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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금화장의 참화가 있고 보름이 지났을 무렵, 무림은 술렁거리기 시작했다.
먼 옛날부터 전해 오던 전설의 물건. 바로 진시황릉의 위치가 담긴 세 가지 물건 중 하나를 무림맹에서 가지고 있다는 소문이 퍼진 것이다.
진시황릉.
춘추전국시대라 일컬어질 정도로 혼란스러웠던 중원을 고작 십여 년 만에 통일한 자, 황제란 이름을 처음 사용한 자, 수많은 지식인을 무참히 학살한 자. 그밖에도 수없이 많은 칭호를 가지고 있는 대단한 인물이 묻힌 곳이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의 진묘를 찾지 못한 상황이었는데 이는 그가 자신의 진묘를 찾지 못하도록 해 둔 까닭이었다.
진시황의 묘에 사람들이 관심을 갖는 건 그의 전설 때문이다.
진나라의 힘없는 왕족 아버지에게서 조나라에 인질로 가 평생을 그곳에서 살다 죽었을 진시황이었다. 그러나 여불위라는 인물의 술책으로 조나라에서 나온 건 물론 왕위를 계승하기까지 했다.
진시황은 영특하기는 했으나 어려서 몸이 대단히 약했다고 한다.
고작 십삼 세의 나이에 왕위에 오른 진시황은 당시만 해도 권력이 작고, 몸마저 약해 그저 여불위의 권세에 밀린 힘없는 왕으로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사람이 변하더니 엄청난 무위를 내보이며 종내에는 정적들을 일시에 숙청해 버렸다.
그러고는 전국시대의 나라 중 가장 힘없는 나라였던 진나라를 단숨에 강국으로 발돋움시키더니 고작 십여 년 만에 중원을 통일시켜 버렸다.
그가 이런 대업을 달성한 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가 우연히 구한 보검의 힘으로 막강한 힘과 지혜를 얻었다는 야사가 전해지고 있다.
그 검의 이름은 천룡신검(天龍神劍)이라 전해지고 있으며, 이 검을 얻는 자는 능히 천하를 얻는다 하여 역대 수많은 영웅들이 이 검을 찾고자 백방으로 노력했었다.
그밖에도 진시황은 여러 왕조를 무너뜨렸고 그 과정에 각 왕조의 재화를 탈취해 넘치도록 가지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진시황은 자신의 제국을 영원히 다스리기 위해 불로초를 찾게 하고 한편으로는 불노불사의 약을 만들게 하기도 했다.
물론 그 과정에 여러 가지 일이 벌어졌고, 끝내는 불로초는 구하지 못했지만 수많은 실험 끝에 엄청난 영약을 만들어 냈다고 한다.
진시황은 이런 사실에 크게 기뻐했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인지 그 많던 보물과 영약을 제대로 사용해 보기도 전에 나라를 순방하던 중 갑작스런 병을 얻어 며칠만에 급사하고 말았다.
그는 이미 거대한 황궁에 비견될 만한 자신의 능을 건설해 두고 이곳에 재화 등을 옮겨 둔 상태였었다.
불로초를 찾으며 영생을 추구했던 그가 자신의 능을 건설한 이유는 통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한 도인으로부터 자신의 운명이 그리 길지 않다는 소리를 들어서 미리 준비한 것이었다.
그리고 실제로 갑작스럽게 병을 얻고 급격히 상세가 나빠지자, 만들어진 영약을 자신의 능으로 옮기도록 하고 자신도 측근 몇 명만을 대동하고 능으로 향했다.
그리고 그것이 진시황 행적의 끝이었고, 훗날 사가들은 순방 중 급사로 기록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진시황은 자신의 운명을 예견했기에 혹시 자신이 병을 치료하고 깨어나기 전에 공격을 받을까 두려워해 위묘를 수없이 만들고, 또한 진묘를 만든 자들은 모조리 죽이는 만행을 저질렀다.
그러나 진묘를 만드는 일의 핵심 책임자였던 자는 진시황의 내심을 파악하고 있어 훗날 자신의 후손들이 자신의 한을 풀어 주길 바라며 진묘의 위치와 안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을 몰래 남겼다고 한다.
그가 남긴 것은 암호화된 지도와 이를 해독할 수 있는 장비, 그리고 진묘에 펼쳐진 진법과 기관을 멈추게 하는 열쇠였다.
진시황 사후 그 사내의 아들들은 이를 바탕으로 진묘를 찾으려 했지만 욕심에 눈이 멀어 형제들 간에 골육상잔이 벌어져 이 세 가지가 천하로 흩어지게 되었다.
그리고 그 보물은 천하에 각각 한 번씩 나타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하다 다시 하나가 나타난 것이었다.

시간이 흘러 뜨거웠던 여름이 슬슬 지나가려는 듯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해가 지자 역시나 시원한 바람이 솔솔 불었다. 하지만 예광기의 얼굴엔 근심이 가득했고, 불과 몇 달 사이에 몇 년은 늙어 버린 듯 보였다.
“지급준비율은 몇 할 정도 되느냐?”
“사 할 오 푼 칠 리입니다.”
예사란이 답하자 예광기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그나마 버틸 수 있는 수준은 되지만 이래선 정말 곤란하구나.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진행 상황이 빨라.”
“이 속도로 가다가는 중추절 이전에 지급준비율이 일 할 밑으로 내려갈 듯싶습니다.”
“상단과 표국에서의 수급으로도 그 정도더냐?”
“예. 호북, 호남, 안휘 삼성의 전장이 연속적으로 공격받고, 표국과 상단에서도 세 차례에 걸쳐 공격을 받아 보상금이 꽤 많이 들어갔습니다. 거기다 거래처에서 우리와 거래를 하면 위험하다는 소문까지 나면서 거래를 종료할 것을 통보해 왔습니다.”
예광기는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자리에서 일어나 밖으로 나왔고 그 뒤로 예사란과 최기원이 따라와 나란히 섰다.
“아무래도 두 번째 계획을 실행해야겠구나.”
조금 전까지 피곤에 찌든 말이 아닌 무척이나 홀가분하고 담담한 어투였다.
“정녕 그러셔야 합니까? 비록 관에서 여력이 없다 하여 모른 척하고는 있지만 안가에 넣어 둔 돈을 꺼내 와 최선을 다하면 다시 예전의 성세를 찾을 수 있을 겁니다.”
“아니야. 안가의 돈이라고 해 봤자 얼마 안 되지 않더냐. 거기다 우리가 이 정도까지 몰린 이유는 백운곡뿐 아니라, 다른 가문과 무림맹도 한 팔 거들기 때문이란 걸 너도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 금화장이란 이름을 살리겠다고 노력하는 건 마른 우물에 물을 부어 넣는 짓이나 마찬가지다.”
예광기의 말에 예사란은 고개를 떨구었다. 사실 이번 일 때문이 아니라 언제고 금화장이 위기에 처하면 과감히 이를 버리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도록 또 하나의 사업체가 준비되어 있었다.
다만 선대에서부터 뿌리 내려온 이곳을 떠나야 하고 가업을 한순간이지만 포기해야만 하는 것이 안타까울 뿐이었다.
“내일부터 사란이 너는 수란이와 더불어 안가로 옮길 채비를 하거라.”
“예. 할아버지.”
“이제 좀 쉬고 싶으니 돌아가 보거라.”
예광기가 처소로 향하자 최기원도 그 뒤를 따라 움직이다 문득 멈추더니 예사란을 향해 말했다.
“너무 심려치 말거라. 네 할아버지는 네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강하신 분이시다.”
늘 담담하고 부드러운 표정의 예사란이었지만 깊은 곳에 숨겨진 그녀의 근심을 못 알아볼 최기원이 아니었다. 그에게 있어서 예사란과 예수란 두 자매는 친조카와 마찬가지였으니까.
그리고 예사란 역시 언제나 무뚝뚝하기만 한 최기원이 자신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걱정하는지 잘 알기에 그의 말에 연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알고 있습니다. 저 역시 백부님이 생각하시는 것보다 훨씬 더 강하니 너무 심려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녀의 말에 최기원의 눈끝이 살짝 움직였다.
“오냐. 너도 그만 쉬거라.”
원체 표정이 없는 최기원이었지만 조금 전의 그 작은 움직임은 그가 미소를 지은 것임을 안 그녀는 마음이 따스해짐을 느끼며 발걸음을 옮겼다.
자신의 처소로 가기 전에 예사란은 마지막으로 상품 등을 확인하며 움직였다.
금화장 내에는 판매를 위한 상품들이 아직도 제법 남아 있어 이에 대한 확인은 매일같이 해 두어야만 했다.
마지막으로 상품을 확인한 후 처소로 발걸음을 옮기려 할 때 바깥쪽에서 떠들썩한 소리가 들려왔고 곧 문이 활짝 열리며 물건들을 옮겨 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뒤로 앙칼진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거 충격받으면 상품성을 잃으니까 조심하라구요! 거기! 그건 저쪽으로 가서 세척해야 된다고 했잖아요!”
예사란은 처소로 가던 발걸음을 멈추고 목소리의 주인공이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팔을 걷어붙인 채 경장을 입은 예수란이 소리를 지르며 들어왔다.
“어서 와.”
“언니!”
예수란은 예사란을 향해 달려 안겨들었다. 나이 터울이라고 해 봤자 네 살밖에 나지 않았지만 어려서부터 그녀를 엄마만큼이나 따르던 예수란이었다.
“어서 와라. 고생 많았지?”
등을 부드럽게 토닥여 주며 말하자 예수란은 그녀의 향을 깊이 들여마시며 말했다.
“고생 많았지. 노숙에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 냄새에 쩔었는데. 아, 언니 냄새 너무 좋다.”
거의 이십 일 만에 돌아와 예사란에게 어린양을 하며 기분 좋은 시간을 좀 더 가지고 싶었다. 그러나 그런 그녀의 생각은 무참히 깨지고 말았다.
“못 씻은 게 아니고 안 씻은 거겠지. 난 충분히 자주 씻었으니까.”
그 말과 함께 깔끔하게 정돈된 모습의 단연경이 들어서더니 예사란에게 포권을 취해보였다.
“그간 잘 지내셨습니까?”
“수고하셨습니다. 단 부총관님.”
예사란이 안겨 있던 예수란을 떼어 내며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러자 예수란은 자신의 시간을 방해한 데다 미운 소리까지 한 단연경을 향해 도끼눈을 하고 노려봤다.
하지만 하루 이틀 그러는 것도 아니었기에 단연경은 가볍게 무시하고는 예사란과 대화를 이어 갔다.
“물품 중 값나가는 것 일곱 가지는 이미 외부로 반출되고 없어 그건 회수하지 못했습니다. 추적을 할까도 했지만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처분 상대가 누구인지 알 길이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지요. 수고하셨으니 이만 돌아가 쉬도록 하세요. 이곳 정리는 저희들에게 맡기시구요.”
“아닙니다. 물품을 확인하고 쉬도록 하지요.”
그렇게 말한 단연경은 능숙하게 사람들을 부리며 정리를 시작했다.
예수란은 언제나 자신에게 대하는 것과는 완벽하게 다른 자세로 임하는 단연경을 무섭게 노려보았고, 예사란은 연한 미소를 지으며 그런 그녀를 잡아끌었다.
“너는 가서 할아버지께 인사해야지. 걱정하고 계신다. 그러고 나서 좀 씻어. 다 큰 아가씨가 그 꼴로 다니면 안 되지.”
그제야 단연경에게서 시선을 돌린 예수란은 입을 삐쭉거리더니 예광기의 처소 쪽으로 향하며 말했다.
“문안드리고 좀 있다 올게.”
“그래.”
총총히 예수란이 가 버리자 예사란은 물품 정리를 하고 있는 단연경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난 석 달간 금화장은 사업상 큰 차질을 빚고 있었다.
무림맹에 넘긴 진시황릉의 위치를 나타낸 지도가 금화장이 운영하는 전장 어딘가에 보관되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전장이 공격을 받기 시작했다.
전장에 대한 공격이 늘어나면서 예치하고 있던 금과 은 등이 도난당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전장에 예치해 둔 돈을 고객들이 찾아가기 시작해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거기다 시시때때로 상단과 표국의 물품에 지도 필사본이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공격을 많이 받았고 그에 따른 손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한마디로 어디에 지도가 있다는 소문이 뜬금없이 퍼지면서 공격을 받아 전장도 상단이나 표국도 계속해서 피해를 입고 있는 것이었다.
처음에는 기존의 호위들과 새롭게 유치한 호위들을 통해 버텼으나 지속적인 공격으로 호위들이 떠나면서 상황은 악화되어 갔다.
돈을 찾아오는 사람에게는 찾은 금액의 삼 할을 주겠다는 약속도 했고, 또 물품을 털어 가는 자에 대한 현상금도 걸었지만 별 무소용이었다.
그렇게 막대한 손해를 보는 상황에 단연경은 이를 어느 정도 보전하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
물건을 가져올 몇과 장비만 있으면 단연경이 달려가 다 때려잡고 찾아오는 것이었다.
벌써 제법 큰 산채 네 곳과 중소 산채 여덟 곳, 수채 두 곳, 장물 중개 흑도문파 세 곳이 단연경의 손 아래 박살이 난 상태였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물품을 찾는 것과 별개로 손해배상 차원에서 그들이 숨겨 둔 검은 돈을 뺏어 오는 일 등을 통해 금화장의 자금 회전력에 큰 도움을 주는 일을 많이 했다.
그가 박살낸 곳에 현상금이 걸린 자들이 많아 이들을 관아에 넘기면서 부수입도 짭짤했다.
거기다 단연경이 학식이 꽤 높다는 말에 여러 가지 장부 정리 등 서류 문제를 맡겼는데 처음에는 좀 버벅거리나 싶더니 어느 순간부터 척척 해결하는 것이었다.
지금은 금화장에서 이십 년간 서류 문제를 처리해 오던 장문철(張文哲) 총관보다 더 많은 일을 해치우는 괴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좋고, 적재적소에 사람 배치까지 잘하는 단연경이었다.
한마디로 만능의 인물을 공짜로(몸값이 굉장히 비쌌지만 실제로 돈을 지급하진 않는 상태니까) 얻은 셈이었다.
아마 그가 없었다면 한 달도 전에 금화장을 포기했을 것이다.
단연경의 모습을 보는 예사란의 눈빛 깊은 곳엔 너무도 부드러운 빛이 흘렀다. 그것은 예수란은 모르는 할아버지와 옥허 그리고 예사란만이 아는 이면 계약 때문이었다.
“이게 마지막입니다.”
창고에 물품 정리를 담당하는 이가 단연경에게 말하자 그는 씨익 웃음을 지어 보이며 말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후 담당자의 손에 몰래 무엇인가를 넘겨주며 말했다.
“다들 수고하셨으니 이거 가지고 가서 신나게 즐기십시오.”
담당은 손에 쥐어진 걸 살짝 펴 보니 그건 금 한 냥이었다.
“아이고 이렇게 큰 돈을…….”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고, 이번엔 제법 고생했으니 이 정도는 써도 됩니다. 그러니 아저씨께서 알아서 좋은데 가서 크게 한턱 내세요.”
작게 말한 후 단연경은 돌아섰고, 담당은 크게 소리를 질러 일꾼들과 함게 밖으로 나갔다.
예사란은 단연경이 무엇을 했는지 알고 있었다.
“단 부총관님, 그거 나쁜 짓 아닌가요?”
예사란의 말에 단연경은 씨익 웃으며 말했다.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준 돈은 귀환 중에 길에서 우연히 주운 돈이었습니다. 원래 그렇게 생긴 돈은 남들과 함께 빨리 써 줘야 한다고 해서 말이죠.”
단연경의 재치있는 말에 예사란은 활짝 웃어 보였다.
“아, 주운 돈이었군요. 몰랐습니다. 저도 들었습니다. 주운 돈 같은 건 함께 빨리 써 줘야 또 생긴다고요. 호호호.”
“그렇죠. 사란 소장주께서도 잘 아시는군요. 하하하!”
“호호. 수고하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