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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완
영웅재천 5(1화)
1장 난전(1)
퍼어어어어엉!
장환의 장력이 호군의 화벽(火壁)에 부딪치며 공기가 터져 나갔다.
동시에 양소가 묘군을 향해 돌진했는데, 한 자루 도에는 푸른색의 강기가 선명하게 맺혀 있었다.
“흥! 너희 놈들이 겁을 상실했구나!”
쉬이이이익!
순간, 묘군의 몸에서 십여 줄기의 바람이 채찍처럼 일어나 양소를 향했다.
파파파파팟!
바람의 채찍은 양소의 호신강기를 순식간에 찢어발겼다.
“쳇!”
다급히 몸을 날려 뒤로 피한 양소의 표정이 순간 어두워졌다.
치우 전사들의 실력이 예상보다 더 뛰어났기 때문이다.
호신강기가 소용없다면 놈에게 접근하기가 곤란했다.
그렇다면 원거리 공격만이 놈을 상대할 유일한 방법인 것이다.
“젠장!”
하는 수 없이 양소는 멀리서 도강을 쏘아 내며 묘군을 공격했다.
수십 개의 푸른 도강이 사납게 짓쳐들었지만, 어느새 묘군은 자리에서 사라진 뒤였다.
“뭐지!”
깜짝 놀란 양소가 급히 주변을 살폈다.
쉬아아악!
“크으윽!”
하지만 어느새 양소의 뒤편에서 날아온 바람의 칼날이 어깨를 훑고 지나간 후였다.
양소는 새삼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꼈다.
만일 위험을 느끼고 급히 몸을 숙이지 않았다면 심장이 뚫렸을 것이다.
‘놈이 두 가지 능력을 사용하는구나!’
양소는 이를 악물었다.
승부를 장담할 수 없는 상대였다.
아니, 자신이 감당할 수 없는 상대라는 것이 더 정확했다.
촤라라락!
순간, 묘군이 섭선을 횡으로 펼쳐 내자 부채 끝에서 일어난 칼날 같은 바람이 양소를 덮쳐 왔다.
바람의 위력과 속도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부채와 양소 사이의 공간이 순간적으로 일그러져 보일 정도였다.
깜짝 놀란 양소가 허겁지겁 도강을 날린 후 몸을 피했으나, 그곳에는 이미 묘군이 기다리고 있었다.
스악!
섭선이 양소의 옆구리 살을 한 움큼이나 베어 내며 피가 뿜어져 나왔다.
“크윽! 젠장!”
파파파파팟!
다급해진 양소가 칼을 사방으로 휘두르며 도강을 뿌렸다.
묘군의 빠른 움직임을 잡기 위해선 이 방법뿐이었다.
차라리 힘의 대결이라면 그런대로 버텨 낼 수 있겠지만, 도무지 움직임을 잡을 수 없으니 속수무책인 것이다.
카캉!
다행히도 마구잡이로 날린 도강 중 하나가 묘군의 섭선과 부딪쳤다.
쉬아아아아아악!
하지만 기쁨도 잠시, 곧바로 수십 줄기의 바람의 채찍이 양소를 덮쳤다.
콰콰콰콰콰쾅!
다급히 날린 양소의 도강이 바람의 채찍과 부딪쳐 허무하게 터져 나갔다.
“으윽!”
그 틈을 뚫고 들어온 두 줄기의 바람 채찍이 양소의 뺨을 할퀴고 지나갔다.
이대로는 필패였다.
치우 일족의 전력이 이 정도일 줄은 결코 예상치 못했다.
악양에서 치우 일족을 상대한 진교의 보고와 비교했을 때 터무니없이 강한 전력이었다.
‘주인께 이 사실을 알려야 해!’
어차피 승산이 없는 싸움.
지금은 어떻게든 살아 돌아가 주인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것이 더 중요했다.
양소는 장환을 바라보았다.
장환 역시 만만치 않은 상황을 느꼈음인지 양소와 눈빛을 교환했다.
“쥐새끼 같은 놈들, 도망이라도 치려는 모양이구나!”
따라라랑―!
“우웃!”
두 사람의 의도를 눈치채고 코웃음을 친 호군이 비파를 튕기자 공기를 밀어내는 어마어마한 압력이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우우우우우웅!
아울러 음파가 마치 커다란 망치로 쇠를 내려치듯 장환을 때렸다.
“크으윽!”
호신강기가 금방이라도 부서질 듯 출렁였다.
양소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장환을 돕고 싶었지만, 자신은 묘군의 공격을 막아 내는 것조차 역부족이었다.
이대로는 두 사람 모두 이곳에 뼈를 묻어야 할 상황이었다.
‘젠장, 둘 중 하나라도 살아 나가야 해!’
자신은 어차피 묘군의 속도를 따라잡을 수 없는 입장이다.
그러니 묘군의 공격을 무시하고 장환에게 길을 열어 주는 것만이 전멸을 면할 유일한 방법이었다.
결심을 굳힌 양소가 묘군의 바람 채찍에 그대로 몸을 맡긴 채 호군을 향해 강기 다발을 쏘아 냈다.
[장환! 여기는 내게 맡기고 당장 몸을 피해라! 크윽!]
강기 다발이 호군을 향함과 동시에 바람의 채찍이 양소의 몸을 난자했다.
쉬이이이익!
“헛!”
갑작스런 강기 세례에 깜짝 놀란 호군이 비파 튕기는 것을 멈추고 다급히 몸을 피했다.
순간, 장환이 재빨리 몸을 날렸다.
“흥! 어림없다!”
묘군이 막 신형을 움직여 뒤를 쫓으려 할 때였다.
“으아아아압!”
콰콰콰콰콰콰쾅!
기합성과 함께 폭음이 일며 양소의 몸이 터져 나갔다.
폭혈공을 시전한 것이다.
바로 앞에서 터진, 그것도 화경 고수가 스스로를 희생해 시전한 폭혈공의 위력은 그야말로 어마어마했다.
묘군은 급히 몸을 뒤로 뺐으나 그 여파를 모두 피하지 못하고 십여 장이나 튕겨 나갔고, 심지어는 제법 떨어져 있던 호군까지 충격파에 뒤로 다섯 걸음이나 밀려났다.
“크으으! 설마 폭혈공을 쓸 줄이야…….”
휘청거리며 몸을 일으킨 묘군이 이를 갈았다.
강기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는 것으로 보아 헌원 일족 중에서도 상당한 위치에 있는 인물인 듯했는데, 설마 아무런 거리낌 없이 스스로를 희생할 것이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어찌 되었든 열쇠는 가져가야겠지.”
호군이 동굴 앞에 버티고 선 강풍도를 향해 걸음을 옮겼다.
강풍도는 이를 악물고 호군에게 맞섰으나 역부족이었다.
결국 반 각도 지나지 않아 피투성이 몰골로 바닥에 쓰러진 강풍도를 뒤로한 채 호군과 묘군은 열쇠를 가지고 화염산을 떠났다.
* * *
“하하하하! 내 진즉에 그대들을 보냈어야 했는데, 수고가 많았구나!”
호탕하게 웃는 용천광 앞에는 묘군과 호군, 구공, 환사가 서 있었다.
“이 늙은이들을 믿어 주신 천황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호군과 묘군이 깊숙이 허리를 숙여 예를 표했다.
“태산의 열쇠도 우군(牛君)과 서군(鼠君)이 이미 획득했소. 마교의 성화령과 북해빙궁의 빙정도 손에 넣었으니, 이제 마지막 열쇠만 남았구려! 여러 난관이 많았으나 결국엔 여기까지 왔구려! 구공 마지막 열쇠의 위치는 아직이오?”
용천광이 잔뜩 흥분된 표정으로 구공을 바라보았다.
“어제 해독이 끝났습니다. 마지막 열쇠의 위치는 감숙 맥적산입니다.”
구공 역시 이번 결과가 만족스러웠는지 만면에 미소를 띠고 있었다.
“그래? 그렇다면 당장에 장로들을 파견해야지! 이번엔 누가 움직일 텐가?”
“아직 임무를 받지 않은 용군(龍君)과 마군(馬君)을 파견하시지오. 아마도 지금쯤이면 두 사람 모두 몸이 근질근질해서 죽을 지경일 것입니다. 하하.”
호군의 말에 용천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하하! 그래, 그들에게도 바깥 공기를 마시게 해 주어야지. 구공, 자네의 의견은 어떤가?”
“두 분이라면 충분히 임무를 수행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용군과 마군은 장로들 중에서도 가장 실력이 뛰어난 이들이었다.
그들이라면 흑의인과도 충분히 승부를 겨룰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구공의 마음 같아서는 확실한 성공을 위해 다른 장로들과 팔신들을 추가로 보내고 싶었으나, 장로들, 특히 용군과 마군은 자존심이 강한 이들이었다.
어차피 그 꼬장꼬장한 성품에 지원을 용납할 리가 없었다.
“좋아, 좋아! 환사, 그 두 사람에게 당장 감숙으로 움직이라 이르게!”
“존명!”
* * *
무림맹 맹주 집무실.
마련과의 협상을 마치고 맹으로 돌아온 제갈휘가 남궁영 앞에 시립해 있었다.
“전서로 미리 보고는 받았네. 장로들을 풀어 주기로 했다고?”
“네. 서로 나쁠 것 없는 조건입니다.”
세 장로의 석방은 명분상으로 한발 양보하는 듯 보이는 모양새였으나, 실질적으로 맹에 가해지는 타격은 거의 없었다.
단지 이 사실이 강호에 알려졌을 경우, 정파 무인들의 반발은 어느 정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마련의 세 장로가 무림맹에 잡혀 있었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은 맹주와 제갈휘를 포함해 다섯 명뿐이었다.
맹의 금지인 금옥(禁獄)을 관리하는 옥주 적염나찰(赤髥羅刹) 척후광과 소림의 제일고수 불왕(佛王) 원공, 마지막으로 맹주 직속 친위대인 십이천장(十二天將)의 수장 백야가 그들이었다.
그들 모두 입이 가벼운 자들이 아니니 이 사실이 알려질 일은 없었다.
마련 측도 그다지 걱정할 필요는 없었다.
마련과 정파는 철저히 단절되어 있고, 서로에 대한 정보는 각 세력의 정보 조직에 의해 철저히 통제되고 있으니 일반 무인들은 그저 위에서 가공하고 추린 정보들만을 접할 수 있었다.
정보대를 따로 운영하고 있는 몇몇 명문대파의 수장들은 이 사실을 확인할 수 있을 테지만, 그들 역시 현 체제의 유지를 원하는 지배 계층들이다.
지금 전쟁이 일어난다면 공고한 그들의 권력에 균열이 일어날 위험이 있었다.
그러니 쓸데없는 분란거리를 만들기보단 알면서도 묵인할 것이 분명했다.
물론 마련에서 대외적으로 공표해 버릴 수도 있었으나, 마련에서 떠들어 대는 이야기를 귀담아 듣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맹에서 부인하고 각 문파의 수장들이 동참한다면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질 것이다.
우둔한 백성들은 항상 쉽게 끓어오르고 쉽게 식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수고했네. 마련과의 분쟁이 일단락되었으니 사혈맹도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겠지. 이제 제삼세력, 그 치우 일족이라는 자들만 신경 쓰면 되겠군.”
“그렇지 않아도 이번 협상을 통해 마련과 놈들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 함께 대응하기로 했습니다.”
“그래? 의외로군. 마련에서 순순히 정보 공유를 수용하다니.”
“아마도 복희의 유물 때문일 테지요. 최소한 상대가 홀로 유물을 차지하지는 못하도록 하겠다는 계산이 있을 것입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서로 중요한 정보는 숨기려 할 것이다.
결국 누가 더 잘 속이고 뒤통수를 치느냐가 관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