적염(赤髮赤髥)의 중년인이 오연한 모습으로 서 있었다.
천성은 무어라 대답해야 하나 잠시 고민했다.
“복희께서 부탁하셔서 열쇠를 찾으러 온 사람입니다. 강휘성 대협을 만나고 오는 길입니다.”
복희가 부탁했다 하면 중년인의 입장에선 다소 건방져 보일 수 있는 대답이었으나 딱히 다른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예언에서 말한 구원자가 바로 자신이라 하기도 낯간지러웠고, 무턱대고 열쇠를 받으러 왔다 하기는 더욱 애매했다.
“그렇군. 안으로 들어오시오.”
의외로 중년인이 자신의 말을 순순히 받아들이자 천성은 어안이 벙벙했다.
‘허, 너무 쉽군. 혹시 치우 놈들이 와도 이렇게 들여보내 주는 건 아니겠지?’
“놀랄 것 없소. 열쇠 간에는 서로 소통할 수 있는 힘이 있소. 이미 청룡좌에게 그대에 대해 들었소.”
“하지만 전 지금 복면을 하고 있는데, 어찌 확신하신 겁니까?”
물론, 화산에서도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으나 체격과 옷 색깔만 보고 사람을 확인하기란 어렵지 않은가.
“그대가 통과한 진은 구원자 외에는 억지로 부수지 않는 한 누구도 뚫을 수 없는 진이오.”
그제야 천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다지 신묘해 보이지 않던 진이라 생각했는데, 나름 숨겨진 무언가가 있던 모양이다.
이곳은 화산과는 다르게 지하로 뚫린 동굴이 입구였다.
“난 화룡좌 강천도라 하오.”
자신을 강천도라 소개한 사내는 강휘성과는 다르게 무뚝뚝하고 말이 거의 없었다.
성이 강 씨인 것을 보면 아마도 강휘성과는 친족인 듯했다.
강천도를 따라 반각 정도 움직이자 상당히 넓은 공간이 나타났다.
그곳에는 화산과 거의 비슷한 구조로 석실들이 나 있었다.
강천도는 묵묵히 제단이 위치한 석실로 다가갔다.
제단 위에는 전에 보았던 수의 열쇠와 같은 모양의 물체가 올려져 있었다.
한 가지 다른 점이라면, 가운데 떠 있는 구체의 색깔이 붉은색이라는 것이었다.
“이미 한 번 경험해 보았으니 이것은 진짜 열쇠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오.”
사내가 제단으로 다가가더니 비밀 석실의 문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