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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20화)
6장 흑협(黑俠)(1)


동정수로채와의 혈투의 승리는 무림맹으로서는 결코 웃을 수 없는 결과였다.
백검문과 악양 지부의 무사 이백여 명이 목숨을 잃었고, 무사들의 거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다.
천의단의 피해 역시 상당했다.
스물두 명의 무사가 목숨을 잃었고, 오십여 명이 부상을 입었다.
거기다 일대주인 천룡이 생사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천룡의 희생과 흑의인의 도움이 있었기에 이 정도였다.
첫 임무부터 참담한 결과를 얻은 것이다.
스물두 명의 사망자는 어찌 보면 그리 많지 않은 수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각 문파를 대표하는 인재들이었고, 정파의 미래를 짊어질 젊은이들이었기에 단지 숫자로 모든 것을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다.
혈투를 겪고 난 젊은 단원들의 사기도 문제였다.

“맹주, 제갈륜입니다.”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남궁영은 문밖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문득 정신을 차렸다.
“들어오게.”
집무실에 들어서는 제갈륜의 얼굴은 무척 어두웠다.
“그래, 천의단이 돌아왔다고…….”
이미 대강의 소식을 들어 알고 있는 상황인지라 남궁영도 마음이 좋을 수가 없었다.
“네.”
제갈륜은 상세한 피해 상황과 나머지 전투의 결과에 대해 남궁영에게 보고했다.
“동정수로채가 그토록 강할 줄이야…….”
남궁영이 보고를 듣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녹림이고 장강수로연맹이고 동정수로채이라 해 봐야 결국 산적과 수적에 불과했다.
누가 산적이 되고 수적이 되는가.
보통 굶주림에 시달리는 농민들, 탐관의 횡포를 피해 도망친 일반 백성들, 죄를 짓고 숨어든 부랑자들이 마지막으로 삼는 수단이 산적이 되고 수적이 되는 것이다.
무인들, 심지어 마인들조차도 산적과 수적은 멸시하며 업신여겼다.
결국 수채나 산채의 전력이라 봐야 빤한 것이다.
가끔 양산박처럼 영웅들이 일어설 때도 있지만, 결국 그것도 대부분은 지어낸 이야기에 불과했다.
과장되고 부풀려진 전설에 불과한 것이다.
그에 비해 천의단은 어떠한가.
인원은 삼백밖에 안 되지만 무림맹의 무력 단체 중 그들보다 강력한 전력을 지닌 곳은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무려 세 명의 초절정고수와 스무 명이 넘는 절정고수, 나머지 단원들도 모두 일류를 넘어선 정예 중의 정예였다.
마음만 먹으면 중견 문파 한두 개쯤은 간단히 쓸어버릴 수 있는 전력이었다.
화경 고수만 있다면 구대문파와 자웅을 겨루어도 밀리지 않는 전력인 것이다.
해서 첫 실전 경험을 위험부담 없이 쌓게 하기 위해 보낸 곳이 동정호였다.
동정수로채가 설마 구대문파에 필적하는 전력을 가지고 있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
한데 이야기를 들어 보니 자칫 괴멸에 가까운 피해를 입을 뻔했던 것이다.
“대체 어떻게 동정수로채의 전력이 그 정도로 강할 수 있단 말인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쉰 남궁영이 물었다.
“저희로서도 의외의 결과인지라…….”
제갈륜도 딱히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수룡왕이 원체 알려진 것이 많지 않은 인물이었던데다 갑작스럽게 나타난 정체불명의 고수들까지 가세하다 보니 전혀 예상치 못한 결과가 나타난 것이다.
“수룡왕은?”
“치료 중입니다. 어느 정도 치료가 끝나면 심문할 예정입니다.”
“수룡왕이 사용한 수법에 대해서는 알아낸 것이 없나? 대체 수룡왕의 진정한 정체가 무엇이기에 그런 괴이한 술법을 사용한다는 말인가?”
주변의 물을 무기로 사용하는 수법은 그의 육십 년이 넘는 강호 생활 동안 듣도 보도 못한 것이었다.
그런 사술을 혼자 익히지는 않았을 터.
가르친 자가 있다면 최소한 그자는 정마사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은 자일 것이다.
아니, 어쩌면 제삼의 또 다른 세력일 확률이 높았다.
“기운 자체가 다른 듯합니다만, 정확한 것은 아직 알 수가 없습니다. 결국 놈이 깨어나야 어느 정도 궁금증이 풀리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나중에 나타나 수룡왕을 상대한 흑의인이 남긴 말에 따르면, 수룡왕과 그 세력을 치우 일족이라 불렀다 합니다.”
남궁영이 고개를 모로 기울인 채 생각에 잠겼다.
‘치우라면 전설에 나오는 전신. 황제와 싸웠던 그 치우를 말하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슨 후손쯤 된다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그렇게 믿고 있든가.’
지금으로서는 수룡왕이 빨리 깨어나길 바라는 수밖에 방법이 없었다.
“결국엔 또 그 흑의인이 나타나 우리를 도왔다?”
“그렇습니다.”
“이번까지 해서 벌써 네 번째 등장이군…….”
운현에서 두 번, 대연문, 그리고 동정호까지.
이젠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번 동정호 사건의 경우, 그의 신위를 지켜본 자들의 말에 따르면 수백 자루의 검을 이기어검으로 날리고 하늘을 날아다녔다 합니다. 거기다 그가 행한 일들이 대부분 위기에 처한 이들을 돕는 경우였기 때문에 항간에는 벌써 흑협(黑俠)이라 칭하며 칭송하는 자들까지 있을 정도입니다.”
“흐음…….”
남궁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수백 자루의 검을 날리다니, 현경에 이른 자신조차도 감히 시도할 수 없는 일이었다.
‘하기야 모든 일은 사람의 입을 거치면서 과장되기 마련이지. 특히 영웅의 탄생을 원하는 군중의 심리는 작은 일도 크게 부풀리게 돼.’
남궁영은 제갈륜의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하늘을 날다니!
물론, 자신도 어느 정도 하늘을 날 수 있었다.
또 공중에서 상당 시간 머물 수도 있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것을 보고 하늘을 난다고 생각한 것이리라.
어쨌든 이야기가 부풀려지고 과장되었다 해도 흑의인의 무공은 최소 화경을 넘어선 것은 분명했다.
아니, 어쩌면 현경에 다다랐을 확률도 있었다.
수룡왕과 그 수하들을 간단히 정리한 것을 보면 후자가 더 맞는 이야기일 것이다.
‘곤란하군…….’
벌써 사람들은 정체불명의 흑의인을 협객이라 칭송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만일 그가 진정 협객이라면 왜 떳떳이 자신의 정체를 밝히지 못하는가.
자신의 정체를 숨기는 자들은 대부분 어두운 구석이 있기 마련이다.
거기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현경 고수의 존재는 무림 정세에 큰 영향을 끼칠 수도 있다.
지금껏 애써 만들어 놓은 체제를 유지하는 틀이 깨어질 우려가 있는 것이다.
운현의 일만 해도 그자의 정체성이 확실치 않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마교도들을 구해 주더니, 갑자기 정파 무사들을 왕추의 손에서 구해 주기도 했다.
이런 예측 불허의 존재는 기득권을 가진 자들에게 있어 항상 위험하다.
“그런데 그자가 이야기한 내용이 무척 놀라운 것입니다.”
남궁영의 시선이 제갈륜을 향했다.
“그 치우 일족이라는 자들이 복희의 유물을 찾아 강호를 제패하려 한다 했고, 열쇠에 대한 이야기도 했습니다.”
“복희의 유물? 그렇다면…….”
남궁영이 눈을 가늘게 떴다.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천률음보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당시 나타났던 자들 역시 괴이한 힘을 사용했습니다. 게다가 그들이 운현 사건의 원흉이라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마련과의 분란에 관계된 제삼세력이 치우 일족이라는 이야기였다.
“과연 흑의인의 말을 믿을 수 있을까?”
남궁영이 의심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일단 놈들의 전력은 상당한 것으로 보입니다. 천률음보를 탈취한 자와 수룡왕 같은 자들을 다수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강호를 노리고 있다는 것도 그저 헛소리로 치부할 순 없는 듯합니다.”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이야기였다.
“놈들이 천률음보를 확보하고 열쇠를 찾고 있다면, 유물에 대한 전설이 사실일 확률이 높겠군?”
남궁영은 치우 일족이 강호 제패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보다 복희의 유물에 대해 더욱 흥미를 느꼈다.
‘대체 유물의 정체가 무엇이기에 이미 상당한 힘을 가진 놈들이 사활을 걸고 노리고 있는 것인가?’
놈들은 그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러고 보니 복희와 치우 모두 고대의 전설에 등장하는 반신의 존재들이 아닌가.
만일 그들이 진정 복희와 연관이 있는 자들이라면 분명 유물의 정체를 알고 있을 확률이 높았다.
“흑의인이 모두가 듣는 자리에서 유물과 열쇠에 대해 이야기했다면, 이미 온 강호로 소문이 퍼졌겠군?”
“그럴 것입니다.”
이제 수많은 강호인들이 복희의 유물을 찾기 위해 움직일 것이다.
전설처럼 경천동지할 무공 비급과 관계가 있다면, 강호 무인들은 만분지 일의 가능성만 있다 해도 모든 것을 걸 것이다.
“유물이 존재한다면 결코 다른 이들에게 빼앗겨서는 안 돼! 마련이나 사혈맹의 손에 들어간다면 어떤 일이 벌어지게 될지 알 수 없어! 반드시 우리가 얻어야 해! 이 사실들을 서녕에 가있는 군사에게 알리고 답을 얻게. 그라면 우리가 유물을 얻을 확실한 방법을 제시해 줄 것이야. 그리고 치우 일족의 존재는 마련과의 협상에도 도움이 되겠지.”
“존명!”
제갈륜이 읍을 한 후 빠져나가려는데 갑자기 남궁영이 불러 세웠다.
“아! 그리고 그 흑협이라 불리는 흑의인에 대한 대책도 마련하도록 하게!”
고개를 숙인 제갈륜이 방을 나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