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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1화)
3장 감석보의 결혼(5)


한편, 백담은 갑작스럽게 느껴지는 영력의 파동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자가 어떻게 저곳에서……!’
지붕 위로 솟아오른 흑협을 본 백담의 눈이 커졌다.
분명 외부에서 들어오는 것을 느끼지 못했다.
한데 갑자기 유령처럼 솟아오른 것이다.
그것은 둘 중 하나였다.
첫째, 외부에서부터 영력을 쓰지 않고 조용히 선검문으로 진입해서 불타는 건물까지 간 후에 지붕을 뚫고 솟아오른 경우인데, 이 경우는 도무지 말이 되지 않았다.
이토록 다급한 상황이라면 얼른 영력을 사용해 날아오는 편이 나았다.
굳이 불타는 전각에서 튀어나올 이유가 없는 것이다.
바보가 아닌 이상 복면도 이미 밖에서 착용하고 왔을 테니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 그랬다는 것도 말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남은 가능성은 하나였다.
이곳에 있던 누군가가 흑협으로 변신한 것이다.
즉시 백담이 주변을 살폈다.
혹시 없어진 인물이 있는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백담이 아는 자들 중엔 사라진 자가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군. 분명 손님으로 참여한 이들 중 하나일 텐데.’
백담은 우선 현장에 있는 이들의 얼굴을 모두 머릿속에 저장했다.
나중에 화산파나 공동파 등 자신이 알지 못하는 손님들 중 사라졌던 이들이 있는지 다시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백담의 날카로운 눈길이 사방을 훑었다.

* * *

“후후후, 네놈이 흑협이라는 애송이 놈이구나!”
묘군이 비릿한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목소리에 서린 긴장감을 숨길 수는 없었다.
이미 흑협에게 용군과 마군이 당했다는 사실을 그들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용군과 마군은 장로들 중 가장 강한 이들.
그들이 패했다면 자신들 역시 이기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치우의 개들이구나! 내가 보낸 경고가 너무 약했던 모양이로구나! 겁도 없이 또다시 내 앞에 나타나다니!”
호군이 잔뜩 긴장한 모습으로 묘군의 옆에 섰다.
정면 승부는 필패였다.
하지만 어차피 묘군과 호군의 임무는 이곳에 상대의 전력을 붙잡아 두는 것.
최대한 시간을 끌어 소공자 용문회가 임무를 완수할 시간을 벌어야 했다.
“열쇠를 내놓거라! 그럼 조용히 물러가마!”
묘군의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치우 일족과 복희의 유물에 대한 소문은 이미 강호에 모르는 자가 없었다.
현재에도 수많은 무림인들이 혈안이 되어 유물을 찾고 있었다.
한데 이곳에서 그에 대한 이야기가 흘러나온 것이다.
“흥, 네놈들이 물러간다 해도 내가 곱게 보내 주지 않을 것이다.”
천성이 코웃음을 치며 답했다.
사실 천성에게 두 사람을 잡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물론 네놈이 강하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우리도 쉽게 당해 주진 않을 것이다. 그동안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호군의 화염에서 무사할 수 있을까?”
천성의 눈에 비웃음이 걸렸다.
“너희는 역시 구제불능의 무리로구나!”
순간, 천성의 신형이 사라졌다.
동시에 바람의 칼날이 사방으로 쏘아졌다.
묘군이 천성을 상대하지 않고 사람들을 공격한 것이다.
파파파파파팡!
파공음과 동시에 바람의 칼날들이 튕겨져 날아가고, 흐릿한 잔영과 함께 천성이 다시 제자리에 나타났다.
“놈!”
호군을 공격하려던 천성이 다급히 바람의 칼날을 막아 낸 것이다.
천성의 눈이 분노로 타올랐다.
설마 자신들의 안위를 돌보지 않고 무작정 사람들을 공격할 것이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천성이 사람들이 다치는 것을 신경 쓴다는 사실을 확인한 호군과 묘군은 아예 서로 멀찌감치 떨어져 섰다.
한 사람이 공격당할 때 다른 한 사람이 축하객들을 공격하기 위해서였다.
“치우 일족은 예로부터 힘을 숭상하고 정정당당한 승부를 원하는 전사의 일족이라 들었는데, 이제 보니 교활하고 비겁한 모리배들에 불과하구나!”
천성의 질타에 묘군과 호군의 눈빛이 잠시 흔들렸다.
두 사람 역시 지금의 상황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그들 역시 당당한 치우의 전사로서 목숨을 잃더라도 정당한 대결을 벌이고 싶었다.
하지만 일족을 위해서는 오명과 희생을 감수할 수밖에 없었다.
목숨 따위야 조금도 아깝지 않았지만, 일족의 복수를 이루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비겁하고 잔인해질 수 있는 그들이었다.
그때, 천성의 영안에 갑자기 또 다른 영력의 파동이 잡혔다.
‘저곳은?’
영력이 느껴지는 곳은 바로 감석보와 호유설의 신방이었다.
‘양동작전!’
그제야 천성은 놈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치우 일족은 천성이 대연문과 관계가 있다고 알고 있었다.
그런 만큼 아마도 이번 습격의 진정한 목적은 감석보일 것.
감석보와 호유설을 납치해 열쇠와 교환하려는 계획임이 분명했다.
천성은 갈등했다.
자신이 물러선다면 이곳에 수룡왕에 비해서도 훨씬 뛰어난 실력을 가진 호군과 묘군을 막을 자가 없었다.
감석보도 중요했지만, 이곳에 있는 사람들 역시 중요했다.
이곳엔 천의단 동료들과 철혈문 식구들이 있었다.
자신의 부모와 형제들이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상황인 것이다.
천성도 사람인 이상 감석보보다는 가족이 더 중요할 수밖에 없었다.
[감석보는 무사할 것이다. 놈들이 열쇠와 바꾸기 위해서라도 죽이지는 않을 거야!]
무숙의 말에 천성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렇다.
열쇠와 교환을 하려면 감석보를 살려 둘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그와 달리 이곳에 있는 사람들은 치우 일족에게 아무런 쓸모가 없었다.
당연히 거리낌 없이 죽일 것이다.
천성은 결심을 굳혔다.

* * *

신방에 들어선 감석보는 적당히 오른 술기운을 빌어 천천히 호유설에게 다가갔다.
“부인, 오늘 그대는 무림사봉이 울고 갈 정도로 아름답구려.”
느끼한 감석보의 말에 호유설이 얼굴을 붉혔다.
그 모습이 더없이 사랑스러워 감석보는 침을 한 번 꿀꺽 삼키고는 호유설의 얼굴을 덮은 붉은 천을 벗겼다.
이어 두 사람은 그윽한 눈으로 서로를 바라보며 얼굴을 점점 가까히 가져갔다.
달그락!
그때, 문 쪽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깜짝 놀란 감석보와 호유설이 급히 떨어졌다.
“어허! 이 사람들이! 험험!”
감석보가 연신 헛기침을 해대며 얼른 등잔불을 껐다.
“호호호호!”
“부끄러워하기는!”
바깥쪽에서 여러 사람들의 즐거운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그만 좀 가시오! 나도 좀 사내 구실 좀 해 봅시다!”
“풉!”
감석보의 고함에 호유설이 웃음을 참지 못하고 입을 가린 채 킥킥거렸다.
“자자, 신랑 신부도 피곤할 테니 이제 그만 갑시다!”
선검문의 하인들이 나섰는지 인기척이 조금씩 사라지더니, 결국 모두 돌아가고 조용해졌다.
“험험! 부인, 이제야 우리만의 시간이 왔구려!”
감석보가 다시 호유설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두 사람의 심장 뛰는 소리가 방 안 가득 울리는 듯했다.
“유설…….”
“서방님…….”
두 사람의 입술이 막 마주하려는 순간이었다.
스르륵!
문 쪽에서 다시 미세한 기척이 들려왔다.
“아! 정말!”
화가 난 감석보가 문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누군지 몰라도 두들겨 패서라도 돌려보내야겠다 마음먹은 것이다.
콰앙!
“크윽!”
하지만 막 문을 열려던 감석보가 문짝과 함께 뒤로 튕겨 날아가 침상에 처박혔다.
“꺄아아악!”
호유설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시간이 없다! 혈도를 점해서 그대로 둘 다 데리고 간다!”
감석보가 간신히 몸을 일으키는 순간, 섬응과 환사가 재빨리 두 사람의 혈도를 점했다.
그사이 멀리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묘군과 호군께서도 잘하고 있는 모양이군. 어서 움직인다. 우리가 빨리 벗어나야 묘군과 호군도 달아날 수 있다!”
용문회가 섬응과 환사를 재촉했다.
곧 세 사람의 신형이 묘군과 호군이 있는 곳과 반대쪽 방향으로 사라졌다.

* * *

우선 호군과 묘군을 상대하기로 마음먹은 천성이 기문을 열어 자연지기를 빨아들였다.
후우우우웅!
막대한 자연지기가 영력으로 바뀌며 천성의 온몸을 순식간에 가득 채웠다.
“네놈들은 오늘 이곳을 살아 나갈 생각을 버리거라!”
위이이이잉!
영력의 파동이 사방으로 퍼지며 부서진 건물 조각과 돌 조각, 그리고 주인을 잃은 무기들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염동력을 사용하려는 것이다.
몸을 움직이기에는 놈들의 무차별적인 공격을 막기가 여의치 않기 때문이었다.
“오, 허공섭물!”
여기저기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낀 묘군과 호군 역시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힘을 끌어 올렸다.
동시에 불과 바람의 벽이 회오리치며 두 사람을 감쌌다.
차츰 떠오르는 물체들이 늘어나더니, 종국에는 수백 개에 이르는 사물이 천성의 전면을 가득 채우며 늘어섰다.
“어디 한 번 받아 봐라!”
슈아아아악!
천성이 손을 뻗어 내자 수백 개의 물체와 무기들이 두 갈래로 갈라져 묘군과 호군을 향해 쏘아져 갔다.
콰콰콰콰콰쾅!
물체들이 두 사람의 방어벽에 부딪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허공섭물이 아니라 이, 이기어검이다!”
“사, 사실이었어!”
놀란 사람들이 입을 다물지 못했다.
위력 역시 동정호 때보다 몇 배는 강해진 상황이었다.
동정호 이후 이미 오행 중 세 가지 힘을 더 확보한 천성.
세 번째 단계를 아직 넘어서진 못했지만, 천성의 실력은 그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향상되어 있었다.
모용단천을 비롯 현장의 고수들조차 감히 끼어들 생각도 못하고 멀찍이서 상황을 살필 정도였다.
“크윽! 이대로는 버티기 힘들겠다! 차라리 사람들을 공격해!”
물론, 이 상태에서 화염과 바람의 칼날을 날리게 되면 방어막이 엷어져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죽는 것을 막기 위해 천성도 공격을 멈출 수밖에 없을 것이라 여긴 것이다.
“좋다!”
고함과 동시에 묘군과 호군이 군중들을 향해 공격을 날렸다.
“이런! 우선 사람들을 피신시켜야 합니다!”
천룡이 소리쳤다.
그제야 상황의 위험함을 느낀 사람들이 우왕좌왕하며 장내를 빠져나가기 위해 난리를 쳤다.
“천의단과 화산파, 공동파 고수들은 나와 함께 놈들의 공격을 막읍시다!”
모용단천이 몸을 날리며 쏘아져 오는 바람의 칼날과 화염구들을 쳐 냈다.
하지만 고수들의 숫자에 비해 지켜야 할 사람이 너무도 많았다.
게다가 절정고수들조차 뒤로 밀릴 정도의 위력을 가진 공격들이었다.
화염구는 힘으로 부딪치자 폭발하기까지 했다.
결국 반 이상의 화염구와 바람의 칼날이 사람들을 향해 쏟아졌다.
모용단천의 눈에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안타까움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