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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5화)
5장 유물 쟁탈전(1)
감석보와 호유설이 돌아오고 습격의 뒷수습도 어느 정도 마무리될 즈음, 천의단원들은 무림맹으로부터 새로운 임무가 적힌 전서를 전해 받았다.
그것은 바로 복희의 유물이 있는 진시황릉으로 향하라는 것이었다.
유물의 위치에 대한 소문이 퍼지면서 맹에서도 당연히 가만히 있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해서 급한 대로 진시황릉과 가장 가까운 위치에 있는 천의단을 먼저 움직여 유물을 찾는 경쟁에서 우의를 점하려는 것이었다.
물론, 이를 보좌하기 위해 공동파와 화산파의 고수들 역시 하산한 상황이었다.
갑작스런 임무로 인해 천성은 식구들과 아쉬운 작별을 해야 했다.
가족들의 안위가 걱정되기도 했으나, 어차피 치우 일족이 진시황릉으로 향할 것이 확실한 이상 이번 임무는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모용혜도 상처가 거의 다 나은 터라 여행에 큰 무리가 없었기에 일행과 함께했다.
하지만 많은 일을 겪은 감석보는 단주 모용단천의 배려로 한동안 선검문에 남기로 했다.
진시황릉은 선검문에서 서둘러 움직이면 반나절 정도밖에 걸리지 않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단원들은 복희의 유물을 찾는 임무를 받았다는 말에 모두 들떠 있는 상태였다.
“과연 복희의 유물이 있다는 것이 사실일까?”
모용혜가 눈을 빛내며 천성에게 물었다.
“감숙에서 열쇠를 찾다가 사로잡힌 치우 일족의 장로에게서 직접 알아낸 것이라잖아. 만일 유물이 없다면 놈들이 왜 그토록 기를 쓰고 열쇠를 찾으려 했겠어?”
제갈수련이 천성 대신 모용혜의 말을 받았다.
천의단원들은 이미 모용단천에게 대략의 내용을 전해 들은 상태였다.
사로잡힌 치우의 장로들은 바로 천성이 감숙에서 제압한 용군과 마군이었다.
그때, 맥적산을 향하던 정체불명의 무인들은 바로 무림맹 평량 지부의 인원들이었다.
치우 일족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맹 차원에서 각 지부와 문파들에게 수상한 움직임을 철저히 파악하도록 명을 내렸기 때문이다.
결국, 용군과 마군은 무림맹의 손에 잡혀 유물의 위치를 알아낼 수 있던 것이다.
유물의 위치를 알아낸 것은 제갈휘였다.
아니, 헌원 일족인 그는 이미 유물의 위치를 알고 있었다.
이번에 강호에 유물의 위치를 퍼뜨린 것 역시 그였다.
태상 문주 제갈승의 명에 따른 것으로, 하오문에 정보를 흘리고 왕륜에게 죄를 뒤집어씌운 후 살인멸구한 것이다.
이를 알 턱이 없는 남궁영과 무림인들은 헌원 일족의 음모에 놀아나고 있는 셈이었다.
아침에 출발한 일행은 해가 지기 전에 진시황릉에 도착할 수 있었다.
사실, 진시황릉의 봉분은 그저 산처럼 보일 뿐, 아무런 특별함도 없었다.
단지 그 크기와 규모에 놀랄 뿐이었다.
봉분으로 이어진 길에는 예전에는 수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전해지나, 오랜 세월 동안 약탈되어 이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허, 벌써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모이다니…….”
청명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황릉 주변에는 얼핏 보아도 만여 명이 넘는 무림인들이 봉분 외곽을 둘러싼 채 모여 있었다.
봉분은 나라에서 보호하고 있어 함부로 발을 들일 수 없기에 주변에 머물면서 서로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흑암문주 공소추도 있었다.
아무래도 가까운 곳에 위치하다 보니 다른 이들보다 빨리 도착한 것일 터였다.
일행이 현장을 살피고 있는 순간에도 무인들의 숫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었다.
진시황릉을 관리하고 보호하는 임무를 맡은 관병들이 두려운 표정으로 무인들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무인들이 언제라도 폭도로 변할 수 있음을 그들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 있는 누구든지 입구가 발견되기라도 한다면 나라의 법 따위는 상관하지도 않고 봉분으로 달려들 것이다.
천성은 미간을 찌푸린 채 현장을 살폈다.
사건이 너무 커져 버렸다.
이대로라면 결국 많은 이들이 다치게 될 것이다.
천성은 과연 누가 유물의 위치를 퍼뜨린 것인지 가만히 헤아려 보았다.
유물의 위치를 알고 있는 이들은 천성과 치우, 신농, 헌원의 세 일족뿐이었다.
‘분명 헌원 일족의 짓이군.’
치우 일족이야 이미 유적의 입구와 열쇠를 확보한 상황에서 다른 이들의 개입이 반가울 리 없으니 제외해야 했고, 신농은 말할 필요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헌원 일족뿐이었다.
아마도 치우 일족의 운신을 제한하기 위해 벌인 일일 것이다.
하지만 아무리 치우 일족과 원한 관계에 있는 천성이라 해도 이 많은 사람들을 희생시켜 치우 일족을 막는 것은 절대 찬성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천성은 헌원 일족 역시 그들의 탐욕을 위해서라면 다른 이들은 전혀 개의치 않는 위험한 무리들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대체 우리보고 어쩌라는 것인지…….”
천성이 상념에 잠겨 있는 사이, 팽만호가 푸념을 늘어놓았다.
기껏해야 열한 명밖에 안 되는 인원으로는 당장에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모두 나를 따라오거라.”
모용단천이 일행을 이끌고 앞쪽으로 움직였다.
일행이 무인들 사이를 지나쳐 앞으로 나서자 모용단천을 알아본 이들이 귓속말로 수군댔다.
“저 사람은 무림맹 천의단주가 아닌가?”
“드디어 무림맹에서 나선 것인가?”
사람들 앞에 나선 모용단천은 잠시 그들을 둘러보았다.
사람들의 시선에 부담을 느낀 천의단원들은 어색한 모습으로 모용단천 뒤에 시립해 있었다.
“모두 들으시오! 본인은 무림맹 천의단 단주 모용단천이오!”
무림맹과 모용단천이라는 이름에 일순 군중들이 술렁였다.
“앞으로 이곳 현장은 무림맹에서 통제할 것이오! 곧 화산파와 공동파의 지원 무사들이 합세해 이곳의 혼란을 수습할 것이니, 모두 맹의 지시에 따라 움직여 주기 바라오!”
이어지는 내용에 다시 한 번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어떤 자들은 코웃음을 치고, 어떤 자들은 불만을 토로했다.
더러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포기하는 이들도 보였다.
“흥, 무림맹이 무슨 권리로 이곳을 통제한다는 것인가! 그대들이 유물의 주인이라도 된단 말인가! 결국엔 사람들을 힘으로 위협해 유물을 독차지하려는 수작이 아닌가!”
무림맹에 대해 감정이 좋지 않은 공소추가 손가락질을 하며 불만을 토하자 군중들이 그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파인들 역시 욕심에는 장사가 없는지 모용단천의 말에 반발했다.
“아무런 통제도 없이 여러분들 멋대로 움직이게 되면 결국 이곳은 유물을 찾기도 전에 아수라장이 되고 말 것이오! 무림맹은 모든 정파인들의 뜻을 대표하는 곳이오! 그대들이 맹을 믿지 못한다면 다른 누구를 믿을 수 있겠소!”
“하하하! 나는 너희 정파 놈들이 무엇을 하든지 참견할 생각도 없고 관심도 없다! 하니 너희도 내가 무엇을 하든 상관하지 말거라!”
광오한 공소추의 말에 모용단천이 눈살을 찌푸렸다.
“사파 놈들이 저희 멋대로 움직이는데 우리만 가만히 앉아 있으란 말이오! 나는 맹의 명에 따르지 못하겠소!”
정파인들 역시 모용단천의 말을 들은 척도 안 했다.
사실 지금 인원만으로 이들을 통제하기엔 아무래도 무리였다.
천상 추가 지원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결국 모용단천은 사람들을 통제하는 것을 포기하고 현장의 상황을 살피는 데 주력했다.
화산파와 공동파의 지원 무사들은 다음 날 현장에 도착했다.
그들이 생각보다 빨리 도착할 수 있던 것은 이미 닷새 전에 맹의 명을 받고 출발했기 때문이다.
지원 인원은 각 문파에서 오백씩 총 천 명이나 되었는데, 놀랍게도 양측을 이끌고 있는 수장이 매화신검 낙조명과 복마검선 장하벽, 두 화경 고수였다.
두 문파에서 그만큼 이번 일에 대해 중요하게 여긴다는 증거였다.
화경 고수들의 등장으로 인해 현장의 주도권은 무림맹 측으로 넘어왔다.
두 화경 고수의 말에 함부로 반박할 만큼 간 큰 이는 없었기 때문이다.
다행히도 그로 인해 일촉즉발의 긴장 상태는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었다.
사실 그동안 무인들 간에 알게 모르게 끊임없는 신경전이 펼쳐졌고, 함께할 수 없는 정사마의 세 무리가 모이면서 그 긴장상태도 극에 달해 있던 터였다.
어느 정도 질서가 잡히고 나자 낙조명과 장하벽을 비롯해 현장에 있는 고수들 중 명망 있는 이들이 모여 앞으로의 일에 대해 의논했다.
하지만 아무리 논의를 해 봐도 마땅한 의견이 나오지 않았다.
당장에 여기저기를 파헤칠 수도 없고, 봉분을 뒤져 입구를 찾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결국 치우 일족이 모습을 드러내기 전에는 달리 뾰족한 수 없이 시간을 죽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갔고, 무림맹의 이차 지원 인력이 도착했다.
이천 명이 훌쩍 넘는 대규모 인원이 도착하자 사파나 일부 불만을 표시하던 정파인들조차 찍소리도 못하고 무림맹의 눈치만 살폈다.
하지만 그러한 분위기도 열흘 후 마련의 무사들이 도착하면서 깨져 버렸다.
마련은 이번 일에 무려 삼천의 인원을 파견했다.
게다가 그들을 이끄는 이는 바로 구천마련의 련주, 구천마제 혁련우였다.
마련의 이러한 움직임은 아무도 예상치 못한 것이었다.
신강에서 섬서까지는 쉬지 않고 말을 달린다 해도 한 달이 넘게 걸리는 거리였다.
한데 혁련우가 직접 이렇게 빠른 시간에 등장한 것은 도무지 믿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물론, 그 이유는 헌원 일족이 농간을 부린 때문이었다.
마련은 이미 한 달 보름 전에 유물의 위치를 전해 들은 것이다.
무림맹과 마련이 한곳에서 으르렁거리도록 만들어 치우 일족의 움직임에 제약을 가하기 위해서였다.
마련 일행에는 혁련우뿐만 아니라 왕추를 포함하여 무려 네 명의 화경 고수가 함께하고 있었다.
거기다 삼천 명의 수하들 면면도 정예 중의 정예여서 모두 최하 일류의 경지를 넘어선 무인들이었다.
현경 고수인 혁련우가 등장하자 매화신검 낙조명과 복마검선 장하벽도 함부로 나설 수 없게 되었다.
분위기는 순식간에 마련 쪽으로 기울었다.
“끄응, 젠장. 맹주는 언제 도착한다고 하는가!”
답답한 낙조명이 모용단천을 닦달했다.
혁련우를 상대할 사람은 오로지 남궁영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저희가 이곳에 도착하기 하루 전에 출발하셨다 하니, 아무래도 이삼 일은 더 걸리실 듯합니다.”
어찌 보면 참으로 놀라운 일이었다.
정마대전 이후로 한자리에 이토록 많은 고수들이 모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야말로 일반 무림인들에게는 크나큰 구경거리였다.
한곳에서 마련주와 무림맹주를 볼 수 있는 기회가 얼마나 되랴.
이렇게 답답한 하루하루가 의미 없이 지나가고 남궁영과 불왕 원공, 일수파산 태허가 속속 도착하면서 양측의 긴장감도 점차 높아졌다.
하지만 기다리는 치우 일족의 움직임은 보름이 넘도록 잡히지 않았다.
“계속 이렇게 기다리고만 있어야 하는 겁니까? 혹시 치우의 장로라는 자가 거짓 정보를 준 것은 아닙니까?”
공동파의 장하벽이 답답하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이만큼의 전력이 한군데에 묶여 있는 것은 각 문파에는 큰 손해였다.
남궁영의 표정 역시 좋지 않았다.
이런 소란이 계속된다면 조정에서도 더 이상 묵과하지 않을 것이 분명했다.
군대가 개입하면 무림맹으로서도 물러설 수밖에 없는 노릇.
이대로 시간이나 보내다가 아무것도 얻은 것 없이 돌아간다면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었다.
치우 일족이라는 자들에게 놀아난 꼴이 되는 것이다.
“닷새만 더 기다려 봅시다. 그래도 반응이 없으면 일부 병력만 남기고 철수하는 것으로 하지!”
무림맹은 마련과 같이 지휘체계가 일원화되어 있지 않았고 각 문파에 대한 통제력도 떨어졌다.
명을 내리는 입장이라기보다는 도움을 요청하는 수준의 출정이었기에 더 이상 각 문파에게 희생을 강요할 수도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남궁영은 기한을 정하고 각 문파의 움직임을 풀어줄 수밖에 없었다.
“우와아아아아아!”
갑작스런 함성이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