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영웅재천 5(24화)
7장 드러나는 비밀(3)
석실로 들어서는 인물들이 점차 늘어났다.
생체 병기가 모든 관문을 힘으로 부숴 버렸기 때문에 관문에서 살아남은 이들이 손쉽게 석실로 들어온 것이다.
그중에는 무림맹주와 마련주의 모습도 보였다.
하지만 처음 유적으로 들어온 인원을 생각하면 살아남은 자의 수는 채 일 할도 되지 않았다.
아무리 관문이 부서졌다 하나 독강(毒江)과 수은 증기를 통과할 만큼 공력이 높은 이들이 많지 않았기 때문이다.
석실로 들어선 이들은 눈앞에 벌어진 모습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허! 어찌 이런 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남궁영이 갑자기 쏟아지는 압력을 버텨 내며 탄성을 토했다.
현경을 이룬 그였지만, 눈앞에 펼쳐진 두 존재의 능력은 감히 파악조차 하지 못할 엄청난 것이었다.
혁련우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진기를 끌어 올려 압력을 버텨 내는 와중에도 그는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세상에 저런 자들이 존재하다니!”
화경을 넘어선 이들조차 신음성을 토해 낼 정도로 막강한 기세였다.
석실이 무너지지 않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두 존재는 한 치의 양보도 없이 치열한 대결을 펼쳤다.
그저 가만히 서서 손을 맞대고 있는 듯 보였으나, 둘 간에 오가는 힘은 인간의 상식을 넘어선 것이었다.
두 사람 간에는 보이지 않는 수많은 기파들이 오가며 서로를 공격하고 혹은 튕겨 내고 있었다.
우우우우우웅!
구오오오오오!
대기와 석실의 천장과 바닥, 모든 것이 생체 병기와 복희의 거대한 힘에 몸서리쳤다.
힘이 점점 커지면서 붙어 있던 두 사람의 손은 자석의 같은 극이 서로 밀어내듯 점점 멀어졌다.
그 사이로 기의 소용돌이가 생겨나 주변의 모든 것을 빨아들였다.
쿠오오오오오!
“크으윽!”
석실로 들어선 이들 중 공력이 딸리는 자들은 기의 폭풍에 휘말려 순식간에 핏물로 화했다.
“조심하라!”
“모두 여기서 벗어나라!”
무림맹과 마련의 인물들이 혼비백산하여 석실을 벗어났다.
도무지 상대할 엄두조차 나지 않는 두 존재의 위압감에 유물을 얻겠다는 생각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어느새 두 존재는 서로 다섯 장이나 되는 거리만큼 떨어져 있었고, 그 사이로 기의 폭풍이 맹렬히 몰아치고 있었다.
거대해진 기의 폭풍은 주변의 모든 것을 집어삼킬 듯 광포하게 울부짖고 있었다.
파지지지직!
순간, 두 존재 사이로 뇌전이 빛을 뿜기 시작했다.
“크으으! 놀랍군! 아무리 완벽한 권능이 아니라 해도 초월자의 권능을 막아 내는 존재가 있을 줄이야! 대체 네놈의 정체가 무엇인가!”
복희가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소리쳤다.
“태초의 파편을 입수한다. 임무를 방해하는 존재는 모두 말살한다.”
아무런 감정이 담기지 않은 건조한 목소리로 생체 병기가 엉뚱한 대답을 했다.
“아무래도 생명체가 아닌 듯하군. 그렇다면 나와 닮은 점이 있구나. 크하하하하! 어디, 네 녀석이 이기나 내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
쿠오오오오오!
광소를 터뜨린 복희의 온몸에서 뇌전이 뿜어져 나왔다.
파지지지직!
순간, 사람 몸통만 한 뇌전 다발이 생체 병기를 직격했다.
콰아아아앙!
뇌전 다발에 직격당한 생체 병기의 오른쪽 두 개의 팔이 터져 나갔다.
“맛이 어떠냐!”
하지만 다음 순간,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다시 두 개의 팔이 몸으로 부터 솟아났다.
“허! 제법 놀라운 재주를 가지고 있구나! 어디, 이것도 막아 봐라!”
콰콰콰콰콰쾅!
복희가 만들어 낸 수십 개의 뇌전 다발들이 연속적으로 생체 병기에 직격하며 폭음이 터져 나왔다.
* * *
한편, 천성은 태초의 파편에 모든 의식을 집중했다.
영안을 연 후 ‘태초의 파편’의 기운을 자세히 살폈다.
그 기운은 참으로 신비하고 오묘해서 이제껏 천성이 결코 접하지 못한 것이었다.
하지만 왠지 익숙하고 친숙한 느낌이 드는 것은 아마도 천성의 육신이 태초의 파편으로 인해 재구성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천성의 몸은 그 기운에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그 기운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를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그야말로 ‘태초의 혼돈’, ‘근원의 근원’, ‘끝이며 시작’인 존재였다.
어떠한 법칙도 그 안에서 부서졌고, 어떠한 질서도 그 안에서는 흩어져 버렸다.
부서진 것은 온전해졌으며, 온전한 것은 파괴되었다.
‘아! 정말 놀랍구나!’
절로 탄성이 터져 나왔다.
천성의 의식은 점점 태초의 파편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파편 속 혼돈을 부유하던 천성의 심상에 거대한 우주가 보였다.
천성은 경이에 빠져 우주를 향해 손을 뻗었다.
순간, 그 우주는 한 점으로 화해 사라져 버리고, 공간과 시간마저 사라져 버렸다.
그저 천성의 의식만이 파편 속에 존재했다.
그때, 아무것도 없는 무(無)로부터 한 줄기 의지가 일어나더니 섬광과 함께 공간과 시간이 생성되었다.
그 뒤로 수많은 별들이 태어나고 생명과 문명이 탄생했다.
처음 그 한 줄기 의지는 전 우주로 흩어져 작은 파편이 되어 부유했다.
천성은 환희에 가득 차 그 모든 광경을 지켜보았다.
마치 온 우주가 천성과 함께 숨을 쉬고 있는 듯한 벅찬 감동이 영혼을 지배했다.
순간, 천성의 영안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쩌어어억!
콰아아아아앙!
머릿속에서 일어난 폭발이 한순간 천성의 온몸을 관통했다.
쿠아아아앙!
혼돈의 기운이 노도처럼 온몸을 난도질하고 부숴 버렸다.
다섯 개의 기문이 가루가 되어 사라지고, 천성의 육신도 한 점으로 빨려 들어가 사라져 버렸다.
“헉!”
놀란 백담이 헛바람을 들이켰다.
후우우웅!
순간, 허공에 하나의 점이 생겨나더니, 섬광과 함께 강력한 폭발이 일어났다.
콰아아아앙!
폭발의 위력이 너무도 어마어마해서 생체 병기와 복희의 싸움마저 멈춰질 정도였다.
하지만 놀랍게도 가장 가까이 있던 백담은 멀쩡한 모습으로 어느새 섬광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옮겨져 있었다.
“이,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분명 자신은 폭발에 휩쓸렸다.
한데 아무런 상처나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백담을 비롯한 모든 이의 시선이 폭발이 일어난 곳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는 아직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의 광채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그 가운데로 희미한 형상이 자리 잡고 있었는데, 그 윤곽이 인간의 모습과 흡사했다.
점차 빛이 줄어들고 은은한 광채만이 남았을 때, 그 존재가 드러난 형체는 바로 흑협이었다.
외부의 사람에게는 폭발과 함께 갑자기 나타난 듯 보였으나, 사실 천성은 그 안에서 영겁의 시간을 겪었다.
우주가 탄생하고 소멸하는 경험을 수차례 마주한 후에야 육신이 다시 생성되고 의식이 그 안에 머물게 된 것이다.
그것은 참으로 놀라운 경험이었다.
마치 그동안 천성을 감싸고 있던 두꺼운 껍질이 깨지고 숨겨져 있던 날개가 펼쳐진 듯한 느낌이었다.
천성은 일단 영안을 열어 자신의 몸 상태를 살폈다.
놀랍게도 영안의 크기가 온몸을 감싸고도 넘칠 정도로 커져 있었다.
거기다 가운데 위치한 핵이 빠른 속도로 회전하고 있었으며, 그 주위로 영력의 소용돌이가 감싸고 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다섯 개의 기문은 광사(光絲)라 불리는, 빛이 나는 선으로 연결되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무숙이 말했던 네 번째 단계에서 볼 수 있는 모습이었다.
‘정말 한 번에 네 번째 단계에 으를 수 있을 줄이야!’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도한 일이었다.
한데 정말 해낸 것이다.
천성 스스로도 믿지 못할 놀라운 결과였다.
‘다행히도 변신한 모습 그대로군.’
신기하게도 육신이 사라졌다 다시 생성되었음에도 흑협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천성은 미처 모르고 있지만, 이미 네 번째 단계를 넘어선 터였기에 의지의 발현이 자유로운 상황이었다.
정체를 숨겨야 한다는 의지가 우주와 간섭해서 그의 모습을 흑협인 채로 유지시킨 것이다.
이제 천성은 그야말로 반신의 존재와 같았다.
“그대가 어찌?”
복희가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천성을 바라보았다.
천성에게서는 지금 아무런 기운도 느껴지지 않았다.
하지만 범접할 수 없는 정체 모를 위압감이 복희조차 감히 함부로 움직이지 못하도록 만들었다.
“태초의 파편을 회수한다.”
하지만 생체 병기는 그것을 알지 못했다.
스팟!
마치 허깨비처럼 모습이 사라진 생체 병기가 순간 이동이라도 한 듯 어느새 천성의 눈앞에 나타났다.
우우우우웅!
그때, 천성의 입꼬리가 슬쩍 위로 올라갔다.
그러자 시간의 흐름이 천성을 중심으로 왜곡되었다.
생체 병기는 허공에 뜬 채 석상처럼 움직임을 멈췄다.
천성이 네 번째 단계에 들어서서 얻은 첫 번째 권능, 시간 왜곡이 펼쳐진 것이다.
백담과 복희는 갑자기 멈춰 버린 생체 병기의 모습을 영문을 모른 채 쳐다봤다.
그때, 천성의 입술이 움직였다.
“사라져라!”
확장된 영안으로 의지가 발현되고, 영력이 빛으로 변해 터져 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