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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딱 봐도 전각 앞에 서 있는 자들이 금화장 주인쪽의 인물들인 것으로 보이니 대치 형태로 서 있는 복면인은 침입자가 되는 셈이었다.
상황이 이쯤 되자 어느 쪽을 도와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단연경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마구잡이로 끼어들어 양쪽을 분리해 놓자니 그것도 여의치가 않았다.
소수의 전투력이 너무 막강했다.
그들 모두가 검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정도로 개개인의 실력이 뛰어났다. 다수의 무인들 틈에도 검기를 사용하는 이들이 몇 명 있었지만 질적으로 수준이 떨어졌다.
거기다 진법에 의해 빠르게 움직이는 그들의 몸놀림은 단연경도 쉽게 제압하기 어려울 정도로 강력했다.
전투 중 양방을 갈라 놓기 위해서는 그 둘을 모두 제압할 정도의 실력이 되어야 가능하다. 소수의 복면인도 상대가 어려운데 다수 쪽까지 더해지면 말 다한 것이었다.
그리고 가장 큰 문제점은 바로…….
양쪽 진영 모두에 자신과 버금가는 초고수가 하나씩 있다는 것이었다. 잘못했다간 쓸데없는 개죽음을 당할 수도 있었다.
‘난관인데, 적아를 구분하기도 애매하고 그렇다고 힘으로 양쪽을 제압하기도 그렇고…….’
단연경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망설일 때 물건을 나르고 온 자들 중 인솔자가 좀 전에 챙겼던 상자를 팔짱을 끼고 있던 이에게 다가가 건네며 무슨 말인가를 했다.
그러자 그 복면인은 상자 속에서 호로병을 꺼내 냄새를 맡고 흔들어 보더니 그의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워 보였고, 두 사람은 마주 보며 웃어 보였다.
물론 복면 때문에 얼굴이 안 보여서 정확하지는 않지만 턱의 각도와 들썩거리는 어깨의 움직임을 볼 때 분명했다.
한편 물건을 날랐던 자들은 약간 넓게 퍼지며 포위하는 형태를 취했다. 하지만 전투에 참가하거나 하지는 않았다.
하긴 딱 봐도 그들의 실력으로 전투에 참가해 봤자 소수의 복면인들의 움직임을 방해할 가능성이 있어 그냥 있는 게 돕는 것일 수도 있었다.
숫자상의 유리함을 통해 어느 정도 버티던 전황이 조금씩 소수의 복면인들에게 제압되는 형태로 변화되기 시작했다.
진법의 위력이 더욱 강력해지자 자유복의 무인들 서넛이 동시에 쓰러졌다.
그러자 상황은 더욱 빠르게 변해 버렸다. 시간을 더 끌게 되면 어느 쪽이든 전멸의 가능성이 높았다.
단연경은 자신에게 일단 시선을 돌리 게 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다.
어차피 차선책인 사자후(獅子吼)로 시선을 끌며 적을 칠 생각이었느니까 말이다. 다만 여기서 공격이 빠지는 것뿐이었다.
그 후 시선을 끌고 몇 마디 화려한 대화 후 적아를 구분해 협공하면 되는 것이었다.
결정을 한 단연경이 뛰쳐나가려는 순간 전각 앞쪽에 있던 무리에 네 명의 낯익은 얼굴이 합류하는 게 보였다.
그들은 바로 예수란, 후인동, 계도식, 판태발이었다. 예수란은 자리에 남고 후인동 등은 그들 중 가장 나이가 많아 보이는 노인에게 목례를 한 후 곧바로 전투에 참가했다.
그들이 참가한다고 해서 전황에 변화가 온 건 없었다. 하지만 단연경의 얼굴에는 아주 작은 미소가 걸렸다. 그들이 복면인들을 공격했기 때문이었다.
“우어어어!!!”
단연경의 입에서 내력이 충만한 거친 사자후(?)가 터져 나왔고, 쏜살처럼 신형이 튕겨져 나갔다.
그의 사자후(?)에 전투 중이던 무인들은 물론 그곳에 있던 모두가 일순 멈칫거렸다.
고강한 내력에 놀랐다거나 아니면 사자후에 실린 음파에 영향을 받아 그런 게 아니었다.
그저 심후한 내력의 뒷받침 속에 사자후를 가장한 듣기 거북한 다 큰 사내의 갈라진 탁한 고함에 어이가 없어서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복면을 하지 않은 이들의 얼굴 표정과 복면인들의 눈이 찌푸려지는 것에 그대로 드러났다.
‘아, 빌어먹을! 개나 소나 사자후를 터뜨렸다고? 웃기고 자빠졌네. 그냥 찢어질 듯한 고함일뿐이잖아!’
스스로도 자신의 사자후가 잘못된 것을 느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고, 지금 중요한 건 어쨌든 적들의 동작이 멈췄다는 것이었다.
단연경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고 단연경의 검이 찬란하게 빛을 뿜어내며 타올랐다.
우우웅!!!
단연경의 신형이 도달하기도 전에 세 줄기의 직선형 강기가 날아들었다.
복면인들은 깜짝 놀라 진법을 발동시키며 강기를 받아 냈다.
“강기!”
치치칙!!!
그 사이 복면인들 가운데에 내려선 단연경은 자신의 왼쪽에 있는 자의 목을 노리고 검을 움직였다.
우우웅!!!
목표가 됐던 자는 재빨리 한 발 물러났고 그의 옆에 있던 두 명이 검을 막고 그 옆쪽에 있던 자 둘이 양쪽에서 동시에 단연경의 아랫배와 왼쪽 어깨를 찔러 들어왔다.
‘헛!’
단연경은 급히 몸을 비틀어 왼쪽 어깨를 노리던 검을 회피하고 검을 회수해 아랫배 쪽으로 오는 검을 막았다. 그 사이 진법이 이동되며 등 뒤로 세 명이나 돌아가 목, 어깨, 다리를 연속으로 찔러 들어왔다.
분명 강기로 기선을 잡았고, 빠른 공격은 어지간한 쾌검수 못지않을 정도의 속도였다.
보통 이 정도면 당황하게 마련이었지만 복면인들의 대처는 능숙했다.
또한 조금 전까지 사용하던 검법이 아닌 굉장히 패도적인 검법으로 변해 있었다.
변화된 검법은 초식만 패도적인 게 아니었다. 검기가 맺혀 있던 검에서 순식간에 푸르스름한 빛줄기들이 일어나나 싶더니 강기로 변화되는 것이었다.
우우웅! 치치칙!
단연경은 몸을 회전시키며 검들을 연속으로 쳐 냈고, 강기가 부딪치며 강렬한 충격파와 빛이 터져 나왔다.
단연경과 복면인들의 전투가 개시되고 엄청난 충격파와 강기의 파편이 터져 나오자 근접해 있던 무인들 일부가 중상을 입거나 튕겨져 나갔다.
“물러서!”
누군가가 외쳤지만 이미 대다수는 물러나고 있었다. 그리고 영향권에서 벗어나자 이 상상을 초월하는 전투에 시선을 돌렸다.
단연경과 복면인들의 전투는 엄청나게 치열했다.
톱니바퀴처럼 돌아가는 진법과 강력한 검법과 강기가 사방을 에워싸는 것처럼 보였다.
물러선 무인들은 저 안에 걸려든다면 잠시도 버티기 힘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험악한 진법 안에서도 단연경은 푸른빛을 내며 타오르는 검을 휘두르며 어렵지 않게 대응하고 있었다. 아니, 그렇게 보였다.
[진법의 변화를 파악하고, 중심을 깨트리면 된다.]
진법의 변화에 대응하고 나아가 이를 파훼하는 요체였다. 각종 무공서에서도 나오는 말이고 그가 좋아하는 무협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하던 말이었다.
하지만 역시나 말이 쉽지 현실에선 결코 쉽지가 않았다. 눈이 돌아갈 정도의 속도로 공수가 주고받고 있는 상황에 그런 걸 언제 보고 생각을 하겠는가.
진법의 흐름이 물길을 따라 흐르는 물같이 일정한 것도 아니고 자신의 변화에 맞춰 함께 진법 역시 변하는데 법칙을 찾는 건 결코 쉽지가 않았다.
무엇보다 이런 강력한 진법과 이만한 고수들과 처음으로 실전을 치르는 단연경이다 보니 대응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바깥쪽에서 이를 지켜보던 이들 중 나름 무림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고수 중 몇이 복면인들의 무공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검을 사용하고 있었지만 베기 위주의 초식이었고, 그들이 행하는 초식 변화를 들어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저것은?”
한편 갑작스런 단연경의 출현과 뒤로 물러난 무림맹의 인원들 중 일부가 천랑대의 무공을 알아보는 듯싶자 적월은 급히 명을 내렸다.
“공손 장로, 자네는 백랑대를 이끌고 무림맹의 떨거지들을 당장 쓸어버리게. 우리의 정체가 알려지면 곤란하네.”
“알겠습니다. 부곡주님.”
공손월이 손짓을 하자 대기 중이던 백랑대가 일제히 움직였다.
“무공을 숨길 필요 없다! 몰살시켜라!”
“존명!”
공손월의 외침에 백랑대는 일제히 대답하며 후인동 등이 있는 무리를 덮쳐 갔다.
천랑대를 상대하느라 지친 데다 상처도 있었고, 수도 줄어 있는 상태에서 생생한 백랑대와 접전에 들자 순식간에 십여 명이 쓰러져 버렸다.
그리고 나머지들도 위태위태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었다. 버티고는 있지만 일각 이상 버티는 건 무리였다.
상황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예수란이 있던 쪽에 있던 사십대 중반가량의 강인한 인상의 각궁을 들고 있던 사내가 앞으로 한 발 나섰다.
사내는 여전히 뒤쪽에서 관전만 하고 있는 적월을 본 후 각궁에 살을 매겼다.
퉁! 씨익!
날카로운 파공성이 들렸고 빠르게 움직이는 이들 사이로 화살이 날아들었다.
“컥!”
화살은 백랑대원 중 하나의 목을 정확하게 관통했다. 진법의 변화에 따라 이동하고 또한 아군까지 움직이는 난전 속에서 정확하게 맞춘다는 건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가만히 보고만 있던 적월은 단연경이 나타나기 전까지 가장 신경 쓰였던 무인이 활을 재자 자신도 나서야겠다는 생각했다.
활이라는 게 원거리 무기에다 이런 난전 상황에 아군을 돕기엔 무리가 있다는 걸 잘 알았기에 여유를 가졌던 것이다.
하지만 활이 쏘아지고 사람들 사이를 정확하게 지나쳐 수하를 맞히는 놀라운 활 솜씨에 깜짝 놀라 급히 움직였다.
씨익! 씨익! 씨익! 차차창!
적월이 뛰쳐나가 전투가 이루어지는 곳과 사내 사이에 있는 공간을 가로막고 화살을 막아 내기까지 딱 두 호흡이었다.
그럼에도 그 짧은 순간에 백랑대원 다섯의 목에 화살이 박혀 있었다.
“이 이상 노부를 화나게 한다면 금화장을 세상에서 지워 주마.”
차가운 눈으로 적월이 자신의 독문병기인 경도(經刀)와 위도(緯刀)를 늘어뜨리며 말하자 활을 든 사내가 뭐라 하기도 전에 예수란이 대뜸 소리쳤다.
“지난번 까마귀가 형님하게 생긴 자식도 저 말 처하더만, 이 자식도 똑같이 처씨부리네. 애초에 다 죽이려고 했었잖아 이 똥개 먹는 똥 훔쳐 먹다 사래 걸려 뒈질 놈 새끼야!”
예수란의 언어 공격은 확실히 효과가 좋았다. 아주 순간이었지만 적월은 정신이 흐트러짐을 느꼈다.
도저히 그럴 것 같지 않은 외모의 여자에게 세상에서 다시 듣기 힘든 욕을 먹었으니 당연했다.
고수 간에 이런 찰나의 순간은 영원의 순간이나 마찬가지, 이때를 놓치지 않고 활을 든 사내는 화살 세 발을 동시에 날렸다.
씨익!!!
백랑대를 잡을때보다 훨씬 빠르고 강한 기가 실린 화살이었지만 쉽게 당할 적월이 아니었다.
위도로 화살의 경로를 보며 막아 내려는 순간 화살이 흩어지며 휘어졌다. 한 발은 목, 한 발은 가슴,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좀 떨어진 방향으로 휘어졌다.
“……!!!”
콰쾅!
“컥!”
두 발을 막아 내는 순간 뒤쪽에 신음성이 터졌다. 적월은 흠칫해 뒤를 보았고 그런 그의 시선에 백랑대원 하나가 목에 화살을 맞은 채 쓰러지다 옆에 있던 자의 검에 머리가 날아가는 게 보였다.
적월이 사내 쪽으로 시선을 돌려 분노의 일갈을 터뜨렸다.
“이놈! 죽여 주…….”
하지만 끝까지 말을 할 수 없었다.
사내의 손이 빠르게 움직였고, 화살이 엄청나게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싸움은 입으로 하는 게 아니다.”
사내의 입에서 무감정한 말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그의 손은 번개처럼 움직였고, 화살은 두 발 혹은 세 발씩 연속적으로 쏘아져 나갔다.
적월은 어떻게든 앞으로 전진을 하려 했지만 딱 두 발 자국만 전진하고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처음에는 활을 우습게 생각했었다. 암기와 다르게 활은 걸고, 당기고, 쏘고를 반복해야 되었기에 시간 차가 있게 마련이었다.
또 한 번에 서너 발 이상은 힘들었고 설령 여러 발을 쏴도 목표 지점은 한정적이었기에 막기도 쉬울 것이라 생각했다.
물론 상대가 자신에 버금가는 실력자라는 것이 조금 마음에 걸렸지만 어쨌든 활이라는 원거리 무기의 특성상 거리만 좁히면 자신이 유리할 것이었다.
원거리 무기는 가장 중요한 게 거리 유지였다. 그래서 원거리 무기를 사용하는 이들은 특히 보법이나 경공이 뛰어났다.
분명 활을 쓰는 이 사내도 그럴 것이었으나, 그는 지금 호위를 해야 하는 입장이니 그 자리에서 벗어나지 못할 게 뻔했다.
그런 계산이 있었는데 뜻밖에도 전혀 전진이 불가능했다. 한꺼번에 활을 쏨에도 속도가 제각각이었다. 거기에다 화살이 아까 보여 줬듯이 휘어져서 날아온다는 점이었다.
결과적으로 한 명이 쏘는 게 아니고 마치 여러 명이 쏘는 효과가 나타났고 적월은 쉽게 전진하지 못하고 있었다.
‘몽고 놈들도 이런 식으로 활을 못 썼는데……. 어쨌든 시간만 흐르면 내가 이긴다. 화살이 떨어질 테니…… 이런 젠장!’
이런 계산을 하며 뒤쪽을 봤는데 화살이 천 개는 훌쩍 넘게 담긴 통을 계집애들이 끙끙거리며 들고 오는 게 보였다.
이래선 화살이 떨어지는 걸 기다릴 처지가 아니었다. 어떻게든 화살비를 뚫고 전진하는 것만이 방법이었다.
적월과 사내와의 거리는 오 장, 일각이 흐른 뒤 간신히 일 장을 좁힐 수 있었지만 뒤쪽에서 격전을 펼치고 있었던 백랑대의 기운이 거의 느껴지질 않았다.
‘설마?’
간간이 화살이 뒤쪽으로 날아갔었다. 아까도 본 상황인지라 적월은 혹시하는 마음에 뒤쪽을 돌아봤다.
‘빌어먹을…….’
백랑대 이 개 조 스무 명 중에 살아서 움직이는 자가 고작 여섯이었다. 다행이라면 무림맹 측의 무인들 중 살아남은 이들은 없었고, 뒤늦게 합류한 금화장 소속 무인 셋만 남아 있다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