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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0화)
3장 감석보의 결혼(4)


“야! 갑자기 왜 그래? 식구들이 진짜인 줄 알잖아!”
천성이 모용혜를 한쪽으로 끌고 가 이야기했다.
“나 진짠데?”
“장난하지 말구!”
“장난 아니야. 나 이제 너 좋아하기로 마음먹었는데?”
모용혜는 커다란 눈을 끔뻑거리며 태연하게 말했다.
너무도 놀란 천성은 입만 벌린 채 순간 할 말을 잃었다.
이 아가씨가 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것인가.
분명 자신을 골탕 먹이려는 모용혜의 음모가 분명했다.
“물론 넌 너무 꿈같은 일이라 도저히 현실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거야. 호호호호!”
의기양양하게 손가락을 까딱거리며 말하는 모용혜의 모습에 천성은 저도 모르게 식은땀을 흘렸다.
“뭐야? 표정이 왜 그래? 설마 내가 싫다는 거야?”
모용혜가 두 눈에 쌍심지를 켜며 빽! 소리쳤다.
“아, 아니, 그게 아니라…….”
알 수 없이 엄습하는 공포에 찔끔 뒤로 물러선 천성을 보며 모용혜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그럼. 이 누님이야말로 성이 너에게는 굴러온 복덩이라 할 수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아니면 누가 너처럼 보잘것없는 청춘을 구제해 주겠니? 대의를 위해 이 한 몸 희생하기로 큰맘 먹은 거니 고맙게 생각하라구. 호호호호!”
순간, 천성은 머리가 아파 옴을 느꼈다.
도무지 뭐가 어떻게 되고 있는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과연 모용혜가 진심으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감이 오지 않았다.
“둘이 뭐하냐! 벌써부터 이 아비보다 색시를 먼저 챙기는 거냐! 얼른 와서 술이나 한잔 받거라!”
“어머, 아버님. 죄송해요!”
궁혁도의 장난기 어린 핀잔에 모용혜는 재빨리 일행 곁으로 도망쳤다.
‘이게 대체…….’
그야말로 폭풍이라도 휩쓸고 지나간 기분이었다.
[모용 소저면 나도 찬성이다. 성격도 밝고, 얼굴도 예쁘고. 어디 저만한 신부감이 있겠냐?]
무숙의 말이 멍하던 천성의 의식을 현실로 가져왔다.
‘그, 글쎄요? 보나마나 장난일 거예요…….’
사실 천성도 모용혜가 싫지는 않았다.
그간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끔은 여인으로 느껴질 때도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어찌 보면 천성에게는 너무도 과분한 상대라 할 수 있었다.
모용세가라는 명문가의 자제이며, 무림사봉 중 한 명으로 꼽힐 정도로 출중한 미모에, 천방지축이긴 하나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는 밝은 성품까지.
평범한 자신과는 어느 하나 비교가 안 됐다.
해서 그녀와 이성으로 엮인다는 것은 감히 생각도 못해 봤다는 것이 맞을 것이다.
[네가 어때서? 정체를 감춰서 그렇지, 실제 너의 모습을 안다면 모용 낭자가 땡 잡은 거지!]
무숙이 핏대를 올리며 천성을 두둔했다.
하지만 영력이 삼단계에 이르지 못한 이상 아직 정체를 밝힐 수는 없었다.
삼단계에 이른다 해도 자신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다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정체를 숨기는 것이 나았다.
‘정말일까?’
씁쓸한 표정으로 천성이 입맛을 다셨다.
혹시 모용혜의 말이 사실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괜히 가슴이 두근거렸다.
‘에이, 쓸데없는 생각 말자. 이러다 나중에 크게 뒤통수 맞지.’
고개를 한 번 크게 휘저은 천성은 문도들이 있는 곳을 향했다.

* * *

선검문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객잔.
제법 규모가 큰 방 안에 용문회를 비롯한 치우 일족이 모여 있었다.
“그래, 선검문의 상황은?”
용문회가 시립해 있는 환사에게 물었다.
“이미 잔치는 시작되었습니다. 현재 조심해야 할 전력은 공동파 일행과 무림맹 천의단, 그리고 화산파의 축하 사절들입니다. 그 외에는 특별히 신경 쓸 만한 인물이 보이진 않습니다.”
“헌원 일족의 움직임은?”
“아직 파악된 것은 없습니다만, 이번 무림맹 일행 중 제갈휘의 조카가 있습니다.”
“아, 그 사봉 중 하나라는?”
“그렇습니다.”
순간, 용문회의 눈동자가 깊어졌다.
일이라는 것은 항상 최악의 경우를 대비해야 했다.
그러니 제갈가가 헌원 일족과 연관되어 있다 여기고 계획을 세우는 편이 안전했다.
“일단 나와 환사, 섬응은 축하객으로 가장해 내일 혼례 때 선검문에 잠입한다. 명을 내릴 때까지는 영력을 숨기고 손님들 틈에 섞인다. 묘군과 호군께서는 대기하고 계시다가 손님들의 숙소를 쳐 주십시오. 그에 맞춰 안쪽에서 우리가 움직일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화웅과 지인은 도주로를 확보한다. 혹시라도 흑의인이 나타날 확률이 있으니, 그에 대비해 만전을 기하도록!”
용문회가 침착하게 각자의 임무를 배정했다.
이번 임무를 위해 장로 두 명과 팔신 중 세 명이 함께하고, 오십여 명의 비영들까지 동원했다.
실패할래야 실패할 수 없는 임무였다.
그럼에도 용문회는 결코 방심하지 않고 철저히 모든 계획을 꼼꼼히 점검했다.
장로들과 팔신들은 그러한 용문회의 모습에 감탄했다.
아직 어리고 경험이 일천하여 걱정했던 것이 기우였음을 느낀 것이다.
“그리고 헌원 일족의 동향을 놓쳐서는 안 된다. 비영들을 최대한 동원해서 주변에 이상한 움직임이 없는지 철저히 살피도록!”
“존명!”

* * *

혼례는 수많은 사람들의 축복 속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호연백의 배려로 천성, 천룡을 비롯한 철혈문도들은 무림맹 사절들과 함께 상석에서 혼례를 지켜볼 수 있었다.
호천덕도 손녀의 혼사를 기뻐하며 연신 미소를 지었다.
원래는 육례(六禮) 중 친영(親迎)의 절차에 따라 신랑이 예물을 들고 방문해 신부를 시가로 데려가야 했으나, 대연문의 사정상 선검문에서 혼례를 치르게 되었기에 예물만 바치는 것으로 간소화되었다.
예식 도중 갑자기 감석보가 신부를 얼싸안고 마당을 한 바퀴 돌다 옷을 밟고 넘어져서 축하객들의 웃음보를 터뜨렸다.
화설련과 화산파 사형제들이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감석보를 놀렸다.
혼례가 끝나고 곧 잔치가 이어졌다.
그동안에도 신랑 신부는 사람들에게 붙잡혀 한참을 끌려 다녀야 했다.
감석보와 호유설은 여러 어른들과 축하객들에게 인사를 마친 후 첫날밤을 치르기 위해 신방으로 향하고, 축하객들은 각자 숙소로 향하거나 첫날밤을 훔쳐보기 위해 몰래 신방으로 향했다.

감석보와 호유설이 신방에 들어가고 잠시 후.
콰아아앙!
“으악!”
숙소로 돌아온 천성은 갑작스런 폭음과 비명 소리에 함께 머물던 단원들과 함께 급히 방 밖으로 나왔다.
그곳엔 묘군과 호군이 비영들을 이끌고 선검문을 찾은 손님들을 무차별로 공격하고 있었다.
불꽃이 여기저기 작렬하며 건물들을 태웠고, 겁에 질린 사람들은 맨발로 뛰쳐나와 비명을 질러 댔다.
온몸에 불이 붙은 채 바닥을 뒹구는 사람들과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로 장내는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었다.
“웬 놈들이냐! 신성한 혼례식에 이게 무슨 만행이냐!”
그때, 모용단천이 검을 들고 도착했다.
그 뒤로 공동파와 화산파의 고수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우리가 누구인 것이 무엇이 중요하더냐? 너희들은 당장에 목숨을 지킬 생각이나 하거라!”
쉬이이이익!
묘군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수십 개의 바람 칼날이 사람들을 덮쳤다.
“아아악!”
“크악!”
미처 피하지 못하고 사지가 잘린 사람들의 비명 소리와 함께 사방에서 피와 살점이 튀어 올랐다.
“이놈!”
모용단천과 화산, 공동파의 장로들이 묘군과 호군을 향해 달려들었다.
세 사람 다 초절정을 넘어선 고수.
하지만 묘군과 호군의 표정은 너무도 여유로웠다.
화경 고수가 덤벼든다 해도 밀리지 않을 그들이었다.
겨우 세 명의 초절정고수가 상대할 수 있을 리 없는 것이다.
역시나 세 사람은 묘군과 호군의 공격을 피해 내는 데 급급했다.

천성은 즉시 철혈문도들의 상황을 확인했다.
천룡이 함께하고 있었으나 이제 겨우 절정 정도의 무공을 회복했을 뿐이다.
자칫 비영들과 부딪친다면 위험한 상황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세 명의 비영에게 공격을 받고 있는 철혈문의 모습은 위태롭기 그지없었다.
이미 조남철과 일중은 쓰러져 있는 것이, 상당한 부상을 입은 듯했다.
그나마 화염에 대한 피해는 없어 보이는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아마도 철혈문의 숙소가 가장 안쪽에 위치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것저것 생각할 여유가 없는 천성은 당장 흑의인으로 변신하기로 했다.
‘무숙, 부탁해요!’
[알았다! 걱정 말거라!]
당장에 식구들의 안위가 위험한 상황.
정체를 들킨다 해도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최대한 정체를 감추기 위해 천성은 불에 타 연기가 자욱한 건물로 몸을 숨겼다.
이어 천성으로 변신한 무숙이 건물 앞에 나타남과 동시에 전각의 지붕을 뚫고 흑협으로 변신한 천성이 솟구쳐 올랐다.

콰앙!
폭음과 함께 장내에서 난동을 부리던 비영 십여 명이 피 떡이 되어 뒤로 날아갔다.
천성이 날린 스무 발의 기탄이 만들어 낸 결과였다.
철혈문을 공격하던 세 명의 흑의인도 바닥에 널브러진 채 움직이지 않았다.
단 일수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순식간에 싸움이 중단되고 사람들의 시선이 천성에게로 향했다.
“흑협이다!”
동정호에서 이미 한 번 도움을 받은 전력이 있던 천의단원들이 천성을 알아보고 소리쳤다.
“오! 흑협이 도우러 왔다!”
소문으로만 들었던 흑협을 직접 목격하게 된 사람들이 환호성을 터뜨렸다.
흑협에 대한 소문은 그야말로 놀라운 것들뿐이었다.
하늘을 난다든지, 백 자루가 넘는 검을 이기어검으로 조종한다든지, 순간 이동을 한다든지 하는 소문들이었다.
소문은 과장되기 마련인지라 사람들은 믿지 않으면서도 재미 삼아 이야기하기를 즐겼다.
한데 지금 그의 모습이 어떠한가.
바로 소문과 같이 하늘을 날고 있지 않은가!
어두웠던 이들의 얼굴에 희망이 생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