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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화
제5장 삼미호 우포(3)
“도착이야.”
우포가 드란에게 말과 함께 폴짝 뛰어내렸다.
“아무것도 없는데 뭐가 도착이야?”
“당신, 그러고도 이미호 맞아?”
주변에 나무만 둘러싸인 이런 숲 속에 뭐가 있겠냐는 듯 물어오는 드란에게 우포가 한심한 얼굴로 쳐다보더니 나만 믿으라는 듯 작디작은 가슴을 팡팡 쳐 댔다.
“우리 구미호 일족은 다른 일족들에 비해 힘이 비약해, 그러니 숨어 있어야 하지. 사실적으로 말하자면 아까 그 레샤 놈의 나이는 195살. 나보다 어린놈이지만 웨어울프 일족인 이유 하나만으로 막대한 힘을 내지.”
“하늘을 뒤엎는 힘이라며?”
“그건 구미호가 되었을 때의 경우고. 실질적으로 구미호 일족이 진정한 힘을 깨우쳤을 때가 바로 현신을 사용할 수 있게 되는 오미호 때이지. 그래서 구미호의 성인식은 오직 500살, 오미호가 되었을 때 가능해. 물론 그와 함께 어린아이의 모습에서 어른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되지.”
“그래?”
“응, 그래.”
우포가 드란의 궁금증을 풀어 준 다음 텅텅 비여 있는 숲 속에 손을 가져다 댔다.
“따라하도록 해. 작은 여우가 큰 여우의 품으로 찾아갑니다.”
“으, 응. 작은 여우가 큰 여우의 품으로 찾아갑니다.”
쓰아아악―!
말과 함께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던 숲 속이 비틀어지더니 제법 중규모에 속하는 마을이 나오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돌아다니는 주민은 대부분이 키가 작은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일미호에서부터 네 개의 꼬리를 가진 사미호가 있었다. 성인식을 해야 어른이 되는지 오미호 이상부터는 대부분이 젊은 남자거나 젊은 여자였다. 그것도 엄청난 극의 미를 가지고 있는.
“예, 우포! 너 또 밖으로 나갔니? 내가 위험하다고 했잖아!”
“에구구, 미안해 히포.”
마을을 구경하느라고 우포를 신경 쓰는 것을 잊었던 드란이 고개를 돌리자 역시나 꼬리 3개의 삼미호의 히포라고 불린 어린 소녀가 우포에게 잔소리를 해 대고 있었다. 딱 보니 마누라한테 술 마시고 왔다고 잔소리 듣는 남편 모습이다.
‘불쌍한 놈.’
왠지 우포가 불쌍해지는 드란이다.
“응? 당신은 누구죠? 어떻게 이미호인 거지? 우포 대체 이거 뭐야? 이미호는 대부분이 영력의 흡수를 위해 키가 작아야 정상인데…… 이런 일이!”
“히포, 우선 진정 좀 해 봐.”
하지만 우포의 노력은 헛수고였다.
히포가 드란의 몸 앞에 가서 킁킁 냄새를 맡고 난 다음 말이다.
“마, 말도 안 돼! 이미호의 몸으로 현신을 실현했다고?! 그건 삼미호인 나로서도 힘든 일인데! 세상에 이런 일이 있다니!”
“무슨 일이니. 히포야?”
“뭔 일 있니?”
히포의 외침을 중심으로 어린 아이의 모습의 사미호 이하부터 미남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오미호 이상의 구미호 일족 사람들이 모여들자, 드란은 점점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잘 보니까 여자분들은 참 예쁘구나.’
어린 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는 구미호 일족들은 귀엽고 오미호 이상의 젊은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는 여자 구미호 일족은 뭇 남자들을 설레게 하는 수준이 아닌 그 자리에서 홀리게 할 정도로 뛰어난 얼굴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드란은 그냥 설레는 정도였다.
“호홋. 신기한 남자네. 이미호 때부터 어른의 모습이라니. 더구나 이미호여도 구미호의 일족이라는 건가? 몸에 요기를 둘렀는데도 홀리지는 않는군.”
뭐야, 그럼 같은 구미호의 일족 사람을 홀릴 생각이었다는 건가?
여하튼 간에 말이지.
“우포! 나 좀 살려 줘!”
드란의 호소 어린 외침에 우포가 간단하게 한마디 했다.
“생간 줘.”
제6장 구미호 일족의 마을(1)
“와하하. 샷포 언니 이거 대개 재미있다.”
“하루 종일 해도 질리지 않겠는데?”
“…….”
드란은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그대로 고개를 떨굴 수밖에 없었다.
애초에 웬만한 연예인 저리 가라 할 정도의 미모를 지닌 여성분들의 오미호들이 뒤에 자란 다섯 개의 꼬리를 살랑거리며 자신의 꼬리를 이리저리 만지는 게 아닌가?
듣기로는 이미호면서도 성인식을 치르지 않은 몸으로 어른인 모습의 드란이 무척이나 신기해 보이는 듯하다.
‘그래도 이건 좀…….’
겉으로는 20대 초반이라고 해도 믿을 것 같지만 실제로는 500살이 넘는 이들이 아니던가?
막상 그렇게 상상을 하니 500살 먹은 할머니들이 자신을 마치 먹는 음식으로 보는 듯한 착각까지 들기 시작했다.
‘망할 우포 녀석.’
저 멀리서 히포라는 여자 삼미호랑 시시덕거리는 우포를 드란이 째릿하게 노려보며 저주를 해 댔다.
애초에 저 녀석을 만나지만 않았어도 웨어울프 일족을 만날 일도 없었을 뿐더러 이 마을로 와서 이런 꼴(?)을 당할 일도 없을 터이다.
한편 그렇게 중얼중얼 저주를 읊어 대는 드란에게로 옆에 있던 오미호의 여성분들의 미모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극에 극의 미를 지닌 여인이 다가오자 드란은 순간 심장이 멈출 뻔했다.
‘아, 아름답다.’
멍하게 풀렸던 드란의 눈이 갑작스럽게 번뜩인 것은 그 여인의 뒤에 나 있는 일곱 개의 꼬리를 보고 나서였다.
“칠, 칠미호?”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오미호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의 일곱 개의 꼬리들이 춤추듯 움직이는 칠미호의 꼬리. 무엇보다도 칠미호가 되면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워질 수 있다는 것인가?
더욱이 놀라운 것은 칠미호의 여인이 다가오자 자신을 둘러싸고 있던 오미호들이 장난을 멈추고는 슬슬 피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에 드란이 움찔하던 순간 여인의 입이 열렸다.
“그대가 우포를 웨어울프족에게서 구해 주신 분이신가요?”
“아, 네. 그렇습니다만.”
“그렇군요. 정말 감사드립니다. 저의 이름은 미샨포. 보시다시피 칠미호이며, 이 구미호 일족의 마을을 지키는 촌장이라고도 할 수 있죠.”
그렇다면 이 구미호 일족의 마을에서는 칠미호가 최고의 단계라는 소리라는 말이 아닌가?
“저…… 칠미호이시면 팔미호나 구미호분들은 없으신가 보군요?”
드란의 물음에 칠미호인 미샨포의 얼굴이 잠시 굳어졌다가 이내 말을 이었다.
“74년 전, 저의 아버지이자 스승이셨던 팔미호 미우포 님께서 육미호였던 저에게 자신의 생명을 넣은 여우구슬을 주신 뒤, 하포 님의 품으로 돌아가셨습니다. 그리고 그 여우구슬 덕에 저는 이렇게 칠미호가 된 것이지요. 아, 저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네. 그러지요.”
미샨포가 정중히 물어오는 말에 드란이 괜찮겠다라는 생각으로 막 고개를 끄덕이려는 찰나 미샨포가 히포와 시시덕거리고 있던 우포를 불러냈다.
그 모습에 드란이 무슨 일이지? 라고 생각하던 순간 아버지라고 했던 팔미호의 이름이 문뜩 생각났다.
‘미우포라고?’
아버지 팔미호가 미우포, 그리고 미샨포가 부르는 자신을 이곳으로 오게 만든 삼미호 우포.
그 뜻을 드란은 얼추 알 수가 있었다.
미샨포가 손을 쫙 펼치고 안으려는 듯한 포즈로 우포에게 향하자 우포가 신나하며 달려왔다.
역시나 드란의 예상대로 저 우포는 아마도 미샨포의 동생일 것이 분명하다.
안전하게 돌아온 동생과 아름다운 누이의 만남, 이 얼마나 아름다운 장면이던가?
“쯧쯧. 우포 저 녀석 안됐어.”
“응?”
옆에 있던 오미호 여성의 한마디를 끝으로 드란은 그 뜻을 알 수 있었다.
찰싹찰싹.
“우포. 이 나쁜 여우! 이 누나가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 내가 그렇게 나가지 말라고 몇 번이나 말했니? 응?”
“으아아앙, 잘못했어, 누나!”
“…….”
그대로 우포의 엉덩이를 발랑 까서는 손바닥으로 찰싹찰싹 때리는 미샨포의 모습에 드란이 침을 꿀꺽였다.
‘무서운 여자다.’
건드려서는 안 되는 여우다.
*
“여기 앉으세요.”
“아, 아…… 네.”
방긋 웃으며 차를 건네는 미샨포의 모습은 정말로 아름다웠지만 드란은 어리벙벙한 표정으로 실실 웃을 뿐이다.
그리고 그런 드란의 옆에는 엉덩이에 얼음을 올려놓고 잠에 빠져 버린 우포가 보였다. 얼마나 세게 맞았으면 엉덩이에 피멍이 드는 것일까?
‘뭐 어찌 됐든, 지금은 즐기자고.’
후루룹.
미샨포가 건네준 차를 드란은 냅다 들고는 벌컥벌컥 들이켜기 시작했고, 이내 눈이 번뜩 떠졌다.
“마, 맛있네요?”
마시자마자 느껴지는 자연의 풀 향기. 이런 차 맛은 집에서 끓여 마셨던 1천 원짜리 녹차와는 비교도 안 될 산뜻한 느낌과 평화로움을 느끼게 해 주었다. 더불어 신기하게도 그동안 쌓여 왔던 피로가 싹 가시는 느낌이다.
드란은 이것을 또 언제 맛보냐는 생각으로 차를 입에 들이붓기 시작하다가 그만 일을 저질렀다.
“앗, 뜨거!”
“어머, 조심하세요.”
미샨포가 다급히 와서는 헝겊 조각으로 드란의 주변을 닦은 다음 차가운 물을 만들어서 드란의 혀에 부어 주었다.
“아, 감사드립니다.”
“호호. 차는 얼마든지 있어요. 그리고 뜨거우니 천천히 드셔야 한답니다.”
“…….”
정말 적응이 안 된다. 아니 이 가상현실 게임을 만든 사람은 생각이 있는 것인가 없는 것인가? NPC를 이렇게 아름답게 만들어도 정도가 있는 것이 아닌가?
대화를 할 수도 없을 정도로, 아니 쳐다보기도 힘들 정도로 만들어 내면 대체 어찌하란 말인가?
어찌 됐던 드란이 그러든가 말든가 미샨포는 자신의 용건을 드란에게 말했다.
“주변에 있던 오미호와 우포에게 듣기로는 현신의 흔적이 있었다고 하시던데. 정말 현신이 가능하신 건가요?”
“네, 그런데 이미호가 현신을 사용하는 것이 이상한 것인가요?”
미샨포가 크게 한숨을 불어 내쉬었다.
“흐음, 그게 사실 저희의 경우에도 이미호 때, 현신을 도전해 본 여우가 없어서요. 사실상 영력이 아직 완전치 않은 이미호의 몸으로 현신을 실행했다가는 필히 온몸의 영력이 빨려서는 미이라가 될 것이 분명합니다.”
“미, 미이라요?”
말려 버려서 죽는다고?
“그럼, 하나 더 물어보죠. 아까 돌아온 우포의 영력이 상당히 증폭되어 있던데. 혹시 우포에게 무엇을 주셨나요?”
“아, 혹시 이것을 말하시는 건가요?”
드란이 가방에 있던 생간들 중 자그마한 고블린의 간을 꺼내 보이자 미샨포의 눈이 크게 떠졌다.
“생간……. 그렇군요. 이것이라면 당신의 현신도 이유를 알 수가 있지요.”
“생간이 무슨 영향을 보이게 하는지 아시는 건가요?”
“네, 당연하죠. 애초에 간에 대해서 모른다면 구미호 일족의 촌장이라는 자격이 없을 터이니 말이죠. 생간은 모든 생명들의 혼을 담는, 그릇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미호의 일족들은 대대로 그 혼이 담긴 간을 생으로 집어삼켜 영력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것에는 큰 문제가 따릅니다.”
“문제라니요?”
“과유불급이라는 말은 아실 거라고 믿습니다. 영력이라는 것은 우리 구미호 일족에게는 무척이나 좋지만 너무 넘쳐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이것에도 조절이 필요한 것이지요. 아까 마을에 들어오셨을 때 이상한 점을 느끼지 못하셨습니까?”
구미호의 일족은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을 뿐, 실제로는 짐승이자 맹수이다. 그런 그들에게서 드란은 피의 향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그렇습니다. 생간을 섭취하면 야생의 본능이 일깨워지죠. 예를 들어서 밤의 귀족이라고 불리는 마족 뱀파이어들도 웬만해서는 피를 즐기지 않습니다. 피가 싫어서? 아닙니다. 피 맛에 한 번 빠지면 헤어 나올 수가 없게 되어서이지요. 피에 빠진 뱀파이어는 뱀파이어가 아닙니다. 그저 피에 미친 몬스터일 뿐이죠.”
“그렇다면…….”
드란의 눈이 우포에게로 향해지자 미샨포가 손을 저었다.
“걱정 마세요. 저래 봬도 우포는 촌장이었던 저의 동생이랍니다. 어느 정도의 약한 농도의 생간은 충분히 제어가 가능하지요. 하지만 더 이상 생간을 주시지는 말아 주십쇼. 그 점은 구미호 일족의 촌장이 아닌 우포의 누나로서의 부탁입니다.”
“죄송합니다.”
드란이 고개를 꾸벅이며 사과를 했다. 잘못했다면 저 작은 여우를 간에 미친 여우로 만들 뻔했지 않았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