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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단연경은 급히 호신강기를 극한으로 일으켰지만 발출된 침의 반은 호신강기를 꿰뚫고 날아들었다.
‘이런!’
대경한 단연경은 급한 대로 양손을 엇갈리게 해 얼굴을 가렸다.
촤라락!
독침이 빽빽하게 단연경의 몸 앞부분에 박혀 들었고 그는 두어 발 정도 물러난 후 멈추었다.
단연경이 침에 맞은 자세 그대로 가만히 있자 혹시하고 지켜보던 막나가는 침을 튀어 가며 소리쳤다.
“크하하하! 어떠냐 이 호로 잡종 새꺄! 침에 묻은 독은 코끼리도 단숨에 때려 잡는다는 당시독(當屍毒)이다! 시발놈, 깜짝 놀라 뒤지는 줄 알았네. 카악 퉤!”
막나가는 한쪽에 내던진 상자를 집어들려 했다.
팅. 티팅!
작은 쇳조각이 떨어지는 듯한 아주 작은 소리가 울렸다.
티팅, 팅, 티티팅!
무시하려 했지만 연속적으로 들려오는 소리에 막나가는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
단연경은 그 자세 그대로 있었지만 박혀 있던 침들이 서서히 밀려 나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뭐, 뭐야? 이런 시발!”
막나가는 품에 늘 가지고 다니던 단검을 꺼내 검집을 제거한 후 단연경을 찌르려 했지만 침이 빠른 속도로 떨어져 내리자 감히 다가설 용기가 나질 않아 멈칫거렸다.
잠시 멈칫거린 사이 침은 거의 다 빠졌고 더 이상 있다간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아 막나가는 고함을 치며 달려들었다.
“이런 썅! 좀 뒤져!”
단연경의 가슴을 찌르기 직전 움직이지 않던 그의 손이 날래게 움직였다.
파팍!
손목과 가슴에 충격이 가해졌고 막나가는 그대로 나자빠졌다.
“컥!”
나뒹굴던 막나가는 충격을 받은 가슴을 만지며 앞을 보니 단연경이 자신의 단검을 든 채 인상을 쓰고 있다 피를 한 모금 게워 냈다.
“우웩! 퉤!”
죽은 피와 함께 독을 몰아내고 입안에 남은 피 찌꺼기를 뱉어 낸 단연경은 냉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계는 진짜인 것 같은데 독은 진짜가 아닌 것 같군. 이제 발악은 다 한 거냐?”
“이런…….”
“수천 개 바늘에 한 번에 찔리니까 엄청 따금거리더라. 그냥 잡혔으면 덜 맞았을 텐데, 하여튼 너 같은 새끼들은 꼭 매를 벌더라.”
“아악! 이 괴물 같은 새끼! 꺼져!”
입으로는 욕설을 내뱉고 있었지만 몸은 주저앉은 채 비칠대고 물러나고 있었다.
단연경이 천천히 움직이자 막나가는 발작적으로 소리쳤다.
“시발! 오지 마!”
단연경의 신형이 흔들렸고, 그 순간 막나가의 눈앞에 발등이 보였다.
빡!
“시끄러.”
그렇게 단연경은 막나가의 아혈을 제압한 후 최대한 급소를 피하고 기절하지 않게 잘 다져 나가기 시작했다.
이각여 동안 이어진 무지막지한 구타에 막나가가 결국 기절해 버리자 단연경은 그와 그가 들고 왔던 상자를 챙겨 사라졌다.
다음 날 소주에는 놀라운 소문이 돌았다. 가장 악질적이고 공포의 대상이었던 대호파가 자중지란으로 몰락했다는 것이었다.
소문에 의하면 두목 자리를 노린 이들이 반란을 일으켜 상잔 끝에 모조리 죽고 두목인 막나가는 병신이 되어 골목에 쓰러져 있었다고 했다.
소주 현청에서는 성내에서 벌어진 이 사건에 대해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 당일 아침에 바로 조사에 나섰고, 해가 지기도 전에 판결을 내렸다.
판결은 조직 내 이권 다툼으로 인한 살인 사건으로 막나가는 공격에 대한 정당방위로 인정해 살인죄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 판결이 내려지자 그간 대호파에게 온갖 피해를 입었던 자들이 나서 처벌을 청했다.
이미 힘을 잃었으니 그간의 죄악의 심판을 받길 원해서였다. 하지만 소주의 현령은 이 역시 예상했다는 듯 말했다.
“그대들이 말한 죄에 대한 증거가 있는가? 비록 정황과 심증상 맞는 것은 같지만, 증거가 없는데 어찌 이자를 처벌할 수 있겠는가? 지엄한 국법에 의해 막나가를 구속할 이유가 없으니 더 이상 현청에 말하지 말라. 막나가는 본 현청과 이제 무관하다.”
이렇게 말한 현령은 그를 곧바로 방면했다.
온몸에 자상을 도배한 건 물론 사지의 힘줄 태반이 잘리고 이빨은 반 이상이 부러지거나 빠져 버릴 정도의 중상을 입은 막나가는 현청 밖에 버려지다시피 던져졌다.
막나가는 현청에서 나오자 간신히 일어서 절뚝대며 포이원 쪽으로 걸어갔다.
식은땀을 줄줄 흘리며 간신히 포이원 앞에 도착한 막나가는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하지만…….
“뭐야, 왜 쓰레기가 앞에서 얼쩡거리는 거야? 야, 저거 치워. 손님 떨어진다.”
처음 보는 사내가 소리치자 건장한 사내 둘이 뛰어나와 막나가의 겨드랑이를 각각 끼고는 한쪽으로 끌고 갔다.
“너희 뭐야? 이거 안 놔? 내가 누군 줄 알고 이러는 거야?”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사내들은 꿈쩍도 안 하고 포이원에서 멀리 떨어진 으쓱한 골목 한켠에 그를 내동댕이쳤다.
탁탁탁.
사내들은 손을 툭툭 털더니 막나가를 향해 말했다.
“잊었나 본데, 너 어제부로 포이원을 비롯해 주루 일곱 곳과 객잔 다섯 곳, 상점 세 개를 모두 우리 연화상회에 양도했잖아. 기억 안 나?”
기억났다. 정말 죽는가 싶을 정도로 얻어맞은 끝에 전 재산을 양도한다는 계약서에 수인을 맺었었다.
“그러니까 이제 두 번 다시 얼쩡거리지 마라. 너 같은 더러운 쓰레기가 굴러다니면 매상 떨어지니까. 카악 퉤!”
가래침을 뱉은 사내들은 그대로 포이원 쪽으로 사라졌고, 막나가는 울분에 찬 고함을 질러댔다.
이틀 뒤, 소주 뒷골목 한켠에서 얼굴도 알아보기 힘든 형상에 피투성이가 된 막나가의 시신이 발견되었는데, 현청에서는 그의 사인을 부랑아의 아사(餓死)로 처리했다.
10. 유유상종이렷다
“이거야 원……. 그야말로 눈 깜짝할 새 소주의 칠 할을 집어삼켰구먼.”
서류들과 소주성 지도를 놓고 들여다보던 삼십대 초반가량의 잘생긴 사내가 뒤통수를 긁적거렸다.
“그쪽 상권으로 들어갈 허점은 있던가?”
“없습니다. 대호파의 상점들은 깨끗하게 다 넘어간 데다 서류상에 하자도 없었습니다. 거기다 저희 보호 관할로 편입하려고 다음 날 바로 움직였는데도 이미 위사 계약이 다 이루어져 있었습니다. 그 증거로 호표원의 표식이 상점마다 걸려 있더군요. 그래서 밤에 힘을 좀 쓸까 했는데 예전 대충파 그러니까 호표원 위사들이 밤에 전 지역을 꼼꼼히 순찰을 돌아서 아예 시도도 못해 봤습니다.”
사내 옆쪽에 있던 그와 비슷한 또래의 문사 차림 남자가 말하자 헛웃음을 흘렸다.
“하하! 진짜 기가 막힌 녀석이구만. 연화상회 회주란 녀석이 도대체 누구야?”
“그게 도무지 알 수가 없습니다. 연화상회야 오래전부터 있었지만 이렇다 하게 움직이거나 확장하지도 않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랬지. 그래서 누구도 신경 쓰지 않았잖아.”
“예.”
사내는 팔짱을 끼며 말했다.
“그나저나 정말 대단하네. 대충파하고 대호파를 고작 한 달만에, 아니지 실질적으로 잡아먹은 건 이틀이지. 각각 하루씩. 전력이 그렇게나 강한가?”
사내는 분명 일정한 전력을 갖추고 전격적인 공격에 의해 제압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충파나 대호파 모두 무공을 정식으로 배운 자들은 아니었지만 실전을 통해 익힌 기술들이 대단한 자들이었다.
물론 사내나 문사 둘 중 아무나 가도 두 곳 모두 싹 쓸 수는 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깔끔하게 처리하기는 쉽지 않았다.
그들의 본능적 움직임은 여느 고수 못지않았서였다.
“지금이야 대충파 거의 대부분을 수하로 부리고 있으니 꽤 되지만 실제 연화상회 자체의 전력은 잘 모르겠습니다.”
“대충파야 워낙 창졸간에 벌어지기도 했고, 사상자가 많지 않아 확인 못했겠지만 대호파 쪽은 확인해 봤나?”
“예. 방 현령에게 부탁해서 확인해 보았습니다.”
“무공 종류가 뭐야?”
그 말에 문사는 약간 묘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모르겠습니다.”
“잉? 몰라? 그게 말이 돼? 명색이 전문적으로 상흔을 통한 무공 흔적 확인학을 배웠잖아.”
“그건 그렇지만 그게 말처럼 쉬운 줄 아십니까? 상흔은 거의 다 대동소이합니다. 그리고 천하에 비슷한 초식이 얼마나 많은데 그걸 한 방에 알아냅니까? 설마 상흔 보고 딱 이건 무슨 파의 어떤 무공이다라고 알아본다는 뻥을 믿는 건 아니시죠?”
문사의 말에 사내는 움찔거렸다.
“아니었어?”
“참 나, 천하에 어떤 초식을 써도 베기의 흔적은 거의 비슷합니다. 찌르기도 마찬가지고. 그런데 그런 걸 보고 어떻게 딱 알겠습니까?”
“많이 보면 알 수도 있지.”
“어림없거든요? 그럴 것 같으면 무림맹에 접수되어 미결로 남은 사건의 팔 할은 해결될 겁니다.”
“그런 거냐?”
“당연하죠.”
“그렇구나.”
사내는 고개를 주억거리더니 이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그래도 알아낸 게 있겠지?”
사내는 늘 이런 식이었기에 문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가로저으며 답했다.
“일단 대호파가 모두 당하는데 걸린 시간은 이각이 채 안 걸렸습니다. 모두 근접 타격기에 당했구요. 자세한 사항을 말씀드리면, 내상에 의해 죽은 놈들도 꽤 됐는데 내가중수법은 아니고 단순히 발경에 의한 충격으로 생긴 것이었습니다. 뼈가 부러진 자들의 경우 일부 부러지기 쉬운 곳에 충격을 받아서였고 거의 대부분은 관절기에 꺾이거나 타격을 받은 것이었습니다. 거기다 비수를 자유자재로 다룬 듯하고 당하는 자가 최대의 고통과 한 방에 힘을 잃을 만한 급소만 골라서 공격했더군요. 특히 비수에 의해 생긴 상처수나 위치를 볼 때 보는 자들에게 공포를 느낄 수 있게 한 효과까지 노린 것으로 보였습니다. 모든 상처는 거의 비슷한 수준의 상세였습니다. 결론은 근접전에 뛰어난 한 명이 쓸어버린 것입니다.”
문사는 중간중간 동작과 상처가 만들어지는 과정을 보여 주며 상세히 설명했다.
“음……. 대단한데. 그만한 외가권을 가진 문파나 익힌 자가 누가 있지?”
“꽤 되죠. 하지만 그건 생각할 필요가 없을 것 같습니다.”
“왜?”
“상흔을 볼 때 일정한 형식의 기술은 있었지만 초식의 흐름은 안 보였습니다.”
그 말에 사내는 처음으로 진짜 놀란 듯 표정을 지었다.
“정말? 그럼 강대충이나 막나가 같이 실전을 통해 익힌 기술로 이각도 안 걸려 그만한 조직을 박살 냈단 거야?”
“믿기 힘들지만 일단 그런 것 같습니다.”
“역시 세상은 넓어. 무림 문파 출신이 아니고도 그만한 실력을 쌓을 수 있으니 말이야.”
그렇게 말하는 사내의 얼굴에는 호기심이 충만한 표정이 만들어지고 있었다.
“점점 궁금하게 만드는구만. 하지만 역시 정체를 알 길이 모호하네. 음…….”
잠시 고민을 하던 사내는 무엇인가 떠오른 듯 눈을 반짝였다.
“참, 방 현령과 얘기는 해 봤나? 이번에 처리한 걸 보니 일에 있어서만큼은 고리타분하기 짝이 없는 방 현령이 내릴 판결이 아니던데 말이야. 분명 그쪽에서 접촉해서 판결까지 미리 언질을 한 것일 수도 있단 말이지. 안 그래?”
“저도 그래서 확인해 봤죠. 장주님 말씀대로 확실히 그쪽과 접촉을 했고 판결까지 알려 줬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방 현령도 얼굴을 직접 보지는 못했답니다.”
“뇌물도 안 받고 심지어 주려 했다는 것만으로 잡아 넣으려 했던 고리타분한 원론주의자가 그런 일을 받아들인 것도 부족해서 얼굴도 못 본 상대의 말을 듣고 그렇게 처리해 줬데? 우리도 그 인간과 관계를 만들려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과 돈을 쓴 끝에 간신히 알아낸 비밀을 그쪽도 알아낸 거야? 그 짧은 시간에?”
사내의 말에 문사는 입맛을 다시며 대답했다.
“방 현령도 대호파를 없애고 싶어 하지 않았습니까. 싹 밀어 버리고 싶어도 힘이 없어 어쩌지 못한 놈들이었느니 말이죠. 그래서 제안을 해 오자 그냥 덥석 수락했다고 하더군요.”
“결국 돈 한 푼 안 들이고 슥삭 한 거잖아. 들으면 들을수록 무서운 녀석일세.”
“녀석이 아니고 년이랍니다. 그것도 대단히 젊은 것 같다고 합니다.”
“그랬어? 그럼 좀 이해가 가네. 그년이 몸이라도 던져 줬나 보네. 가만 그럼 얼굴을 모를 리가 없잖아.”
살짝 눈살을 찌푸리며 사내가 혼잣말처럼 말했지만 문사는 익숙한 듯 그에 대한 해답을 내놓았다.
“면사를 하고 있었답니다.”
“면사? 그럼 어떻게든 벗겨내려 했겠지.”
“원래대로라면 면사를 치우라고 하라 했겠지만, 그게 상대 여인의 얼굴 상태가 영 아닌 것 같아 말았답니다.”
“그건 또 무슨 소리야?”
“처음 들어가서 뒷모습과 인사를 하며 숙이는 모습을 볼 때까지 만해도 정말 혹했었답니다. 몸매 환상에 윤이 자르르 흐르는 머릿결에 옥구슬 구르는 듯한 목소리, 눈마냥 허연 뒷목 살결까지 정말 죽여 줬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고개를 드는 순간, 나락으로 떨어졌답니다. 면사를 해 눈 부근만 드러나 있었는데 화상 때문에 눈썹도 없고 얼굴이 심하게 일그러져 있었답니다. 정말 눈이 썩어 들어가는 기분이었지만 그래도 대면도 했고, 눈빛이 너무 맑고 심유해 이야기를 들어 봐도 손해는 보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답니다. 역시나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 보니 이익이 되면 됐지 손해 볼 건 하나도 없었기에 받아들였답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그 여인이 돌아가고 나서 자신의 안구정화를 위해 명월이를 몰래 찾아갔다고 하면서 키득거리더군요.”
“색골 놈의 자식. 그 자식 얘기 들으니 갑자기 좀 땡기는구만. 오늘 저녁에 한 번 달려 볼까?”
사내는 장난기가 가득한 미소를 짓다가 문사를 보며 말했다.
“그건 정중히 사양하죠. 또 제 옷 다 벗겨 놓고 밖에 던져 놓는 짓에 당하긴 싫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