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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화타 1 (5화)
1장 의원(醫)(5)


“그리고, 그 외에 다른 증세는 없어?”
“아…… 그리고 땀을 흘려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고통이 온 뒤에는 언제나 한기가 몰려오곤 합니다.”
“몸속에서? 아니면 피부로 느껴지는 감각이?”
“몸속…… 아니, 전부인 듯합니다. 사실은…… 잘 모르겠어요. 워낙 고통 중에 느끼는 감각인지라…….”
“흐음……. 그래 뭐, 대강의 병세는 잡히는군.”
어렵지 않다는 듯, 마지막으로 붓을 휘갈기듯이 두루마리에 써낸 진유는 천천히 붓을 내려놓고 한쪽에 두루마리를 치웠다. 그와 동시에, 경악스런 표정으로 소리를 지르다 시피 하는 백호검에게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의원이 병세가 잡힌다고 하면, 평범하게 좋아하는 게 정상 아니야? 그런 부담스런 리액션은 사양하고 싶은데.”
“아, 아니, 미안하네. 헌데 정말인가? 병세가 잡힌다는 것이……?!”
도무지 진정이 되질 않는다는 그의 심정을 사실은 시종도, 또한 누워 있는 소미 역시 말은 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공감하고 있었다.
그리고 놀라워했다.
가문의 이름 있는 의원들조차 고개를 내저은 자신의 병을 고작 말 몇 마디로 알아냈다니?
“속고만 사는 게 인생이란 건 아는데, 환자한테 구라칠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 자― 그럼 예약도 끝났겠다, 같이 ‘이거’에 대해서 좀 논의해 보실까 아가씨.”
“이, 이거요?”
어색하게 동그라미를 만드는 소미의 말에 진유가 히죽거리며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래, 이거. 어디― 천하제일가의 이름값이 얼마나 대단한지 볼까?”
“돈으로 본가의 가치를 매길 수는……!”
“싫어? 싫음 말던가. 치료 안 해. 나가, 나가나가나가.”
막무가내로 자신을 내쫓으려는 진유에게 당황한 백호검이 변명하듯이 대답했다.
“하, 하지만 아가씨의 병을 아직 치료한 것도 아니지 않은가!”
“예약제라고 말했잖아? 바본가 당신?”
“크윽!”
한마디도지지 않고 능글거리는 진유 앞에 이를 악물며 분을 참아낸 백호검이 허리춤에 매달린 주머니를 빼려고 들자 진유가 손을 들어 제지하며 말했다.
“아, 걱정 마. 진료비는 치료가 끝난 후에 받을 거니까.”
“네? 그래도 되는 건가요?”
“치료도 못해놓고 돈부터 받는 건 양아치나 하는 짓이지. 그게 삥이나 뜯고 다니는 파락호랑 다를 게 뭐겠어, 안 그래?”
“그, 그거야 그렇네만…… 그럼 돈을 먼저 내면 좀 더 빠르게는…….”
“뭐? 그런 게 어딨어. 상처에 돈을 퍼붓으면 재생력이 좋아지나? 아니면 다른 환자들의 병세가 나아지길 하나?”
한심하다는 눈초리에 백호검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이, 이놈이잇!”
끝끝내 손에 들린 장검을 빼어 들려던 백호검이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진유는 잠깐 뭔가를 가지러 간다며 방을 나간 뒤였다. 뒤늦게야 그를 쫓아 나가려던 백호검을, 누워 있던 소미의 가녀린 손이 제지했다.
“괜찮아요……. 선약이 된 분의 치료가 먼저인 것은 어디서든 당연히 행해져야 할 일입니다. 그것이 그릇되게 되가고 있는 세상을 당연시 받아들이는 편이 더…… 콜록콜록!”
“아, 아가씨, 괜찮으십니까?!”
“그 귀한 아가씨 귀청 떨어지게 생겼네.”
언제 돌아왔는지, 오른손에 들고 있었을 주머니 대신 청색의 돌을 들고 나타난 진유가 천천히 소미의 옆으로 다가가 털썩 주저앉았다.
한편 진유가 도로 방에 들어온 것을 보고 소미의 상태를 보아달라고 하려던 백호검은 그가 들고 있는 청석을 발견하고 경악스런 표정을 지었다.
“그, 그건 빙정(氷頂)이 아닌가?! 대체 그것을 어디에서?!”
“추운 곳에서 사는 놈들이 치료비 대신 주고 간 애물단지지. 오늘 같은 날이 없었으면 쓸 일도 없었을 테지만.”
가볍게 혀를 차며 소미의 허리춤에 손을 뻗은 진유는 그대로 상의를 반탈의시켰다. 가슴이 드러나거나 하지는 않았지만 여자로서 충분히 당황스럽고 부끄럽게 느껴질 상황. 그것도 급작스럽다시피 벌어진 일이다 보니 옆에서 지켜보던 시종은 얼굴을 빨갛게 물들이며 서로 얼굴을 돌렸지만 정작 당사자는 너무 놀란 탓인지 감정의 변화보다 작게 입을 벌리며 놀라는 데에 그쳤다.
그 와중에도 진유는 태연히 손을 놀리며 말했다.
“의원이 환자 몸 좀 보겠다는 데, 요샌 그게 그렇게 죽일 짓으로 여겨지나 보지? 내 생각에 있지도 않은 검 뽑으려고 발악하는 당신은 정신병원에 며칠 틀어박혀야 될 것 같은데.”
“……?!”
분노와 부끄러움으로 얼굴은 빨갛게 물들인 채 허리춤으로 손을 가져가던 백호검은 그제야 자신의 검이 여전히 없다는 것을 때닫고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라했다.
진유는 그러거나 말거나 찬찬히 소미의 몸을 쓸어 보았다. 흡사 복대를 세게 조인 듯한 흔적이 배꼽 아래부터 골반에 이르는 부분까지 나 있었는데 차이점이 있다면 단순히 붉어진 것이 아니라 시퍼런 멍이 들어 있다는 것.
자연히 진유의 인상이 찌푸려졌는데 이를 심각하게 받아들인 소미만 덩달아 불안한 표정이 되어 그의 안색을 살필 뿐이었다.
“귀찮은 놈이 몸에 들어앉았으니, 너도 고생이 많다.”
“네? 아……!”
아리송한 그의 중얼거림에 무슨 뜻일까 반문하려던 소미는 곧 복부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묘한 탄성을 내지르며 얼굴을 살짝 붉혔다.
“저…… 의원님 이건…….”
“치료하는 거니까 가만히 있어.”
치료라는 말을 들으니 백호검도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에 도로 앉았지만 진유의 일거수일투족을 놓치지 않겠다는 듯 날카롭게 그의 동작 하나하나를 살피고 있었다.
최대한 소미의 하얀 피부에서 시선을 피한 채로.
한편 소미는 소미대로 치료라는 말에 자신의 배를 쓸고 있는 매끈하고 시원한 감각에 몸을 맡기고 있었는데 금새 찬기가 사라질 듯하던 돌은 여전히 그 찬기를 유지한 채로 피부 깊숙히 냉기를 전해주고 있었다.
하지만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을 곧 몸으로 경험할 수 있었는데,
‘고통이…… 가시고 있다?’
“시원∼하지? 고통도 줄고 있고?”
흡사 자신의 머릿속을 읽기라도 한 듯한 진유의 말에 소미는 놀란 표정을 짓고 있는 그대로 그렇다는 대답을 전했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마주 고개를 끄덕인 진유는 몇 번 더 문지르다가 천천히 손을 떼며 그녀의 왼손에 빙정을 건네주며 말했다.
“네 몸 안에 있는 녀석은…… 일종의 해충이지.”
“해충……이라면 벌레를 말씀하시는 건가요?”
“바닥에 기어다니는 바퀴벌레 같은 거 아니니까 그런 표정 안 지어도 돼. 적어도 그런 녀석들보단 백 배 정돈 깨끗할 거다.”
“바, 바퀴벌레보다 백 배 깨끗하다고 말씀하셔도…….”
주인을 대신한, 시종의 볼멘소리에 진유가 킥― 웃으며 말했다.
“하긴 그것도 그런가. 여하간 그래. 벌레지만 그런 해악만 끼치는 건 아니야. 뭐 지금이야 너한텐 해 그 자체지만…….”
잠시 공백을 둔 진유가 이어서 말했다.
“몸에 냉기가 돈다거나 아파질 것 같다 싶은 징조가 있으면 배꼽 위로 방금 내가 방금 한 것처럼 하면 될 거야. 위치는, 아 그래 네가 알려주면 되겠네. 방금 어떻게 하는 지 봤지?”
“위치를…… 말씀하시는 것이라면 예, 기억했습니다, 의원님.”
“다들 가는 귀가 어둡구만 천하제일가란 동네는. 이름으로 부르라고. 가르쳐 줬잖아. 나도 이름으로 부를 거니까 좀 가르쳐 주고.”
진유의 말에 잠시 머뭇거리는 듯하던 시종이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소녀의 이름은…… 화……연(禍聯)이라고 합니다.”
그 순간, 혹시나 하는 눈빛으로 시종을 쳐다보던 소미의 눈에 이채가 서렸지만 화연을 제외한 누구도 그것을 눈치챈 사람은 없었다.
“흐음…… 뭐 이제 와서 말하는 거긴 하지만 존대말도 별로 필요 없긴 한데…… 거기까지 신경 쓰고 싶진 않으니까 자유롭게 하던가. 그럼 쉬고 있어.”
자신이 할 일은 다 끝났다는 듯이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방에서 나가려던 진유의 발이 문지방에서 멈춰 섰다. 그리곤 뒤늦게 생각났다는 듯 아― 하고 작게 입을 벌린 진유는 천천히 소미에게 고개를 돌리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그거 담보물이거든? 잃어버리거나 하면, 맞는다.”
그리곤 정말로 끝났다는 듯― 휑하니 문을 열고 나가 버리는 진유.
그 뒷모습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리는 소미와 화연과는 달리, 뒤따라가서 혼찌검을 내줄 생각이었던 백호검은 그냥 자리를 지키기로 한 듯 가볍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소미 쪽으로 고개를 돌리다, 아직 그녀가 옷을 입고 있지 않음을 깨닫고 황급히 반대편으로 고개를 향하며 소미에게 사과했지만 그녀는 괜찮다 하며 옷을 추스리다 문득, 어느 사이엔가 진유가 두고 간 천 이불을 발견하곤 옅은 미소를 입가에 띄우며 그것을 몸에 덮었다.
그리곤 찬찬히, 그가 주고 간 빙정이란 것을 살피면서 백호검에게 말을 걸었다.
“헌데 승연 아저씨께선 이 돌에 대해서 아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그토록 놀라신 것으로 보아 귀한 물건인 듯 싶은데…….”
승연은 소미의 말에 그녀 쪽으로 고개를 돌리며 그 역시 신기하다는 듯 빙석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대답했다.
“그 말대로입니다. 저도 실제로 보는 것은 지금이 처음입니다만…… 본래의 이름은 만년한빙정(萬秊寒氷頂)이라 하여 만년이란 시간이 지나도 그 속에 품은 냉기의 정수가 사그러들지 않고 점점 강해진다고 하는 보물이지요. 정과 사,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한 북해의 내부에서도 그 추위가 지옥과도 같다고 알려진 한옥(寒獄)에서만 오직 구할 수 있다고 알려져 그 가치가 가히 소림사의 대환단과 비슷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아…….”
“그 정도나…….”
소미와 화연은 백호검의 설명을 들으며 새삼 놀라운 시선으로 빙석을 쳐다보았다. 특히나 매끄럽게 가공처리된 면이 과연 보물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듯했다.
“아까, 진유 님께선 이것을 ‘추운 곳에서 사는 분들’이 두고 갔다고 하셨죠?”
“그리고 그것을 광에 틀어박았다고까지 했습니다. 아무리 귀한 물건이라도 알아보는 사람이 없으면 무용이라는 말이 아닐 수 없는…….”
그의 한숨에 소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분명, 저분께는 정말 필요없는 물건이었기에 그랬을지도 모릅니다. 불과 한 시진 동안 지켜본 것으로 판단하는 것은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적어도 지금까지 겪어본 그분은 충분히 그럴 만하다고 생각하니까요. 게다가…….”
그렇게 대답하며 소미는 진유가 남긴 말들을 하나하나 떠올리곤 작게 미소를 지었다.
화연 역시 소미가 무슨 생각을 하는 것인지 짐작하곤 따라서 웃다가 잠시 말을 멈추곤 그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고 있음을 깨닫고 일순 당황해서 말을 더듬었다.
“아, 아가씨? 무슨 하실 말씀이라도…….”
“그토록 이름을 숨기고 싶어하던 네가 스스로 이름을 밝힌 것도 이 빙정에 대해 안 것만큼이나 놀라워서…… 많이, 닮은 모양이구나?”
소미의 말에 화연은 잠시 멍―해진 얼굴로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해 내곤, 고개를 떨구며 쑥스러운 듯이 손톱을 만지작거렸다.
“사실…… 말투도, 외모도 닮지 않았어요. 하지만…… 그런데도 자꾸 겹쳐서…… 죽은 오빠가 자꾸만 떠올라서…… 저도 모르게 그만…….”
“알아. 나도 격없이 지낼 수 있는 오라버니가 생긴 것 같은 느낌이었으니까. 그만큼 재밌기도 하고?”
“쿡쿡. 네. 정말 재밌으신 분이세요. 뭔가 잘 알 수 없는 말들도 있지만…….”
“그렇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