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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9화)
3장 감석보의 결혼(3)


“아버지. 대연문에 대해 조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
용천광의 집무실을 찾은 용문회가 보고를 올렸다.
“왜 환사가 안 오고 네가 보고를 하는 것이냐?”
용천광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실은 이번 임무를 제가 직접 지휘하고 싶습니다.”
“네가 직접?”
갑작스런 용문회의 말에 용천광이 조금 놀란 얼굴로 물었다.
아들의 실력이 뛰어남은 용천광도 잘 알고 있었다.
하지만 아직 경험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자칫 실수라도 한다면 임무를 망치는 것은 물론 치우 일족의 가장 중요한 자산인 용문회가 다칠 수도 있는 것이다.
용천광으로서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싶지 않았다.
“아버님의 마음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일족을 이끌려면 언제까지나 궁 안에서 자신의 안위만 돌보고 있을 수는 없습니다. 결국 그때가 언제든 저도 이 싸움의 선두에 서야 할 날이 오겠지요. 그것을 두려워한다면 어찌 제가 치우 일족의 다음 대 천황이 될 자격이 있겠습니까?”
“휴…….”
용천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들의 말이 맞았다.
치우 일족은 전사의 일족 싸움을 두려워하고 목숨을 아낀다면 그 누구도 용문회를 자신들의 수장으로 인정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래, 계획은 있느냐?”
“현재 대연문은 화산파와 무림맹의 보호를 받고 있습니다. 거기다 헌원 일족의 감시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여러모로 시선이 집중된 곳이지요. 제대로 공략하려면 절대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파견하여 순식간에 쓸어버리는 방법뿐입니다.”
용천광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그것은 곧 전면전이나 마찬가지 상황이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우리 전력이 헌원 일족에게 노출되는 꼴밖에 안 되지요.”
“그렇다면?”
용문회의 눈이 빛났다.
“마침 이번에 대연문의 소공자가 혼례를 치른다고 합니다. 게다가 그 장소가 대연문이 아닌 선검문입니다.”
“선검문에도 감시의 눈길이 따라붙지 않겠느냐?”
대연문을 보호하기 위해 파견된 이들이 감석보와 식솔들을 선검문에 그냥 보낼 리가 없었다.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혼인 잔치라는 것이 수많은 사람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경사가 아닙니까? 일일이 다 확인하고 출입을 통제한다면 잔치에 찬물을 끼얹게 되겠지요. 아무래도 보호하는 입장에서는 최선을 다하기 힘든 상황입니다.”
“그건 그렇지. 하지만 그곳에는 수많은 무림 고수들이 참석할 것이다. 그럼 임무를 완수하기 더 어려워지는 것이 아니냐?”
“우리가 반드시 큰 소란을 피워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의미심장한 용문회의 말에 용천광이 이해를 못하겠다는 듯 미간을 찌푸렸다.
“많은 사람들을 인질로 삼을 필요가 없다는 말입니다. 저와 몇 명이 움직여 감석보와 그 아내만 납치해 올 것입니다. 잔치가 끝난 후 놈들이 방심하고 있을 때 움직이면 충분히 가능합니다.”
용문회는 자세한 작전 내용을 용천광에게 설명했다.
이야기가 지속될수록 용천광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떠올랐다.
“허허! 역시 문회, 네가 이 아비를 기쁘게 하는구나. 네가 진즉에 출관했다면 열쇠를 찾는 일도 훨씬 수월했을 터인데. 아쉽구나. 좋다, 내 너를 믿고 이번 일을 맡길 테니, 마음껏 움직여 보거라!”
“감사합니다, 아버지!”

* * *

“어르신.”
붉은 머리의 사내.
제갈가의 장로이자 헌원 일족의 총사 제갈중이 태상 가주 제갈승에게 머리를 숙여 인사했다.
제갈승의 담담한 눈빛이 제갈중을 향했다.
“역시 어르신의 생각대로 지하에 비밀 석실이 있었고, 또 다른 열쇠가 존재했습니다.”
“열쇠는 확보했나?”
“산동과 신강의 열쇠는 확보했으나, 나머지는 아직 수호자가 살아 있어 확보하지 못했습니다.”
“무리할 필요는 없지. 그래, 열쇠는?”
“여기…….”
제갈중이 확보한 두 개의 열쇠를 태상 가주 제갈승에게 올렸다.
“흠, 그저 미약한 힘만 느껴질 뿐, 특별한 비밀이 숨겨 있다 여겨지지는 않는군.”
제갈승이 열쇠에 기운을 불어넣어 잠시 살펴보더니 말했다.
“아무래도 흑협인가 하는 놈이 다 빼간 것 같습니다.”
“그렇겠지.”
노인이 열쇠를 이리저리 돌려보며 혹시라도 숨겨진 무언가가 있는지 자세히 살폈다.
“지금 치우 녀석들이 획득한 열쇠의 숫자가 어떻게 되나?”
“확인된 것만 세 개입니다. 나머지 하나는 흑협이라는 애송이가 가져갔습니다.”
“그래?”
제갈승이 눈살을 찌푸렸다.
어찌 되었든 치우 일족이 이미 열쇠를 세 개나 차지했다는 이야기였다.
아니, 천률음보가 사라진 기간을 생각하면 나머지 하나의 열쇠도 확보했을 가능성이 있었다.
만일 흑협이라는 자가 가져간 열쇠를 치우 일족이 빼앗을 수만 있다면 유적을 열고 유물을 차지할 수 있는 것이다.
아무리 흑협이라는 자가 실력이 뛰어나다 하여도 혼자 치우 일족 전부를 상대할 수는 없었다.
놈들이 마음먹고 덤벼든다면 열쇠를 빼앗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는 것이다.
“놈들에게 이대로 유물을 내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당연한 이야기였다.
치우 일족의 손에 유물이 들어간다면 헌원 일족에게 미래는 없다.
놈들은 천률음보와 열쇠를 가졌고, 유물의 입구도 알고 있을 것이다.
헌원 일족 또한 수천 년의 세월 동안 유물을 얻기 위해 수없이 많은 노력을 했다.
항우를 포함해 몇 명의 황제들을 부추겨 도굴을 시도해 보기도 했고, 직접 자신들이 비동을 파고 들어가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비동의 진정한 입구는 찾아낼 수 없었고, 고작해야 진시황릉의 부장품을 터는 것이 전부였다.
물론, 무작정 땅을 파고 들어가는 시도도 해 보았다.
아쉽게도 아무리 파고 들어가도 비동을 찾을 수는 없었다.
‘대체 그 깊이가 얼마나 깊기에…….’
결국 진정한 비동의 입구는 천률음보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흐음…….”
제갈승이 미간을 찌푸리며 생각에 잠겼다.
진시황릉 전체를 포위하고 출입을 통제한다면 놈들의 움직임을 알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작은 산 크기의 진시황릉을 포위하기 위해서는 수천 명이 넘는 인원이 동원되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조정이나 무림맹에서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진시황릉은 나라에서 보호를 하는 곳이었기에 특정한 세력이 임의로 통제한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응? 무림맹?’
갑자기 무언가가 생각난 듯 제갈승의 안색이 밝아졌다.
“후후후, 당장 전 무림에 유물의 위치를 소문내도록 해라! 아니, 아니, 우선 마련에 먼저 유물의 위치를 알려라! 그 후에 어느 정도 시간을 두고 소문을 퍼뜨려라!”
“저, 정말이십니까?”
제갈중이 깜짝 놀라 되물었다.
강호에 유물의 위치가 알려지게 되면 수많은 사람들이 진시황릉으로 모일 것이다.
게다가 마련에도 알리다니, 그렇게 되면 그 주변은 정파인들과 마인들의 다툼으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될 것이 분명했다.
그 와중에 조용히 유물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아!”
그제야 눈치를 챈 제갈중이 탄성을 터뜨렸다.
“우리가 곤란하다면 치우 놈들도 곤란할 테지. 함부로 움직이기가 쉽지 않을 게야. 게다가 군중들 사이에 우리 사람들을 섞어 놓으면 눈에 띄지 않고 놈들을 감시할 수 있을 터!”
“하지만 그렇게 되면 자칫 큰 참사가 일어날 수도 있습니다.”
제갈중이 불안한 얼굴로 말했다.
유적의 입구가 열리는 순간, 유물을 먼저 차지하려는 이들의 다툼으로 순식간에 그곳은 지옥도로 변할 것이다.
치우 일족이 그렇다고 비동에 들어가는 것을 포기할 리는 없으니, 결국 수많은 사상자가 발생할 것이 분명했다.
“대계를 위해서는 희생이 필요한 법! 일족이 다시 세상 위에 설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수는 없다! 고작 어리석은 몇 천 명의 목숨이 어찌 일족의 왕좌를 다시 찾는 것과 비교가 되겠느냐! 하하하하!”
제갈승이 만족한 듯 호쾌한 웃음을 터뜨렸다.

* * *

경사를 맞은 선검문은 각지에서 몰려든 축하객들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거렸다.
천의단 일행이 선검문에 도착한 것은 혼인식 하루 전이었다.
모용단천과 청명이 문주인 호연백에게 인사하러 가고 나머지 대원들에게는 자유 시간이 주어졌다.
아직 혼인식 날이 아님에도 잔치는 이미 시작되어 있었다.
애써 찾은 고마운 손님들이 무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마당에는 잔치상이 차려져 음식과 술들이 수시로 제공되고 있었고, 여기저기 오랜만에 만난 이들이 회포를 풀며 잔을 부딪치고 있었다.
마침 선검문에는 반가운 얼굴들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바로 천룡과 철혈문 식구들이었다.
오랜만에 천룡의 모습을 본 단원들은 서문유란의 따가운 눈총을 느끼기 전까지 천룡을 둘러싸고 놓아주질 않았다.
“성이 왔구나! 하하하!”
그때, 천룡과 함께 자리하고 있던 궁혁도가 천성을 발견하고는 문도들과 함께 다가왔다.
선검문의 경사에 당연히 철혈문이 빠질 수야 없었다.
흑암문과의 싸움 이후로 문주인 호연백과 선검문 문도가 철혈문을 대하는 태도도 백팔십도 바뀐 상황인지라 철혈문도들의 표정이 당당하고 밝았다.
그들이 위치한 자리도 제법 상석에 속했고, 음식도 푸짐하게 차려져 있었다.
“어머! 안녕하세요, 아버님!”
그때, 모용혜가 얼른 달려 나와 궁혁도에게 인사했다.
궁혁도와 문도들이 놀란 표정으로 모용혜를 바라보았다.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아름다운 아가씨가 궁혁도에게 아버님이라 부르니 어안이 벙벙한 것이다.
“성아, 이 처자는 혹시?”
궁혁도가 입이 찢어져라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으며 눈짓을 했다.
“아, 아니, 오해 마세요. 저랑 친한 친구예요!”
“호호호! 아버님, 이 사람이 좀 부끄럼을 많이 타니, 이해하세요. 저는 모용세가의 모용혜라 해요. 이미 저희 두 사람은 뗄래야 뗄 수 없는 사이랍니다. 진즉에 인사를 드렸어야 하는데 이제야 아버님을 뵙게 되어 너무 죄송해요.”
갑작스런 모용혜의 행동에 천성의 얼굴이 벌게졌다.
“너, 너, 갑자기 왜 이래?”
“어머…… 벌써 사랑이 식은 건가요? 흐흑!”
모용혜가 금방이라도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슬픈 눈으로 천성을 바라보았다.
“어허, 사내가 여인을 울려서야 되나! 이놈, 굴러온 복을 제 발로 차는 것도 분수가 있지! 어찌 이런 참한 처자를!”
궁혁도가 짐짓 근엄한 표정으로 천성을 나무랬다.
“하하하! 모용 소저, 천성이 놈은 걱정 말게. 내가 따끔하게 혼을 낼 테니! 이리 와서 우리 식구들과 인사나 하지.”
천성은 식은땀을 흘리며 모용혜를 노려보았다.
‘뒷감당을 어떻게 하라고 이런 장난을!’
모용혜는 그러거나 말거나 철혈문 식구들과 어울려 웃고 떠들며 특유의 친화력을 발휘했다.
“저, 실은 저도 소개시켜 드릴 사람이 있습니다.”
그때 천룡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서문유란을 소개했다.
“제가 마음을 주고 있는 정인입니다.”
“서문유란이라 합니다.”
서문유란이 붉게 상기된 얼굴로 궁혁제와 문도들에게 인사했다.
“이거, 이거, 겹경사가 아닌가! 하하하하!”
그 모습에 천성이 머리를 잡으며 한숨을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