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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12화)
3장 두 번째 열쇠(3)
“후우우우.”
어느새 석실로 돌아온 천성이 길게 숨을 내쉬었다.
아직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혼란스러움이 가시지 않았으나 지금 당장 중요한 것은 치우 일족을 막는 일이었다.
천천히 자신의 몸을 살펴보니 영안도 조금 커진 것 같았는데, 영안이 확장했다 하여 다음 단계에 이른 것은 아니었다.
무숙의 말에 의하면, 세 번째 단계에는 영안 중심에 위치한 핵이 회전하게 된다 하였기 때문이다.
고개를 돌려보니 강천도가 놀란 표정으로 서 있었다.
말로만 듣다 직접 확인하게 되니 아무래도 그 감흥이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정말이군!”
아마도 천성이 열쇠의 기운을 받아들이고 각성하는 모습을 보고 놀란 듯했다.
“사실, 이야기를 듣고도 반신반의했소. 한데 정말 구원자가 나타나다니!”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강천도는 말을 잇지 못했다.
드디어 천형에서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머릿속이 멍해진 것이다.
“응?”
그때, 천성의 영안에 이곳을 향해 움직이는 기운들이 느껴졌다.
“치우 놈들이 오고 있는 것 같군요!”
순간, 강천도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놈들에게 열쇠를 내줄 순 없소!”
“그건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열쇠를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상태라 하지만, 치우 놈들에게 열쇠를 넘기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천성은 제단 위에 있는 열쇠를 챙겼다.
어차피 제단 밑에 있는 열쇠는 자신 외에는 건드릴 수 없다 했으니, 이것을 가져간다면 치우 놈들은 허탕을 치게 될 것이다.
“이런!”
한데 열쇠의 크기가 제법 커서 품 안에 넣기에는 어려움이 있었다.
“열쇠를 내놔라!”
그때, 진 바깥쪽에서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익숙한 목소리군.’
음속으로 움직이던 사내의 목소리였다.
‘매 가면이었던가?’
조소를 머금은 얼굴로 천성이 입구를 향했다.
그곳엔 매가면사내 외에도 주위에 열두 명이 더 있었다.
아마도 화산의 일을 기억해 이번에는 대폭 전력을 늘인 듯했다.
하지만 천성도 그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진 상태였다.
놈들은 오늘 그간 악행에 대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열쇠를 얻을 자격이 없다! 목숨이 아깝지 않다면 그만 돌아가라!”
강천도가 딱딱한 목소리로 외쳤다.
“흥! 네놈 혼자서 과연 우리를 막을 수 있다고 보느냐? 어차피 말은 필요 없겠지!”
쿠우우웅!
빠지지직!
콰콰콰콰쾅!
굉음이 울리며 진에 강력한 충격이 일었다.
“제가 돕겠습니다! 저도 놈들에게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이 있거든요!”
천성은 열쇠를 제단 위에 내려놓은 후 입구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놈들에게 죽어간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해서라도 오늘은 손속에 사정을 두지 않을 생각이었다.
“고맙소!”
강천도가 기운을 끌어 올리며 진을 해체했다.
후우우우우웅!
동시에 강력한 기파가 사방으로 퍼지며 붉은 기운이 강천도의 온몸을 감쌌다.
마치 한 마리 화룡이 강천도를 둘러싼 듯했다.
잠시 후, 화룡이 강천도의 몸으로 빨려 들어가고 대나무 숲을 감싸던 진도 사라져 버렸다.
“엇!”
놀란 섬응이 외마디성과 함께 강천도의 옆을 바라보았다.
“놈이다!”
이제야 천성의 존재를 확인한 것이다.
섬응의 고함 소리에 풍마와 뇌룡 역시 천성을 노려보았다.
“저놈이 그 흑의인인가?”
귀가 닳도록 들은 흑의인의 행색과 흡사했다.
거기다 열쇠가 있는 곳에 나타난 것을 보면, 이미 다른 설명은 필요 없었다.
“조심해! 만만치 않은 놈이야!”
섬응이 긴장한 표정으로 일행에게 주의를 줬다.
“흥! 내 비록 한 팔을 잃었으나 오늘도 천황의 이름에 먹칠을 할 수는 없지!”
뇌룡이 뇌기를 끌어 올렸다.
파지지지직!
휘이이이잉!
동시에 풍마의 창끝에서 회오리바람이 몰아쳤다.
그렇게 치우의 무리들이 천성과 강천도를 둥글게 포위했다.
뿐만 아니라 하나둘씩 또 다른 놈들이 합류하고 있었다.
천성이 감지했던 인원은 오십 명이 넘었다.
그들이 모두 합류한다고 해도 지지 않을 자신은 있었으나, 시간을 아껴야 하는 천성의 입장에서는 되도록이면 빨리 놈들을 해치우는 편이 나았다.
“열쇠는 이 안에 있으니, 자신 있으면 어디 한 번 빼앗아 보거라!”
팟!
순간, 천성의 신형이 빛살처럼 달려 나갔다.
“허억!”
놀란 섬응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그로서도 천성의 움직임을 잘 감지하지 못할 정도로 빨랐던 것이다.
퍼퍼퍼퍼퍽!
하지만 뒤에 서 있던 혼천풍들은 천성의 공격을 피해 내지 못했다.
천성의 잔상이 흐릿하게 보이는가 싶더니, 다섯 무사가 쏘아진 화살처럼 뒤로 튕겨 나갔다.
“크아아악!”
뒤늦게 비명이 들려올 정도로 무서운 빠르기였다.
“정신 차려! 놈은 음속을 넘어섰다!”
“맞아! 나 음속 넘었다! 이 개 같은 놈들아!”
천성은 기문을 최대한 회전시켜 영력을 끌어냈다.
화기를 갈무리한 상태라서 그런지 몰라도 영력의 양이 전과는 차원이 달랐다.
후우우우우웅!
본격적으로 영력을 끌어 올리자 온몸의 근육이 아우성쳤다.
그때, 섬응의 눈동자가 확장되는 것이 보였다.
부릅뜬 눈으로 천성의 움직임을 주시하지만, 놈이 쫓는 것은 천성의 잔상일 뿐이다.
어느새 천성은 풍마의 옆구리를 향해 권격을 날리고 있었다.
콰아아아앙!
마치 화탄이 터지는 듯한 굉음이 울리며 풍마의 허리가 기역 자로 꺾였다.
“허어억!”
풍마의 신음 소리가 채 사라지기도 전에 뇌룡의 비명 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둘을 날려 버린 천성의 신형이 어느새 다시 사라졌다.
그야말로 전광석화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움직임이었다.
땅바닥에 쓰러진 뇌룡과 풍마는 급히 천성의 신형을 찾았다.
하지만 휙휙거리는 그림자만 보일 뿐, 도무지 움직임을 잡을 수가 없었다.
“크윽! 네놈이 과연 번개보다 빠를까!”
이를 악문 뇌룡이 사방으로 뇌전을 뿜어냈다.
파지지지지직!
그와 동시에 적아를 가리지 않은 뇌전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으윽!’
천성도 뇌룡의 공격에는 대응할 방법이 마땅치 않았다.
음속으로 움직인다 해도 사방에서 떨어져 내리는 뇌전을 피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츠츠츠츳!
결국 뇌전에 적중당한 천성의 움직임이 멈추었다.
하지만 의외로 충격은 많지 않았다.
여러 곳을 타격하느라 뇌전의 힘이 분산된 것도 있었고, 화(火)의 기운을 얻으며 강화된 기문이 뇌기를 대부분 흘려버렸기 때문이다.
파아아앙!
순간, 섬뜩한 느낌에 천성이 급히 고개를 뒤로 젖혔다.
스아악!
동시에 날카로운 무언가가 천성의 볼을 아슬아슬하게 스치고 지나며 가느다란 혈선을 남겼다.
놀란 천성이 재빨리 공격이 날아온 방향을 확인했다.
그곳에는 풍마가 천성을 노려보고 있었는데, 그의 주위로는 십여 개의 바람의 창이 회오리치며 허공에 떠 있었다.
“흥! 이제 제대로 붙어 보자!”
파파파파파팡!
십여 개에 달하는 바람의 창이 빠른 속도로 천성에게 날아왔다.
동시에 뇌룡이 뇌전 다발을 날리며 돌진해 왔다.
천성이 아슬아슬하게 뇌전과 바람의 창을 피해 내며 몸을 날렸다.
“흥! 나도 있다는 것을 잊은 모양이구나!!”
후와아아아앙!
그때, 사자후가 울려 퍼지며 어마어마한 불의 폭풍이 장내를 휩쓸었다.
마침내 강천도가 움직인 것이다.
불의 기운을 사용하는 자답게 바위마저 녹일 듯한 뜨거운 불줄기가 마치 한 마리 용처럼 치우 일족을 덮쳤다.
“이런!”
뇌룡과 풍마가 혼비백산하여 공격을 멈추고 몸을 피했다.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천성이 기탄을 쏘아 냈다.
콰콰콰콰콰쾅!
무려 스무 발의 기탄이 치우 일족을 덮쳤다.
“크아악!”
“아악!”
미처 대비하지 못한 비영들은 피를 뿌리며 튕겨져 날아갔다.
쓰러져서 일어나지 못하는 것을 보면 상당한 타격을 입은 듯 했다.
그나마 실력이 뛰어난 혼천풍과 세 명의 가면인은 간신히 버텨 냈으나, 그들 역시 강력한 충격에 연신 뒷걸음질쳤다.
기탄의 위력 역시 두 번째 단계를 넘기 전에 비해 몇 배나 향상되었기 때문이다.
쉴 틈을 주지 않고 천성이 그대로 몸을 날렸다.
파아아아앙!
천성의 속도를 이겨 내지 못하고 대기가 터져 나갔다.
“젠장! 무작위로 공격해!”
섬응의 고함 소리와 동시에 뇌전과 바람의 칼날이 사방으로 비산했다.
파지지지지직!
파파파파파팟!
여기저기서 눈부신 섬광이 터져 나오고, 공기가 폭발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하지만 천성은 어느새 혼천풍들의 뒤쪽으로 돌아가 있었다.
퍼퍼퍼퍼퍼퍽!
둔중한 타격음과 함께 열 명의 혼천풍 무사가 다시 한 번 바닥으로 내동댕이쳐졌다.
비명조차 지르지 못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입가에 핏물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모두 상당한 내상을 입은듯했다.
영력을 싣지 않은 천성의 공격도 절정무사의 파괴력과 맞먹는다.
하물며 영력이 실린 주먹이었다.
천성에게는 가벼운 타격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버텨 낼 만한 수준이 아니었다.
“정말 대단하군! 나도 질 수 없지!”
후우우우우웅!
천성의 놀라운 신위에 탄성을 터뜨린 강천도의 주위로 십여 개의 화구(火球)가 나타나더니, 뇌룡과 풍마를 향해 쏜살같이 날아갔다.
콰콰콰콰쾅!
화구들이 터져 나가며 폭염(暴炎)이 대지를 휩쓸었다.
주변을 초토화시킬 정도로 엄청난 화력이었다.
“젠장, 저놈은 내가 맡지!”
섬응이 화구를 피해 내며 강천도를 향해 몸을 날렸다.
속도를 이용하여 강천도를 상대할 생각인 것이다.
하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았다.
접근하려는 순간, 강천도가 몸 주위로 화염의 벽을 둘러 버렸기 때문이다.
“제기랄!”
치우 일족으로서는 최악의 상황이었다.
열쇠를 확보하기는커녕 목숨조차 보장할 수 없는 것이다.
애초에 천성이 나타날 상황까지 예상해 충분히 대비한 전력을 갖추었지만, 문제는 천성의 실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해졌다는 데 있었다.
도무지 움직임을 파악할 수가 없었다.
기껏해야 무작위로 공격을 날리는 수밖에 없었는데, 그것은 영력의 소모가 너무 컸다.
시간을 끌면 결국 제풀에 지쳐 쓰러질 판인 것이다.
[이러다간 모두 전멸하겠다! 후퇴하는 편이 나아!]
섬응이 뇌룡과 풍마에게 전음을 보냈다.
두 사람은 주변을 뇌전과 바람의 벽으로 두른 채 천성의 공격을 겨우겨우 막아 내고 있었다.
쉴 새 없이 쏘아대는 기탄을 방어하기 위해서였다.
[과연 달아날 수나 있을까?]
이미 상당히 체력이 소진된 상황이었다.
혼천풍은 두 번의 공격으로 모두가 깊은 내상을 입었고, 비영들은 이미 운신이 불가능할 정도의 중상을 입었다.
천성과 강천도가 연신 퍼부어대는 공격에 그들 세 사람 역시 발을 빼기가 쉽지 않았다.
놈들의 분위기가 수상함을 느낀 천성이 영력을 본격적으로 끌어 올렸다.
이미 놈들이 저지른 악행들을 수차례 확인한 천성이다.
대연문의 마당에 쌓여 있던 이백이 넘는 시체들을 생각하니 놈들의 잔혹함에 새삼 분노가 일었다.
이들을 그대로 놓아준다면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희생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네놈들이 했던 대로 똑같이 돌려주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