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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16화)
4장 수룡왕(2)


천성이 속한 일조도 놈들의 배 하나를 노리다 교룡삭의 공격을 받았다.
“으앗!”
공현이 주먹을 날려 교룡삭들을 쳐 냈으나 모두를 막아 낼 수는 없었다.
미처 막아 내지 못한 몇 개의 밧줄이 단원들에게 날아왔다.
“흥!”
그 순간, 모용혜가 얼른 검을 꺼내 자신 쪽으로 날아드는 교룡삭을 잘라 냈다.
그녀도 이미 절정에 들어선 무사였다.
천성은 경공을 사용하여 교룡삭을 피하는 데 급급했다.
현재 자신은 간신히 일류에 턱걸이한 무사로 보여야 했기 때문이다.
“성이, 너 도망은 잘 다니는구나! 내가 특별히 걱정 안 해도 되겠다. 호호호!”
모용혜가 유쾌하게 웃으며 두 개의 교룡삭을 쳐 냈다.
천성은 주위를 살폈다.
교룡삭이 떨어지자 감석보가 허둥대는 모습이 보였다.
달려가 구해주려 하는데, 천룡이 어느새 나타나 교룡삭을 토막 내 버렸다.
천룡의 활약은 참으로 발군이었다.
그로 인해 일대에서는 거의 사상자가 없었다.
그에 비해 청명이 대주로 있는 삼대는 다섯 명이나 제법 중한 부상을 입었다.
남궁인이 있는 이대 역시도 세 명의 부상자를 냈다.
그와 달리 백검문과 악양 지부 무사들의 피해는 상당했다.
뒤쪽에 있어서 공격이 많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열 명이 넘게 사망하고 부상자도 스물에 가까웠다.
“대주와 조장들은 나를 따라 배 위로 오른다!”
모용단천의 명과 함께 열아홉 명의 고수가 새처럼 날아 가장 앞에 있던 다섯 척의 배 위로 뛰어올랐다.
“막아라!”
“크악!”
“커헉!”
절정고수들의 난입은 수적들에게는 재앙이었다.
조장들과 대주들은 마치 양 떼 속에 뛰어든 늑대를 보듯 사방을 휘젓고 다니며 수적들을 도륙했다.
이에 힘입어 교룡삭의 공격이 멈추자 뒤따라 천의단 무사들이 배로 뛰어올랐다.
“와아아아아! 수적 놈들을 죽여라!”
그동안 당했던 것이 있는지라 백검문과 악양 지부의 무사들도 앞을 다투어 천의단의 뒤를 따랐다.
“불화살을 쏴라!”
그때, 뒤쪽의 배들이 무림맹 무사들이 뛰어든 다섯 척의 배를 향해 불화살을 발사했다.
“이런! 막아라!”
모용단천이 다급히 소리쳤다.
천의단원들이야 큰 문제가 없지만, 백검문과 악양 지부 무사들 중 무공이 약한 이들은 잘못하면 배에 갇혀 타 죽을 수도 있는 것이다.
중견 문파답게 백검문에도 절정이 넘는 고수가 다섯이나 되었다.
문주 정위명과 함께 백검문 고수들이 움직였다.
하지만 날아드는 것은 비단 화살뿐만이 아니었다.
돌에 기름을 적신 솜과 헝겊을 둘러싼 채 불을 붙여 돌팔매로 날리고 있었다.
쳐 낸다 해도 솜과 헝겊이 부서지면서 선상 위로 기름과 불똥이 튀어 결국 배에 불이 붙고 말았다.
“아직 자기 편이 남아 있는데도 상관하지 않다니, 역시 잔혹한 사파 놈들답군!”
정위명이 이를 갈며 말했다.
“모두 다음 배로 옮겨라! 무공이 모자란 자들은 일단 뒤로 물러서라!”
모용단천의 명에 백검문과 악양 지부는 비교적 실력이 뛰어난 정예무사들만 따로 뽑아 천의단의 뒤를 따르고 나머지 무사들은 뒤로 물렸다.
쓸데없는 희생은 줄이기 위해서였다.
어차피 무인들의 싸움은 머릿수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고수들의 대결에 의해 판가름 나는 것이다.
삼십여 척의 배 뒤에 위치한 거함이 아마도 수룡왕이 타고 있는 대장선일 것이다.
“다른 배는 무시하고 수룡왕이 있는 곳으로 향한다!”
천의단이 돌진을 막아설 수 있는 수적들은 거의 없었다.
모용단천을 선두로 삼백의 무사가 질풍처럼 건너뛰며 가장 뒤쪽에 위치한 거대한 배를 향해 달려갔다.
“무림맹의 졸개들이 스스로 무덤을 찾아왔구나! 내 오늘 이 자리에서 놈들을 모조리 수장시켜 동정수로채의 위대함을 보여 주리라!”
그때, 배 위에서 우람한 체구의 백발사내가 나타나 소리쳤다.
“우와아아아아아!”
그와 동시에 어이없게도 그들이 밟고 지나온 포구에 정박된 배에서 수적들의 함성 소리가 들려오는 것이 아닌가.
그곳에는 무려 천여 명에 달하는 수적들이 천의단과 무림맹 무사들의 퇴로를 막고 서 있었다.
“허! 백검문을 공격했던 전력이 다가 아니란 말인가!”
정위명과 왕기가 허탈한 표정으로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저 정도 전력이었으면 반나절도 안 돼 백검문을 초토화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한데도 소수의 인원으로 며칠 동안 담벼락만 공격했다는 것은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는 이야기였다.
“혹시 무림맹의 지원 세력을 기다렸다는 말인가!”
모용단천이 눈살을 찌푸리며 수룡왕을 바라보았다.
수룡왕의 뒤에는 스무 명 정도의 무사들이 도열해 있을 뿐, 다른 이들은 보이지 않았다.
아마도 전력을 빼돌려 포위에 쓰고 정예무사들만 남긴 듯했다.
그렇다면 놈을 제압하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빠른 승리의 방법이었다.
“이대로 수룡왕을 잡는다!”
모용단천이 번개처럼 몸을 날려 수룡왕의 배로 날아갔다.
그 뒤를 천의단 무사들이 뒤따랐다.
“하하하! 가소롭구나! 그 정도 실력으로 나를 잡겠다고?”
후우우우우웅!
수룡왕이 기세를 끌어 올리자 대기가 진동했다.
‘이것은 영력!’
갑작스런 영력의 파동에 천성은 깜짝 놀랐다.
그렇다면 결국 수룡왕은 치우 일족의 사람인 것이다.
이제야 상황이 대충 이해가 갔다.
이 소동을 일으킨 이유도 열쇠를 찾는 것을 숨기기 위해서인 것이다.
[놈이 가면인들 정도의 실력을 가지고 있다면 저들이 상대하기 만만치 않을 것이다.]
무숙의 말이 맞았다.
놈의 능력이 무엇인지 알 수 없으나 섬응이나 뇌룡처럼 일반 무인들에게는 생소한 힘을 가지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상대한다면 큰 낭패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천성이 놈에 대해 미리 경고해 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리되면 정체를 의심받을 것이 빤했다.
천성은 일단 상황을 지켜보다가 정 위험할 경우에는 직접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막 모용단천의 몸이 선상으로 솟구쳐 오르려는 순간,
수룡왕의 두 눈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왔다.
파파파파파파팡!
그와 동시에 주변의 호수들이 진동하더니 사람 몸통만 한 물줄기들이 솟구쳐 올라 천의단을 향해 내리꽂혔다.
갑작스런 물기둥의 공격에 천의단 무사들은 다급히 검기를 끌어 올렸다.
콰콰콰콰콰콰쾅!
하지만 물기둥의 위력은 그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강력했다.
발을 디딘 배들이 박살 나고, 순식간에 십여 명의 천의단원이 물줄기에 휩쓸려 날아갔다.
그러자 뒤쪽을 포위한 수적들이 다시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파파파파팟!
천여 개의 화살이 물기둥에 휩쓸린 천의단원들에게 날아갔다.
게다가 이번에 쏘아 낸 화살은 철시였다.
그 위력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었다.
“크아악!”
“으악!”
물에 빠진 단원들은 검을 휘두르며 안간힘을 썼지만, 계속해서 덮쳐 오는 물줄기 때문에 화살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결국 점점 사상자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젠장! 천의단원들은 일단 뒤쪽으로 물러나서 화살을 날리는 놈들부터 잡아라! 대주들은 나를 따라 수룡왕을 잡는다!”
모용단천의 명에 따라 천의단원들은 뒤쪽을 포위한 천여 명의 수적들을 향해 돌진했다.
“어딜!”
화아아아아아악!
순간, 창노한 음성이 들려오며 수룡왕 주위로 수백 개의 물방울들이 허공에 떠올랐다.
마치 수백 개의 보석들이 허공을 수놓은 듯 너무도 아름다운 광경에 다들 한순간 시선을 빼앗겼다.
하지만 그것은 죽음의 덫이었다.
쉬쉬쉬쉬쉬쉬쉬쉬쉭!
굉음과 함께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물방울들이 수적들을 향하던 천의단을 덮쳤다.
“막아라!”
“크악!”
파파파팟!
콰콰콰콰쾅!
물방울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암기가 되어 단원들의 온몸을 공격했다.
“하압!”
모용단천이 혼신의 힘을 다해 수룡왕에게 수십 가닥의 검기를 날렸다.
그와 동시에 천룡과 남궁인이 수룡왕의 배로 뛰어들었다.

수룡왕이 날린 물방울이 천의단을 덮쳤다.
크기는 보잘것없었으나 작은 방울 하나하나가 쇠구슬처럼 강력한 위력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엔 갑작스런 공격에 몇몇이 부상을 입기도 했으나 곧 전열을 정비한 천의단은 조장들을 중심으로 물방울을 쳐 냈다.
하지만 그와 동시에 다시 철시가 날아오기 시작했다.
“젠장, 이 빌어먹을 수적 놈들은 대체 화살이 몇 대나 있는 거야!”
공현이 철시들을 쳐 내며 질린 듯이 소리쳤다.
비교적 여유 있게 철시를 쳐 내는 조장들과는 달리 일반 단원들은 그야말로 죽을 맛이었다.
양쪽에서 날아오는 철시와 물방울을 모두 막으려니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가면인들의 능력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대체 놈의 정체가 무엇이길래…….’
천성은 수룡왕의 능력에 혀를 내두를 수밖에 없었다.
그는 수백 개의 물방울을 쉴 새 없이 날리고 물기둥을 만들어 배들을 부수고 있었다.
그 정도면 최소한 가면인 두 명과 맞먹는 위력이었다.
[아무래도 물에서 싸우게 된 게 놈의 실력을 향상시킨 것 같구나.]
그동안 지켜본 바에 의하면, 가면인들은 모두 한 가지 기운에 특화되어 있었다.
섬응은 빠른 움직임, 지인은 땅, 풍마는 바람, 뇌룡은 뇌전.
그처럼 각자 자신만의 기운을 사용했다.
그러니 아마도 수룡왕은 물에 특화되어 있는 듯했다.
물이 물을 만났으니 당연히 위력이 배가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비로소 그가 전장을 동정호로 택한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성아, 조심해! 내 옆에 꼭 붙어 있으라구!”
모용혜가 한눈을 파는 천성에게 빽! 소리를 질렀다.
무언가 남자와 여자가 뒤바뀐 듯한 상황에 천성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모용혜는 조장들에 비해 크게 떨어지지 않는 무위를 발휘해 여유 있게 철시와 물방울을 막아 내고 있었다.
허둥대면서도 용케 버텨 내는 감석보의 모습도 보였다.
서문유란은 조원들의 안전까지 챙기며 분전하고 있었다.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신위를 보이고 있는 이는 용혜란이었다.
마치 그녀 앞에 거대한 벽이라도 세워진 듯 화살들은 그녀의 검을 뚫지 못하고 있었다.
‘저 정도면 오히려 대회에서는 실력을 감춘 것인가?’
그때였다.
갑자기 서늘한 느낌이 천성의 감각에 위험신호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