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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18화)
4장 수룡왕(4)
촤촤촤촤촤촤!
여덟 개의 거대한 소용돌이가 배를 향해 내리꽂혔다.
소용돌이의 위력은 어마어마했다.
수룡왕 혼자 만들어 낸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혼천풍 중 세 사람이 어느새 수룡왕의 뒤쪽에 시립해서 기운을 모으고 있었다.
또한 그 뒤로는 정체를 알 수 없는 막대기가 빛을 발하고 있었다.
순간, 천룡의 눈빛이 흔들렸다.
이대로 소용돌이에 직격당한다면 무공이 떨어지는 조장들의 목숨은 보장할 수 없는 상황.
그 와중에 뒤쪽에서 채주들을 상대하는 서문유란의 모습이 보였다.
이대로 서문유란을 죽게 놔둘 수는 없었다.
천룡은 이를 악물고 자신의 모든 기운을 끌어 올려 검에 모았다.
소용돌이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파사검보 후오식 중 네 번째인 파사강벽(破邪|壁)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사강벽은 강기를 구사해야만 가능한 초식이었다.
천룡의 경지로는 무리였다.
억지로 구사한다 해도 본래의 위력이 나오지 않을 것이다.
이윽고 결심을 굳힌 천룡이 눈을 질끈 감았다.
우우우우우웅!
순간, 온몸을 흐르는 무극기가 역류하기 시작했다.
삼선이 가르쳐 준, 오로지 최후의 순간에만 쓸 수 있는 필살기였다.
이 수법을 쓰고 나면 잠시나마 상위의 경지를 들여다볼 수 있다.
하지만 그 대가는 크다.
십중팔구는 기혈이 터져 목숨을 잃게 되고, 운이 좋다 해도 다시는 무공을 사용할 수 없는 폐인이 되고 만다.
한마디로, 목숨과 바꾸어 힘을 얻는 수법인 것이다.
“원래 세상을 구하기 위해 사용할 마지막 패였는데…… 이 궁천룡에게는 세상보다 사랑하는 여인이 더 중요하니, 아마도 이놈에 팔자는 영웅과는 거리가 먼 모양이구나. 후후.”
자조적인 웃음을 입에 배어 문 천룡이 눈을 떴다.
“으아아아아아아아!”
천룡의 몸에서 강력한 기파가 터져 나오며 검에 푸른색 강기가 한 자나 솟아올랐다.
동시에 천룡이 검을 회전시켜 강벽을 만들어 냈다.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천지가 진동하는 듯 동정호의 물이 사방으로 비산하고, 수룡왕의 거선 앞 부분은 벼락이라도 맞은 듯 터져 나갔다.
그 뒤로 천룡이 실 끊어진 연처럼 튕겨져 날아갔다.
천의단 무사들이 몸을 날려 천룡을 간신히 받아 냈다.
천성이 도착한 것은 그때였다.
“이런!”
5장 상처뿐인 승리(1)
물에서 빠져나온 천성이 본 것은 소용돌이들이 배를 덮치는 장면과 피를 뿌리며 뒤로 날아가는 천룡의 모습이었다.
배에서 뛰어내린 천의단 단원들이 천룡을 받아 냈으나 의식이 없었다.
천성은 순간 온몸이 굳어 버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천룡의 온몸은 피투성이였다.
‘설마…… 죽지는 않았겠지……. 제발…….’
모용혜와 천성으로 변한 무숙이 급히 천룡에게 달려가는 모습이 보였다.
몸 여기저기에 상처를 입은 서문유란이 천룡의 손을 잡고 울고 있었다.
그 주변을 천룡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천의단 조장들과 대주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자신이 조금만 서둘렀다면, 정체를 숨기는 데 신경 쓰지 않고 그대로 달려왔다면 천룡은 무사했을 것이다.
‘가족도 지키지 못하면서 세상을 구원한다고? 크크크크…….’
대체 그동안 무엇을 위해 정체를 숨기고, 힘을 숨기고, 사람들을 속이며 치우 일족과 싸웠단 말인가.
천성이 원하는 것은 그저 가족과 주변 사람들이 다치지 않는 것뿐이었다.
영웅이 되는 것과 구원자가 되는 것.
결코 한 번도 바란 적이 없는 일이었다.
치우 일족과 맞선 이유는 그들이 곡용천을 죽이고 철혈문을 노렸기 때문이다.
정체를 숨긴 이유도 자신이 드러나면 파편을 노리는 자들이나 치우 일족에게 주변 사람들이 다치게 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 결과가 고작 이런 것이란 말인가…….’
도무지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 것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천성의 시선이 앞머리가 부서져 버린 거선으로 향했다.
‘이놈들!’
천성의 눈에서 혈광이 일었다.
모든 일의 원흉인 수룡왕과 혼천풍들이 작은 배를 내려 이곳을 떠나려 하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머릿속이 하얗게 변하며 참을 수 없는 분노가 천성의 온몸을 지배했다.
“수―룡―왕!”
하늘로 솟아오른 천성이 수룡왕의 이름을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자 모든 사람들의 시선이 허공에 떠 있는 천성을 향했다.
“허! 사람이 허공에 떠 있다니!”
대체 얼마나 무공의 경지가 높아야 허공에 몸을 띄운 채 머물 수 있단 말인가.
“저 사람은 혹시…… 운현의?”
제갈수련이 놀란 표정으로 천성을 바라보았다.
“복면을 했는데 어떻게 그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겁니까? 다른 자일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같은 조의 팽만호가 궁금한 표정으로 물었다.
“목소리 때문이죠. 저는 한 번 들은 목소리는 잊지 않는답니다.”
제갈수련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백담과 용혜란도 각자 나름대로의 이유로 천성에게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수룡왕과 혼천풍 역시 고개를 돌려 천성을 올려다보았다.
“저놈은!”
“군산에 나타났던 흑의인 같습니다!”
“잘됐구나! 내 저놈을 죽여 형제들의 복수를 하리라!”
섬응에게서 풍마와 뇌룡이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분노했던가.
한데 그 원수를 갚아 줄 기회가 온 것이다.
수룡왕이 살기를 줄기줄기 뿜어내며 천성을 노려보았다.
“감히 네놈들이 복수를 입에 담는단 말이냐? 사람의 목숨에 경중이 어디 있더냐! 너희 버러지 같은 놈들의 목숨은 귀하고, 아무런 죄도 없이 죽어간 대연문 문도들의 목숨은 하찮단 말이더냐! 너희 놈들은 살아 있을 가치가 없다! 내 치우의 이름을 세상에서 지울 것이다!”
천성이 영력을 끌어 올렸다.
우우우우우우웅!
동정호 변으로 퍼져 나간 기파가 사람들을 무겁게 내리눌렀다.
구구구구구구구궁!
호수가 진동하며 배의 파편과 화살들, 주인 잃은 검들이 허공으로 조금씩 떠올랐다.
수적들과 무림맹 무사들은 경악스런 괴사에 자리에 주저앉아 두려움에 떨었다.
“이, 이게 대체!”
천룡의 희생으로 목숨을 건진 조장들과 천의단원들이 할 말을 잃고 멍하니 그 모습을 바라보았다.
허공 위로 떠오른 파편과 무기들의 숫자가 어느새 수백을 넘어섰다.
그것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수룡왕의 배를 겨눈 채 빙 둘러쌌다.
“흥! 이제껏 네 녀석이 상대한 팔신들과 나는 차원이 다르다! 기껏 알량한 재주로 사제들을 물리쳤다고 나를 너무 우습게 보는구나!”
코웃음을 친 수룡왕이 영력을 끌어 올렸다.
아직 영침의 효과가 남아 있었다.
흑의인이 강하다 하나 지금이라면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소용돌이가 솟구쳐 올라 수룡왕과 혼천풍의 주위를 감쌌다.
무림맹과 천의단 단원들은 영문을 알 수 없는 두 사람의 대화에 혼란을 감추지 못했다.
대연문을 공격한 흉수가 수룡왕이란 말인가!
거기다 치우는 무엇이고, 팔신은 무엇이란 말인가!
“꼭꼭 숨어야 할 것이다! 너희 놈들의 마지막 하나까지 내 손으로 모조리 죽여 버릴 테니까 말이다!”
쇄애애애애애액!
천룡의 눈에서 광채가 일자 수백 개가 넘는 크고 작은 파편과 무기들이 수룡왕의 배를 향해 내리꽂혔다.
퍼퍼퍼퍼퍼퍼펑!
동시에 수룡왕과 혼천풍이 만들어 낸 소용돌이와 천성이 염동력으로 날린 물체들이 부딪쳤다.
하지만 천성이 날린 파편과 무기들은 별다른 힘도 못쓰고 소용돌이에 튕겨져 날아갔다.
아직 천성의 염동력의 위력이 큰 파괴력을 가지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흥! 모양만 그럴싸했지, 고작 검기 정도밖에 안 되는구나!”
조소를 날린 수룡왕은 잔뜩 긴장했던 마음을 풀었다.
하지만 염동력은 천성이 수룡왕의 시선을 분산시키기 위한 속임수였다.
폭발과 동시에 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천성은 미간에 정신을 집중하고 비행에 모든 기운을 모았다.
순간, 주변의 시간이 멈추어 버린 듯 모든 것이 정지해 버렸다.
분노로 인한 고도의 집중력이 영안의 위력을 최대치로 확장시킨 것이다.
폭발에 의해 부서진 배의 파편들이 허공에 멈춘 채 서서히 움직였다.
그러는 사이, 수룡왕은 조소를 입에 문 채 천성이 날린 물체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오로지 천성의 시간만이 제대로 흐르는 듯 거의 정지해 버린 세상을 혼자서 움직이고 있었다.
아직 수룡왕의 시선은 천성이 날린 물체들을 향하고 있었다.
천성은 일단 혼천풍을 노렸다.
퍼퍼퍼퍼퍽!
어느새 배에 도착한 천성이 가장 오른쪽에 있던 혼천풍 무사의 배에 다섯 번의 주먹을 날렸다.
영침에 의해 놈들의 능력이 강화된 상태이니 한 번의 공격으로 단숨에 해치울 수 없다 여긴 것이다.
놈의 배가 천성의 주먹에 맞아 움푹 들어갔고, 동시에 반대쪽 등이 불룩 솟아올랐다.
마치 몸에 굴곡이 일 듯 등뼈까지 꺾인 일격이었다.
두 번째 무사의 턱을 부수고 세 번째 무사의 목을 부러뜨린 순간, 그제야 첫 번째 놈의 신형이 화살처럼 뒤로 튕겨져 나갔다.
일곱 번째 무사의 가슴뼈를 부순 순간에야 놈들이 반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성은 이미 열 번째 무사의 머리를 향해 연환퇴(連環腿)를 날리고 있었다.
평소의 천성답지 않게 하나하나 확실하게 목숨을 빼앗는 잔혹한 공격이 이어졌다.
천성의 분노가 그만큼 컸던 것이다.
오늘은 결코 한 놈도 살려 둘 생각이 없었다.
촤아아아악!
그때, 수룡왕이 천성에게 물줄기를 날렸다.
하지만 천성은 여유 있게 물줄기들을 피해 내며 마지막 혼천풍을 쓰러뜨렸다.
“이노오옴!”
분노에 잠긴 수룡왕이 울분을 토해 냈다.
그야말로 눈 깜짝할 사이에 열 명의 혼천풍이 미처 대응도 못해 보고 목숨을 잃었다.
천성의 염동력에 시선을 빼앗긴 영향도 있었으나 애초에 팔신 중 세 명과 혼천풍 열 명, 거기에 수십 명의 비영들까지 동시에 상대하고도 압도했던 천성과 맞설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수룡왕은 천성을 처음 마주했을 때 떠나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모든 게 섬응의 경고를 무시한 자신의 자만 때문이었다.
섬응은 흑의인을 보면 반드시 피하라 일렀다.
하지만 수룡왕은 자신만은 다르다 생각했다.
이미 나머지 팔신은 그의 상대가 아니었기 때문에 흑의인과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게다가 영침까지 있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결국 수룡왕은 천성의 움직임조차 잡지 못했다.
한순간 놓쳤을 뿐인데, 어느새 천성은 혼천풍을 모조리 쓸어버린 것이다.
어느새 움직임을 멈춘 천성이 천천히 허공을 움직여 수룡왕에게 다가갔다.
“어떠냐? 이래도 네놈이 복수를 지껄일 테냐?”
천성은 멸시가 담긴 눈빛으로 수룡왕을 바라보았다.
수룡왕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어디, 네놈이 죽나 내가 죽나 끝장을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