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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6화)
5장 유물 쟁탈전(2)
멀리서 진시황릉을 노려보는, 이천여 명에 이르는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치우 일족의 전사들로, 그 선두에는 화웅과 지인, 우군과 서군이 이끌고 있었다.
“우리가 움직일 시간이군.”
우군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면을 바라보며 말했다.
“버러지 같은 놈들, 많이도 몰려왔구나!”
서군이 호리호리한 몸을 곧추세우며 지금도 꾸역꾸역 모여들고 있는 무인들의 모습을 지켜보았다.
“치우의 전사들은 들어라! 오늘 우리는 일족의 위대한 대업을 위해 목숨을 바칠 것이다! 훗날 모든 이들이 오늘의 결전을 노래하며 너희의 숭고한 희생과 용맹을 칭송하리라! 전사들이여, 그대들의 굳건한 의지로 일족의 영광을 여는 선봉이 되자!”
“와아아아아!”
“우아아아아!”
우군이 진시황릉을 향해 돌진하자 이천의 치우 전사들이 사방이 떠나갈 듯한 함성을 지르며 그 뒤를 따랐다.
하늘을 찌를 듯한 함성에 놀라 뒤를 돌아본 무인들은 치우 일족이 달려오는 것을 보며 비명을 질러 댔다.
“짐승의 가면을 쓴 자들이다!”
“놈들이 나타났다!”
“치우 일족이 나타났다!”
순식간에 진시황릉을 둘러싼 삼만에 가까운 무인들의 시선이 치우 전사들에게 쏠렸다.
“유적으로 향하는 길을 뚫어라!”
“어리석은 놈들에게 치우의 힘을 보여 주자!”
두 장로의 독려에 오백의 혼천풍과 천오백의 치우 전사들이 무인들을 살육하며 전진하기 시작했다.
“크아악!”
“아악!”
치우 전사들의 앞을 가로막던 무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졌다.
핏물이 튀고, 몸에서 떨어져 나온 팔다리가 날아다니며 치우 일족이 지나는 곳 일대는 순식간에 시산혈해를 이루었다.
“목숨이 아까운 자는 비켜서라!”
우군의 외침에 두려움에 떨던 무인들이 몸을 돌려 도망쳤다.
하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지라 쉽게 몸을 뺄 수가 없었다.
“사람 살려!”
목숨이 아까워 도망치려는 이들보다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달려드는 이들의 수가 훨씬 많았기 때문이다.
마련과 무림맹의 병력도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세력 합해 칠천에 이르는 대인원이었다.
거기다 무려 아홉의 화경 고수와 현 무림을 대표하는 두 명의 현경 고수가 포함되어 있었다.
“비켜서라!”
무림맹과 마련의 무사들이 사람들의 물결을 헤치며 치우 일족을 향해 전진했다.
무림맹 일행 중에는 천의단과 천성도 포함되어 있었다.
“놈들이야!”
모용혜가 치우 일족을 발견하고 소리쳤다.
천의단원들은 이미 한 번 동정호에서 치우 일족의 무서움을 경험했기에 상당히 긴장하고 있었다.
한편, 천성은 머릿속이 복잡했다.
치우 일족이 나타난 곳은 유적의 입구와는 정반대 쪽이었다.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유인책임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놈들의 진정한 전력은 지금 반대편에 위치한 유적의 입구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영안을 이용해 살펴보니 반대쪽에 오백 정도의 무리가 진시황릉을 향해 다가오는 것이 잡혔다.
‘흥, 놈들의 뜻대로 되게 놔둘 순 없지!’
천성은 일단 이곳을 빠져나가기로 했다.
하지만 당장에 움직이기가 만만치 않았다.
수많은 사람들 틈에서 변신하기도 여의치 않았고, 당장에 천의단을 벗어날 수도 없는 상황인 것이다.
“열쇠를 내놔라!”
그때, 마련의 무사들이 치우 일족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곳곳에서 폭음이 터져 나오고 강력한 기운들이 오갔다.
“마련에게 뒤처져선 안 된다! 당장 놈들을 공격하라!”
각파의 수장들과 단주들이 무사들을 독려하자 곧 무림맹과 정파 연합의 무사들도 치우 일족을 공격하며 혼전에 들어갔다.
‘이 틈을 이용해 빠져나가야겠군!’
천성이 재빨리 주위를 살피며 뒤쪽으로 빠졌다.
“야! 어디 가?”
모용혜가 부르는 소리가 들렸으나 무시한 채 천성은 빠른 속도로 현장을 벗어났다.
천성이 빠져나가는 것을 확인한 백담도 그 뒤를 따랐다.
백담이 자신을 쫓아오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자신의 정체를 아는 상황이었기에 천성은 신경 쓰지 않았다.
‘무숙!’
[알았다!]
근처 숲 속으로 들어간 천성이 변신을 한 채 무숙과 교대를 했다.
[조심해라. 무리하지 말고!]
‘네!’
천성은 즉시 반대편 유적의 입구로 향했다.
* * *
진시황릉의 북쪽 숲에 용천광과 용문회를 비롯한 치우 일족의 수뇌부 오백여 명이 모여 있었다.
“성공한 듯합니다! 무인들이 반대쪽으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환사가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우리도 움직인다!”
“충!”
용천광이 앞장서고 오백의 무리가 뒤를 따랐다.
이들은 치우 일족 중에서도 가장 정예들이었다.
구공을 비롯해 묘군, 환사, 섬응과 혼천풍의 풍주 뇌진, 용천광을 호위하는 열 명의 수호대원 등 일족의 모든 전력이 동원된 상태였다.
“전사들은 대기시켜 놓았겠지?”
“네. 오천의 전사들이 천황의 명만 기다리고 있습니다!”
구공이 고개를 숙이며 대답했다.
순간, 용천광의 눈에 굳은 의지가 드러났다.
어차피 지금 이곳에는 전 강호의 내로라하는 실력자와 세력이 모두 모인 상황이었다.
이들만 제압하면 사실상 강호는 치우 일족의 손에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차라리 오늘 모든 전력을 동원해 승부를 보기로 결정한 용천광이었다.
“유물을 찾는 대로 우리에게 반하는 자들은 모두 쓸어버린다!”
“존명!”
수뇌부들이 기대에 찬 표정으로 복명했다.
드디어 오랜 세월 기다려 온 숙원을 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잠시 후, 그들이 도착한 곳은 봉분에서 삼십 장쯤 떨어진 평범한 장소였다.
나무와 돌들이 듬성듬성 서 있는 그곳은 아무런 특별한 흔적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게다가 봉분에서도 어느 정도 거리가 떨어져 있는지라 다른 이들의 관심을 별로 끌지도 못한 곳이었다.
구공이 천률음보를 꺼내 들었다.
그러자 표지에 그려진 용의 그림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볼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정말 신묘하군그래.”
용천광이 그 모습에 감탄했다.
구공이 책을 수평으로 두 손에 든 채 시계 방향으로 천천히 돌렸다.
그에 따라 용의 그림도 꿈틀거리며 그 모습이 변해 갔다.
당장에라도 하늘로 승천할 듯 역동적인 모습에 보는 이들의 시선이 절로 빨려 들어갔다.
그렇게 책이 처음 방향과 거의 직각으로 움직였을 때였다.
화아악!
허공으로 떠오른 용의 눈에서 붉은 광채가 뿜어져 나오더니, 일직선으로 한곳을 향해 쏘아졌다.
우우우우웅!
붉은 광채가 향한 곳은 아무것도 없는 흙바닥이었다.
하지만 그도 잠시.
갑자기 빛으로 이루어진 문자들이 생겨나더니 둥글게 원을 이루었다.
문자들은 점점 그 수가 늘어나더니 어느새 반경 삼 장쯤 되는 구역을 빙 둘러쌌다.
구구구구궁!
원을 따라 땅이 진동하며 솟아오르기 시작했다.
기이이이이잉!
점차 솟아오른 땅은 원기둥 모양이었는데, 그 가운데에 마치 제단과도 같은 둥근 석탁이 놓여 있었다.
“입구로군!”
용천광이 기쁨에 찬 탄성을 터뜨렸다.
구공은 얼른 석탁으로 다가가 확인했다.
석탁은 지름이 일 장 정도로 제법 넓었는데, 그 가운데에 다섯 개의 구멍이 뚫려 있고, 양옆에는 수정으로 만든 듯한 두개의 투명한 서랍이 있었다.
“열쇠를 놓는 자리군!”
구공이 확신에 찬 목소리로 말했다.
“그리고 여기가 촉매를 놓는 곳이고!”
서랍을 열며 구공이 눈을 빛냈다.
“일단 성화령과 빙정을 가져오거라!”
우선 촉매를 이용해 혼돈의 상태를 만들어야 했다.
환사와 섬응이 각각 빙정과 성화령을 들고 석탁으로 향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겐 안 되지!”
콰아앙!
갑작스레 작렬한 공격에 용천광과 구공이 급히 몸을 피했다.
“네놈은!”
천성의 모습을 확인한 환사가 이를 갈았다.
“저놈이 바로 흑협입니다!”
묘군 역시 예전에 천성에게 죽을 뻔한지라 잔뜩 살기를 끌어 올렸다.
‘흥! 이제야 네놈을 만났구나!’
환사를 발견한 천성이 곡용천의 모습을 떠올리며 속으로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드디어 곡용천의 복수를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천성과 치우 일족 간의 악연이 바로 자신 때문에 시작되었음을 안다면 놈은 과연 어떤 표정을 지을까 천성은 문득 궁금했다.
만일 그때, 환사가 곡용천을 죽이지 않았다면 천성이 놈을 쫓을 일도 없었고, 영력을 얻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렇게 서로 이를 드러낼 일도 없었을지 모른다.
그 결과로 인해 천성과 치우 일족은 너무도 많은 것을 잃고 만 것이다.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데 우리를 이토록 방해하는 것이냐!”
분노한 용천광이 목에 핏대를 올리며 소리쳤다.
“네놈들이 저지른 악행을 내가 일일이 설명해 줘야 한단 말이냐! 내가 그토록 수차례 경고했거늘, 스스로 무덤을 판 것은 네놈들이다!”
“흥, 좋다! 어차피 네놈과는 말이 필요 없지! 오히려 겁도 없이 우리 앞에 제 발로 나타나다니, 너무 자만하고 있구나! 여기 있는 오백의 전사를 네가 홀로 상대할 수 있을 것 같으냐!”
막 공격 명령을 내리려 할 때, 용문회가 급히 용천광에게 전음을 날렸다.
[아버님, 지금은 놈과 싸울 때가 아님니다! 다른 놈들이 오기 전에 어서 입구를 열고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그에 용천광이 못마땅한 듯 인상을 찌푸렸다.
아들이 말이 옳았다.
지금 당장에는 유인조가 무인들의 시선을 붙잡고 있으나, 그 시간은 길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유적 안으로 들어서야 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겠느냐?]
[인원을 둘로 나눠 반은 놈을 상대하게 하고, 나머지는 그동안 문을 열고 유적으로 들어서는 것이 좋겠습니다.]
용천광으로서도 그 외에는 딱히 마땅한 방법이 없었다.
“하하하! 여기 있었구나!”
그때, 백여 명의 무리가 유적 입구에 나타났다.
‘이런, 벌써 늦었군!’
용천광과 치우 일족이 어두운 표정으로 새로 나타난 무리를 바라보았다.
“이놈들!”
섬응이 그들 중 둘을 알아보고는 살기를 토해 냈다.
다름 아닌, 군산에서 보았던 자공과 진교였다.
바로 헌원 일족의 무사들인 것이다.
놀랍게도 그들을 이끄는 것은 제갈승이었다.
그 옆에는 적염적발의 제갈중의 모습도 보였다.
그동안 숨어 있던 헌원의 수뇌부가 직접 나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