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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17화)
4장 수룡왕(3)
재빨리 영안을 펼치자 두 대의 철시가 자신과 모용혜를 향해 날아오고 있는 것이 보였다.
한데 그 방향이 이상했다.
수적들이 철시를 날리는 앞쪽이 아닌, 거의 옆에서 날아왔기 때문이다.
놈들이 이기어시라도 날리지 않는 한에는 불가능한 방향인 것이다.
‘놈!’
천성은 금방 그 원흉을 확인할 수 있었다.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따라 시선을 옮기자 상관중혁이 살기 띤 눈빛으로 자신을 노려보고 있던 것이다.
놈은 자신에게 날아오는 철시를 천성과 모용혜 방향으로 교묘하게 쳐 내고 있었다.
모용혜는 앞뒤에서 날아드는 공격을 막아 내느라 상관중혁이 날린 철시를 미처 눈치 채지 못하고 있었다.
변신을 하지 않은 상황에서 영력을 쓸 수 없는 노릇.
이미 헌원 일족까지 천의단을 감시하고 있음을 확인한 이상 영력을 쓰는 것은 스스로 정체를 노출시키는 어리석은 일이었다.
‘그렇다면 도리가 없지!’
“어이쿠!”
갑자기 천성이 휘청거리며 모용혜에게 부딪쳤다.
“어머! 야!”
모용혜와 뒤엉킨 천성이 중심을 잃고 한데 넘어지는 순간, 두 대의 화살이 머리 위를 스치고 지나갔다.
“엇! 뭐야? 화살이 왜 저기서 날아와? 어? 저, 저…… 상관중혁, 이 쳐 죽일 인간아!”
모용혜가 버럭 소리를 지르며 노려보자 상관중혁이 아쉽다는 듯 한 번 씨익 웃더니 고개를 돌렸다.
“야! 야! 화살!”
천성이 허둥지둥대며 모용혜 대신 화살을 막으며 소리쳤다.
그제야 정신을 차린 모용혜가 다시 검을 휘둘렀다.
“저놈, 왜 저래! 진짜! 그나마 니가 어리바리 넘어지지 않았으면 죽을 뻔했잖아!”
아무리 서로 감정이 있는 상태라지만 전투 중에 같은 편을 공격하다니,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이었다.
“흥! 단주님께 말씀드려서 이 일을 꼭 따지고 말 거야!”
모용혜가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흥분해서 말했다.
“그래 봐야 소용없어. 저놈이 일부러 한 일이 아니라고 잡아떼면 증명할 길이 없잖아.”
전투 중엔 그야말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었다.
화살을 튕겨 내다 보니 의도치 않게 천성과 모용혜를 향했다고 하면 할 말이 없는 것이다.
“으! 정말 저 인간 싫어!”
모용혜가 못마땅한 표정으로 상관중혁을 노려보았다.
일단은 조심하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그때, 비처럼 쏟아지던 물방울들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아마도 단주와 대주들이 수룡왕의 발목을 잡은 모양이었다.
그렇게 되자 전세가 순식간에 역전되었다.
수적들의 철시만으로는 천의단에게 별다른 위협을 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열을 다잡은 천의단 무사들이 비호처럼 수적들을 덮쳤고, 수적들은 한순간에 무너졌다.
“아미타불! 오늘 이 공현이 살계를 크게 열리라!”
그동안 쌓인 것이 많은 탓인지, 공현은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하며 수적들을 때려눕혔다.
그래도 명색이 승려인지라 말과는 다르게 수적들의 목숨까지 빼앗지는 않는 모습이었다.
“일단 여기는 천의단과 백검문 무사들만으로도 충분하니, 조장들은 수룡왕을 치는 것을 돕도록 하는 것이 좋겠소!”
악양 지부장 왕기의 말에 조장들이 수룡왕의 배를 향해 몸을 움직일 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수룡왕의 거선(巨船)으로부터 굉음이 터져 나오며 배 한쪽이 폭발했다.
* * *
“이놈!”
뱃전에 오른 천룡이 이를 악문 채 파사검보 후오식 중 첫 번째 초식인 섬전출룡(閃電出龍)을 시전했다.
당장 무리를 하더라도 수룡왕의 공격을 멈추게 하는 것이 단원들의 피해를 줄이는 길이기 때문이었다.
꿈틀거리는 검기가 섬전처럼 수룡왕을 덮쳤다.
콰아아앙!
하지만 천성의 검기를 받아 낸 것은 수룡왕이 아닌 백의복면인들이었다.
스무 명의 혼천풍 중 수룡왕을 돕기 위해 파견된 나머지 열 명이었다.
사실 천성에게 너무 어이없게 당하긴 했으나, 혼천풍의 실력은 상당했다.
그들 모두 팔신이 되기 위해 수련을 하던 자들이었기에 영력도 어느 정도 쓸 수 있었고, 무공 실력 또한 상당했다.
비영들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치우 일족의 정예 전력인 것이다.
천성이 워낙 강했던 탓에 제대로 힘도 못 써 보고 쓰러졌을 뿐이지, 사실 세 명이면 초절정고수 하나를 충분히 상대할 수 있을 정도로 강자들이었다.
혼천풍 열 명이 막아서자 천룡과 남궁인, 백검문주의 돌진은 막힐 수밖에 없었다.
“이런! 어디서 이런 고수들이!”
세 사람의 초절정고수가 열 명의 혼천풍에게 둘러싸여 고전하고 있을 때, 모용단천과 청명이 배 위로 올라왔다.
이렇게 되자 수룡왕도 더 이상 다른 곳에 신경을 쓸 수 없는 상황이 됐다.
“흥! 잘됐다! 네놈들만 없애면 나머지는 오합지졸에 불과하지!”
수룡왕이 물방울을 한곳에 모으자 심상찮은 기세로 맹렬히 회전하기 시작했다.
동시에 수백 개의 물방울들이 점점 작아지며 둥근 구체를 이룬 순간, 수룡왕이 두 손을 앞쪽으로 쭉 밀어냈다.
파아아아아아앙!
그러자 마치 화탄이 터져 나가듯 둥근 구체가 모용단천과 청명을 향해 섬전 같은 속도로 쏘아져 나갔다.
모용단천은 급히 검을 풍차처럼 휘둘러 검기의 벽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앙!
물방울들과 모용단천의 검기가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동시에 모용단천의 신형이 뱃전을 부수며 밖으로 튕겨져 나갔다.
“저럴 수가!”
배를 향해 달려오던 조장들은 충격스런 상황에 말을 잇지 못했다.
모용단천은 초절정 말미에 이른 극강의 고수였다.
그런 그가 수룡왕에게 일수에 밀린 것이다.
그렇다는 것은 수룡왕이 알려진 것과 달리 화경의 고수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였다.
모용단천은 마지막에 간신히 몸을 가누어 물속에 빠지는 사태만은 모면했다.
“감히 물에서 나에게 덤벼들다니, 스스로의 미련함을 탓하거라! 크하하하!”
뱃전에 오연히 선 수룡왕이 광소를 터뜨렸다.
모용단천이 힘없이 튕겨 나가며 세 명의 대주와 백검문주 정위명은 위험한 상황이 되었다.
“크윽! 조장들은 대주들을 도와라!”
모용단천의 명에 정신을 차린 조장들이 거선 위로 뛰어올랐다.
동시에 모용단천도 수룡왕을 향해 다시 몸을 날렸다.
배 위에 오른 조장들은 곧바로 혼천풍과 부딪쳤다.
그로 인해 천룡과 남궁인은 한결 여유를 얻을 수 있었다.
“수룡왕을 칩시다!”
천룡이 남궁인과 정위명을 보며 눈짓을 했다.
열다섯 명의 조장이라면 충분히 혼천풍을 상대할 수 있을 것이었다.
수룡왕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확인한 이상 최대한 힘을 모아야 했다.
고개를 끄덕인 남궁인과 정위명이 천룡과 함께 몸을 날렸다.
“놈!”
“하앗!”
기합성과 함께 세 사람이 날린 검기가 뱃전에 있는 수룡왕을 향했다.
“흥! 가소로운 놈들!”
콰콰콰콰콰콰!
순간, 배 주위의 물이 요동치더니, 이내 수십 개의 물줄기들이 솟구쳐 수룡왕의 몸 주위를 휘감으며 소용돌이쳤다.
파파팟!
“저럴 수가!”
“헛!”
세 사람은 믿을 수 없는 광경에 헛바람을 들이켰다.
놀랍게도 세 사람이 날린 검기가 소용돌이에 부딪쳐 흔적도 없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대체 저게 무슨 사술이란 말인가!”
다시 배 위로 오른 모용단천이 경악 섞인 표정으로 수룡왕을 바라보았다.
무공이라 말하기에는 너무도 괴이한 수법이었다.
물을 이용해 방어막을 만들고, 물로 공격을 한다.
오래전에 존재했다 전해지는 밀교의 술사들이 요사스러운 술법들을 행했다는 이야기는 있으나, 그중에서도 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술법에 대한 것은 없었다.
슈슈슈슈슈슉!
그때, 수룡왕의 몸을 둘러싼 물의 소용돌이에서 갑자기 십여 줄기의 물줄기가 쏜살같이 세 사람을 향해 쏘아져 나왔다.
파파파파파팡!
남궁인과 정위명은 검기를 끌어 올려 막고도 몇 걸음씩 뒤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이 갑자 반이 넘는 공력을 가진 천룡만이 간신히 버텨 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천룡 역시 완전히 막아 내지는 못해서 물줄기가 스치고 지나간 자리에 크고 작은 상처가 생겨 핏물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이놈!”
모용단천이 이를 악물며 검을 들어 올렸다.
“이제 놀 만큼 놀았으니 끝을 봐야겠구나! 그것을 발동해라!”
수룡왕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휘어졌다.
동시에 혼천풍과 수룡왕의 전신에서 어마어마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하하하하하! 너희 놈들을 재물 삼아 동정수로채를 잃은 아픔을 달랠 것이다!”
쿠우우우우우!
콰콰콰콰콰콰!
순간, 거대한 폭포가 쏟아져 내리는 듯한 굉음과 함께 동정호 물이 한곳으로 쑤욱 빨려 들어가는 듯싶더니, 곧 여덟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솟구쳐 올랐다.
* * *
천성은 수적들을 상대하면서도 수룡왕과 천의단의 싸움에 주의를 기울였다.
혹시라도 천룡이 위험에 빠질까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어느새 수적들도 뿔뿔이 흩어져 이미 승기를 굳힌 상황이었고, 조장들도 도우러 간 터라 큰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비록 수룡왕이 강력한 영력을 발휘하고 있으나 초절정고수 네 명을 홀로 상대할 정도는 아닌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천성이 막 수적 하나의 도를 슬쩍 피한 후 안면에 주먹을 먹이는 순간이었다.
우우우우우웅!
갑자기 수룡왕이 있는 쪽에서 엄청난 영력의 파동이 생겨나 방원 백 장 정도를 덮쳤다.
‘이것은!’
천성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문뜩 머릿속으로 한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갑작스런 영력의 상승은 이전에 한 번 겪은 적이 있었다.
바로 화산에서 치우 놈들이 영침(靈針)이라는 것을 사용했을 때였다.
아니나 다를까, 수룡왕의 영력이 순식간에 두 배로 늘어남과 동시에 놀랍게도 영력을 사용하는 자들이 순간적으로 열한 명으로 늘어난 것이다.
‘위험하다!’
수룡왕의 배 주위로 소용돌이치는 물기둥들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이대로라면 천룡이 위험했다.
천성은 재빨리 주변을 살폈다.
무리를 하더라도 반드시 천룡을 구해야 했다.
[물속이라면 변신을 해도 들키지 않을 거다!]
무숙의 말에 천성의 눈동자가 빛났다.
수룡왕과 그 수하들 때문에 영력이 난무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물속에서 변신을 한다면 감시자들이 눈치채기 쉽지 않을 것이다.
“엇!”
갑자기 천성이 휘청하더니 물속으로 떨어졌다.
“앗! 성아!”
모용혜가 놀라 소리쳤다.
그러거나 말거나 천성은 물속으로 떨어진 순간 주위를 살폈다.
물속은 시체들과 허우적대는 자들로 넘쳐 났다.
하지만 여기저기 흘러내린 피와 배의 파편 때문에 시계(視界)는 거의 영에 가까웠다.
[좋아, 지금이다!]
천성의 모습으로 변신한 무숙이 물위로 고개를 내미는 순간, 흑의인으로 변신한 천성이 수룡왕의 배를 향해 쏜살같이 헤엄쳐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