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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3화)
1장 난전(3)


“한발 늦었군그래.”
어느새 복희가 천성의 눈앞에 서 있었다.
천성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맛을 다셨다.
“실망할 것 없다. 그대에겐 어차피 따로 준비된 열쇠가 있지 않은가.”
물론, 천성도 그 사실은 잘 알고 있었다.
다만, 치우 일족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방해하고 싶었을 뿐이다.
“오늘은 반가운 얼굴도 보이는군.”
[오랜만이오.]
천성의 몸 안에 있는 무숙을 어느새 발견한 모양이었다.
“놈들이 열쇠를 모두 확보한 겁니까?”
“신강 화염산의 열쇠는 확보했으나 감숙의 열쇠는 아직 확보하지 못했지.”
순간, 천성의 눈이 빛났다.
그렇다면 아직 기회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감숙 맥적산까지는 상당한 거리가 있어서 오늘 밤에 다시 그곳까지 갔다 오기는 만만치가 않았다.
거기다 천의단에 소속된 상태에서 무단으로 자리를 비울 수도 없는 상황이 아닌가.
“음…….”
천성이 미간을 찡그리며 고민에 빠졌다.
‘아, 형의 상태를 살피러 소화산에 다녀온다고 해야겠군!’
천의단원들 모두에게 천룡은 은인과도 같았다.
그러니 천룡의 일로 움직인다 하면 단주도 허락해 줄 것이 분명했다.
거리가 거리이니만큼 아마도 한 달 정도의 시간은 얻어 낼 수 있으리라.
천성의 속도라면 신강까지 몇 십 번은 왕복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언제 놈들이 감숙으로 향할지 알 수 없는 상황인 만큼 되도록 서둘러야 했다.
내일 당장 허락을 받고 움직이기로 천성은 마음먹었다.
“가만, 그러고 보니 유물의 위치는 어딥니까?”
갑자기 생각난 듯 천성이 물었다.
혹시라도 감숙의 열쇠마저 놓친다면 결국 놈들이 유물을 차지하지 못하도록 제지해야 했다.
그동안 복희는 유물의 위치에 대해서는 한 번도 이야기하지 않았다.
“아, 그러고 보니 두 가지 촉매도 필요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것들의 위치는 어디입니까?”
동시에 복희가 처음 열쇠에 대해 이야기할 때 분명 두 개의 촉매와 다섯 개의 열쇠가 필요하다 들었던 것이 생각났다.
순간, 복희가 눈을 빛내며 입을 열었다.
“일단 촉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그대에겐 필요 없는 물건들이네. 촉매의 역할은 다섯 열쇠가 기능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네. 오행의 열쇠는 무극(無極), 즉 태초의 혼돈 상태에서만 작동하도록 되어 있지. 하지만 이미 조화를 이룬 이 행성에서는 태초의 혼돈이 존재할 수가 없네. 해서 열쇠를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극양(極陽)과 극음(極陰)의 두 촉매를 섞어 그와 유사한 상태를 인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네. 어떤 물건이든지 극음과 극양의 성질을 지닌 것이라면 그 역할을 수행할 수 있지. 예를 들자면, 극음의 성질을 지닌 물건 중 하나가 바로 빙정이지. 극양의 성질을 지닌 것은 화정. 또한 마교의 성화령도 극양의 성질을 지닌 신물이지. 하지만 그대에겐 모두 필요 없는 물건들이네.”
[태초의 파편 때문이군!]
“아!”
무숙의 말에 천성은 무언가 깨달은 듯 탄성을 토해 냈다.
“그렇다네, 그대의 몸에는 태초의 파편이 있지. 그것은 그야말로 태초의 혼돈과 가장 닮은, 아니, ‘태초의 혼돈’ 그 자체라 할 수 있지. 자네의 육신 또한 태초의 파편으로 인해 구성되었으니, 그 성질을 이어받았다 볼 수 있네. 영력 역시 궁극적으로 혼돈의 성질을 가지고 있네. 하지만 치우 일족이나 신농 일족이 쓰는 불완전한 영력은 한쪽에 편중되어 있지. 한마디로 순수하질 못해.”
결국 천성에게는 따로 촉매가 필요 없다는 이야기였다.
다섯 열쇠만 있으면 비동의 문을 열 수 있는 것이다.
“그리고 유물의 위치는 섬서 서안…….”
잠시 뜸을 들인 복희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바로 진시황릉 지하라네.”
전혀 예상치 못한 비동의 위치에 천성의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시황릉이라니…….’
진시황릉은 그 규모만 해도 작은 산 하나 크기에 달했다.
수많은 도굴꾼들이 도굴을 시도했고, 그 유명한 촉나라의 항우마저 며칠에 걸쳐 부장품들을 약탈했다는 일설이 전해지나 아직까지도 그 진정한 모습은 밝혀지지 않은 곳.
“유물의 위치는 세 종족 모두 이미 알고 있다네. 단지 그 입구가 어디에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천률음보를 풀어야만이 그 입구를 알 수 있도록 해 놓았네. 거기다 열쇠가 없으면 입구를 열 수도 없네. 유물이 위치한 비동은 지하로 백 장이 넘는 깊은 곳이지. 인간의 힘으로 그곳까지 도달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오직 열쇠만이 그곳으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라네.”
무려 백 장의 깊이.
감히 도굴을 시도할 수조차 없는 깊이였다.
“사실 진시황릉은 비동을 은폐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네. 헌원 일족이 시황을 왕으로 세워 중원을 통일했을 때 일반 백성들에게 유물의 위치를 숨기기 위해 그 위에 황릉을 지은 것이지.”
계속되는 믿기 힘든 이야기들에 천성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진시황의 뒤에 헌원 일족이 있었다니, 참으로 놀라운 사실이었다.
“알다시피 내가 헌원 일족에게 가한 금제로 인해 세상의 전면에 나서지 못하니, 암암리에 뒤에서 음모를 획책할 수밖에 없던 것이지.”
이어 복희는 천성에게 입구의 위치와 열쇠의 사용법을 알려 주었다.
“그리고 입구를 연다 해서 모든 게 끝나는 것이 아니라네. 비동 안에 장치된 수많은 기관과 함정들을 통과해야 하지. 물론 그 함정들과 기관은 인세(人世)에 보기 드문 신묘한 것들이지. 치우 일족이나 헌원 일족에게는 만만치 않은 장애물이 될 것이야. 하지만 열쇠의 힘을 모두 얻은 그대라면 어렵긴 해도 통과할 수 있을 것이네. 또 궁금한 것은 없나?”
설명을 마친 복희가 담담한 표정으로 물었다.
“네. 일단 감숙의 열쇠를 확보하면 놈들이 비동에 들어갈 수 없겠군요.”
복희의 말대로라면 열쇠 없이 비동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렇게만 된다면 놈들에게 큰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다.
“뭐 그것은 그대의 개인적인 문제이니 뜻대로 하게. 더 이상 질문이 없다면 이제 열쇠의 힘을 흡수하도록 하지.”
후우우우웅!
복희가 사라지고 열쇠의 기운이 천성의 백회혈로 쏟아져 들어왔다.
하지만 이미 두 번씩이나 경험한 상황이기에 천성은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목기를 받아들였다.
몸 구석구석을 움직인 목기가 미간으로 모인 순간 다시 한 번 영안이 깨져 나갔다.
쩌어어어엉!
밝은 빛이 터져 나오며 영안이 재구성되었다.
크기가 전보다 두 배는 늘어나 있었다.
하지만 아직 핵이 회전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 세 번째 단계에 이른 것 같지는 않았다.
기문 역시 크기가 상당히 커져 있었고, 빨아들이는 기운의 양 역시 두 배 이상 증가한 듯했다.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하지 못한 것은 아쉽지만, 놀라운 진전이야!]
무숙이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이 정도면 세 번째 단계도 머지않았다. 아마도 다음 열쇠나 그다음 열쇠를 획득하면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할 수 있을 거야. 그렇게만 돼도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놈들에게 쉽게 당하지는 않게 돼.]
무숙이 전에 말하기를, 삼 단계를 넘어서면 더 이상 정체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암살자들과도 충분히 상대할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정체를 밝히는 것은 매우 위험한 일이었다.
치우 일족이 벌인 대연문 사태나 철혈문이 공격당한 전례를 보았을 때, 천성의 주변 사람들이 표적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런 생각과 함께 천성은 기문을 열어 자연지기를 빨아들였다.
위이이이잉!
기문을 통해 들어온 자연지기가 영력으로 변환되며 온몸을 가득 채웠다.
‘확실히 받아들이는 기운의 양이 늘었군요!’
우우우우웅!
우두두둑!
순간, 천성을 중심으로 원형의 기파가 퍼져 나가며 주변의 나무들이 부러져 허공으로 솟아올랐다.
염동력을 사용한 것이다.
[대단하군! 이제 염동력도 본래의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하는구나!]
‘세 번째 단계를 돌파하면 대체 얼마나 더 강해지는 겁니까?’
천성이 스스로의 힘에 놀라 멍한 표정으로 물었다.
[지금 너로서는 상상도 못할 것이다.]
그 후로 이각가량 이것저것 강해진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 본 천성은 곧장 무한으로 향했다.

* * *

용혜란은 날카로운 눈으로 무림맹의 죄수들을 가두는 뇌옥의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곳에 수룡왕, 수귀가 수감되어 있었다.
자결을 하지 못하고 산 채로 잡혔다는 것은 일족의 비밀이 유출될 우려가 있다는 이야기였다.
물론, 수귀가 절대 함부로 비밀을 누설할 이는 아니었으나 모든 일은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야 했다.
또한 용혜란이 그동안 조사해 온 바를 종합해 볼 때 무림맹의 수뇌부와 헌원 일족이 연관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았다.
헌원 일족에게는 상대에게 정보를 토설하게 만드는 괴이한 술법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치우, 헌원, 신농, 세 일족이 세력을 다투던 시기에도 헌원 일족은 사술과 암수에 능했고, 수많은 생체 실험을 통해 상상도 못할 술법들을 만들어 냈다 전해진다.
마교나 밀교에서 행해지는 금혼술과 제혼술도 그 기원은 결국 헌원 일족인 것이다.
그런 만큼 만일 놈들이 수룡왕을 심문한다면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수귀를 죽여야 하나…….’
그의 충심으로 보아 아마도 자결할 기회를 준다면 스스로 목숨을 끊을 것이다.
용혜란으로서는 독단을 가져다주거나 반입되는 음식에 손을 쓰기만 해도 되는 상황이었다.
‘가만!’
순간, 용혜란의 눈이 빛났다.
‘이 기회를 잘 이용한다면 헌원 일족의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야!’
만일 용혜란의 예측대로 무림맹에 헌원 일족의 졸개들이 숨어 있다면 어떻게든 수귀와 접촉하려 할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그를 이용해 놈들의 정체를 밝힐 수 있는 기회를 잡을 수도 있는 것이다.
용혜란은 이것저것 사용 가능한 수단들을 살피며 계획을 세웠다.
그렇게 한참을 생각에 잠겼던 용혜란의 얼굴이 굳었다.
적당한 방법을 떠올린 것이다.
용혜란은 즉시 뇌옥으로 향했다.
일단 수귀를 만나야 했다.
천의단 조장인 그녀가 뇌옥을 출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지만, 수귀를 만나는 것은 쉽지 않았다.
현재 수귀는 특별한 감시를 받고 있었고, 무림맹 수뇌부 외에는 아무도 그를 대면할 수 없었다.
만약 그것이 가능하다 해도 용혜란이 수귀를 만나는 순간 수많은 의심의 눈초리가 그녀에게 따라붙게 될 것이다.
정체를 숨겨야 하는 그녀로서는 가장 피해야 할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면 천상 몰래 잠입하는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용혜란은 무림맹에 침투해서 첩자의 임무를 수행하기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은신과 특수한 잠입술들을 익혔다.
그중 무영환시(無影幻視)는 그림자마저 숨기고 상대의 눈을 현혹시키는 놀라운 술법이었다.
그간 헌원 일족과 무림맹의 연계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사용하며 이미 탁월한 효과를 확인한 터였다.
“후웃―!”
길게 숨을 들이마신 용혜란이 복면을 뒤집어쓰자 순간 그녀의 신형이 유령처럼 사라져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