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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제2장 언데드 마을 슈렌(2)


잔인하게 미소를 짓고 있는 쿠벤이 고개를 돌려 자신의 아내 엘리스를 쳐다보았다.
“오오, 엘리스. 나의 엘리스. 저 녀석이 나를 괴롭히오. 어찌하면 좋겠소?”
엘리스가 사악하게 웃었다.
“호홋, 쿠벤 님을 괴롭히는 자라면, 저 엘리스가 결코 용서치 않겠어요.”
촌장이 이 모습을 본다면 화가 뻗쳐 머리가 터질 일이다.
군데군데 찢겨져서 속살이 보이는 검은 드레스를 입은 여인 엘리스는 바로 촌장이 말한 자신의 딸이자, 이제는 옛날의 모습을 잃고 악녀가 되어 버린 엘리스이다.
“쿠벤 님을 괴롭히는 자…….”
탐스러운 긴 금발 머리를 흩날리며 엘리스가 수정 구슬 이미지에 떠오른 드란을 째릿하게 노려봤다.

*

움찔!
“뭐야, 이 느낌은…….”
왠지 자신을 노려보는 느낌이 들자 드란의 꼬리가 절로 퍼뜩 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대체 이곳은 얼마나 가야 하는 것이지?”
머리를 긁적이던 드란은 순간 살기를 느꼈다.
드란이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아보았다.
“누구냐!”
“우워어어어―”
“…….”
그리고 뒤돌아 본 것을 후회했다. 대략 20여 구가 넘어 보이는 좀비들의 모습은 절로 전투력을 떨어트리며, 식욕을 떨어트리는 장면이다.
하지만 좀비들의 특성상 이동속도와 공격 속도는 느릴 터!
“불쌍한 사람들.”
좀비를 바라보는 드란의 눈이 촉촉해졌다. 촌장의 설명을 듣지 않았다면 생각조차 하지 않고 검을 휘둘러 징그럽다며 죽일 좀비였지만, 이미 설명을 들은 드란이었다.
“부디, 자유롭게 사시길.”
드란이 우두머리 늑대의 송곳니를 꺼내 들어 앞의 좀비들을 베어 나갔다.
“우워어어―”
좀비의 썩어 문드러진 팔과 다리가 마구 튀겼지만, 고통을 느끼지 않는 언데드이다. 비록 전에는 살아서 이 마을을 밝게 해 주던 마을 사람이라지만 지금은 한낱 언데드에 불과한 존재들이다.
이윽고 레벨 업을 했다는 소리와 함께 20여 마리의 좀비들을 전부 처치할 수가 있었다.
혹시나 해서 좀비의 배에 손을 집어넣어 간을 빼 보았지만 완전히 부패된 간뿐이었다.
“흐흠…….”
마치 담배를 20년간 핀 사람처럼 부패되어 버린 간은 도저히 먹을 수가 없을 지경이었기에 드란은 다시 좀비의 배 속에 넣어 주었다.
“그래도 다행이야. 좀비들의 속도가 느려서.”
사실 좀비들의 레벨은 드란보다 몇 수 낮은 11레벨이다. 원래라면 숲을 빠져나오자마자 들렸어야 했지만 오크들에게서 레벨 업을 하고 난 다음에 와서인지 좀비들은 드란의 상대가 못 되었다. 또 이동속도와 공격 속도 또한 느리니 민첩성이 사기적으로 높은 자신으로서는 회피 또한 쉬웠다.
그렇게 어느 정도 좀비들을 처치하고 난 다음, 앞으로 나아가자 마을의 폐허같이 숭숭 구멍 뚫린 집과는 다르게 멀쩡한 집 한 채가 있었다.
드륵―
단 한 채만이 멀쩡하다면 그곳에 흑마법사가 있을 터, 드란은 생각할 필요도 없다는 듯 문을 열고 들어갔다. 그 예상은 적중했다.
“어서 와라, 기이한 기운을 내뿜는 요수여.”
쿠벤이 교활한 미소를 지으며 드란을 맞이해 주었지만, 드란은 이미 코를 찌르는 악취에 얼굴을 찌푸린 상태이다.
‘어찌 이런 짓을…….’
아무리 NPC라지만, 아무리 가상현실이라지만, 이건 좀 심하다.
여러 개의 시체들이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모습은…… 가히 지옥의 연옥을 연상시킬 정도이다.
“네놈이 쿠벤이냐?”
“그렇다면 어쩔 것이냐?”
“지독한 자식.”
드란이 더는 생각할 필요가 없다 여기고 달려 나가 검을 휘두르려는 순간, 검은 물체가 자신을 막았다.
챙―
“쿠벤 님은 건드릴 수 없다.”
“오오, 엘리스. 그래, 저 녀석이 나를 괴롭히는구나. 처치를 해 줄 수 있겠느냐?”
“쿠벤 님을 위해서라면.”
엘리스가 자신의 키보다 더 커 보이는 양손검을 들고는 드란을 내려쳤다.
“이런!”
드란은 양손검의 크기와 파괴력을 고려해 본 결과, 부딪칠 경우 100% 사망이라고 여기고는 피하는 것을 택했다.
콰앙―
양손검이 땅에 부딪침과 함께 그곳이 엄청나게 파였다.
드란이 그 모습에 살짝 등골이 오싹함을 느끼고는 앞발을 모았다.
“바람의 술!”
푸화아악―
드란의 입에서 바람이 뿜어져서는 그대로 엘리스의 몸에 적중했다. 하지만 엘리스는 양손검을 땅에 박고 잡고 있어서인지 날아가지는 못했고, 주변의 시체들만이 날아갔다.
“네, 네 이놈이!”
자신의 연구물들이 휭 하니 날아가며 주변을 어지럽히자 쿠벤이 화가 뻗친 듯 눈을 붉혔다. 아마 이곳에 온 후부터 평생을 연구할 생각의 자료들인 듯했으나 드란이 그런 것을 신경 쓸 리가 있겠는가?
“엘리스! 저 녀석을 산 자도 죽은 자도 아니게 만들어 버려라!”
“네.”
엘리스가 양손검을 땅에서 뽑고 달려오는 모습에 드란이 다시금 앞발을 모았다.
“어딜! 다크 애로우!”
“바람의…… 크윽!”
막 스킬을 사용하려던 드란의 앞발을 쿠벤이 시전한 다크 애로우에 적중당했고, 드란은 앞발을 풀 수밖에 없었다.
그러는 동안 어느새 드란의 앞까지 온 엘리스가 양손검을 그대로 내려찍었다.
“이런!”
드란이 그 흉흉한 모습에 깜짝 놀라며 허리춤에서 우두머리 늑대의 송곳니 2개를 이용해서 양손검을 막으려 했으나, 힘 하나는 끝내주는 양손검이다.
가볍게 우두머리 늑대의 송곳니 2자루를 압도하는 공격력!
더구나 운 없게도 송곳니의 내구도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제, 젠장.’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
그 모습에 쿠벤이 큭큭 대며 웃어 댔다.
“크윽, 지겠어…….”
“엘리 우워― 스, 그만 둬라!”
우연이라면 우연이랄까? 드란이 위기 상황을 맞이했을 때 좀비가 되어 버린 촌장이 나타났다.
촌장은 엘리스를 촉촉이 젖은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손톱을 내밀며 쿠벤을 향해 달려들었다.
“쿠벤, 이놈! 결코 용서치 않는다!”
“푸하핫! 한낱 좀비 따위가 나를 이길 수 있겠나? 다크 애로우!”
피융―
“커억!”
쿠벤의 마법 한 방으로 인해 촌장은 그대로 머리가 꿰뚫려서 바닥에 고꾸라졌다.
죽은 것이다. 저 쿠벤으로 인해.
으득!
“이 자식! 쿠벤!”
드란이 이를 갈며 힘을 주는 모습에 쿠벤이 코웃음 쳤다.
“엘리스의 힘에 쩔쩔매는 주제에 나를 이길 수나 있겠나?”
절대 용서 못한다. 쿠벤, 저 녀석만큼은.
현재 자신의 힘은 빈약하다. 그렇다면 딱 하나, 힘을 증폭시키는 요술이 있지 않던가? 비록 패널티는 심하지만 말이다.
“네놈만은, 네놈만은 결코 용서 못한다. 현신!”

*

―현신을 사용하셨습니다. 1분마다 10의 영력이 소모됩니다. 공격력 200% 증가, 민첩X2.

“크으으으―”
드란의 몸에서 막대한 양의 알 수 없는 붉은빛 요기가 뿜어지며 한 마리의 거대한 여우로 실체화되었다.
이것이 진정한 일미호의 진짜 모습!
“쿠벤, 각오해라!”
“쿠벤 님은 내가 지킨다.”
뛰어서 쿠벤에게 향해 가는 드란을 엘리스가 양손검을 휘둘러서는 막았다. 아니, 막으려 했다.
푸욱!
“네 녀석은 자신의 아버지를 죽인 자를 아직까지 감싸려 드는 거냐!”
“꺄아악!”
드란이 그대로 엘리스의 가슴팍에 커다란 손을 집어넣고는 생간을 뽑아냈다.
으적으적―

―띠링! 특이 몬스터 ‘악녀 엘리스’의 간을 섭취하였습니다. 영력 +80, 영구적으로 힘 +2.

“마, 말도 안 돼!”
쿠벤은 바로 앞의 거대한 요수가 엘리스의 간을 뽑아서 그대로 입에 넣고 씹어 먹는 광경에 엄청난 공포에 휩싸였다.
아니, 사람의 생간을 그대로 씹어 먹다니?
“이런 괴물 같은 녀석! 받아라, 다크 애로우!”
쿠벤이 양손에 다크 애로우를 시전해서 드란을 향해 날렸으나, 드란은 가볍게 피하고는 앞발을 모았다.
“바람의 술!”
푸화아아악―
공격력이 200%가 된 것이 물리적인 것만이 아니라 마법적인 영향도 있는 것인지, 드란의 거대해진 입에서 인간일 때의 모습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바람이 뿜어져 나오며 쿠벤의 몸을 강타했다.
“크아악!”
쿠벤이 그 바람에 몸을 지탱하지 못하고 비명을 내지르며 바닥을 굴렀다.
드란은 그런 쿠벤에게로 가볍게 다가가서는 앞발에 자란 기다란 손톱으로 가볍게 쿠벤의 몸을 찔렀다.
푸욱!
“크아아악!”
몸이 꿰뚫린 고통, 참을 수 없는 아픔을 느끼게 된 쿠벤이 고통을 호소하며 몸을 뒤척거렸으나, 이미 화가 제대로 뻗친 드란이다.
“고통스럽나? 네놈이 한 짓을 생각하고 반성해라!”
푸푸푸푹!
현신의 효과로 민첩이 2배가 되어 100이 넘어가는 드란이다. 그 민첩의 양으로 손톱을 마구 찔러 넣자 그 속도가 가히 엄청났다.
“크아악, 살려 줘!”
“…….”
“제발…… 살려 줘…….”
눈물로 호소하며 외쳐 대는 쿠벤의 몸 주변에는 드란의 손톱으로 인해 수없이 많은 구멍이 나 있다.
쿠벤의 처절한 모습에 절로 동정이 들건만, 드란은 이미 쿠벤이 해 온 짓을 알고 있다.
아무 죄 없는 사람들을 자신의 연구를 위한 재료로 사용했을 뿐더러, 멀쩡한 사람을 흑마법으로 세뇌시켜 악녀로 만들었다. 애초에 행복했던 이 마을 슈렌을 망가트린 자가 바로 이 쿠벤이다.
“지옥에 가서 그 사람들을 위해 빌어라.”
“뭐, 뭐?”
“간 섭취!”
거대한 여우로 변해서인지 인간일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기다란 손톱이 튀어나오며 그대로 쿠벤의 가슴팍을 꿰뚫었다.
“커어억!”
가슴팍이 꿰뚫리는 고통이 엄청난지 쿠벤이 고통에 겨워 몸을 떨어 댔으나 자신이 해 온 짓을 생각하면 이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하다.
더구나 드란은 일부러 간을 빼는 것을 늦추고 있었다. 자신의 손이 장기를 만지작거리고 있으니, 그 고통과 두려움은 엄청날 것이다.
부들부들.
막 떨어 대던 쿠벤의 눈이 두려움으로 물들었을 때, 드란이 손을 빼냈다.
“쿨럭!”
드란의 손에서 새까만 연기에 둘러싸인 간이 나오며 쿠벤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현신 해제.”
아무리 빨리 해치웠다고 해도 무려 4분이나 흘렀다. 덕분에 40의 영력을 소모한 드란으로서는 아까워 죽을 일이다.
거대한 여우였던 드란의 몸이 다시금 꼬리 하나와 쫑긋 세워진, 여우의 두 귀를 가진 인간의 몸으로 변화되었다.
“네놈이 저지른 죄의 심판을 받은 거다.”
죽어 있는 쿠벤을 향해 비웃은 다음, 드란이 막 생간을 입에 넣으려던 중 누군가가 자신을 불렀다.
“고맙구나. 요수여.”
옆을 보니 한 마리의 좀비에 불과했던 촌장이 원래의 몸을 되찾은 인자한 할아버지의 모습으로 드란에게 감사를 표했다. 물론 딱 하나, 몸이 영혼의 상태처럼 흐릿한 것만 빼면 말이다.
“훗. 천국에 가서 사이좋게 지내라고요. 촌장.”
“고맙다. 정말 고마워.”
촌장이 눈물을 흘리며 점차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슈렌 마을의 곳곳에서 빛과 함께 무엇인가가 사라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을 사람들의 영혼이 자유를 되찾은 것이 분명하리라.
드란은 그 모습에 피식 미소 짓던 중 알림음이 하나가 들려왔다.

슈렌 마을 촌장의 부탁 퀘스트가 완료됐습니다.
언데드 마을이었던 슈렌 마을의 사람들의 영혼을 자유롭게 해 주셨습니다.
간교한 방법으로 평화로운 마을을 지독한 악몽으로 만든 쿠벤은 지옥의 사신으로 인해 지옥으로 끌려가 평생을 고통의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슈렌 마을의 사람들은 당신을 진정한 병의 치료사로 생각하며 편히 천국으로 향할 것입니다.
슈렌 마을의 모든 이들을 구원해 주신 당신에게 ‘영혼의 구원자’라는 칭호가 주어집니다.
<<영혼의 구원자=힘 +5, 민첩 +5>>

“부디 천국에서는 못 다한 행복을 이루시길.”
드란이 기도를 함과 함께, 시꺼먼 안개에 둘러싸인 쿠벤의 간을 꿀꺽 삼켜 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