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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단연경은 소심한 복수를 완성하고는 먼지가 지나가길 기다렸다 천천히 그들 옆을 지나가며 말했다.
“죄송합니다. 제가 잠시 딴생각을 하느라 보지 못해 실례를 했습니다.”
제대로 먼지를 쓴 무리들은 화가 난 얼굴로 단연경을 노려봤지만 먼저 미안하다 하니 대놓고 화도 못내고 있었다.
“괜찮소. 그럴 수도 있으니 신경 쓰지 마시구려.”
무리의 수장인 듯한 사내가 그리 말하자 단연경은 고개를 살짝 숙여 보인 후 그 옆을 지나갔다.
‘어? 진짜 바퀴가 고장났잖아? 아까 그런 식으로 달리다 고장났으면 안에 타고 있었던 녀석도 꽤 충격을 받았겠는데? 어디 부딪쳐서 혹이라도 하나 달았기를. 후후.’
단연경은 마차의 상태를 보며 작게 미소를 지어 보이고는 약간 빠른 속도로 나아갔다.
한 번 달려 보니 나름 괜찮았기에 두 번째 목적지인 화음현까지는 말이 무리하지 않을 정도까지 신나게 내달렸다.
이레째 되는 날 화음현에 도착한 단연경은 말을 좋은 값에 처분하고 배로 갈아탔다.
계속해서 관도로 가도 되지만 물길을 따라가면 더욱 좋은 풍광과 편안한 여행을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다.
혼자 배를 타면 비싸서 여럿이 타는 배를 구하려 돌아다녔다. 하지만 유람철이 된 탓인지 이미 배는 예약이 끝나 있었다.
결국 여기저기 알아본 끝에 상선을 간신히 구할 수 있었다. 물론 약간 웃돈을 주고 짐꾼인 양 하면서 한쪽에 조용히 있는다는 조건으로 말이다.
배를 구하느라 하루해를 다 보낸 단연경은 비싸지 않고 깨끗한 객잔을 찾아 잠을 자고 출발하기로 한 시간보다 약간 빠른 시간에 배에 올랐다.
듣기로는 뱃멀미에는 고수와 하수가 따로 없다 들었고, 일단 시작하면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라 했다.
뱃멀미를 안 하는 체질을 타고 나는 이들 이외에는 배의 흔들림에 적응하는 게 최선이라 들어 좀 일찍 왔던 것이다.
배에는 상선이란 걸 확인시키듯 표국기를 앞세운 물건들이 잔뜩 쌓여 있었다.
단연경은 그 물건들을 일별한 후 배 뒤쪽으로 가 살짝살짝 흔들리는 배의 흐름을 몸에 익히려 노력했다.
출발하기로 한 시간이 다됐을 무렵 일단의 무리들이 배에 올라탔다.
처음에는 별 관심이 없었지만 나중에 올라탄 사내를 본 순간 단연경은 급히 선창 아래로 내려갔다.
이틀 전 먼지의 복수를 했던 무리를 이끌던 사내였던 것이다. 분위기로 보아선 이 상선을 이용하는 표국과 관련자 같았는데 일종의 밀항자 비슷한 단연경으로선 좋지 않은 것이었다.
배 위쪽에서 출발한다는 외침과 약간의 소란스러움이 일어나며 배가 조금씩 움직이는 느낌이 났다. 잠시 후 자신을 배에 탈 수 있게 해 준 사십대 후반가량의 선원이 나타났다.
“여기 있었구만. 한참 찾았네.”
“갑자기 사람들이 타길래 곤란할 것 같아 내려왔습니다.”
“그랬는가? 잘했구먼.”
“그런데 마지막에 올랐던 분들은 누굽니까?”
“이 배의 선주와 그분의 수행원들이네.”
“아, 그렇군요.”
“되도록 그분들 눈에 띄지 말게. 일단 짐꾼이라고 말은 하겠지만 그래도 자네 모습은 좀…….”
“짐꾼치곤 많이 헌앙하죠.”
단연경이 씨익 웃으며 말하자 선원은 껄껄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젊은 사람이 넉살도 좋네그려. 맞네. 짐꾼치고 자넨 너무 잘났네. 그러니 조심하시게.”
“여부가 있겠습니까. 하하하!”

배가 출발하고 한 시진쯤 지났을 무렵 단연경은 신선한 공기가 미치도록 그리워지고 있었다.
답답해서가 아니었다. 머리가 멍하고 속은 슬슬 울렁거리는 게 공중에 살짝 떠 있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 느낌은 시간이 흐를수록 강해져 갔고, 그럴수록 앉아 있기도 힘들어져만 갔다.
이 생소한 느낌에 시달리고 있을 때 문이 열리며 선원이 음식을 가지고 들어왔다.
“점심일세.”
단연경은 천천히 일어나다 음식 냄새를 맡는 순간 속에서 화산이 폭발하는 것 같아 급히 입을 틀어막으며 말했다.
“죄, 죄송한데 그 음식 좀…… 우욱…….”
단연경의 모습에 선원은 껄껄거리며 말했다.
“하하하! 배를 처음 탔나 보구먼. 자자, 여기서 이러고 있지 말고 밖으로 나가세. 신선한 공기를 마시면 좀 나아질 게야.”
“가, 감사…….”
말을 채 잇지 못하고 입을 완전히 틀어막았다. 이미 입안에 역류한 것들이 가득해져 버렸던 것이다.
급히 배 후미로 간 단연경은 입안 가득 있는 걸 뱉어냈다. 그러자 그것을 시작으로 폭풍처럼 위장에 있는 모든 걸 푸르른 강물 위로 쏟아 놓았다.
“우웨엑!!!”
선원은 바로 가지 않고 그의 등을 두드려 주며 말했다.
“거의 대부분 배를 처음 타면 겪는 일이니 힘들어도 좀 참게. 금방 괜찮아질 게야.”
난간을 붙들고 아침에 먹은 걸 다 토해 낸 단연경은 벌겋게 충혈된 채 물었다.
“이게 뱃멀미란 건가요?”
“맞네.”
“우욱!”
단연경은 그렇게 해가 떨어지고 밤이 깊을 때까지 위장까지 딸려 나오는 게 아닐까란 생각이 들 정도로 토악질을 해야만 했다.
단연경의 토악질은 근 이틀간이나 계속되었다. 그 결과 헌앙했던 모습을 사라지고 눈은 퀭했고 피부는 꺼칠하고 누렇게 떠 있었다.
점심이 조금 지났을 무렵 더 이상 토악질을 하지 않고 그냥 배 난간에 축 늘어져 있는 단연경에게 선원이 다가왔다.
뱃멀미는 꽤 많이 하는 편이었지만, 이런 잔잔한 물결에서 이 정도의 뱃멀미를 하는 단연경의 경우는 유독 심한 편에 속했다.
“괜찮은가?”
“이제 좀 많이 편해졌습니다. 몸이 나른하고 기운이 없어서 문제지만요.”
“그래? 혹시 허기는 지는가?”
선원의 질문에 잠시 생각을 하더니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그러고 보니 배가 고프기도 한 것 같네요.”
“하하하! 그럼 됐네. 이제 뱃멀미를 극복한 게야.”
그 말에 단연경이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우며 물었다.
“정말인가요? 아직도 살짝 멍한데 말입니다.”
“뱃멀미를 하면 토악질은 기본이고 허기도 느끼지 못한다네. 그러다 적응이 끝나면 허기를 느끼는데 그때 적당히 음식을 먹으면 평상시처럼 금방 괜찮아진다네.”
“그렇군요.”
“예서 잠시 기다리게 내 먹을 것 좀 챙겨다 줌세.”
“그리하지 않으셔도 되는데…….”
“아니야. 회복 단계라지만 다시 안에서 이런저런 냄새를 맡으면 재발할 수도 있거든.”
선원의 말대로 약간의 음식을 먹고 나자 멍한 느낌도 가셨고, 폭풍이 몰아치던 속도 잠잠해져 갔다.
그렇다고 바로 좋아진 것은 아니어서 늘어져 있는 건 여전했다. 이틀간이나 물도 제대로 못 마셨으니 당연했다.
어쨌든 조금씩 좋아지기 시작하자 주변의 풍광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햇살에 반짝이는 물결과 병풍처럼 둘러쳐진 절벽과 나무들. 또다른 아름다움을 볼 수 있을 거란 목유청의 말이 절로 생각났다.
제대로 된 풍광이 눈에 들어올 무렵 배 위가 갑자기 부산해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은근한 살기와 긴장감이 느껴졌다.
잠시 후 선원이 단연경에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자네는 선창에 내려가 있으시게.”
“무슨 일입니까?”
“수적일세.”
“수적이요? 그럼 싸움이라도 벌어지는 건가요?”
“글쎄, 협상만 잘되면 상관없네만 왠지 분위기 이상하네.”
“그렇습니까?”
“그래. 그러니 어서 들어가 있으시게. 괜히 잘못 말려들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네.”

선미 부분에서 서 있던 사십대 중반의 사내는 몸을 돌려 선창으로 들어가는 입구 쪽에 서 있는 연두색 궁장에 면사를 하고 있는 여인에게 다가갔다.
하늘거리는 궁장과 면사로 인해 얼굴에선 오직 눈만 보였지만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미모가 느껴졌다.
다만, 이마 오른쪽 부분에 푸르스름한 자국과 약간 부어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이었다.
“아무래도 분위기가 심상치 않습니다. 분명 배는 이곳의 수채인 수룡채의 것입니다만 뱃머리에 서 있던 사내에게서 위험한 기운이 풍겼습니다.”
“그래도 일단 확인은 해 봐야 되니 평소처럼 협상을 하게 하세요. 협상이 결렬되면 전속으로 이 지역을 벗어날 수 있도록 하죠.”
배 위에는 심상치 않은 분위기의 긴장감이 감돌고 있었다. 그럼에도 여인은 전혀 위축된 기색 없이 단호하게 말하고 있었다.
“일단은 그리하겠습니다.”
수룡채의 배가 대략 십 장 정도 떨어진 곳까지 가까워지자 사내는 표국의 총표두에게 협상할 수 있도록 시켰다.
“낙양 금룡표국의 총표두 하문두가 수룡채의 영웅들을 뵙게 되어 영광이외다.”
보통은 이렇게 말을 하면 거리를 유지한 채 대답을 하고 그러면서 협상이 진행된다. 그런데 수룡채 쪽에선 일언반구의 대꾸도 없었다.
거기다 한순간 속도를 높이며 빠르게 거리를 좁혀 왔다. 그걸 본 사내는 바로 명을 내렸다.
“선원들은 선창으로 들어가고 보표들은 왼쪽 난간에서 방어진을 구축하라! 표사들은 후위에서 대기하라!”
사내의 명에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 그 사이 배가 오 장 이내로 들어서자 수룡채의 배에서 복면인 십여 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들이 나타나자 약간의 거리가 있음에도 강렬한 살기가 전해져 왔다.
수룡채가 제법 큰 수채이기는 했지만 이만한 살기를 뿜어낼 정도의 고수가 있는 곳은 아니었다.
강렬한 살기에 표정이 굳어진 사내는 즉시 입을 열었다.
“역시 표물이 목적이 아니고 그것 때문인 듯싶습니다.”
“음……. 그럼 역시 저 이외엔 살아남기 힘들겠죠?”
“아마도 그럴 것입니다.”
면사 여인은 잠시 생각을 한 후 말했다.
“일단 협상을 하세요. 제가 인질이 될 테니 다른 이들은 살려달라구요.”
“불가합니다. 협상 가능성도 거의 없을 뿐더러 아가씨의 생명은 몰라도 신변은 장담할 수 없습니다.”
만약 예상한 대로 그것을 목적으로 왔다면 여기서 면사 여인 이외에 살아날 가능성은 없었다. 그것의 중요도와 파급력은 상상하기도 힘든 것이었다.
당연히 이들도 그것이 목적이면 쓸데없는 파리들이 몰려들지 않도록 그녀 이외에는 모조리 죽여 놓는 게 시간을 버는 길이었다.
또한 면사 여인의 미모는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천하에 알려진 미녀들보다 못하지 않았다. 통상 이런 무리들은 자신들의 신원이 밝혀지지 않으니 여인이기만 해도 겁탈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녀라면 무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다분했다.
면사 여인도 그것을 모르는 바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에 쓸데없는 희생을 줄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래도 할 수 있는 노력은 해 봐야죠. 저 하나 희생해서 여러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으니까요. 그러니 우선 협상을 해 주세요. 여기까지가 제 명이고 이후부터의 상황에 대해서는 후인동(侯仁動) 대주께 맡기겠습니다.”
나이는 이제 겨우 스무 살이었지만 대단히 현명하고 여인답지 않게 호탕해 가문의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그녀는 가문에 속한 모두의 딸이고, 누이였다. 그녀의 호위를 책임지고 있는 후인동은 비장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사내는 고개를 숙여 보이고 근처에 있던 보표 둘을 향해 손짓을 해 그녀를 근접 호위할 수 있도록 조치를 취했다.
“계도식(系到軾), 판태발(瓣泰發) 이쪽으로 와.”
“예. 대주.”
수룡채의 배가 다가오는 옆 난간으로 간 후인동이 내력을 실어 말했다.
“본선에 원하는 게 무엇인가?”
그러자 팔짱을 낀 채 선미에 서 있던 까만 얼굴의 사내가 처음으로 반응을 보였다.
“이미 예상하고 있잖아. 저 뒤에 있는 여자.”
“좋다. 우리 모두 당신의 인질이 될 터이니 우리의 신변을 보장하라.”
후인동이 그렇게 말하자 시커먼 사내는 팔짱을 풀고는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난 남자를 싫어해서 말이야. 특히 돈 많은 놈들 똥구멍이나 닦아 주고 있는 너희 같은 놈들은 더 싫어. 그리고 저 아이 몸매도 좋은데 안 건들이면 아깝잖아.”
사내의 말에 후인동보다 옆에 서 있던 계도식이나 판태발이 더욱 발끈해 욕설을 퍼부었다.
“이런 까마귀가 형님, 형님하고 쫓아다니게 시커멓게 생긴 놈의 새끼가 어디서 주절대는 거야? 확 주댕이에 소똥을 쳐 넣어 버릴까 보다!”
“야, 이 똥물에 튀겨 먹을 새끼야! 터진 입이라고 함부로 나불거리지 마라!”
거의 동시에 터져 나온 듣도 보도 못한 욕설에 잠시 멍해 있던 사내는 이내 진한 살소를 지으며 뒤쪽을 향해 말했다.
“저 배 위에 있는 살아 있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라. 단, 목표물과 저 두 자식은 좀 다쳐도 되니 산채로 잡아 두도록.”
“존명!”
배와 배 사이가 이 장여로 좁혀지자 가장 앞쪽에 있던 복면인 둘이 재빨리 발아래서 창날 같은 게 묶여 있는 밧줄을 집어 들고 던졌다.
그를 본 후인동은 검기를 일으켜 밧줄을 잘라 버리려 했다. 그러나 밧줄을 던지는 순간 나머지 복면인들이 일제히 암기를 쏘아 냈다.
피피핑!
파공성과 함께 어른 손가락만 한 수리검이 일제히 날아들었다. 위치도 다 제각각이었기에 후인동은 어쩔 수 없이 이를 막았고 계도식과 판태발은 물론이고 난간쪽에 있던 보표들 모두 마찬가지였다.
따따땅! 터텅!
“이런!”
밧줄은 배의 중간에 박혀 들었고, 복면인들의 반은 수리검을 연속적으로 던져 후인동 등을 방해했고 그 사이 나머지 반은 밧줄을 날 듯이 타고 배 위로 올라섰다.
그들의 공격 방식을 이미 예측하고 있었던 후인동의 대처 방식은 정확했다. 하지만 복면인들의 실력은 후인동의 예측보다 더 뛰어났다.
처음 일곱 명의 복면인이 뛰어올랐는데 이 중 저지하는데 성공한 건 고작 한 명뿐이었다.
배 위에 오르는 걸 성공하자 복면인들은 일제히 후인동 등을 공격해 갔다. 중간에 보표들이 막으려 했지만 역부족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