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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재천 5(23화)
7장 드러나는 비밀(2)
“대체 그렇다면 왜 그동안 손을 쓰지 않은 겁니까? 오히려 힘을 키워 주고?”
처음 열쇠를 찾으러 갔을 때 죽이고 태초의 파편을 빼앗아 갔으면 더 쉬웠을 것인데, 왜 이제까지 기다린 것인지 의문스러웠다.
“물론 나야 그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 하지만 나는 여와에 의해 열쇠에 봉인된 몸이었다네. 그 상태에서는 자네에게 아무런 물리적 타격을 줄 수 없었지. 현신을 하지 않는 한 태초의 파편을 소유할 수도 없고. 하지만 여와에게 현신을 허락받은 유일한 시간과 장소가 있다네. 바로 인간들이 유물을 찾으러 왔을 때! 이곳 수정궁에서만 반나절 동안의 현신이 허락되지!”
한마디로 이곳에서만 천성을 죽일 수 있다는 이야기였다.
이로써 복희가 천성을 죽이고 ‘태초의 파편’을 얻으려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 이상 천성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천성은 영력을 끌어 올렸다.
“흠, 그간 자네를 제법 도운 은혜도 있으니 그냥 쉽게 나에게 ‘태초의 파편’을 바치는 것은 어떻겠나? 어차피 자네는 내 상대가 되지 않는다네.”
마치 선심을 쓰듯 말하는 복희의 얼굴에 천성은 당장에라도 주먹을 꽂아 주고 싶었다.
그럴듯한 말로 치장했지만, 결국 복희도 치우나 헌원처럼 다른 이가 어떻게 되든 자신의 욕심을 채우려는 존재에 불과했다.
“흥, 난 당신에게 도움을 바란 적이 없소! 거기다 오히려 당신이 나에게 유물을 찾아 달라고 부탁했지!”
천성은 그제야 왜 복희가 그토록 자신에게 유물을 찾아 달라 부탁했는지 알 수 있었다.
아무리 여와의 안배라지만 열쇠의 힘을 거리낌 없이 준 이유도 결국 천성이 유물을 찾도록 유혹하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뭐, 그렇다면 내가 고맙다고 해야겠군. 그리고 미안하네. 나도 이것이 욕심이라는 것을 알지만, 헌원이나 치우 일족의 저급한 탐욕과는 분명 다르다네. 이 우주에서 가장 고귀한 존재를 탄생시키기 위해 그대의 희생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욕심 많은 인간들과 함께 지내더니 정신이 어떻게 된 것 아니오? 초월자가 탄생하든 소멸하든 내가 죽으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이오? 세상이 멸망하든 후손들이 대대로 잘 살든 내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지! 그러니 당신 또한 그토록 스스로의 존재를 증명하기 위해 애쓰는 거겠지! 그렇다면 다른 존재 또한 그만큼 소중하다는 것을 왜 모르는 거요!”
“후후, 그렇다면 협상은 결렬이로군. 어쩔 수 없지. 나를 원망 말게나.”
우우우우웅!
순간, 복희의 전신에서 막대한 기운이 일어났다.
‘대체 어떻게 내 목숨을 쉽게 내놓느냐, 버티다 내놓느냐가 협상거리가 된단 말인가.’
정말 복희는 정신이 어떻게 된 것이 분명했다.
천성은 복희가 힘을 완전히 끌어 올리기 전에 먼저 공격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파파파파파팡!
스무 발의 기탄을 쏘아 내며 천성이 몸을 가속했다.
터터터터텅!
하지만 기탄들은 복희의 근처에서 마치 투명한 벽에 부딪친 듯 뒤로 튕겨 나갔다.
그때, 어느새 복희의 머리 위로 솟아오른 천성이 발길질을 날렸다.
퍼퍼퍼퍼퍽!
하지만 그조차 복희를 둘러싼 투명한 막을 뚫지 못했다.
“어리석은지고. 어찌 인간이 신을 이기려 하는가!”
마치 자신이 신이라도 된 양 의기양양한 모습에 천성은 왠지 모를 반발심이 들었다.
‘어차피 신의 껍데기에 불과한 주제에!’
영력을 최대한 끌어 올린 천성이 무차별로 공격을 퍼부었다.
눈으로 쫓을 수 없을 정도의 빠른 속도로 주먹과 발길질이 수십 차례 복희에게 작렬했다.
콰콰콰콰쾅!
하지만 복희는 꿈쩍도 하지 않고 천성의 모든 공격을 막아 냈다.
‘젠장, 초월자의 권능이라는 것이 이렇게 대단한 것인가?’
천성은 이를 악물었다.
아무리 복희가 초월자의 권능을 사용할 수 있다 해도 한계가 있었다.
한데도 자신은 그의 옷깃조차 건드리지 못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초월자라는 존재의 힘은 대체 어느 정도란 말인가.
콰아아아아앙!
공격의 여파로 석실은 금방이라도 무너져 내릴 듯 흔들렸다.
두 존재의 격돌로 생겨난 어마어마한 충격파에 헌원 일족과 치우 일족은 온 힘을 끌어 올려 저항했다.
“허, 과연 저것이 인간의 힘이란 말인가!”
복희와 맞서는 천성의 신위에 두 일족이 탄성을 토해 냈다.
용천광은 저런 자를 적으로 만든 자신의 어리석음을 탓했다.
한편, 천성은 이런 식으로는 복희의 투명한 막을 뚫는 것조차도 어렵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정호에서 사용했던 방법을 써 보자!’
천성은 영력을 압축해 송곳 모양으로 만들었다.
어느 정도 영력이 모양을 이루자 천성은 그것을 회전시켰다.
우우우우웅!
회전하는 영력의 송곳이 복희의 투명한 막과 부딪쳤다.
지이이이잉!
그러자 마치 쇠가 갈리는 소리가 나며 복희의 막에 조금씩 균열이 생겨났다.
“호, 제법이군. 그 정도까지 실력이 늘었으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는데, 짧은 시간에 대단한 발전이군.”
복희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천성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의 얼굴에서 긴장감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순간, 복희의 눈에서 푸른빛이 터져 나왔다.
쩌어어어엉!
“크윽!”
대기를 찢어발기는 듯한 굉음이 터져 나오는 것과 동시에 천성의 신형이 뒤로 튕겨져 나갔다.
워낙에 순식간에 벌어진 일이라 대체 어떻게 된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단지 빛이 번쩍인다 싶은 순간에 천성은 충격을 받고 뒤로 튕겨 나간 것이다.
‘이게 대체 뭐지?’
마치 거대한 망치로 온몸을 얻어맞은 듯한 느낌이었다.
다행히 큰 부상은 없었으나 두려움을 느끼기에 충분히 압도적인 힘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천성이 미처 자세를 잡기도 전에 두 번째 빛이 터져 나왔다.
번쩍!
쿵!
강력한 충격파에 그대로 석실 벽에 부딪친 천성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크윽!”
속이 뒤집어질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훗훗. 이거, 실망이군그래. 그래도 어느 정도는 나를 즐겁게 해 주리라 생각했는데.”
복희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비릿한 미소를 지었다.
“응?”
한데 미소를 짓던 복희의 고개가 일순 입구 쪽을 향했다.
새로운 존재가 나타난 것이다.
그는 바로 천성의 뒤를 쫓아 유적의 입구로 들어온 백담이었다.
수정궁 안쪽의 상황을 접한 백담이 움찔했다.
“그대도 이 행성의 존재가 아니군? 나를 방해할 생각인가?”
“하하, 전혀 그럴 생각은 없으니 하던 일 마저 하시오.”
백담이 급히 고개를 흔들며 자신은 아무 연관이 없음을 밝혔다.
아무리 봐도 복희의 기세는 자신이 어찌할 수 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그 말 지키기 바라네. 어차피 그대가 끼어든다 해도 소용은 없겠지만. 귀찮은 건 질색이거든.”
복희는 번들거리는 눈으로 백담을 한 번 노려보고는 다시 천성에게 고개를 돌렸다.
“그럼 이제 그만 끝내도록 할까.”
우우우우웅!
순간, 복희가 손을 뻗자 낮은 진동음과 함께 갑자기 온몸을 압박하는 느낌에 천성은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다.
파지직!
어느새 천성의 앞에 나타난 복희가 뇌전이 흐르는 오른손을 뻗어 천성의 왼쪽 가슴으로 가져갔다.
“크윽!”
천성은 영력을 최대한 끌어 올려 저항해 보았지만, 두 번의 빛 공격으로 받은 충격이 너무 컸다.
그런 탓에 복희의 손이 왼쪽 가슴으로 파고드는 데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끄으윽!”
왼쪽 가슴에서 참을 수 없는 고통이 엄습했다.
복희의 다섯 손가락이 천성의 심장을 잡는 것이 느껴지며, 그와 함께 천성의 가슴에서 붉은빛이 뿜어져 나왔다.
심장에 봉인된 태초의 파편으로부터 나오는 빛이었다.
참으로 어이없는 결과였다.
그동안 치우 일족을 쉽게 상대하면서 어느 정도 자만에 빠져 있던 자신이 너무도 한심했다.
‘만일 조금만 더 노력해서 세 번째 단계를 넘어섰다면…….’
아직 세 번째 단계를 넘어서지 못한 것이 너무도 뼈아팠다.
세 번째 단계는 두 번째 단계와는 그 능력의 차이가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엄청나다고 들었다.
하지만 이제 와 후회해 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죽는 것인가…….’
“하하하하하! 드디어 태초의 파편이 내 손에 들어오는구나!”
복희가 천성의 심장을 막 밖으로 끄집어내려는 순간이었다.
콰아아앙!
굉음과 함께 수정궁의 입구가 터져 나갔다.
갑작스러운 사태에 놀란 복희가 동작을 멈추고 입구를 바라보았다.
그와 함께 등장한 것은 놀랍게도 처음 보는 생명체였다.
마치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으나 온몸은 금속처럼 은백색으로 빛났고, 키가 족히 십 척은 될 듯한 거인이었다.
게다가 좌우로 각각 세 개의 팔을 가지고 있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이마가 세로로 갈라져 그 속에 또 하나의 눈이 존재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태초의 파편을 내놔라!”
정체불명의 생명체가 기괴한 목소리와 함께 순간 사라졌다.
콰아아아아앙!
석실이 떠나갈 듯한 굉음과 눈부신 섬광에 모두 고개를 숙이고 귀를 틀어막았다.
충격이 어느 정도 진정되고 고개를 든 그들이 본 것은 괴생명체와 복희가 손을 맞대고 있는 장면이었다.
두 존재를 중심으로 주변의 공간이 마치 일그러지듯 흐물거리고 있었다.
놀랍게도 괴생명체는 복희에게 전혀 밀리지 않았다.
“대체 저 괴물은 정체가 무엇이란 말인가!”
용천광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두 존재의 대결을 바라보았다.
복희는 그들에게 있어 신과 같은 존재였다.
그들이 두려워했던 흑협마저도 복희에겐 한주먹감도 안 되었다.
한데 괴생명체는 그런 복희와 대등하게 맞서고 있는 것이다.
한편, 천성은 두 존재의 격돌의 여파로 의식을 잃은 채 한쪽 구석으로 튕겨 나가 있었다.
구멍이 뚫린 가슴에서는 아직도 피와 붉은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때, 백담이 얼른 천성에게 다가갔다.
“다행히 죽진 않았군!”
죽지만 않았다면 태초의 파편으로 인해 금세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정신 차려!”
백담은 급히 천성을 깨웠다.
이대로 기절해 있을 틈이 없었다.
두 존재 중 하나가 승리하기 전에 도망치든지 천성을 원래대로 돌려놔야 했다.
“으음…….”
천성이 고통 속에서 천천히 눈을 떴다.
막 심장이 복희의 손에 뽑혀 나가는 순간, 커다란 충격으로 정신을 잃었다.
한데 눈을 떠 보니 아직 석실 안이었다.
“내…… 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인가? 크윽.”
가슴의 상처는 어쩐 일인지 쉽게 재생되지가 않았다.
아마도 복희가 무슨 수작을 부린 듯했다.
“배, 백담?”
천성이 백담을 알아보고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그래, 나다!”
“저, 저것은 뭐지?”
천성이 복희와 맞서고 있는 괴생명체를 발견하고는 놀라 물었다.
“내가 전에 말했던 생체 병기야. 저 무시무시한 로안조차도 함부로 어쩌지 못하는 존재가 바로 저것이지. 네 녀석이 목숨이 위험한 순간인지라 내가 이곳으로 불러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최악의 선택이지. 둘 중 누가 이기든 너에겐 죽음뿐이야. 방법은 단 하나! 네가 태초의 파편의 힘을 받아들여 세 번째 단계는 물론 네 번째 단계까지 넘어서는 수밖에 없어!”
백담의 말에 천성의 표정이 굳어졌다.
열쇠의 힘을 다섯 개 흡수하고도 세 번째 단계를 넘어서지 못했다.
한데 지금 여기서, 그것도 당장에 두 개의 단계를 돌파해야 한다니.
그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천성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렇게 하지 못한다면 결국 죽게 될 것이니.
그나마 복희가 이긴다면 초월자 하나가 탄생하고 말겠지만, 생체 병기가 이긴다면 전 우주는 로안이라는 파괴의 신을 만나게 될 것이다.
“내 말 잘 들어. 지금 너의 심장에서 스며 나오고 있는 ‘태초의 파편’의 기운에 집중해. 영안을 최대한 열어 그 힘과 동화하도록 해라. 그 힘을 네가 받아들일 수 있다면 세 번째는 물론, 네 번째를 넘어서는 것도 결코 불가능하지 않아!”
백담의 말에 천성은 눈을 감고 정신을 집중했다.
천성으로서는 마지막 일말의 가능성에 도박을 걸어 볼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