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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2화)
3장 감석보의 결혼(6)


파파파파파팡!
그때, 천성이 날린 수십 발의 기탄이 묘군과 호군의 공격을 튕겨 냈다.
놀랍게도 염동력을 사용하는 도중에 기탄을 날린 것이다.
“크윽!”
“으윽!”
동시에 묘군과 호군이 신음을 흘리며 뒤로 밀려났다.
염동력으로 날린 무기와 물체들이 엷어진 방어막을 뚫고 들어간 것이다.
그 틈을 놓칠 천성이 아니었다.
천성은 온몸의 영력을 다리에 집중한 채 가속했다.
묘군과 호군이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천성의 주먹이 호군의 머리를 부수고 있었다.
쾅!
미처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호군의 머리가 터져 나가며 뇌수가 허공으로 흩어졌다.
일체의 자비도 없는 잔인한 손속이었다.
가족의 목숨을 볼모로 삼은 놈들에게 참을 수 없을 정도로 분노했기 때문이다.
감석보와 호유설을 구하지 못했다는 죄책감 역시 천성의 손속을 더욱 잔인하게 만들었다.
다급히 뒤로 도망치는 묘군의 모습이 보였다.
더 이상 천성을 막기에 무리라고 여긴 것이다.
묘군 역시 음속으로 움직일 수 있었기에 순식간에 선검문을 벗어났다.
순간, 천성의 신형이 길게 늘어나더니, 어느새 묘군의 뒤로 따라붙었다.
“이런!”
놀란 묘군이 혼신의 힘을 다해 도망쳤으나, 음속의 몇 배에 달하는 속도로 움직이는 천성에게 금방 따라잡히고 말았다.
“그래도 살고는 싶은 모양이구나!”
천성이 이를 갈며 기탄을 날렸다.
퍼퍼퍼퍼펑!
등에 기탄을 적중당한 묘군이 속도를 이기지 못하고 수십 장을 튕겨 날아가 땅에 처박혔다.
달아나는 데 모든 영력을 집중시킨 나머지 바람의 방어벽을 펼치지도 못한 것이다.
“으으…….”
묘군이 꿈틀거리며 몸을 일으키려 애썼다.
영안을 열어 주위를 살핀 천성이 천천히 묘군에게 다가갔다.
근처에 영력을 사용하는 듯한 자들의 기척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미 감석보를 데려간 놈들의 흔적은 찾을 수가 없었다.
“멈춰라!”
그때, 오른편 숲 속에서 호랑이 가면을 쓴 사내, 지인이 나타났다.
“이쯤에서 물러가거라! 아니면 인질의 목숨은 없다!”
지인이 묘군의 앞을 막아서며 말했다.
자연 천성의 걸음이 멈추었다.
감석보와 호유설이 있는 위치를 모르는 이상 함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인질이 한 명이라면 놈들도 멋대로 목숨을 빼앗지 못할 테지지만, 두 명인 이상 본보기로 죽일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젠장!’
천성은 속으로 욕지기를 토해 냈다.
“닷새 후 정오까지 첫 번째 열쇠를 찾은 화산의 비동으로 열쇠를 가져오거라! 열쇠를 확인하면 하루 뒤에 인질을 안전하게 돌려보내 줄 것이다.”
“허, 나보고 하루 뒤에 풀어준다는 말을 믿으란 말이냐?”
어이가 없는 조건이었다.
열쇠를 줬는데 인질을 풀어주지 않으면 어떻게 하란 말인가.
그동안 저지른 일들로 보아 치우 일족은 충분히 약속을 어기고도 남을 놈들이었다.
“어차피 칼자루를 쥔 건 우리다. 믿거나 말거나 네 자유지. 하지만 한 가지만 말한다면, 우리가 비록 인질이나 잡는 졸렬한 행동을 일삼고 있지만, 결코 약속을 어기진 않는다. 그것은 우리 치우 일족의 마지막 자존심이다!”
천성은 헛웃음이 나오는 것을 간신히 삼켰다.
자존심을 운운하는 놈들의 작태가 너무도 가소로웠기 때문이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에 지인의 면상을 부숴 버리고 싶었으나, 감석보와 호유설을 생각하며 마음을 가라앉혔다.
“좋다, 일단 믿도록 하지. 만에 하나라도 너희 놈들이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결단코 후회하게 될 것이다.”
지인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묘군을 어깨에 둘러멘 채 떠나갔다.
선검문으로 돌아온 천성은 혹시 모를 감시를 생각해 영력을 죽이고 조심스럽게 무숙과 교대했다.
사방에 시선이 많았지만 어수선한 분위기와 여기저기 부서진 건물들이 많아 사람들의 눈을 피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았다.
선검문은 순식간에 잔치집에서 초상집으로 바뀌어 있었다.
사위와 딸이 납치되어 생사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고, 저녁때까지만 해도 즐겁게 웃고 떠들던 이들이 수십 명씩이나 목숨을 잃었다.
이곳저곳에 가족과 지인의 죽음에 오열하는 사람들로 넘쳐 났다.
무인이 아닌 사람들도 상당수 있었기에 그 피해가 더욱 컸다.
그나마 흑협이 나타나 돕지 않았다면 몰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천성은 선검문에 돌아오자마자 우선 철혈문도들의 안위를 확인했다.
조남철과 일중을 포함해 네 사람이 중상을 입었으나 다행히도 목숨은 위험하지 않았다.
천성은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모용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천성은 갑자기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설마!”
모용혜는 이미 절정을 넘어선 고수였기에 제 한 몸은 충분히 지키리라 여겨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동안 오히려 천성을 지켜 주던 그녀의 씩씩한 모습을 생각해 보면 어디에 있더라도 안심할 수 있다 여긴 것이다.
하지만 오늘 선검문을 습격한 묘군과 호군의 실력은 절정의 무사라도 함부로 막아 낼 수 없는 것이었다.
불안한 느낌에 천성은 급히 영안을 열었다.
하지만 숙소 근처에서는 모용혜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범위를 차츰 넓혀 가며 천성은 모용혜를 찾았다.
“혹시 모용 소저를 못 보셨나요?”
천성이 천룡과 함께 있던 서문유란에게 물었으나 두 사람도 모용혜의 행적을 알지 못했다.
영안의 범위가 넓어지고 선검문 전체가 천성의 머릿속에 들어왔다.
하지만 의식을 집중하려 할수록 모용혜의 안위가 걱정되어 상이 흔들렸다.
[당황하지 말고 침착하게 정신을 집중해 보거라.]
“후…….”
무숙의 조언에 따라 천성은 길게 심호흡을 한 후 조용히 선검문 전체를 관조하기 시작했다.
어둡고 무거운 기운이 장원에 가득 차 있었다.
천성은 모용혜의 기운을 떠올렸다.
그런 후, 떠올린 기운과 선검문 전체를 움직이는 기운들을 비교했다.
“찾았다!”
그곳은 감석보와 호유설의 신방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다.
모용혜는 복부에서 피를 흘리며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이런!”
마음이 급한 천성은 즉시 모용혜를 향해 신형을 날렸다.



4장 헌원의 계략(1)


“왜 이곳에!”
현장에 도착한 천성은 바로 즉시 모용혜의 상태를 확인했다.
심장은 뛰고 있으나 의식이 없는 상태.
[다행히 목숨에 지장은 없으나 출혈이 심하다! 얼른 의당으로 옮기거라!]
서둘러 혈도를 짚어 지혈을 한 천성이 모용혜를 안고 의당으로 향했다.
의당까지 이르는 길이 마치 천 리, 만 리라도 되는 듯 멀게 느껴졌다.
하마터면 영력을 사용할 뻔했을 정도로 마음이 답답하고 조급했다.
‘혜의 존재가 이토록 컸던가?’
자신이 그동안 모용혜에 얼마나 의지하고 소중하게 생각했는지가 새삼스럽게 다가왔다.
“의원님, 급한 환자가 있습니다!”
의당에 도착한 천성이 숨넘어갈 듯 소리쳤다.
의원들이 급히 모용혜를 침상에 누이고 상처를 살폈다.
그녀는 복부를 검으로 관통당한 상태였다.
[아마도 감석보를 납치한 놈들과 만난 모양이로구나.]
천성은 안절부절못하며 모용혜의 치료를 지켜보았다.
“다행히 장기가 상하진 않았소. 아마도 열흘 정도 정양하면 괜찮아질 것이오.”
의원의 말에 그제야 긴장이 풀린 천성이 파김치처럼 늘어졌다.
“으음…….”
그때, 모용혜가 신음을 내며 정신을 차렸다.
“괘, 괜찮아?”
천성이 얼른 모용혜의 손을 잡고 물었다.
“으…… 여, 여기가 어디…….”
그러나 아직 정신이 흐릿한지 모용혜는 힘없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너 신방 가는 길 쪽에 쓰러져 있었어.”
모용혜가 눈살을 찌푸리고는 몸을 일으키려다 신음성을 흘렸다.
검에 찔린 복부의 통증 때문이었다.
“으음, 볼 수 있었는데…….”
아직 정신이 혼미해 눈살을 찌푸리며 헛소리를 내뱉던 모용혜가 갑자기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세 놈이 갑자기 검을…… 뱀 가면…….”
뱀 가면이라면 유가장의 원흉이었다.
‘놈!’
결국 치우 놈들의 소행임이 확실해진 것이다.
“우웅, 너무 피곤해…….”
모용혜가 다시 눈을 감고 잠들었다.
아마도 피를 많이 흘린 탓인 듯했다.
그래도 심각한 상처가 아니어서 다행이었다.
천성은 다시 한 번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봐, 할 이야기가 있는데 나 좀 잠깐 볼 수 있을까?”
익숙하지 않은 목소리에 천성이 고개를 돌리니, 놀랍게도 그곳에는 백담이 미소를 짓고 서 있었다.
백담과는 같은 조인지라 얼굴은 알고 지냈지만, 그동안 따로 대화를 나누거나 하지는 못했다.
원체 백담이 주변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않고 항상 혼자 행동했기 때문이다.
한데 그가 갑자기 무슨 이유로 말을 걸어온 것인지 천성은 영문을 알 수가 없었다.
천성은 모용혜를 한 번 확인하고는 백담을 따라 밖으로 나갔다.
아직 습격의 여파가 가시지 않은 선검문은 여전히 뒤숭숭한 분위기였다.
백담은 인적이 드문 곳으로 천성을 이끌었다.
‘대체 무슨 일이지?’
의아한 표정으로 뒤따르고 있던 천성을 보며 한 번 씨익 웃어 보인 백담이 그제야 멈춰 섰다.
“여기 정도면 괜찮겠군. 여러 사람들 앞에서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서 말이야.”
백담이 주위를 한 번 둘러보고는 입을 열었다.
“태초의 파편에 대해 알고 있나?”
백담의 갑작스런 질문에 천성은 심장이 멎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
“네놈은 누구냐!”
재빨리 뒤로 물러선 천성이 긴장한 얼굴로 물었다.
이 행성에서 태초의 파편에 대해 알고 있는 존재는 초월자 여와와 그 복제체인 복희뿐이다.
그렇다는 것은 상대의 정체가 결코 이 행성의 인류가 아니라는 이야기였다.
초월자 여와와 관련이 있을 확률도 없었다.
만일 관련이 있었다면 복희가 분명 이야기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놈의 정체는 하나였다.
태초의 파편을 노리는 암살자.
천성의 가장 강력한 적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