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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4(25화)
6장 흑협(黑俠)(6)
쿠르르릉!
강풍도 뒤쪽의 땅이 날카롭게 솟아올랐으나 이미 묘군은 사라진 뒤였다.
쉬쉬쉬쉬쉭!
그때, 공기를 가르는 파공성이 들리며 십여 개의 바람 칼날이 강풍도를 난자했다.
스아아악!
“크으윽!”
재빨리 몸에 영력을 둘러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상대방의 움직임을 전혀 파악할 수 없다는 것이 강풍도의 마음을 무겁게 했다.
“겨우 그런 실력으로 우리 두 사람을 상대하려 한 것인가? 참으로 어리석고 주제를 모르는 자로군.”
어느새 오 장 밖 허공에 떠오른 묘군이 조소를 날렸다.
“크윽, 그대는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하는군?”
강풍도가 절망 어린 시선으로 묘군을 바라보았다.
“이 나이가 되도록 한 가지 영력만 사용해서야 어찌 아이들에게 면목이 서겠는가?”
담담한 눈빛으로 묘군이 강풍도를 내려다보았다.
“그래, 아직도 더 해볼 마음이 남았는가? 어차피 신농도 치우에게 죄를 범했음은 같으나, 황제 놈의 술수에 놀아난 것에 불과하니 여기서 물러선다면 목숨은 취하지 않겠네.”
“복희께서 내린 속죄의 방법은 오로지 목숨을 바쳐 열쇠를 지켜 내는 것이다. 너희가 열쇠를 가져가려거든 나를 죽이거라!”
강풍도가 뜻을 굽히지 않고 자세를 바로 세웠다.
“그럼 할 수 없지. 나도 더 이상은 시간을 끌기 힘드니 그대는 이만 죽어 줘야겠네.”
쉬아아아아아앙!
묘군의 주위로 십여 개가 넘는 손바닥 크기의 바람의 원반이 모습을 드러냈다.
원반은 마치 종이처럼 얇았는데,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다.
바람의 원반들이 묘군의 손짓에 따라 허공으로 떠올랐다.
“잘 가게!”
콰아아아아아아앙!
그때, 갑자기 묘군의 뒤쪽에서 커다란 폭발이 일어났다.
깜짝 놀란 묘군과 강풍도는 폭음이 들려온 곳으로 시선을 향했다.
그곳에는 몸 주위로 화염을 두른 호군과 정체를 알 수 없는 두 명의 중년인이 대치하고 있었다.
“이거, 미안해서 어쩌나? 우리가 방해라도 한 것인가?”
고슴도치 수염을 기른 뚱뚱한 중년인이 너스레를 떨며 말했다.
“네놈들은 누구냐!”
호군이 분노한 목소리로 물었다.
“아, 소개가 늦었군. 나는 헌원 일족의 선인 장환이라 하고, 이쪽의 무섭게 생긴 친구는 양소라 하네. 이렇게 만나게 되서 반갑군그래!”
“황제의 개들이로구나!”
묘군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
순간, 장환의 입꼬리가 양옆으로 말려 올라갔다.
“감히 너희 놈들이 황제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는 것이냐?”
우우우우우우웅!
순간, 장환과 양소의 몸에서 강력한 기운이 뿜어져 나왔다.
헌원과 치우, 그리고 신농 일족.
힘을 잃은 세 일족의 본격적인 싸움이 바야흐로 시작되고 있었다.
<『영웅재천』 제5권에서 계속>
외전
행성 쏘론.
중앙위원회 건물의 한가운데 위치한, 반경 30미터 정도 되어 보이는 넓은 회의실.
이곳은 원래 50인위원회가 행성 정부의 주요 정책을 논의하고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는 곳이다.
한데 텅 비어 버린 이곳엔 오로지 한 명의 검은 제복을 입은 사내만이 자리하고 있었다.
서른 살 정도로 보이는 나이에 붉은 머리가 인상적인 자였는데, 백지장처럼 하얀 얼굴과 대조되어 몹시도 이질적인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사내는 회의실 중앙 의장석에 기대앉아 나른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언뜻 이곳이 아닌 먼 다른 세계를 바라보고 있는 듯 그의 눈동자엔 초점이 흐릿했다.
그때, 회의실 입구로 제복을 입은 은발의 병사가 급하게 달려 들어왔다.
“사령관 각하! 드디어 찾았습니다!”
흐릿하던 사내의 시선이 천천히 젊은 병사를 향했고, 초점이 없던 눈동자에 작은 빛이 일기 시작했다.
“무…… 엇을?”
마치 모든 일이 귀찮다는 듯, 약간 비틀어 올린 입술 사이에서 아무 감정 없는 나른한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태초의 파편이 떨어진 행성을 찾아냈습니다!!”
순간, 사내의 두 눈에서 붉은 광채가 번뜩였다.
몸을 일으킨 사내의 피부 위로 뜨거운 피가 돌기 시작했다.
마치 고치를 깨고 나온 나비의 날개가 생기를 얻듯이 사내의 안색도 점차 색깔―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창백해 보였지만―을 되찾아갔다.
“사실이냐!”
사내의 거친 목소리에 힘이 실렸다.
“네! 그렇습니다!”
은발의 병사가 상기된 표정으로 대답했다.
“십팔 년 만인가…… 크크크.”
사내가 입가를 끌어 올리며 잔인한 미소를 지었다.
이어 사내의 몸에서 피어난 살기가 주변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과연 방금 전까지 나른하게 늘어져 있던 그 사내가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급격한 변화였다.
“어디냐! 헥토르!”
사내의 목소리가 활력을 되찾기 시작했고, 온몸에서는 포식자의 위압감이 날카로운 발톱을 드러냈다.
어느새 두 눈에서 혈광을 줄기줄기 뿜어내고 있는 그는 바로 이 행성 쏘론의 잔혹한 지배자 로안이었다.
“이곳으로부터 45광년 떨어진 행성 D―03입니다! 그곳에 파견된 정보원으로부터 파편의 신호를 포착했다는 연락이 도착했습니다.”
“후후후, 정보국 놈들이 결국 자신의 임무를 훌륭히 수행해 냈군!”
행성 정보국 소속 정보원들은 로안에게 끝까지 저항했던 자들이었다.
하지만 가족을 인질로 삼아 협박하자 그들로서도 명령에 따르지 않을 수가 없었다.
쏘론에서 가족이라는 의미는 지구와는 또 달랐다.
죽음에 이르는 이들이 매우 적어 아이의 출생이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야말로 하늘의 별 따기와 같은 일이 바로 아이를 갖고 가족을 이루는 일이었다.
그만큼 더욱 귀하고 소중한 존재가 바로 자식과 부모의 관계였다.
하니 그들이 볼모로 잡힌 상황에서는 정보국의 요원들이 감히 로안의 말을 거역할 수 없는 것이다.
헥토르라 불린 병사는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워낙 잠시 동안의 신호였기에 정확한 위치는 잡지 못했다 합니다.”
“괜찮다! 어차피 단번에 모두 쓸어버린 후 태초의 파편을 회수하면 그만! 크크크!”
로안은 즐거운 듯 연신 웃음을 터트렸다.
“저, 실은…… D―03은 행성 보호 조약의 적용을 받아 초월자 여와가 조율하는 곳입니다.”
순간, 로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행성보호조약은 신생 행성의 생명과 문명을 보호하기 위한 범우주 조약으로 어느 정도 수준의 문명에 이르기 전까지는 다른 문명이 함부로 침입할 수 없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조약에 따라 신생 행성은 초월자에 의해 일정 기간 보호를 받는다.
그동안 타 문명이 침입하게 되면 초월자에 의해 응징을 받게 되는 것이다.
로안의 눈에 광기가 흐르기 시작했다.
“초월자라, 초월자……. 크흐흐.”
로안은 초월자라는 단어를 계속 되뇌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싼 채 불안정하게 회의실 좌우를 오갔다.
“감히 초월자 따위가 내 앞을 가로막다니! 태초의 파편만 손에 넣을 수 있었다면 그딴 무의미한 존재들은 벌써 모조리 소멸시켜 버렸을 텐데!”
멈춰 선 로안의 강력한 기세에 헥토르는 땀을 뻘뻘 흘리며 간신히 버텨 냈다.
“크크크, 여와라…….”
아무리 막강한 능력의 로안이라 해도 아직까지는 초월자와 맞설 수 없었다.
하지만 태초의 파편을 획득하게 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우주의 법칙을 제멋대로 좌지우지하는, 그딴 밥맛없는 무리들은 단숨에 태초의 무로 돌려 버리리라!’
로안은 이를 갈며 서서히 기세를 거두어들였다.
사실 여와는 독특한 행동으로 인해 초월자들 중에서도 제법 유명한 존재였다.
보통 초월자들은 되도록 행성의 생명체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고 멸망에 가까울 정도의 급박한 위험이 닥칠 경우에만 스스로의 힘을 보인다.
그에 반해 여와는 분신체를 만들어 인간 문명에 상당 부분 관여하고 그들로부터 칭송받는 것을 즐겼다.
초월자라는 존재에게 즐긴다는 감정 따위가 존재할 리는 없겠지만, 인간의 관점에서 본다면 여와가 그것을 원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이었다.
그런 여와였기에 다른 문명의 침투에는 상당히 민감하게 반응하는 편이었다.
로안이 그의 대군을 지구로 끌고 간다면 여와가 직접 나서게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런 상황이 닥치면 아무리 강력한 로안의 군대라도 섣불리 승리를 장담할 수 없었다.
아니, 십중팔구는 로안의 군대가 전멸하게 될 것이다.
초월자란 원래 그런 존재였다.
자신이 뜻하는 대로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 내고, 의지가 곧 현실이 되는 존재가 바로 초월자인 것이다.
그러니 태초의 파편을 얻기 전엔 결코 함부로 맞설 수 없었다.
아마도 에리안은 처음부터 그것을 노리고 지구에 태초의 파편을 보냈을 것이다.
로안의 대군이 함부로 움직일 수 없는 곳이기에.
“크크크, 그동안 내가 왜 그걸 짐작하지 못했을까? 빤한 일인것을.”
한동안 킥킥대며 로안이 자신의 실책을 곱씹었다.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일단 암살자를 보내는 수밖에.”
광기를 지우고 다시 예의 무심한 표정으로 돌아간 로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누구를 보낼까요?”
“글쎄, 어떤 놈이 적당할까…….”
많은 인원을 보낼 수 없으니 실력이 뛰어나야 했고, 빠른 시일 안에 태초의 파편을 찾아낼 정도의 머리도 갖추고 있어야 했다.
한참을 생각하던 로안의 눈에서 기광이 일었다.
“그렇군! 헥토르, 지금 생체 병기는 몇 개체가 있는가!”
“저…… 생, 생체 병기 말씀이십니까?”
헥토르가 머뭇거렸다.
“사령관님, 아무래도 그건 너무 위험하지 않겠습니까?”
생체 병기는 한 행성을 초토화시킬 수도 있는 강력한 전력이었다.
또한, 스스로 주변 환경을 학습하고 환경에 맞는 가장 강력한 전투력을 가진 존재로 변신하며, 그 힘을 몇 십 배나 증폭시켜 사용한다.
때문에 그 위력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했다.
하지만 뛰어난 지능과 학습능력은 양날의 검과 같아서 종국에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위험부담을 안고 있었다.
처음 생체 병기가 나왔을 때, 단숨에 적을 잿더미로 만들어 버리는 강력한 전투력에 군부에서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하지만 실전에 투입된 지 얼마 안 되어 불안정한 생체 병기가 폭주하며 적아를 구분하지 않고 마구잡이로 공격하여 소멸시켜 버리는 사고를 내고 말았다.
생체 병기의 폭주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그 때문에 현재는 사용이 금지되어 있었다.
“어차피 남의 행성이 아니더냐! 거기서 무슨 일이 생기든 우리에겐 전혀 문제가 될 것이 없지. 어차피 밑져야 본전 아닌가! 크흐흐.”
로안이 다시금 광기 어린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생체 병기가 완벽히 각성하기 전에는 여와도 그 존재를 알 수 없을 것이다. 각성한다 해도 겨우 한 기의 생체 병기 때문에 여와가 나서지는 않을 터! 그리고 생명체는 다섯 배의 초광속을 견뎌 내는 것이 한계임을 알고 있지? 일반 암살자를 보내면 웜홀을 통과한다 해도 최소 일 년 반은 걸려야 하는데, 생체 병기라면 초광속 임계점을 걱정할 필요가 없지! 아마도 열흘이면 그곳에 도착할 것이다! 이보다 더 완벽한 암살자가 어디 있겠느냐! 크하하하!!”
한동안 크게 웃던 로안이 잔인한 표정으로 헥토르에게 명령을 내렸다.
“방위국에 일러 지금 당장 생체 병기를 준비시키도록 하라!”
“존명!”
무언가 내키지 않는 표정으로 대답을 마친 헥토르가 회의장을 나섰다.
“크크크. 어디, 에리안 놈이 이 소식을 들으면 어떤 표정을 지을지 보러 갈까?”
음산한 웃음을 흘리며 로안이 천천히 회의장 밖으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