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영웅재천 4(14화)
3장 두 번째 열쇠(5)
우우우우우웅!
두 명의 혼천풍 무사가 혼신의 힘을 다해 검을 찔렀지만, 놀랍게도 두 자루의 검은 천성을 아슬아슬하게 비껴 나갔다.
마치 보이지 않는 무언가가 손을 잡아 끌기라도 한 것처럼 두 사람의 검로가 틀어진 것이다.
두 무사가 눈을 부릅뜬 채 당황한 모습으로 휘청대다 뇌전에 적중당해 쓰러졌다.
실전에서 사람에게는 처음 사용해 보는 염동력이었지만 상당히 효과가 있었다.
물론, 혼천풍의 상태가 거의 빈사 상태에 이른 상황이었기 때문이기도 했다.
그때, 섬응이 동굴을 빠져나와 쏜살같이 달아났다.
“이런!”
또다시 화산에서와 같은 상황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자공을 상대하던 강천도가 몇 개의 화구를 날렸으나 섬응의 속도를 따라잡지는 못했다.
천성은 애초에 섬응을 먼저 잡았어야 했다는 자책이 들었다.
이를 악문 천성이 염동력을 시전했다.
우우우우웅!
스스스스스!
순간, 혼천풍 무사들과 비영들이 바닥에 떨어뜨린 검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하아아앗!”
우렁찬 기합성과 함께 솟아오른 검들이 뇌룡을 향해 쏜살같이 쏘아져 갔다.
뇌전을 유지하느라 꼼짝할 수 없던 뇌룡에게는 재앙과 같은 공격이었다.
하지만 검들을 피하기 위해 여기서 뇌전을 멈춘다면 천성이 당장에 섬응을 따라잡을 것이 분명했다.
찰나, 뇌룡의 입가에 비장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하하하하하하!”
한바탕 광소를 터뜨린 뇌룡이 공격을 멈추지 않고 그대로 검들을 맞았다.
“커허헉!”
십여 개에 가까운 검들이 뇌룡의 몸에 고슴도치처럼 꽂히고, 뇌전도 멎었다.
하지만 섬응은 이미 멀리 달아난 상황이었다.
진교는 천성의 능력에 두려움을 느꼈다.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움직이고,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으며, 물건을 마음대로 움직이는 신묘한 술수를 부린다.
도무지 상대할 엄두가 나지 않는 강자였다.
“잠깐! 이제 우리가 싸울 필요는 없는 것 같소!”
진교는 재빨리 더 이상 싸울 의사가 없음을 알렸다.
열쇠도 사라진 상황에서 굳이 무리해서 목숨을 걸 이유는 없었다.
일단 자신들의 임무는 대연문 사건의 흉수와 치우 일족에 대해 파악하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미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 볼 수 있었다.
거기다 천성을 만났다.
이것은 주인에게 반드시 보고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자신들이 조율하고 있는 강호에 변수가 될 정도로 위험한 인물이었다.
자공도 강천도와의 싸움을 멈추고 뒤로 물러섰다.
천성도 굳이 이들과 척을 질 이유가 없었기에 그만 손을 거두었다.
“우리는 어차피 치우 일족에게 볼일이 있을 뿐이오. 그대도 보아하니 치우 일족과는 별로 관계가 좋지 않은 듯하니, 서로 적대시할 이유는 없는 것 같소.”
열쇠를 노리며 강천도를 공격했던 것은 벌써 잊었는지 뻔뻔스럽게 이야기하는 자공을 보며 천성이 조소를 날렸다.
“흥! 마음 같아서는 여기서 네놈들과 끝장을 보고 싶지만, 사조의 유지를 어길 수 없으니 너희가 더 이상 공격하지 않는다면 상관하지 않겠다!”
강천도가 이를 갈며 말했다.
어찌 보면 신농 일족이 복희에게 죄를 짓게 된 것도 모두 헌원 일족의 간악한 술수 때문이었다.
물론, 어리석게도 음모에 놀아난 신농족 역시 죄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으나, 황제가 아이들을 납치해 부추기지만 않았다면 결코 치우 일족을 공격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니 감정이 좋을 리가 없는 것이다.
강천도가 자공과 진교를 보내 주기로 하자 천성도 고개를 끄덕였다.
“순순히 물러난다면 보내 주겠다. 단, 앞으로 또다시 적대적인 행동을 보인다면 치우 놈들과 같은 꼴을 당하게 될 것이다.”
천성이 뇌룡과 풍마의 시체를 턱짓으로 가리키며 경고했다.
이미 복희에게서 헌원 일족이 저지른 죄와 그들의 간악함에 대해 들었기에 놈들이 하는 짓이 좋게 보이지 않은 것이다.
단지, 아직까지는 자신을 건들지 않았기에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뿐이었다.
거기다 놈들과 실랑이를 벌이기보단 빨리 섬응을 추격하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어차피 놈은 배를 타고 움직여야 하니 위치만 확인하면 금방 따라잡을 수 있는 것이다.
천성이 허락을 하자 자공과 진교는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재빨리 몸을 돌려 떠나갔다.
두 사람이 물러나자 천성은 급히 영안을 열었다.
섬응을 찾아내기 위해서였다.
‘응?’
한데 백 장 정도 떨어진 위치에서 정체를 알 수 없는 복면인이 이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누구인가!’
순간, 그도 천성의 시선을 눈치챘는지 곧바로 몸을 날려 멀어졌는데, 그 속도가 천성과 맞먹을 정도로 빨랐다.
더욱 놀라운 것은 그가 군산의 끄트머리에 이르렀을 때 허공으로 솟구쳐 오르더니 하늘을 날아서 사라진 것이다.
‘대체!’
자신 외에도 하늘을 날 수 있는 자가 있다는 사실에 천성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치우 일족인가?’
하지만 만일 치우 일족이라면 천성과 놈들의 싸움을 보고만 있지 않았을 것이다.
비행 능력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아 결코 천성에게 뒤지지 않는 실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만일 그가 가세했다면 천성도 쉽게 승부를 장담하지 못했을 것이다.
한데도 복면인은 싸움에 개입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제삼의 세력?’
복면 속 천성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그가 무숙이 말했던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암살자일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위험한 일이었다.
‘앞으로 더욱 조심해야겠군.’
복면인은 이미 영안의 범위에서 사라진 상황이었다.
할 수 없이 천성은 다시 섬응의 행적을 찾았다.
“흥!”
영안으로 동정호를 살피던 천성이 얼굴에 조소가 걸렸다.
“빤한 수작질이군!”
동정호를 움직이는 열두 척의 작은 배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집중해서 확인해 보니 열두 척 모두에 매 가면을 쓴 자들이 타고 있었다.
열쇠로 보이는 등짐을 짊어지고 말이다.
어쩐지 비영들의 숫자가 섬에 처음 도착해 파악했던 것에 비해 모자라다 여겼더니, 만일을 위해 도주를 미리 준비하고 있던 듯했다.
아마도 추적자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수작일 것이다.
하지만 천성에겐 몹시도 가소로운 일이었다.
영안을 벗어나기 전에 놈들 모두를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나 다름없었다.
“저는 놈을 뒤쫓겠숩니다. 다음에 열쇠를 모두 얻으면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염치없지만, 꼭 복희 사조의 유물을 찾아 우리 일족을 천형에서 해방시켜 주시오!”
천성은 강천도에게 간단히 인사를 하고 땅을 박찼다.
파아아아아앙!
공기가 터져 나가는 굉음과 함께 천성이 하늘로 솟구쳐 오르자 강천도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허! 하늘을 날다니!”
천성은 그대로 첫 번째 배를 향하여 날아갔다.
노를 젓는 배의 속도라 해 봐야 천성에게 굼벵이가 기어가는 수준에 불과했다.
한 호흡도 되지 않아 첫 번째 배에 도착했다.
퍼퍼퍼퍼펑!
천성은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기탄을 날렸다.
“허억!”
콰아아아앙!
배가 부서지며 첫 번째 매가면이 단번에 물에 처박혔다.
천성은 그대로 내리꽂히듯 놈을 낚아챈 뒤 등짐을 벗겨내고는 놈이 반항할 사이도 없이 다시 호수에 처넣었다.
풍덩!
어차피 졸개들까지 모조리 죽이는 살인마가 되고 싶지는 않았다.
일단 천성은 물건을 확인했다.
하지만 등짐에 들어 있던 것은 열쇠 모양을 한 가짜였다.
천성은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재빨리 다음 배를 향해 움직였다.
한 시진이 거의 다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콰아아아앙!
두 번째 배 역시 마찬가지였다.
열쇠는 가짜였고, 섬응 역시 가짜였다.
세 번째, 네 번째, 다섯 번째…… 차례대로 확인했으나 모두 가짜였다.
아무리 천성이 빠르다 해도 배를 부수고 열쇠를 하나하나 확인해야 하니 생각보다 시간이 제법 걸리고 있었다.
‘혹시 제일 마지막 배에 놈이 있는 거 아니야?“
천성이 차례대로 배를 뒤질 것이라 예상하고 놈이 잔머리를 굴려 제일 마지막 배에 올라탔을 수도 있었다.
천성의 신형이 가장 마지막 배로 움직였다.
콰쾅!
하지만 역시 그곳에도 열쇠가 없었다.
천성은 슬슬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마치 섬응이 자신을 가지고 노는 듯 느껴졌다.
이렇게 하나하나 확인하며 어이없게도 열한 번째 배까지 허탕을 치고 말았다.
‘허, 내가 원래 이렇게 재수가 없었나?’
허탈한 표정으로 천성이 마지막 배를 향했다.
어느새 마지막 배는 상당한 거리를 벌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 봐야 영안의 거리를 벗어나지는 못했다.
“놈! 네놈은 반드시 죽여 주마!”
화산에서도 그렇고, 이번에도 섬응의 빠른 속도 때문에 두 번 다 열쇠를 빼앗겼다.
어찌 보면 가장 까다로운 존재가 놈일지도 몰랐다.
놈을 없애면 치우 일족이 열쇠를 찾는 데 상당한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파아아아앙!
천성의 신형이 단숨에 마지막 배에 도착했다.
가면 사이로 놈의 놀란 눈이 보였다.
천성은 이번엔 배를 부수지 않고 그 위로 내려섰다.
“찾았다! 살아 돌아갈 생각은 마라!”
한데 놈에게서는 그다지 영력이 느껴지지 않았다.
순간, 놈의 눈동자가 빛났다.
콰아아아아아앙!
섬뜩한 느낌에 천성이 재빨리 몸을 날리는 순간, 거대한 폭음과 함께 배가 터져 나갔다.
폭혈공이었다.
자신의 몸을 희생해 상대를 격살하는 무서운 무공.
“크윽!”
갑작스런 폭발에 다급히 영력을 끌어 올린 탓에 충격을 모두 해소할 수가 없었다.
몸 이곳저곳이 파편에 긁혀 피가 배어 나왔다.
물론, 이 정도 상처는 곧 흔적도 없이 아물 테지만, 태초의 파편에 의해 재구성된 육신이 아니었다면 사지 중 하나가 떨어져 나갔을 만큼 강력한 폭발이었다.
아마도 나머지 배에 있던 비영들도 폭혈공을 준비하고 있었음이 틀림없었다.
하지만 천성이 놈들을 재빨리 바다로 처넣어 버리는 바람에 기회를 얻지 못했으리라.
천성은 당혹스러웠다.
열쇠를 가졌다면 자폭할 리가 없었다.
그렇다면…… 이놈도 아니다.
열두 척 모두가 가짜라는 소리다.
‘그렇다면 대체 놈은 어디에 있는 거지? 잠수라도 해서 움직였다는 말인가?’
만일 놈의 수영 속도가 음속의 반만 되어도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쯤은 악양에 당도했을 것이다.
‘젠장, 그건 미처 생각 못했군!’
배에 시선이 빼앗겨 물속을 자세히 살피지는 못했다.
천성은 이를 악문 채 고민에 빠졌다.
이미 시간도 한 시진이 다 되어 간다.
결국 더 이상의 추격은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돌아가야겠군!’
아쉽지만 할 수 없었다.
천성은 몸을 날려 백검문으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