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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주화타 1 (17화)
6장 북해도(北海道)(1)
이튿날, 가까운 여관에서 하룻밤을 보낸 진유와 일행들은 식사를 마친 후 그가 제안한 대로 한 방에 모여 이야기를 하는 중이었다.
정확히는 소미의 몸 상태에 대해서지만.
“어제처럼 무식하게 남발하면 여태까지 무공이라곤 소화해 내 본 적 없는 그 깨끗한 몸이 깔끔히 녹아 버리겠지.”
무서운 소리를 아무렇지 않게 하는 진유를 보며 식은땀을 흘리는 화연이나 백호검과는 달리 당사자인 소미는 오히려 차분한 모습이었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진유는 잠시 공백을 두었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물론 지금은 빙정으로 그 기운을 다스리고 있으니까 문제는 없지만, 완전히 제어하려면 북해에만 있는 한빙옥(寒氷獄)이 필요하지. 그래서 일단은.”
“북해로 갈 겁니다.”
진유의 말을 끊고 나타난 여인은 짤막하게 말을 이었다.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군요. 어서 가죠.”
갑자기 나타난 제3자, 그것도 중원인과는 판이하게 다른 외모의 미녀의 등장에 모두가 당황해하자 진유가 짤막하게 설명했다.
“같이 갈 잉여다.”
“산골짜기에 틀어박혀 있던 당신이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꽁꽁 얼어붙은 얼음성에 틀어박힌 너는 아니고?”
“저…… 진유 님 그분은……?”
소미의 조심스런 목소리에 백발의 여인이 힐끔 시선을 던지는가 싶더니 간단히 목례로 인사하며 말했다.
“단주은(丹朱銀)입니다. 그쪽의 이름은 알고 있으니 굳이 알려주실 필요는 없습니다.”
“혹 북해빙궁의……?”
“집안의 이름일 뿐입니다.”
“제가 기분을 상하게 만들었다면 사과를…….”
“그런 일로 일일이 기분 상해하지는 않습니다. 그보다, 안 갈 건가요?”
그야말로 냉바람이 쌩쌩 부는 어조에 적응이 안 되는 소미와 화연은 그저 어색하게 웃을 따름이었다.
‘지제(智帝)’라 불리는 이명보다 차가운 얼음꽃을 연상시키는 여인. 중원인의 외모를 따르지 않는 것도 대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갈 거라고, 안내나 하시지.”
앞장서라는 말투에 도리어 의아하다는 어조로 되묻는 단주은.
“남해가 더 가까울 텐데요?”
왜 갑자기 남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를 세 사람을 제껴두고, 진유의 얼굴은 살짝 굳어 있었다.
‘남해?’
“저로서는 좋은 일이니, 그렇게 하죠.”
어딘가 묘한 분위기를 흘리는 말끝에 고개를 돌리려던 주은의 얼굴이 멈칫했다. 곧장 소미에게로 던져진 시선에 이어, 흘러나온 말은 소미로서는 의외의 말들이 아닐 수 없었다.
“난화, 당신의 몸속에 있는 놈의 힘은 강력합니다. 빙정으로도 겨우 그 기운을 다스리는 게 고작일 정도로. 사용하며 사용할수록 당신의 생명은 단축될 테니 조심하길 바랍니다.”
조언이나 충고보다는 경고에 가까운 어조였다. 지켜보는 백호검이 불쾌함을 느꼈더라면 당사자는 말 할 것도 없었겠지만,
“그렇군요. 충고 감사드립니다.”
“…….”
순순히 호의를 받아들이는 듯한 태도에 잠시 말이 없던 주은이 휙 돌아서 먼저 밖으로 나섰다.
그 뒷모습을 보며 고개를 설레설레 내젓던 진유가 부언설명을 덧붙였다.
“쓸데없이 쓰지만 않으면 5년은 무사해. 그 정도 시간이면 북해에 도착하고 치료하고도 남지.”
“걱정은 하지 않습니다.”
고개를 저으며 올곧은 시선으로 진유를 응시하는 소미.
“진유 님을 믿으니까요.”
“그래. 그럼, 슬슬 가자. 려도 도착한 모양이고.”
밖으로 나왔을 때 주은은 못마땅한 시선으로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작 그 당사자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듯 보였다.
“아직도 이 괴물을 데리고 다니시는 건가요? 당신의 그 무신경만큼은 정말이지 알아줘야겠군요.”
질린다는 표정으로 려를 보는 주은의 시선을, 지금의 소미와 화연으로는 알 수 없었다.
터무니없는 양의 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한 손으로 둘러맨 려의 모습을 화연이 턱이 빠져라 입을 벌린 채로 보고 있을 때, 앞장 서서 걷기 시작하는 진유의 뒷모습을 지켜보는 소미는 마음속으로 작게 중얼거리며 그의 뒤를 따라나섰다.
‘언젠가는, 소녀에게도 알려주실 것이라 믿겠습니다.’
“그런데 북해빙궁은 어디에 있는 곳인가요?”
무작정이다시피 길을 떠난 진유의 곁에서 잠자코 걷고 있던 화연이 묻자 그제야 소미 역시 당장의 목적지에 떠올려 봤지만 이렇다 할 제대로 된 지식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생각해 보면 정사대전은 물론이고 혈마대전, 기타 중원의 역사에서 등장하지 않은 가문 중 하나로 유명한 북해빙궁은 개방조차 그 위치를 가늠하기 어렵다고 말할 정도로 베일에 쌓여 있다.
적어도 근 2∼3백 년간 출두한 적이 없기에 신비로운 것은 당연할 텐데, 어째서 지금까지 별로 궁금하다고 느끼지조차 않은 것일까― 생각하는 소미를 뒤로하고 말없이 걷던 주은은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당신들이 알지 못하는 곳입니다.”
날이 선 듯한 목소리에 백호검이나 화연이 먼저 뭐라 말하기 전에 소미가 답했다.
“그렇군요. 들은 기억밖에 없어서 궁금했습니다.”
대답하는 사람이 무안할 정도로 바른 대답에 주은이 다시 입을 닫았고, 그런 두 사람을 지켜보던 진유는 상극이 따로 없으면서도 의외로 잘 맞물리는 모습에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화가 멈춘 사이 소미는 자신의 몸 상태를 점검했다.
이제는 한 몸이 되어 살아가야 할, 자신의 몸에 깃든 충이 내보내는 양기를 제어할 수는 있게 되었지만 아직은 어떻게 써야 하는지도 조절하는 방법도 제대로 알지 못했다.
최소한 실전에서 당황하는 일이 없도록, 계속해서 머릿속으로 이런저런 고민을 거듭하는 소미.
한편 단주은은……
―정말 괜찮은 겁니까?
―왜, 너무 넉살이 좋아서 당황했냐?
―장난은 이쯤에서 그만두시죠. 북해로 가는 길이 어딘지 당신도 잘 알고 있을 텐데요. 성가신 걸 싫어한다면서 잘도 그 길을…….
―저 녀석이 범죄라도 저질렀냐? 지 동생이라도 죽이고 도망친 것도 아니고, 신경 안 쓰면 그만이야.
―…….
질린다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내젓던 단주은은 이내 입을 다물어 버렸다.
북해로 출발하기로 한 다음 날의 저녁, 조용히 소미의 방을 찾은 백호검.
소미는 의아해하면서도 이어지는 그의 제안에 살짝 얼굴을 굳혔다.
그렇다고 홀로 세가에 들르겠다는 그의 말에 무작정 반대만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의 안위가 걱정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럼에도 자신을 따라 남아 있는 세가 내의 식구들의 걱정되는 것은 마찬가지기에.
“반드시, 돌아오셔야 해요.”
“존명!”
백호검을 그렇게 보내고 나서 소미는 이전보다 말수가 줄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상황이 이해가 가는 것은 아니었다.
“역시 작은 객잔은 어쩔 수가 없군요.”
맛에 대한 불평이기보다 가게 전체에 대한 폄하에 가까운 주은의 말에 소미와 화연은 얼굴이 화끈거려서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는 중이었지만 진유는 익숙한 듯 자신 앞에 놓인 음식을 먹으며 이따금 가게를 둘러보고 있었다.
“이런 곳에 오는 인간들도 대충 어떤지 알 만할 정도니.”
“어이어이― 듣자하니 말이 조금 심하잖아. 그러는 네년도…….”
“빙백지(氷白指)―”
기다렸다는 듯이 검지 손가락을 들어 올리는 단주은. 마치 조그마한 빛의 구슬이 손끝에서 퍼져 나와 다섯 갈래로 갈라져 사내의 몸 중앙에서 다시 한 갈래로 뭉쳐 부딧치기까지 눈 한 번 깜빡할 사이였다.
비명조차 지를 틈도 없이 다소 찌푸린 표정 그대로 전신이 얼음상이 되어 버린 사내의 모습에 가까이 앉아 있던 몇몇 인물들이 비명을 지르며 일어섰다.
여전히 표정의 변화가 없는 진유의 모습에, 소미는 안절부절못하는 화연을 진정시키고 주은에게 말을 걸었다.
“어째서 지금과 같은 일을……?”
“이자는 수배가 내려진 현상수배범입니다. 어쩐지 이런 변변찮은 곳에 사람들이 모여 있더라니…….”
단주은은 잠시 말을 멈추곤, 일어서서 말했다.
“저 얼간이를 가져가든 말든 자유지만, 그 더러운 시선을 거두지 않겠다면 적어도 저 남자보다 강하다는 의미로 간주하죠.”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일단의 인물들이 얼굴을 푹 숙인 채 객잔을 빠져나갔고 다시 일련의 인물들이 조심스럽게 걸어나와 현상수배범 앞에 서서 논쟁을 벌이기 시작했다. 상당히 눈치를 보는 게, 아무래도 주은의 말을 신경 쓰는 듯 보였다.
울상인 점소이에게 금화 몇 닢을 던져준 단주은은 알아서 하라는 듯한 눈빛을 보냈고 곧 반색을 표하던 점소이가 주방으로 돌아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가게 문은 닫혔다.
무표정했지만, 미묘하게 만족스러워 한다는 사실을 진유는 알 수 있었다.
“괜찮은 거냐? 대놓고 그렇게 빙백신공(氷白神功)을 남발하면 여러가지로 불편할 텐데?”
“거지든 창녀든 파락호든 누군가의 입소문에 오르락거리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어차피 이목을 끌 바에야 잔챙이들은 떨궈내고 싶을 뿐입니다.”
한숨 섞인 목소리로 중얼거리는 주은의 말에 진유는 고개를 설래설래 내저으며 중얼거리듯이 말했다.
“글쎄…… 신주도 벽지지만, 여기도 만만치 않은 벽진데 말이지. 그런데 고작 현상수배범 하나 때문에 이렇게 몰려 있다? 나로선 이해하기 힘든데, 더군다나 이 녀석이 빙백지를 보고도 남아 있는 위인들이 이렇게나 많다고 하는 건 다른 볼일이 있어서겠지.”
“저로 인한 일은 제가 처리할 겁니다. 당신이 신경 쓸 필요는 없죠.”
“기대하지.”
소미와는 다르게 불꽃이 튀는 듯한 두 사람의 모습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바라보던 소미와 화연은 분위기가 가라앉은 것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