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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화타 1 (16화)
5장 자매(妹)


“오늘이 고비인가…….”

―그동안의 작업이 효과가 있는지는 오늘로 결정나겠지. 무사히 넘기면 저 녀석은 살아날 테고, 동시에 어지간한 절정고수 뺨치는 양기를 무료로 얻게 될 거야.

만약이라는 말은 애당초 꺼내지 않았다.
그런 상황을 그라도 역시 상정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어쩌면 지금 자신보다도 더 떨리는 심정은 지금 방 안에서 온 신경을 기울이고 있을 진유일지도 모른다.
‘부디 쾌유하시기를……’
검을 움켜쥔 손에 문득 힘이 들어갔다. 기이했다. 달을 바라보고 있던 것뿐인데 어째서 이런 기분이 드는 것일까. 긴장감과 초조함이 지나쳤던 것일까. 애써 마음을 비우려던 그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던졌을 때― 그의 눈이 경악으로 치떠졌다.
“어, 어째서?”
“여전히 둔하군, 백호검. 그러니 백호가 사성검(四聖劍)에서 가장 말석을 차지하는 것이다.”
차갑지 않은 목소리가 마치 검날의 끄트머리에 매달린 것처럼 날카롭기 그지없다. 본능은 분명하게 경고해 주고 있던 것이다. 그것을 받아들이지 못한 백호검은, 크나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
“크윽!!”
떨어져 나간 팔의 절단면은 지극히 예리해서, 어쩌면 봉합이 가능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런 일을 애초에 포기하고 빠르게 혈을 짚어 지혈했다.
이 근처에서 진유만 한 실력을 가진 의원은 없다.
설사 있다 하더라도 이 자리를 비울 수는 없다. 목숨을 걸어서라도 막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하지만 어째서 당신이……
“‘소희’ 아가씨…….”
방금 사람의 몸을 잘라낸 검답지 않게 살점 하나 묻어 있지 않은 검에선 시퍼런 예기가 뿜어져 나왔다. 누군가가 본다면 명검이라고 착각할지 모르나, 단순한 청강검에 불과했다. 명인은 검을 고르지 않는다고 했던가.
“물러서라. 여기서 거둘 하나, 그리고 그건 네가 아니다.”
“어째서입니까? 소미 아가씨가 당신에게 피해를 준 건 아무것도 없었을 텐데!”
오히려, 감쌌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수많은 오해가 팽배하는 가운데 소미를 위협해 온 수차례의 암살들에 대한 화살은 대부분 그녀의 누이인 소희에게로 향하곤 했다. 정실에게 얻은 딸과 첩실에게서 얻은 딸의 차이는 설령 무공을 모르는 차이가 있더라도 없지만은 않았던 것이다.
그 모든 것을 아우른 소미는, 결코 그러한 가능성을 부정하며 고개를 가로젓고 언제나 해명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 사람을, 당신은 베겠다고 하는 것인가?!
“소희 아가씨께, 소미 아가씨는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텐데 어째서…….”
“그게, 문제라고 말하는 것이다 백호검.”
무감각한 목소리.
투명한 유리를 바라보는 듯한 기이한 시선.
절세라 불릴 만한― 세간에서 빙화라 떠드는 소희의 얼굴은 그 비유가 부족할 정도로 무서우리만치 무감정했고 어딘가 허무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러는 사이 백호검은 검을 고쳐 잡고 진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처음부터 무력을 없애려는 시도였겠거니, 왼손은 단련한 기억이 그리 많지 않았다. 차라리 박투가 낳을 정도로, 그러니 이것이 최후의 방어가 될 터였다. 버티내지 못한다면 그걸로 끝이고 버텨낸다 해도 고작 수 초를 더 버틸 뿐이다.
‘적어도 진유, 그 남자의 치료가 끝나기 전까지는……!’
그렇게 마음먹은 백호검의 심정을 다만 무심한 눈길로 쳐다보던 소희가 느릿하게 말문을 열었다.
“내게 영향을 끼치지 못한다…… 그렇기에, 다.”
“그건 무슨 의미입…… 큭?!”
아무런 예비 동작조차 없이, 그저 휘둘러진 검을 막는 것에 양 손을 들었건만, 소희는 여전히 한 손으로만 검을 들고 있다.
마치 검을 맞댄 채로 미동조차 없는 소희에 반해 이미 한쪽 무릎마저 꿇려 있는 백호검은 양손으로 맞아쥔 검을 떨며 힘겹게 견디고 있었다.
“악영향조차 끼치지 못하고 세가의 무공조차 배울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나 집안에 누를 끼칠 바에야 죽는 편이 낫다.”
“그래서…… 손수 죽이러 오신 것입니까?”
“모든 것은 세가를 위해서다.”
알고 있었다. 아마도, 소미를 만나기 전이었다면 망설임은 있었을지 몰라도 자신 역시 그러한 선택에 동의했을지도 모른다. 천하제일가란 곳이 그런 곳이었으므로.
그러나 만나서 변했고 변했기에 알게 된 사실이란 게 있다.
“그런 게 진정 옳은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녀의 검을 휘어지도록 휘감는 기이한 검기.
일순 이채를 띠던 그녀의 눈은 곧바로 원래의 모습을 되찾고 몇 발자국 물러섰다.
그리곤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서는 백호검을 향해 무감각한 어조로 말했다.
“말했을 텐데.”

월야천검무(月惹天劍舞) 제1무
초연(初秊).

“모든 것은 세가를 위함이라고.”
“큭!”
제빨리 들어 올린 검을 비틀어 끌어모은 기의 힘을 모조리 쏟아붓는다.
“백호검(白虎劍) 제3초, 연풍아(聯風牙)!!”
질풍처럼 쏟아지는 허초 속에 숨겨진 것은 단 하나의 검기. 하지만 초연의 검기는 어느 것 하나가 가짜인 것이 없다. 마치 전신을 휘감아 올리듯 빈틈없이 쇄도해 오는 푸른 색의 기운은 살아 있는 뱀처럼 날아들었다.
“크윽!”
전신에서 솟구치는 피.
간신히 급소에 가격당하는 것은 피했지만, 사실상 이만큼의 검격을 맞고 더 이상 싸울 수 있을 리가 없다. 진즉에 풍아의 검기를 상쇄시켜 버리고 지켜보고 있던 소희는 끝을 내려는 듯 천천히 검을 들어 올렸다.
그 순간,
콰아아아앙!!
“뭐……야?!”
“…….”
폭발음과 함께 뒤를 돌아본 백호검의 눈동자엔 활활 타오르는 집이 있었다. 그리고, 언제 뛰쳐나왔는지 모를 화연과 어찌할 바를 모른다는 얼굴로 고개를 두리번거리고 있는 소미. 마지막으로……
“아주 홀랑 태워먹었구나. 응?”
털썩 주저앉은 채로, 기가 차다는 듯한 진유의 얼굴이었다.
“아가씨!! 모, 몸은 괜찮으신 것입니까?!”
걱정과 기쁨이 한데 섞인, 고통을 도외시한 백호검의 처절한 외침을 들은 소미가 번뜩 정신이 든 것처럼 화들짝 놀라며 대꾸했다.
“네……네!! 저, 전 괜찮아요. 그런데 정연 아저씨 팔이……!”
“내가 안 괜찮다. 이 빌어먹을 손님들아.”
잔뜩 찌푸린 얼굴 그대로, 잘도 타고 있는 집을 바라보는 진유의 눈에는 그야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감돌고 있었다.
“뭐, 어찌 됐든 수술 하나는 잘된 셈이네.”
“네……?”
“모르겠냐? 이거 니가 한 거야.”
영문을 모른다는 표정의 소미는 그 말을 듣고서야 자신이 무의식중에 방출해 버린 양기의 힘이 이 정도라는 것을 깨닫고 얼굴을 굳혔다. 그리고……
“이게…….”
“야― 잠깐만, 그거 그렇게 막 뽑아내고 그러면…….”
화르륵!!
“꺄악?!”
불타오르는 손의 모습에, 반사적으로 손을 허공에 휘젓는 그녀. 단지 그것뿐인데, 손에 깃든 터무니없는 양기들이 이리저리 뿜어져 나갔다. 그중 한 줄기를 정면으로 맞이하던 소희는 가볍게 내려칠 요량으로 검을 휘두르다가 그 터무니없는 열기에 곧바로 내기를 실어 튕겨내었다.
“검이, 녹았다?”
약간 얼이 나간 듯한 중얼거림 그대로, 그녀의 애검의 날은 상해 있었다. 그것도 상당한 수준으로.
그 모습을 보던 진유가 소미를 진정시켜 주며 당연하다는 듯이 말했다.
“자그마치 십 몇 년간을 묵혔으니까 말이지.”
“…….”
이 남자, 설마 알고 있는 것인가. 그렇다면,
무표정함 뒤에 그런 생각을 떠올린 그녀의 몸이 반사적으로 진유의 앞을 향해 내달린다. 그런 그녀를 막아선 것은,
“너.”
“그만두세요, 언니.”
차분한 목소리로 진유의 앞을 가로막은 소미는, 여전히 불타오르는 그 양손을 더 이상 당황하지 않고 전면에 내세우며 말했다.
“언니가 진유 님을 해치려 든다면, 저 역시 가만히 있지는 않겠어요.”
“…….”
처음으로 그 가면이 깨어진 것은 기이함, 아니, 기묘함일까. 여태껏 자신에 대한 어떠한 반항도, 심지어는 언사조차 매사에 조심하던 소미가 이렇듯 당당하게 자신에게 대항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놀라움이나 경악에 앞서 알지 못한다는 기묘함을 만들어 파문을 일으켰다.
‘동요하고 있다. 내가?’
일순간의 생각을 단순한 감정의 혼란으로 치부한 그녀가 재차 검을 휘두른다. 하지만 소미가 있던 자리에는 이미 그녀가 없었다. 대신하여 검날을 막아선 건 조금 전까지만 해도 이 자리에조차 없었던 여성의 새하얀 손이었다.
“강시?”
려의 정체를 한눈에 간파해 버린 사실에 호오―하고 놀란 진유가 의외라는 듯이 중얼거렸다.
“용케 알아맞췄군. 눈이 좋은 건가?”
“범인이 보지 못하는 걸 볼 수 있다. 단지 그것뿐.”
“뭐, 자세한 건 아무래도 상관없고, 가라 그냥.”
“…….”
“침묵으로 응답하지 말고 가라고, 너만한 실력자면 알 텐데.”
확실히, 눈앞의 상대는 강력했다. 전력을 다해 내려치고 있는 검이 미동도 하지 않고 있는 것만 봐도 지금의 자신이 상대가 되지 않는다는 것은 어렴풋이 눈치채고 있었으므로.
“려가 아니더라도 이제 네 동생도 무시하지 못할걸. 궁금하면 어디 한 번 휘둘러 보던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신의 앞에 나선 두 여성의 어깨에 손을 얹은 진유가 해보란 듯이 미소를 짓는다.
터무니없는 말을 곧이 곧대로 듣고 싶지는 않지만, 아까부터 자신을 노려보는 저 시선.
마치 귀기 어린 듯한 눈동자는 도무지 상대할 자신이 없다.
그건 더 이상 없을 분노를 두 눈에 담고, 언제라도 자신을 죽이겠다는 듯이 노려보고 있는 것이다.
마치 누군가의 명령을 기다리듯이.
이런 건 가문의 누구에게서조차 느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그녀의 아버지이자 천하제일가의 가주에게서도.
“려.”
“진.”
“이제 됐어.”
“응.”
시선을 조금도 떼지 않은 채 맨손으로 잡아쥔 칼날을 그대로 비틀어 버린 려는 그제야 손을 뗀 후 그 엄청난 살기를 지우고 처음의 모습으로 돌아갔다.
그 모습에 소희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 진유는 이상하리만치 떨고 있는 화연에게 잠시 시선을 주다가 곧 소희에게로 돌리면서 말했다.
“난 말이지, 성가신 걸 별로 좋아하지 않아. 하지만 보다 큰 성가심을 면하기 위해 자잘한 것 정도는 감수할 생각이 있지. 무슨 의미인지 알겠냐?”
가늘게 뜬 그의 눈동자가 기이한 빛을 띈다. 그녀의 심안에만 비춰진 그 빛을 발견했을 때 소희는 저도 모르게 가볍게 몸을 떨고 있었다.
“난 이 이상 내 환자의 신변에 위협이 될 만한 ‘쓰레기들’을 그저 방치해 두고 싶은 생각은 없다는 뜻이다. 언제든지 찾아와라. 단, 그때가 너희집 간판 내리는 날이 될 거라고 생각하는 게 좋아.”
자신의 목숨 따위가 아니다.
이 남자는 지금 천하제일가를 걸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소희의 눈동자가 일순간이지만 미미하게 흔들렸고, 소미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분명 의원으로서 말하고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이 동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지금 날 살려두면 후회하게 될 텐데.”
“사람이 좋은 건지 아니면 단순히 바보 같은 건지…… 혼수 상태에서 이름을 부르짖을 정도로 말이야.”
“에……?”
“…….”
소미가 당황하든 말든 진유는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그런 녀석이 괜히 동요할 만한 일을 지금 만들고 싶지 않을 뿐이거든. 환자의 안위는 중요하니까. 얘기 끝났으면 얼른 가. 그나저나 이거 아주 다 탔네 다 탔어.”
“지, 진유 님…….”
“…….”
소희는 잠시 말이 없다가, 검을 바닥에 떨구었다. 그리곤 휙 돌아서며 말했다.
“반드시 후회하게 될 것이다. 너도, 그리도 너도.”
“전 후회하지 않아요.”
올곧은 소미의 눈동자에 소희는 듣지 못한 것처럼 어둠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긴장감이 한순간에 풀리자 그 자리에 주저앉듯이 쓰러지는 소미를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던 화연이 한달음에 내달려와 부축했다.
“아가씨 괜찮으세요?!”
“으응…… 조금 머리가 어지러운 것 빼고는…….”
“이, 이보게 진유! 정말 아가씨께서 괜찮은 건가?! 아까 그 무공은 대체…….”
“거 나중에 합시다들? 지금 집 다 타서 짜증나 죽겠거든?”
“…….”
과연 그 화제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 버린 백호검은 뻐끔뻐끔 입술을 움직이면서도 차마 소리를 내지는 못했다.
그 와중에 잿더미가 된 집 위에서 뭔가를 열심히 줍고 있는 려를 바라보는 진유에게, 소미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저…… 진유 님?”
“사과 안 해도 돼. 어차피 오래됐고, 집이야 다시 구하면 되는 거니까.”
“그, 그것도 그거지만 그게…… 제가 정신을 잃었을 때, 뭔가…… 말했나요?”
“알고 싶냐?”
진심으로 묻느냐는 듯한 진유의 시선에 차마 고개를 끄덕이지 못하는 소미였다.
진유는 거적때기를 들고 집주변을 들쑤시고는 있지만 이미 집에는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필요한 영약들은 려를 시켜 다른 곳으로 옮겨놓은 지 오래고, 저만한 양기를 처리하는 데 어느 정도의 배설(?)은 있을 거라 예상한 바였다.
집이 몽땅 타 버린 건 다소 예상 밖이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그의 머릿속을 차지하고 있는 건 그런 것보다는……
‘하여간 개같은 자식들 아니랄까 봐 딱 어울리는 짓거리를 해놓으셨구만. 천하제일가라…… 할아버지 당부만 없었어도 진짜 하늘 아래에서 지워 버렸을 것들이.’
시술하는 내내 그것 때문에 방해받은 것도 짜증나지만 새삼스레 무인이란 것들에 대해 정만 떨어지는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