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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7화)
2장 장로들과의 혈전(4)
만리취를 사용하는 사람은 스스로의 몸에 고(蠱)를 심는다.
고는 시전자의 머릿속으로 들어가 뇌에서 냄새를 담당하는 곳 주변에 자리를 잡는다.
그런 후 만리취가 발동하는 순간, 그 향을 맡고 특수한 물질을 분비하는데, 놀랍게도 그 물질은 시전자에게 만리취의 냄새를 맡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것이다.
용혜란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특이한 향기에 숙소를 나왔다.
‘수룡왕이 만리취를 깨뜨렸구나!’
그것은 곧 수룡왕이 무림맹에 잠입한 헌원 일족 중 하나를 만났다는 뜻이었다.
용혜란은 향기의 방향을 가늠했다.
향기는 뇌옥이 있는 방향에서 느껴지고 있었다.
‘역시 수룡왕이군!’
헌원 일족 역시 아직 뇌옥에 있을 것이 분명했다.
용혜란은 즉시 뇌옥을 향해 몸을 날렸다.
‘응?’
한데 갑자기 향기가 두 개로 갈라졌다.
뇌옥으로부터 떨어져 나온 향기가 움직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연히 움직이는 쪽이 헌원 일족일 것이다.
용혜란은 방향을 바꾸어 헌원 일족이라 예상되는 향기를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상대의 실력이 어느 정도일지 모르는 상황이라 최대한 조심해야 했다.
일단 자신은 현재 천의단 조장 신분이라는 이점이 있었다.
놈의 정체만 확인하면 되니, 자연스럽게 근처를 지나는 척 움직이면 상대가 용혜란의 정체를 의심하지는 않을 것이다.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짙어지는 향기로 보아 상대와의 거리가 점점 좁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영력을 사용할 수 있었다면 벌써 놈의 정체를 알아차렸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었으나, 만일 그랬다면 놈에게 먼저 발각될 위험도 있었다.
아니, 아마도 무림맹에 들어온 순간 발각되었을 것이다.
‘이곳은!’
놈이 움직이는 방향을 확인한 용혜란이 눈을 부릅떴다.
헌원 일족이라 생각되는 자가 향하고 있는 곳은 바로 군사부였기 때문이다.
‘하기야 그동안 정황으로 보아 놈들이 수뇌부 중에 존재할 것이 분명했으니, 그리 놀랄 일도 아니지.’
마음이 급해진 용혜란은 걸음을 빨리했다.
놈이 군사부에 들어서면 더 이상 추격할 수가 없기 때문.
그전에 놈의 정체를 확인해야 했다.
잠시 후, 용혜란의 시야에 다급한 걸음으로 군사부를 향하는 인형의 모습이 잡혔다.
점차 거리가 가까워지며 그자의 모습을 확인한 용혜란의 얼굴이 차갑게 굳었다.
‘제갈휘!’
무림맹의 당대 군사가 바로 헌원 일족의 졸개였던 것이다.
상대의 정체를 확인한 용혜란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자신의 길을 계속 갔다.
여기서 갑자기 걸음을 멈추거나 방향을 바꾼다면 상대가 의심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거리가 점점 멀어져 제갈휘가 군사부 입구로 사라지고 나서야 용혜란은 방향을 돌려 자신의 숙소로 향했다.
드디어 자신이 무림맹에 잠입한 목적을 이룰 수 있었다.
헌원 일족의 정체를 밝힐 결정적 단서를 얻은 것이다.
수룡왕이 만리취를 제갈휘에게 묻혔다는 것은 놈이 직접 수룡왕을 심문했다는 이야기다.
분명 수룡왕에게 헌원 일족의 사술을 사용하려 했을 것이다.
헌원 일족은 예로부터 자신들의 비술들을 혈족 외의 이들에게 쉽게 전수하지 않았다.
그렇다는 것은 놈이 헌원 일족의 직계일 확률이 높다는 의미였다.
‘어서 이 사실은 아버지께 알려야 해!’
용혜란은 숙소로 향하는 발걸음에 속도를 높였다.
3장 감석보의 결혼(1)
신강 화염산에 들러 마지막 열쇠의 힘을 얻은 천성은 곧장 천룡이 있는 소화산으로 향했다.
화염산의 수호자는 이미 치우 일족에게 목숨을 잃은 상태였다.
그곳에는 오행 중 흙의 기운을 가진 열쇠가 있었고, 모든 기운을 흡수했지만 여전히 세 번째 단계는 돌파하지 못했다.
그저 염동력의 위력이 이전보다 조금 강해진 것이 전부였다.
다소 아쉬움은 있었으나, 지금만으로도 충분한 힘을 가진 천성이었기에 크게 개의치는 않았다.
하지만 무숙은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자들에 대한 걱정으로 세 번째 단계를 이루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했다.
아직 시간에 여유가 있었기에 서두르지 않은 관계로 소화산에 도착한 것은 무림맹을 출발한 지 열흘 정도 지난 후였다.
아무래도 너무 빨리 도착하게 되면 사람들의 의심을 살 염려가 있기 때문에 속도를 조절한 것이다.
한데 자신이 삼선들이 머무는 곳의 위치를 모른다는 결정적인 사실이 그제야 생각났다.
‘이런! 어떻게 찾지?’
삼선은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길 싫어해서 소화산에 있다는 것만 알려져 있을 뿐, 정확히 그들이 있는 곳이 어디인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기에 누군가에게 물어서 찾을 수도 없었다.
‘영안을 사용해야 하나?’
하지만 자신이 삼선의 위치를 찾는다 해도 문제였다.
어떻게 천성이 그들을 찾은 것인지 의심받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것참, 그렇다고 여기까지 와서 형도 못 만나 보고 그냥 무림맹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때, 천성의 머릿속에 삼선 중 한 분이 가족과 문도들을 안위를 위해 철혈문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이 기억났다.
‘아! 이왕 이렇게 된 거, 아버지와 식구들도 뵐 겸 철혈문에 들러야겠구나!’
결심을 내린 천성은 즉시 철혈문으로 향했다.
식구들을 만날 생각을 하니 가슴이 몹시 들떴다.
아버지와 어머니도 그간 걱정이 많았을 것이다.
서두른 끝에 한 시진도 안 되어 천성은 철혈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물론 낮 시간임에도 과감하게 하늘을 날아온 덕분이었다.
어차피 천성을 발견한 자가 있다 해도 새 한 마리가 날아가고 있다 여겼을 것이다.
일단 천성은 평량 인근에서 신형을 멈추고 그곳에서부터 철혈문까지는 영력을 쓰지 않고 움직이기로 했다.
아무래도 철혈문에는 감시의 눈길이 있을 확률이 높았고, 현재 철혈문에 있는 검치 역시 삼선 중 가장 무공이 뛰어난 고수였기에 천성의 움직임을 들킬 염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엇! 천성이 아니냐!”
천성이 나타나자 철혈문 입구를 지키던 두 명의 문도가 놀라 소리쳤다.
“형님들!”
반가운 얼굴을 본 천성의 걸음이 빨라졌다.
두 무사는 철혈문의 정식 문도가 된 지 삼 년이 넘은, 제법 고참 축에 속하는 이들이었다.
천성과 안 지도 벌써 이 년이 넘은 것이다.
그들을 보니 죽은 곡용천이 떠올라 마음 한 켠이 아려왔다.
“이야, 말라깽이 꼬맹이가 몰라보게 늠름해졌구나!”
“이놈아! 무림맹 들어가서 출세했으니 한턱 내거라!”
두 문도가 반가움에 앞을 다투어 한마디씩 했다.
“하하하! 출세는요. 아직 말단에 불과한데요. 그간 문파에는 별일 없었지요?”
“아, 내 정신 좀 보게. 일단 문주님께 인사드려야지! 어서 들어가 보거라!”
두 사람을 뒤로한 채 천성은 안채로 향했다.
마침 집무실에는 아버지 궁혁도도 함께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누구야! 천성이 아니냐!”
궁혁제와 궁혁도가 갑작스런 천성의 등장에 놀라 벌떡 일어나 맞이했다.
사실 두 사람이 이토록 놀라는 것도 당연했다.
철혈문을 방문하는 것은 계획에 없던 일인지라 천성이 미처 알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간 강녕하셨는지요.”
천성은 궁혁제에게 먼저 인사를 한 후 아버지 궁혁도와 혜후의 기쁨을 나눴다.
그간 서신을 수차례 주고받기는 했으나, 아무래도 자세한 서로의 상황을 알기엔 모자람이 있었다.
천성은 그동안 벌어진 여러 가지 일들에 대해 두 사람에게 상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궁혁제와 궁혁도는 놀라기도 기뻐하기도 하며 천성의 이야기에 심취했다.
“철혈문에 별다른 일은 없었지요?”
자신의 이야기를 끝낸 천성이 물었다.
“검치 어르신께서 계시는데 우리야 별일이 있겠느냐. 천룡이 녀석하고 네가 걱정이지.”
궁혁제가 천룡의 부상이 떠올랐는지 씁쓸한 얼굴로 말했다.
“한데 검치 어르신은 어디 계시는지요?”
“안채에 마련된 숙소에 계실 것이다. 찾아뵙고 인사드리도록 해라. 네 어머니한테도 가 보고. 그간 걱정이 말이 아니었다.”
삼선들이 아니었으면 철혈문도 대연문과 같은 참사를 당했을 것이다.
그야말로 문파의 큰 은인인 것이다.
“네.”
천성은 모친을 만나 회포를 푼 후 검치가 머무르고 있는 숙소로 향했다.
인사도 드리고 천룡이 있는 곳의 위치를 묻기 위해서였다.
문 앞에 도착한 천성은 조심스럽게 기척을 드러냈다.
그러자 곧 검치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들어오너라.”
방 안에 들어서니 검치는 눈을 감은 채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었다.
“철혈문의 궁천성이 검치 어르신께 인사드립니다.”
검치가 흰자위만 있는 눈을 들어 천성을 바라보았다.
마치 눈이 보이기라도 하는 듯 한동안 천성을 살피던 검치가 입을 열었다.
“흠, 놀랍군.”
천성이 무슨 영문인지 몰라 엉거주춤 서 있었다.
순간, 검치가 내뿜은 기운이 천성의 온몸을 감쌌다.
“너의 기운이 참으로 자연스럽고 순수하구나. 허허, 이것은 득도한 고승이나 도사들에게서나 볼 수 있는 정심한 기운인데……. 심장의 혈이 막힌 아이가 이토록 정심한 기운을 가지고 있다니. 허허.”
검치의 기운이 천성의 몸 곳곳을 훑고 지나갔다.
“내력은 보잘것없는데, 정말 순수하고 깨끗한 기운이로구나!”
천성은 혹시라도 검치가 자신의 정체를 눈치챈 것은 아닌가 하여 뜨끔했다.
“아쉽구나! 내력만 받쳐 준다면 천하를 떨쳐 울릴 고수가 되었을 것인데…….”
다행히도 검치가 천성의 정체를 알아내지는 못한 듯했다.
검치로서는 천성의 심장 근처 혈이 막힌 탓에 내력을 키우지 못한 것이라 여긴 것이다.
“그래, 어인 일로 나를 찾았느냐?”
기운을 거둔 검치가 그제야 천성에게 물었다.
“실은, 형님이 계신 곳의 위치를 여쭙기 위해 실례를 무릅쓰고 이렇듯 찾아뵈었습니다.”
“흠, 궁금하기도 하겠지. 도연이 최선을 다한다 했으니 잘 있긴 하겠으나, 워낙 부상이 심했으니 말이야.”
검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좋다. 내 위치를 알려 줄 터이니 다녀오도록 해라. 아마 천룡이 녀석도 식구들을 많이 보고 싶어 할 게다.”
검치는 천성에게 삼선의 거처와 진법을 통과하는 방법을 자세히 알려 주었다.
천룡의 위치를 확인한 천성은 검치에게 인사를 드린 후 숙소를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