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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2화)
1장 난전(2)


“군사, 마련에서 급전이 왔습니다!”
그때, 집무실 문밖에서 부군사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마도 제갈휘가 맹주를 만나러 갔다는 말을 듣고 이리로 곧장 달려올 만큼 중요한 일일 것이다.
“들어오라!”
남궁영의 허락이 떨어지자 부군사 제갈륜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왔다.
“마련의 급전인지라 실례를 무릅쓰고 곧장 달려왔습니다.”
“내용은?”
“아직 확인하지 못했습니다.”
하기야, 이런 중요한 문서는 제갈휘나 남궁영이 확인하기 전에 부군사가 함부로 열어 볼 수 없었다.
손가락만 한 통에서 전서를 꺼내 읽던 제갈휘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흠, 신강 화염산에 치우 일족이 나타난 듯한 정황이 있다고 합니다. 격전의 흔적이 있고, 수상한 자들을 목격한 이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싸움이 벌어졌던 곳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자들의 시신과 진법의 흔적도 보인다 합니다.”
신강은 마련의 안마당이다.
그곳에 사는 상당수가 마교도였고, 마련과 직간접으로 연관된 이들이었다.
그러니 그들의 눈을 피해 일을 벌인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한데 그런 곳에서 정체불명의 무리가 발견되었다는 것.
정체가 불명이라는 말인즉, 현 강호에 드러나지 않은 세력이라는 이야기였다.
무림맹과 정보 공유 협정을 맺은 상황이므로 비밀리에 활동하는 정파의 첩자일 리는 없었다.
또한 사혈맹이 쓸데없이 신강까지 가서 분란을 만들 이유가 없었다.
그렇다면 답은 빤했다.
제삼세력.
바로 치우 일족인 것이다.
남궁영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법의 흔적이 보인다면 무언가를 숨기려 했음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혹시 그곳이 복희의 유물이 있는 곳인가?”
“아직은 확신할 수 없습니다. 단지 열쇠가 보관되던 곳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후자가 더 확률이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열쇠를 모아 열어야 하는 비동이라면 아무래도 그 규모나 기관이라든지 여러 가지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유물을 얻는 시간도 상당히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전서에 놈들의 흔적이 거의 하루 정도 전의 것이라는 것과 동굴의 크기가 사방 오 장 정도밖에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유물이 있는 곳이라고 보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그렇군. 하지만 이래서야 결국 놈들의 뒤꽁무니만 쫓아다녀야만 하는 상황이 아닌가?”
남궁영이 못마땅한 표정으로 말했다.
상대가 일을 벌이기 전엔 열쇠의 위치와 유물의 위치를 알 수 없었다.
치우 일족이 유물을 모두 찾고 난 뒤에 그 사실을 알아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것이 아닌가.
“정보 공조의 겨우 첫 번째 결과일 뿐입니다. 한 번 놈들의 움직임을 잡아냈으니 그를 바탕으로 앞으로는 점점 더 놈들을 찾아내는 것이 빨라질 것입니다. 게다가 수룡왕을 생포했지 않습니까? 놈에게서 정보를 얻어 낸다면 우리가 한발 앞서 놈들을 기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남궁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수룡왕이 있었지. 모든 수단을 동원해 놈에게서 정보를 알아내는 데 총력을 다하게.”
“알겠습니다.”
고개를 숙여 인사를 올린 제갈휘와 제갈륜이 집무실을 나섰다.

* * *

요즘 모용혜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되어 등에 업혀 온 그날 이후로 왠지 천성을 볼 때마다 어색하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설마…….’
순간, 모용혜의 두 뺨에 홍조가 일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 증상은 자신이 천성을 남자로 생각한다는 증거였다.
‘말도 안 돼! 내가 천성을?’
조금은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천룡을 잊겠다고 맹세한 바로 그날, 다른 사람에게 마음이 가다니.
자신의 사랑이 그것밖에 되지 않았는지 스스로가 부끄럽기도 했고,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지금껏 천성은 그저 편한 친구라 생각했다.
함께 있으면 즐겁고 마음이 통하는 좋은 친구.
그것이 바로 천성이었다.
한데 어느새 그녀의 마음속에 남자로 자리 잡은 것이다.
‘내가 이리도 변덕스럽고 경망스러운 여자였나?’
아니면 천룡을 사랑했다는 것은 자신만의 착각이었단 말인가.
돌이켜 생각해 보면 서문유란과 천룡이 두 사람의 관계를 공식적으로 인정했을 때 큰 충격을 받긴 했으나, 그 뒤로는 너무도 쉽게 천룡에 대한 마음이 사라져 버렸음이 이상하긴 했다.
아직 열여덟에 불과한 그녀가 진정한 사랑이 무엇인지 알 도리는 없었다.
다만 그것이 사랑이라고 믿었을 뿐인데, 천성에 대한 마음은 천룡에게 향했던 마음과는 또 달랐다.
천룡에 대한 마음이 다른 소녀들과의 경쟁 심리와 집착, 동경에 가까웠다면, 천성에 대한 마음은 무언가 설렘과 당혹스러움, 그리고 함께 있을 때 느껴지는 떨림 등 무척 생소한 것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붙임성 좋고 말 많은 그녀가 요즘 들어서는 천성 앞에서 말문이 막히는 경우가 자주 생겼다.
그토록 사랑한다 느꼈던 천룡에게는 어떻게 해서든 한마디라도 더 해 보려 했던 그녀에게 그런 현상은 정말 당황스러운 것이었다.
그야말로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란 말에 딱 어울렸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뒤척이다 보니 시간은 어느새 자정을 훌쩍 넘어서 있었다.
“후우…….”
한숨을 내쉰 모용혜는 복잡한 머리를 애써 외면한 채 침상에 몸을 뉘었다.

* * *

맹으로 돌아온 지도 어느새 보름이 지났다.
천성은 더 이상 미루지 않고 산동성의 열쇠를 찾아 나서기로 마음먹었다.
빨리 찾을수록 치우 놈들에게 기회를 주지 않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어차피 밤을 틈타 움직이면 아침까지 돌아올 수 있을 것이다.
천의단 숙소는 혼자 사용하기에 다른 이들의 이목에서도 비교적 자유로웠다.
얼마 전까지 지속적으로 감시를 하던 헌원 일족의 선인들도 무림맹으로 돌아온 후에는 기척을 느낄 수 없었다.
아무리 선인들이 화경을 넘은 고수라 하나 무림맹 내부까지 침입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무림맹은 정파의 심장과도 같은 곳이었다.
수많은 고수들이 도처에 자리 잡은데다 맹주인 남궁영은 진교와 자공조차 감당할 수 없는 초고수였기 때문에 그들의 움직임이 쉽게 들통 날 것이 빤했다.
이런 이유로 두 선인도 무림맹 외곽에 머물며 출입을 살피는 도리밖에 없던 것이다.
그만큼 감시가 느슨해졌고, 천성이 움직이기엔 전보다 훨씬 좋은 조건이었다.

천성은 밤을 틈타 복면인으로 변신한 후 무림맹의 담장을 넘었다.
숙소를 혼자 쓰는 관계로 무숙을 남겨 두는 번거로움도 필요치 않았기에 움직임은 더욱 빨랐다.
하지만 혹시라도 또 다른 감시의 눈길이 있을 것을 대비해 무림맹에서 어느 정도 거리를 벌릴 때까지는 영력은 사용하지 않았다.
군산에서 포착한, 비행 능력을 가진 또 다른 복면인의 존재를 잊지 않은 것이다.
[산동성 태산(泰山)이라고 했던가?]
‘네, 그곳에 열쇠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무림맹에서 삼백 장 정도 떨어져 인적이 드문 골목에서 하늘로 솟구쳐 오른 천성은 곧장 음속을 사용해 태산을 향해 날아갔다.
그렇게 반 시진 정도 움직인 천성은 태산 초입에 도착할 수 있었다.
오악 중 동악(東岳)에 속하는 태산은 그 풍광과 경치도 뛰어났다.
그런 탓인지 예로부터 중원의 모든 이들이 신령스럽게 받들어 오던 명산으라 진시황을 비롯 많은 황제들이 봉선의식을 거행하던 성스러운 산이기도 했다.
심지어 백성들 사이에서는 태산에 한 번 오를 때마다 십 년씩 젊어진다는 이야기가 전해 오고 있어, 누구나 평생 한 번은 태산에 오르는 것을 숙원으로 삼을 정도로 신성시되고 있었다.
잠시 움직임을 멈추고 산 중턱을 한 번 바라본 천성이 눈을 빛내곤 다시 신형을 날렸다.
영안에 열쇠의 기운이 잡혔기 때문이다.
오행 중 목(木)의 기운이었다.
생각보다 쉽게 찾아낸 것이 조금은 의아했으나, 시간을 줄이게 되었으니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천성은 곧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그간 열쇠가 위치했던 다른 곳들과는 달리 진법이나 결계가 보이지 않고 동굴 입구가 훤하게 드러나 있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열쇠를 지키는 수호자가 있다면 당연히 감지되어야 할 기척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이상하구나!]
같은 느낌을 받은 천성은 재빨리 몸을 날려 동굴로 들어갔다.
“이런!”
눈살을 찌푸린 천성이 침음성을 터뜨렸다.
그곳에는 피투성이가 된 채 이미 숨을 거둔, 수호자로 보이는 시신이 바닥에 누워 있었다.
죽은 지 상당 시간이 지난 듯 시신은 이미 부패하기 시작한 상태였다.
[치우 놈들이 먼저 다녀간 듯하구나.]
“한발 늦은 건가!”
하필 놈들이 산동성부터 왔다 갔단 말인가.
‘아니지! 놈들이 동시에 여러 곳으로 가면인들을 보냈을 수도 있지!’
만일 치우 일족이 천률음보의 해석을 모두 끝냈다면 세 곳으로 동시에 사람을 보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감숙과 신강도 이미 놈들이 움직였을 확률이 높았다.
‘젠장, 그렇게 되면 결국 놈들이 열쇠를 모두 갖게 되는 것인가!’
그동안 치우 일족이 움직임을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빨랐다.
[일단 열쇠를 확인하고 복희를 만나 보면 다른 열쇠의 행방도 알 수 있지 않겠느냐?]
무숙의 말이 맞았다.
복희는 어느 곳의 열쇠가 사라지고, 어느 곳의 열쇠가 남아 있는지 알고 있을 것이다.
천성은 열쇠가 있는 석실로 걸음을 옮겼다.
제단을 살펴보니 역시 열쇠가 있던 자리엔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하지만 자신을 위한 열쇠는 지하에 있을 것이다.
천성은 제단을 열고 지하의 비밀 석실로 내려갔다.
석실 안은 온통 목(木)의 기운으로 가득 차 있었다.
역시 열쇠의 모양은 다른 것들과 같았고, 가운데 구채의 색깔만 흰색이었다.
천성은 천천히 손을 뻗어 열쇠 위로 올렸다.
화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