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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화


단연경은 비스듬히 약간 앞으로 한 발 나아가 칼만 등 뒤 쪽으로 떨어질 위치를 잡았다.
그와 동시에 왼손을 들어 손목을 잡아채고는 오른손으로 팔꿈치 부위를 아래에서 위로 올려쳤다.
뿌득!
“……!!!”
먹혀드는 듯한 나무 부러지는 소리와 함께 팔꿈치가 꺾일 수 있는 반대 방향으로 솟아올랐다.
사내는 엄청난 고통을 느끼며 비명을 지르려는 순간 잡았던 손을 높으며 단연경의 오른 팔꿈치가 짧게 뻗어 와 인중에 박혀 들었다.
빠각!
“큽!”
짧은 신음을 하며 뒤로 두어 발 밀려난 사내는 인중이 함몰되고 앞니와 피를 한꺼번에 쏟아 내며 그대로 꼬꾸라져 버렸다.
첫 번째 사내가 쓰러지는 순간에도 단연경의 움직임은 멈추지 않고 있었다.
팔꿈치로 인중을 박살 낸 단연경은 사내가 땅에 드러눕기도 전에 옆쪽으로 이동해 맨 오른쪽에 있던 사내의 코앞까지 육박해 있었다.
그자는 코앞에서 갑자기 단연경이 나타난 것을 보고 반응을 하려 했지만 명치와 심장의 위치에 전사의 힘이 담긴 권이 연속으로 타격했다.
퍼퍽!
전사의 힘은 피부를 뚫고 내장을 파괴했지만 미는 힘이 거의 없는 짧은 권격인지라 약간 뒤로 밀려나는 정도에 그쳤다.
하지만 어쨌든 뒤로 밀리며 공간이 생겼고 단연경은 왼손가락 두 마디만 접은 상태로 바로 옆에 서 있던 마지막 사내의 울대를 끊어쳤다.
팍!
울대가 속으로 터지며 머리가 아래쪽으로 꺾였고, 단연경은 옆쪽으로 한 발 이동함과 동시에 오른 손바닥을 위쪽으로 짧게 쳐올려 사내의 턱을 가격했다.
뻑!
턱이 코 부분까지 덮는 기이한 형상으로 사내의 몸이 약간 떴다가 그대로 쓰러져 버렸다.
설명은 길었지만 단연경이 움직이고 한 호흡도 안 걸리는 시간에 벌어진 일로 세 사내들은 거의 동시에 바닥에 나뒹굴었다.
쓰러진 사내들은 미동조차 없었다. 수박은 전장에서 발전된 맨손 격투술인만큼 한 수 한 수가 치명타였고, 인정사정 봐주지 않은 탓에 모두 즉사였던 것이다.
차가운 얼굴로 쓰러진 사내들을 보던 단연경은 천천히 시선을 돌려 한쪽에 주저앉아 멍청하게 있는 사내를 향해 말했다.
“안내해.”
불과 반 각 전 보여 줬던 정신 나간 모습은 잊은 지 오래였고, 그저 무시무시한 사신처럼 보일 뿐이었다.
사내가 공포에 사시나무 떨 듯 벌벌거리며 대답을 못하자 다가가 그의 어깨를 움켜잡았다.
“으아악!”
단연경이 어깨를 잡아 일으켜 세우자 사내는 비명을 지르며 오줌을 지렸고, 이내 게거품을 물며 기절해 버렸다.
약한 자에게 강하고, 강한 자에겐 한없이 약한 이의 전형을 보여 주자 단연경은 눈살을 찌푸리며 중얼거렸다.
“완전 쓰레기통이구만.”
사내를 아무렇게나 던져 버린 단연경은 살기를 따라 안으로 들어섰다.
포이원의 내원을 지나 좀 더 안으로 들어가자 꽤 큰 문이 나타났다.
살기는 그 큰 문 뒤에서 느껴졌고, 단연경은 망설이지 않고 문을 열어젖혔다.
끼익!
약간의 뻑뻑한 소리가 나며 문이 활짝 열리자 제법 큰 태청과 넓은 마당 가운데는 비워 두고 주변에 대략 육십여 명 정도의 사내들이 살기를 뿜어내며 온갖 무기를 든 채 시선을 단연경에게 모았다.
단연경은 천천히 걸음을 옮겨 마당 중앙에 섰다. 그러자 문 옆쪽에 있던 사내 중 하나가 문을 닫고 빗장을 걸었다.
문이 닫히자 사내들이 살기 띤 얼굴로 조금씩 단연경을 향해 다가왔다.
대략 한 장 반 정도의 거리까지 좁혀졌을 때 태청 쪽에서 욕과 함께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야 이 새끼들아, 이 몸한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지껄인 개새끼의 상판대기 안 보이잖아!”
그 소리에 좁혀 들던 사내들의 움직임이 멈췄고 태청 쪽에 서 있던 자들은 좌우로 갈라섰다.
태청 안쪽 태사의에 거만한 자세로 앉아 있던 사십대 중반 정도의 사내가 턱짓을 하며 말했다.
“어라? 식칼 형제는 어쩌고 너 혼자 오냐?”
“식칼 들고 설치던 녀석들 말이냐?”
“그래.”
“죽었다.”
그 말에 사내는 상체를 세우더니 재미있다는 듯 말했다.
“그래도 한가락하는구만. 그런데 너 맨몸으로 혼자 온 거냐?”
“쓰레기 좀 치우는데 굳이 많이 올 필요 있나.”
“허…… 그 개새끼 참 용기있네.”
그렇게 말하며 사내가 자리에서 일어나 터덜터덜 다가왔다.
단연경은 차갑게 가라앉은 눈으로 사내의 행동을 말없이 지켜봤다.
사내는 일 장 정도까지 다가오더니 이내 멈추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 시펄, 눈에서 눈보라라도 쏟아 낼 것 같아 더 다가가면 추워서 얼어 뒤지겠다야.”
“푸하하하!”
사내의 객쩍은 소리에 여기저기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네가 호랑이파인지 고양이파인지 하는 이 쓰레기들의 두목인 막나가(幕羅價)냐?”
“하, 그 새끼 지금 상황이 어떤지도 모르고 말하는 싸가지 보게. 완전 간댕이가 부어서 입으로 밀려 나오겠네?”
막나가가 비아냥거렸지만 단연경의 표정엔 변화가 없었다.
“너를 포함해서 여기 모두에게 하나만 묻자. 정상적인 일자리 주면 죄를 뉘우치고 평범하게 살아갈 놈들 있냐?”
단연경은 그 말을 한 후 주변을 살폈다. 사실 이 분위기에서 저요저요 하고 나서기는 힘들었고, 또 몇 안 됐지만 어쨌든 갱생의 기회를 줄 놈을 확인해 두었기에 그들을 찾기 위해서였다.
소주 삼대 세력 중 인간 말종들이 모인 가장 악질적인 녀석들로, 수 틀리면 사돈에 팔촌까지 괴롭히는지라 관에서조차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는 놈들이 이자들이었다.
그들은 살인, 강간, 협박, 인신매매를 밥 먹듯이 했다.
슥 둘러보니 갈등하는 듯한 자는 고작 여덟 명뿐이었고, 그 수는 기회를 줄 만한 이로 지목했던 자들의 수와 동일했다. 나머지는 역시나 진득한 살기를 유지한 채 비웃음만 흘릴 뿐이었다.
“미친 새끼, 우리 애들이 강대충이 패거리마냥 물러 터진 줄 아냐?”
막나가의 말에 여기저기서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새끼들 옛날부터 물러 터졌지.”
“그 자식들은 병신들이야. 이 좋은 일을 버리고 힘든 일이나 하고.”
한참 떠들어 대자 막나가가 손짓을 해 저지한 후 말을 이었다.
“강대충 그 자식, 사내도 아냐. 살려 달라고 하면 살려 주고, 죽을 것 같다고 해도 살려 주고. 그러니까 결국 망해 버린 거지. 하지만 나 막나가는 다르거든. 안 그러냐? 얘들아!”
막나가가 웃으며 가슴을 활짝 펴며 말하자 호응을 했다.
“맞습니다요!”
“봤냐? 더하고 싶은 말 있냐? 있음 해 봐. 죽기 직전인데 말 정도는 들어주마. 이 몸이 좀 많이 관대하거든. 하하하!”
“하하하!”
“아, 그리고 말이야. 오늘 당한만큼 네놈 쪽 녀석들한테 받아 낼 거다. 몇 놈은 살을 찢어 죽이고, 계집이 있으면 한바탕 돌린 후 사창가에 팔아 먹을 거다. 어때 생각만 해도 짜릿짜릿하지? 하하하!”
막나가가 악의 넘치는 말을 하며 웃자 다른 자들도 따라 웃었다.
그 말에 단연경의 기억 저편에 뭍어 두었던 것들이 떠올랐다.
살생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으로 놓아 준 몽고 패잔병들에게 마을 하나가 통째로 유린당하고 살해당한 기억이…….
단연경의 얼굴에 미소가 그려졌다. 얼음장 같은 냉소가 말이다.
“내 너희 같은 녀석들을 잘 알지. 세상에 있으면 악취를 풍기고 사람에게 백해무익한 쓰레기 같은 새끼들. 자, 쓰레기 인증 끝났으니까 버려야지. 지옥이라는 쓰레기 처리 장소에 말이야.”
막나가의 얼굴이 무섭게 일그러졌다.
“뭐 이 개새끼야?”
“너는 특히 더러우니까 여기서 죗값을 좀 치르고 가게 해 줄게.”
단연경의 말에 막나가는 무섭게 노려보다 피식 웃더니 처음 앉아 있던 태사의 쪽으로 걸어갔다.
“상처 좀 있어도 되니까 저 새끼 산채로 잡아.”
그 말이 떨어지자 사내들이 다시 단연경 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살아 있기만 하면 된다 얘들아.”
“예! 형님!”
우렁찬 대답과 함께 다가들던 사내들 중 단연경의 뒤쪽에 있던 자가 무식하게 생긴 도를 휘두르며 덤벼들었고 그것을 시작으로 고함과 욕설을 퍼부으며 덮쳐 들었다.
“죽어! 개자식아!”
빠드득!
“크악!”
요란한 소리와 욕설이 난무했지만 막나가는 그냥 천천히 태사의로 걸어갔다.
대충파를 순식간에 괴멸시켰다는 말은 있었지만 그것을 믿을 수는 없었다.
대충파가 자신들과는 다르게 굉장히 무른 집단이긴 했지만 그들의 무력은 결코 무르지 않았다.
만약 일을 처리하는 것처럼 물렀으면 자신들이나 아니면 또 다른 한 개 문파에게 진작 흡수됐을 테니 말이다.
사실 대충파의 무력은 소주 삼대 세력 중 가장 강력했었다. 조직원들이 실력도 뛰어났고, 특히 두목인 강대충은 일류 수준에 달한다는 무림인을 개박살을 낸 적도 있을 정도였다.
그저 강대충은 세력을 넓힌다거나 하려는 야망이 없었기에 망정이지 만약 그들이 자신과 같았다면 어쩌면 소주의 삼대 세력은 그의 휘하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게 이 바닥의 암묵적인 생각이었다.
그런 무력의 실력자와 세력을 단신으로 순식간에 때려잡았다는 소문은 당연히 믿을 수는 없었다.
물론 실제 대충파가 무너져 흡수된 건 사실이니 지금 온 미친놈의 실력이 대단히 위협적일 건 분명했다. 그러니 나름 한 실력하는 식칼 형제를 해치우고 왔을 것이다.
그저 실력도 있고 대충파를 흡수한 것도 인정하겠지만 모아 놓고 단박에 처리한 게 아니라 각개격파와 기습을 통해 이루었을 것이라는 게 막나가의 생각이었다.
등 뒤에서 들리는 욕설과 소음을 보니 꽤 선전은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지놈도 사람인 이상 곧 제압당할 게 분명했다.
일 대 다수의 대결에서 조그만 허점이 나타나면 개떼처럼 달려들어 물어뜯어 버리게 되어 있고 그 순간 싸움은 끝난다고 봐야 된다.
태사의 바로 앞에 섰을 때 예상대로 욕설이 잦아들고 태사청 안으로 우루루 몰려들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벌써 끝났구만.’
막나가는 피식 웃으며 털썩 태사의에 앉으며 정면을 보는 순간…….
쿠다탕!
수하 하나가 입구 쪽에서부터 붕 날아와 나뒹굴었다.
“……!”
나뒹군 수하의 가슴은 무슨 거대한 망치로 맞은 듯 명치 부근이 움푹 들어가 있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정면의 상황을 보니 단연경을 잡아 끌고 들어온 게 아니고 도망치듯 뒷걸음질치며 들어오는 수하들이 보였다.
그 짧은 순간 처음의 그 살기등등함은 사라지고 꼬리 내린 강아지마냥 뒷걸음질 치고 있었다.
‘이게 무슨 일이지?’
너무 놀란 막나가는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다리에 힘이 풀려 비칠거렸다.
어느새 반수 정도만 남은 수하들 너머로 단연경이 무표정한 얼굴로 수하 하나의 목을 휘감고 비수로 목줄기를 겨눈채 천천히 걸어들어 오고 있었다.
“사, 살려 줘…….”
제대로 반항도 못하고 있는 수하가 애원을 했지만 단연경은 묵묵히 앞으로 나갈 뿐이었다.
대호파의 조직원들은 계속해서 뒤로 물러났고, 어느덧 태사의 앞쪽까지 몰렸다.
“뭐해! 새끼들아! 덤벼! 덤벼서 죽여 버려!”
단연경이 다가오면서 넘실거리는 살기에 막나가는 발작적으로 소리치며 바로 앞에 있는 수하의 등을 찼다.
그 탓에 맨 앞쪽에 있던 놈이 밀려 나갔고, 그것을 시작으로 단연경이 다시 빠르게 움직였다.
단연경은 잡고 있던 놈의 폐와 심장에 비수로 서너 번을 찌른 후 던져 버리고는 밀려 나온 놈을 향해 움직였다.
그놈은 손에 들고 있던 도를 반사적으로 휘둘렀지만 허공만 갈랐고, 단연경의 비수는 정확하게 울대를 가르고 지나갔다.
사방으로 에워싸며 무기를 휘둘렀지만 단 하나도 단연경의 몸에 닿는 것 없었다.
오히려 단연경이 피하고 잡아서 가로막는 바람에 같은 편의 육신을 갈랐고, 단연경은 그 속에서 베고 찌르고 떼고 꺾으며 대호파 조직원들을 죽여 나갔다.
“이런 망할…….”
막나가는 양 떼 속에 뛰어든 호랑이처럼 수하들을 죽여 나가자 욕설을 뱉어내며 뒷문으로 뛰어갔다.
태사청에서 도망쳐 나온 막나가는 자신의 처소로 들어가 금원보와 전표가 담긴 상자를 챙겨 비밀 후문으로 빠져나왔다.
포이원 뒷길로 나온 막나가는 정신없이 내달렸다.
시간이 늦어 이미 성문은 닫혀 있어서 성 밖으로 나갈 수는 없었기에 밤을 보낼 요량으로 어렸을 때 지냈던 다리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거의 이각여를 전속력으로 달린 끝에 어릴적 지냈던 다리 밑에 도착했다.
“헉헉! 시발…….”
목까지 차오른 거친 숨을 몰아쉬며 그대로 드러누운 막나가는 욕설을 중얼거렸다.
“어디서…… 헉헉! 그런 좆 같은 새끼가 나타나서…… 헉헉! 아, 시발……!”
잠시 후 숨도 어느 정도 안정되고 비 오듯 쏟아지던 땀도 멈추자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앉던 막나가는 심장이 입으로 튀어나올 만큼 놀랐다.
“이런 시팔!”
달빛이 드는 쪽에 단연경이 뒷짐을 진 채 서 있었던 것이다.
“다 쉬었나?”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 단연경의 목소리에 막나가는 온몸의 피가 빠져나가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왜 덜 쉬었으면 봐줄려고 그러냐, 이 시팔새꺄?”
“아니, 그냥 물어본 거다.”
그렇게 말하며 천천히 다가오자 막나가는 정신없이 두리번거리다 벌떡 일어나 뒤쪽으로 뛰쳐나갔다.
하지만 몇 발 가기도 전에 멈춰서며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하…… 하하! 이런 떠그랄, 귀신이냐?”
막나가가 뛰어가려 했던 곳에서 단연경이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던 것이다.
“더 도망쳐 봐.”
단연경이 살기를 뚝뚝 흘리며 다가오자 막나가는 챙겨 왔던 상자를 아무렇게나 던지고 품에서 원형 통을 꺼내 겨누며 소리쳤다.
“너 이 새끼! 이게 뭔 줄 알아? 사천당가 새끼들이 만든 만사침(萬死針)이야. 그 새끼들도 이게 너무 악랄하고 무섭다고 더 이상 안 만든다는 그거라고! 그러니까 오지 마 개새끼야!”
만사침이란 이름은 단연경도 들어 본 적이 있었다. 사천당가에서 제조했지만 그것에 사용된 독이나 살상력이 너무 강해 생산했던 제품 모두를 회수한 후 폐기 처분했다는 무기였다.
“그게 진짜면 사용하면 되겠네. 쏴 봐. 대신 쏜 후에 후회하진 마라.”
“이런 개새끼…….”
단연경이 한 발 더 다가오자 막나가는 통 위쪽을 엄지로 꾹 눌렀다.
팍! 스읍!!!
통 앞부분이 터지며 머리카락 두께만 한 침이 부채꼴 모양으로 엄청나게 쏟아져 나왔다.
“……!!!”
설마 진짜일 줄 모르고 거리를 좁혔던 탓에 이형환위로도 피하기 어려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