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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내뻗었던 손을 회수하고 뒤로 황급히 물러났고 그가 서 있던 공간을 묵직한 소리와 함께 푸른 빛을 머금은 덩어리가 훑고 지나갔다.
쾅!
선창 쪽을 덩어리가 강타하며 폭발을 일으켰고, 나무 파편과 엄청난 바람이 일었다.
“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면사 여인이 바람에 밀리며 강물에 떨어져 버렸다.
“아가씨!”
“이런 빌어먹을!”
후인동과 시커먼 놈이 동시에 외쳤다. 한편 장력을 발출시켰던 단연경은 생각지도 못하게 그녀가 빠져 버리자 곧바로 외쳤다.
“세 분 모두 걸리적거리니까 뒤로 물러나세요!”
웅! 웅!
단연경의 검이 일렁거리며 검기가 일어나자 판태발과 계도식은 일단 뒤로 물러났다. 후인동은 적이고 뭐고 면사 여인이 떨어져 내리자 그녀의 위치를 찾기에 바쁜 상태였다.
그들이 물러나자 단연경의 검이 푸른 빛을 머금은 채 타오르기 시작했다.
우우웅!
뒤로 물러났던 시커먼 사내는 그걸 보자 경악에 정신없이 외쳤다.
“피해!!!”
하지만 그의 명을 제대로 지킨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우웅! 쩌저정!
시퍼런 빛줄기가 단연경의 검에서 길게 발출되었고 그 빛에 휘말린 복면인들의 육신은 검과 함께 깨끗이 잘려져 나가 버렸다.
그야말로 한순간이었다. 그토록 강한 모습을 보이던 복면인들이 단 한 번의 휘두름에 나무토막처럼 모조리 잘려져 죽어 버린 것이었다.
바닥을 구르며 그 빛줄기를 피해 낸 시커먼 사내는 일어나지 못하고 이 비현실적인 모습에 멍하니 있었다.
단연경은 아직도 강물을 바라보고만 있는 후인동의 어깨를 잡아 끌어 눈을 마주 보며 말했다.
“저 자식 붙잡고 있으세요.”
그렇게 말한 후 후인동의 대답도 듣지 않고 단연경은 그대로 물에 뛰어들었다.
단연경의 말에 정신을 차린 건 후인동뿐만이 아니었다. 급히 시커먼 사내를 공격해 들어갔지만 세 사람의 합수를 간단히 막아 내고는 반대편으로 몸을 날려 물에 뛰어들어 버렸다.
시커먼 사내가 어이없이 도망쳐 버리자 그가 뛰어들었던 자리의 물거품을 보다 다시 단연경이 뛰어든 쪽으로 급히 돌아와 바라보았다.
일각이 여삼추라,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너무나도 길게만 느껴졌다.
잠시 후 배 후미에서 오 장 정도 떨어진 쪽에서 단연경과 면사 여인의 얼굴이 떠올랐다.
“푸하!”
물 위로 올라오자 단연경은 급히 면사를 걷어 내 버렸다. 물을 머금은 천이 호흡을 가로막아서였다.
면사가 걷어지고 나온 그녀의 얼굴을 본 단연경은 잠시 멍해졌다. 종남파에도 여제자들이 있었고, 소싯적에 가출했을 때도 여인들을 약간 보았었다.
물론 그 숫자야 얼마 되지 않지만 어쨌거나 그가 보아 온 여인들 중 그녀와 비교할 만한 이는 단 한 명도 없었다.
‘면사를 하고 다닐만 하네.’
그런 생각을 하며 호흡이 멈춘 채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진 그녀를 끌고 배쪽으로 최대한 빨리 헤엄을 쳐 갔다.
강력한 내력을 바탕으로 물을 당길 때 장력까지 운영하자 두 사람의 몸은 두어 번 호흡할 시간에 배 근처에 도착했다.
배 근처까지 다가가자 후인동이 판태발과 계도식에게 외쳤다.
“밧줄! 밧줄을!”
세 사람은 밧줄이나 그것을 대용할 만한 것을 찾으며 부산을 떨었다. 배 난간까지의 높이가 이 장이 조금 안 되는 높이여서 그냥은 올라오기 힘들었기 때문이다.
“생긴 건 임기응변이랑 좋은 것 같더니 꽤 허술한 아저씨들일세.”
그렇게 중얼거린 단연경은 배의 높이를 가늠한 후 선창의 일부가 박살나며 떨어져 내린 나무 조각을 붙잡고 강하게 눌렀다.
촤악!
단연경과 여인의 몸이 물밖으로 완전히 솟구쳐 오르자 재차 나무 조각을 강하게 굴렀다.
혼자라면 이 정도 부력을 받고도 단숨에 뛰어올랐겠지만 무게 탓에 일 장 정도까지밖에 오르지 못했다.
탁! 텅!
한 손으로 재빨리 난간을 붙잡고 재차 배의 옆면을 구르자 그의 몸이 크게 회전하며 배 위에 내려섰다. 그가 단숨에 올라서자 부산을 떨던 세 사람이 다가왔다.
“아가씨는 괜찮소?”
후인동의 말에도 단연경은 대답하지 않고 그녀를 반듯이 눕힌 후 가슴과 가슴 사이 약간 왼쪽으로 치우친 심장 위치에 손을 얹었다.
남녀가 어떻고 손으로 전해져 오는 말랑한 느낌 같은 건 단연경에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심장이 멈추고 호흡이 멈췄는데 그런 게 머릿속에 남아 있겠는가.
‘적당한 힘으로…….’
단연경은 가볍게 심호흡을 한 후 내력을 짧고 강하게 발출시켰다.
텅!
그녀의 상체가 약간 튀어올랐다.
단연경은 곧바로 턱을 약간 들어 올려 기도가 일자로 되게 한 후 한 손으로는 그녀의 코를 잡아 막고 다른 한 손으로는 그녀의 입을 약간 벌렸다. 그러고는 그대로 그녀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가져다 댔다.
“이게 무슨 짓…….”
갑작스런 단연경의 연속적인 행동에 옆에서 깜짝 놀라 손을 쓰려던 후인동은 이내 멈추었다.
“후우! 후우!”
그녀의 입에 바람을 다섯 번 불어넣고는 다시 가슴에 손을 얹었다.
‘조금 더 강하게…….’
텅!
조금 전보다 좀 더 높이 그녀의 상체가 튀어올랐다.
단연경은 재차 호흡을 불어넣고 내력을 발출시켰다. 그 동작을 세 번 반복하고 내력을 발출시키자 기침과 함께 물을 토해 내며 그녀가 깨어났다.
“컥! 콜록 콜록! 우욱! 하아……. 헉헉…….”
몸을 모로한 채 거친 숨을 몰아쉬며 잔기침을 몇 번 더한 그녀는 다시 대자로 누웠다. 그러다 조금 전의 위급했던 상황이 생각난 듯 상체를 일으키며 말했다.
“후 대주?”
그녀가 정신을 차리자 단연경은 몸을 일으켜 뒤로 물러났고, 후인동 등이 그녀를 부르며 옆쪽에 무릎을 꿇었다.
“크흐흑……. 아가씨! 무사하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그들은? 그들은 어떻게 됐죠?”
“모두 정리되었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렇군요. 정말 다행이네요.”
그녀는 안도했는지 다시 그대로 누웠다. 잠시 그렇게 쉬던 그녀는 천천히 일어났다.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다 그녀가 일어나자 그녀의 몸매에 시선이 꽂혔다.
젖은 옷 때문에 몸매가 그대로 드러났고, 그 모습 자체가 주는 충격은 단연경의 정신과 심장을 직격했다.
꿀꺽.
단연경은 저도 모르게 침을 삼켰다. 천천히 몸매를 따라 위쪽으로 시선이 향했다.
머리카락에선 물이 방울져 떨어져 내리고 턱선을 따라 살짝 붙어 있는 모습은 다시 한 번 정신과 심장을 직격했다.
긴 속눈썹과 진한 쌍꺼풀, 흑요석같이 맑고 투명한 눈동자, 오똑한 콧날, 잠시 호흡이 끊기고 체온이 떨어져 더욱 하얘진 얼굴과 퍼렇게 변한 그녀의 입술. 세 번째 직격에 자신이 무슨 추태를 보이고 있는지조차 잊어버린 단연경이었다.
‘입술…… 입술…….’
아까는 급히 숨을 불어넣는데 집중하느라 별 생각이 없었는데 입술을 보니 태어나서 처음으로 느껴 본 그 보드랍고 뜨끈한 느낌이 새삼 기억났다.
‘입술…… 입술…….’
단연경은 그녀의 입술에 시선을 고정한 채 자신의 입술을 손끝으로 살짝 매만졌다. 그러자 아까의 그 보드라운 느낌이 되살아나는 것만 같았다.
자신만의 세상에 빠져 버린 단연경의 시선을 보던 여인은 잠깐 가만히 있다 천천히 인상이 일그러져 갔다.
“지금 뭘 보고 무슨 생각을 하는 거야? 이 변태 자식아!”
움찔!
그녀의 외침에 화들짝 놀라며 단연경은 현실로 돌아왔다.
“입술, 아니, 그게 아니고…….”
아직 덜 돌아왔나 보다.
그녀의 하얗게 변해 있던 얼굴에 혈색이 단숨에 돌아왔고, 단연경에게 다가왔다.
쿵쿵쿵! 짝!
“왕 변태 자식!”

배 위의 정리는 모두 끝나 있었다. 보표와 표사들의 시신은 선창에 잘 모셔 두었고, 복면인들의 시신 역시도 일단 모아 두었다. 나중에 조사를 하기 위해서였다.
핏자국도 다 깨끗이 씻어 냈고, 판태발과 계도식은 선창 아래에서 상처를 치료 후 쉬고 있었다.
후인동은 특별한 상처가 없어 선원들과 쟁자수들을 지휘하며 움직이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은 단연경은 더 이상 숨어 있을 이유가 없었기에 검을 차고 배 후미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밤의 강을 즐기고 있었다.
어둠 따위에도 영향을 안 받는 단연경이었으니 연한 달빛에 주위의 풍광을 즐기는 데는 하등 문제가 없었다.
“좋군.”

꽃 사이를 맴도는 호랑나비는 보이다 말다 하고
강물 위를 스치는 물잠자리는 유유히 난다.
봄 경치여! 우리 모두 어울려
잠시나마 서로 어기지 말고 賞春(상춘)의 기쁨 나누자
穿花?蝶深深見 (천화협접심심견)
點水??款款飛 (점수청정관관비)
傳語風光共流轉 (전어풍광공류전)
暫時相賞莫相違 (잠시상상막상위)

밤이라 나비가 날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흥이 동한 단연경이 시를 읖조렸다.
“두보의 곡강(曲江)의 진정한 의미는 알고 지껄이는 건가?”
이미 그녀가 다가오는 걸 알았지만 굳이 오지 말라고 할 이유도 없었고 바람을 타고 느껴지는 그녀의 향기에 기분이 슬슬 좋아지기에 모른 척하고 있었다.
비록 낮에 약간의 실수와 작은 오해가 있었지만 그런 걸 담고 있는 건 그가 상상하는 멋진 협객이 아니었다.
그녀에게 무슨 말을 해야 멋지게 보일까, 너무 오글거리지 않는 단어, 버벅거리지 않아야 한다는 것 등을 생각하며 빠른 대답을 해야지 하고 생각했다.
단연경은 자세와 말투에 대해 고민하던 찰나 그녀가 대뜸 시비를 걸어오자 의지와는 관계없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그래서 우중충한 앞 부분을 잘랐잖아. 왜 심심해?”
“흥!”
단연경이 까칠하게 나오자 그녀는 콧방귀를 날렸다. 그래 놓고 그녀는 다시 한 번 후회를 하며 입을 닫아 버렸다.
사실 그녀가 이곳에 온 것은 낮에 있었던 일에 대해 사과와 함께 감사의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후인동에게 복면인들을 처리한 것도, 그녀가 빠진 것을 구해 죽을 뻔한 걸 살려 낸 것도 단연경이란 걸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주변 정리가 끝나고 심신이 좀 안정된 후 고맙다는 말을 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있었다.
그러다 조금 전 분위기가 괜찮다 느껴 다가왔는데 어떤 말로 대화를 시작할 것인지가 고민스러웠다.
그녀는 기본적으로 상인이었다. 사람을 많이 만나 왔기에 처음 대면해서 서먹함을 없애고 대화를 이끌어 가는 기술이 굉장히 좋았다.
그런 그녀가 이상하게 단연경을 상대로는 대화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의 무위를 보고 겁을 먹은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단연경의 분위기가 말을 하기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이상하게 무슨 말을 할지 생각도 안 났고, 그렇게 되자 조바심이 나며 더 생각이 안 나는 것이었다.
한참을 고민하던 그녀에게 뜻밖에도 두보의 시를, 그것도 분위기에 어울리는 부분만 차용해 사용하는 것이 들렸던 것이다.
사실 무림인 대부분의 학문 수준은 굉장히 낮았다. 글이야 읽고 쓰지만 딱 거기까지만이었다.
물론 명문 출신 중 일부만이 훗날 지도층으로 가기 위해 학문을 익히기는 하지만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단연경처럼 일상생활에서 응용할 수 있을 만큼 갈고닦지는 않는다.
한마디로 난 서책도 많이 본 문무겸전의 대단한 사람이다라고 보여 주기 위해 단순히 외우는 것이지 이해해 익힌 건 아니란 것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녀로서는 어떻게 말을 걸까 하는 고민을 단숨에 날려 버릴 만한 일이었다.
그래서 편한 마음에 말을 했는데, 그게 뜻하지 않게 평소 집안에서 아주 가까운 친인들한테나 하는 농담조의 친근한, 남이 듣기엔 까칠한 말이 나가 버린 것이다.
오랫동안 보아 온 친인들이라면 그녀의 말을 웃으며 받아넘겼을 것이다. 하지만 생판 남인 단연경이 그럴 리가 없었고, 실제로 까칠한 대답이 돌아왔다.
백 번 양보해 여기까지도 좋았다. 이 순간 미소와 함께 농담이었다라고 하며 부드럽게 넘길 수도 있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되도 않게 콧방귀가 튀어 나갔다. 연속적인 실수였기에 그녀는 당황해 다음 말을 안 해 버린 것이다.
늦었지만 이때에도 미소와 함께 농담이라고 했으면 또 어떻게 부드럽게 넘길 수 있었다. 그런데 당황한 나머지 시간을 흘려보내면서 시기를 놓쳤고, 이제 말하기엔 늦어 버렸다.
‘아, 내가 미쳤나 봐. 이 연속적인 실수, 이거 어쩔 거야.’
평소에 하지 않는 연속된 실수는 그녀의 표정을 굳어지게 만들었고, 단연경의 반응을 살피느라 계속 바라보는 그녀였다.
한편 단연경은 단연경대로 당황해서 갈팡질팡하고 있었다. 너무 예상치 못했던 말에 대답을 무조건해야지 하는 생각이 앞서 얼토당토않은 말이 나가 버려서였다.
난생 처음 겪는 신비하고 기가 막힌 경험에 잠시 정신줄을 놨다가 뺨 한 대 얻어맞고 정신 차린 단연경은 평상시의 그로 돌아와 있었다.
문제는 너무 평상시의 그, 그러니까 종남파의 사형제들과 격의 없이 웃고 지내던 때로 돌아가 있다는 게 문제였다. 그래서 말도 예의라고는 하나도 없는 그런 말이 튀어 나가 버린 것이다.
‘아, 내가 또 사고를 쳤구나. 이 상황, 이거 어쩔 거야.’
일이 이렇게 되어 버리자 단연경은 얼굴이 굳어 버렸고, 그녀의 눈치를 보느라 시선을 얼굴에 고정하고 있었다.
결국은 서로 똑같이 굳은 표정을 한 채 같은 이유로 바라보며, 같은 오해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