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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19화)
6장 복희의 유적(3)


미로를 탈출한 세 사람이 도착한 곳은 또 다른 문이 있었다.

인내(忍耐)의 강

문 위에는 앞서 통과한 미로와 같이 이름을 알리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인내의 강이라…….”
구공은 다시 한 번 천안을 열어 안쪽을 살폈다.
문 뒤쪽에는 조금 떨어진 곳에 실제로 폭이 제법 넓은 강이 존재했다.
아마도 그 강을 건너야 다음 관문에 도착할 수 있는 듯했다.
“전 관문이 이름과 관련이 있던 것으로 보아 이번 관문도 인내와 관련이 있을 확률이 높겠군요.”
구공의 말에 모두 긴장한 표정으로 문을 향해 걸어갔다.
이 강을 건너는 것에 무척 인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허억! 호흡을 멈추십시오!”
문을 열고 다음 관문에 도착한 구공이 다급히 소리쳤다.
그들이 들어선 곳은 독기로 가득 차 있던 것이다.
[이런! 저 강이 모두 독이란 말인가?]
급히 모공을 닫고 호흡을 멈춘 용천광이 전음을 보냈다.
[아마도 그런 듯합니다.]
[그럼 강을 건너는 동안 호흡을 참아야 한다는 것이군! 그래서 인내의 강인가?]
하지만 저 넓은 강을 건너는 동안 호흡을 참는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거기다 모공까지도 닫아야 했기에 더욱 어림없는 일이었다.
[호신강기를 쓸 수 있다면 독기가 범접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입니다. 저희도 몸 주위로 벽을 만들 수 있으니 가능할 겁니다.]
[허, 결국 영벽을 사용해야겠군. 하지만 다른 이들은 이곳을 통과하기 힘들겠어.]
용천광의 말에 나머지 두 사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영력을 이용해 방어벽을 만들 수 있는 자들은 치우 일족 중에서도 채 서른 명이 되지 않았다.
결국 나머지 사람들은 이 강을 통과하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시간이 없습니다. 우리도 영벽을 무한정 유지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용문회의 말에 정신을 차린 용천광과 구공이 즉시 강으로 향했다.
용문회의 몸 주위로는 어느새 불의 벽이 형성되어 전신을 둘러싸고 있었다.
곧이어 용천광의 몸은 황금빛으로 덮였고, 구공의 몸은 소용돌이치는 물로 뒤덮였다.
세 사람은 그 상태로 강 위를 튕기듯 뛰어갔다.

* * *

한편, 무림맹과 마련을 비롯해 유물을 찾기 위해 모여든 강호인들은 사방을 뒤지며 유적의 입구를 찾았다.
“엇! 입구다!”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에 수많은 이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었고, 곧 입구 주변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먼저 입구로 들어가려는 자들끼리 칼부림이 일어나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주변은 피 냄새가 진동했다.
“다들 멈추시오!”
뒤늦게 도착한 남궁영의 진기가 가득 담긴 사자후가 울리자 그제야 사람들이 싸움을 멈추고 귀를 막았다.
“이대로는 쓸데없는 희생만 낳을 뿐이오! 더 이상 어리석은 짓을 한다면 무림맹의 이름으로 용서치 않겠소!”
“흥! 무림맹이 무슨 권리로 감히 용서를 들먹인단 말이냐! 우리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이냐?”
그때, 어느새 나타난 마련의 무인들 가운데 있던 왕추가 입꼬리를 비틀며 호통쳤다.
이렇게 되자 다시 한 번 마련과 무림맹이 대치하게 되었다.
“대체 이 중요한 순간에 제갈 군사는 어디로 간 것인가!”
남궁영이 답답한 얼굴로 제갈휘를 찾았다.
일각 전부터 제갈휘의 모습도 보이지 않던 것이다.
“그대들도 이곳에서 혈겁이 일어나는 것을 원하지는 않을 것이오. 하니 우선 어떻게 일을 풀어 나갈 것인지 함께 의논할 필요가 있다고 보오.”
남궁영의 말에 사마굉이 나섰다.
“물론 저희도 혈사가 일어나는 것은 원치 않습니다. 해서 한 가지 제안이 있습니다.”
마뇌라 불리는 사마굉.
제갈휘와 대적할 수 있는 유일한 자가 바로 그였다.
그라면 무엇인가 방책이 있을 것이 분명했다.
“말해 보시오.”
사마굉이 잠시 호흡을 고른 후 좌중을 훑어보았다.
“간단합니다. 어차피 모두가 유적에 들어갈 수는 없으니, 정사마 세 곳에서 모두가 인정하는 대표들을 뽑아 유물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남궁영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게 과연 해결책이 된단 말인가.
“누가 그 말에 따르겠소? 여기 있는 모두가 유물에 욕심이 있어 온 자들이오. 아마도 금방 폭동이 일어날 것이 분명하오.”
회의적인 표정으로 남궁영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하하하! 맹주께선 너무 복잡하게 생각하시는군요. 글쎄요. 무림맹은 모르겠습니다만, 마인들 중 감히 누가 마련의 명을 거역하겠습니까? 게다가 충분히 공정한 기준을 가지고 대표를 뽑는다면 명분 또한 있는 상황입니다. 이럴 때는 강력한 힘으로 밀어붙여야 쓸데없는 생각을 할 수 없게 됩니다. 어떻습니까? 무림맹은 불가능하겠습니까?”
남궁영이 잠시 고민을 했다.
마련에겐 쉬운 일이겠지만, 수많은 문파들의 연합에 불과한 무림맹은 그렇지 못했다.
“구대문파와 세가들만 따라 준다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요. 결국 그들 중 대표를 한 명씩 뽑는다면 다른 이들이 어찌 반대하겠습니까?”
사마굉의 말에 남궁영이 답답한 한숨을 내쉬었다.
결국에는 명문대파들의 강력한 힘을 이용해 나머지 무인들을 내리누르자는 이야기였다.
물론 결과는 확실할 것이다.
이곳에 있는 정파의 무인들 중 절반이 무림맹과 명문대파의 인물들이었다.
실력 차를 감안한다면 그야말로 압도하고 있다고 보아도 무방했다.
감히 누가 구파일방과 세가들에 대항할 수 있겠는가.
“좋소! 그렇게 하도록 하지!”
결국, 정사마 세 곳을 대표하는 육십 인의 인물이 유적의 입구로 들어가게 되었다.

* * *

제갈승은 첫 번째 미로를 의외로 쉽게 통과했다.
진과 학문에 능한 제갈가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미로의 이름과 오행기들을 확인한 순간, 두 가지의 연계를 곧바로 생각해 낸 것이다.
그들은 곧장 두 번째 관문인 인내의 강으로 들어섰다.
“이런!”
놀란 것은 헌원 일족도 마찬가지였다.
“허, 저 강이 모두 독이라니!”
하지만 제갈승은 그 속에서도 입을 열어 말을 꺼냈다.
이미 현경의 끄트머리에 들어선 그였으니, 독기는 아무런 문제도 되지 않은 것이다.
“이거, 아무래도 아이들이 많이 죽겠구나…….”
제갈승이 안타까운 얼굴로 말했다.
화경을 넘어서지 못한 이들은 독기를 견디지 못할 것이 분명했다.
그의 뒤로는 제갈중이 호신강기를 온몸에 두른 채 뒤따르고 있었다.
처음 입구를 통해 두 사람이 동시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독강을 건넌 제갈승과 제갈중 앞에 또 다른 문이 나타났다.

시련의 늪

역시 문 위에는 다음 관문의 이름을 알리는 명패가 붙어 있었다.
“시련의 늪이라……. 어디 한 번 가 볼까?”
제갈승이 눈을 빛내며 다음 관문으로 들어섰다.
“이런…….”
다음 관문은 이름 그대로 늪이었다.
하지만 그것은 물과 진흙이 아닌, 수은으로 이루어진 늪이었다.
거대한 수은의 늪이 눈앞에 펼쳐져 있고, 그로 인해 공간 전체가 수은 증기로 가득 차 있었다.
수은은 해독이 불가능한 독 중 하나였다.
게다가 피부로도 중독된다.
두 사람은 즉시 공력을 끌어 올려 호신강기를 일으켰다.
“이곳도 결국 독관인가 보군요…….”
그렇다면 두 사람에게 특별한 어려움 없었다.
수은이 비록 맹독 중 하나였으나 두 사람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럼 건너가 볼까?”
제법 넓은 늪을 건너기 위해 제갈승과 제갈중이 발을 들여놓는 순간이었다.
우오오오오오오오오오!
사방을 울리는 괴성이 들리며 늪의 한가운데가 솟아올랐다.
처음에는 마치 물이 끓듯 부글거리더니 차차 불룩하게 솟아올라 거대한 형상을 이루기 시작한 것이다.
“조심하십시오!”
제갈중이 제갈승의 앞을 막아서며 소리쳤다.
잠시 후, 키가 무려 오 장을 넘어서는 어마어마한 수은 거인이 두 사람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 * *

두 번째 인내의 강을 건너는 일은 천성에게 있어 너무도 쉬운 일이었다.
이미 태초의 파편에 의해 재구성된 천성의 육체는 모든 독이 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히려 기문을 이용해 영력으로 바꿀 수도 있었다.
독기 역시 일종의 자연지기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독기를 받아들여 영력으로 바꾼 천성은 비행 능력을 이용해 간단하게 강을 넘어선 후 세 번째 관문인 시련의 늪에 도착했다.
“여기는 수은의 늪인가?”
독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천성은 아무 거리낌 없이 늪으로 향했다.
그오오오오오오!
하지만 천성의 앞에도 예외없이 수은으로 이루어진 거인이 모습을 드러냈다.
“으앗! 대체 저게 뭐지!”
기괴하게 생긴 수은 거인의 등장에 깜짝 놀란 천성이 재빨리 뒤쪽으로 물러섰다.
형체는 마치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는데, 목이 없고, 온 몸에서는 수은이 흘러내렸다.
수은 거인은 특유의 은백색 광채가 나는 거대한 몸을 움직여 천성에게 다가왔다.
거인의 움직임은 그 크기에 걸맞지 않게 매우 빨랐다.
하지만 천성에 비할 바는 아니었다.
천성의 바로 앞까지 다가온 수은 거인이 다짜고짜 주먹을 날렸다.
천성의 몸을 다 가리고도 남을 어마어마한 크기의 주먹이 날아오는 모습은 보는 이의 간담을 서늘케 했다.
후우우우웅!
거인의 주먹이 허공을 가르며 파공성이 터져 나왔다.
그사이, 천성은 영력을 끌어 올려 하늘로 솟구쳐 올랐다.
거인의 주먹은 요란한 바람 소리를 내며 빈 공간만 때렸고, 어느새 거인의 머리 위에 위치한 천성은 곧장 기탄을 쏘아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