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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화
제6장 구미호 일족의 마을(3)
튼튼한 가죽 셔츠(마법 B)
솜씨 좋은 재단사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꼼꼼하게 터진 곳 없이 잘 꿰매져 있으며, 활동에도 큰 지장을 주지 않을 듯하다. 하지만 가죽이라는 한계가 있기에 방어력이 약하다.
내구력:42/60 방어력:18
사용 제한:힘 20 이상, 민첩 40 이상
옵션:이동속도 10%, 민첩 +5
“흐흠, 쓸 만한데?”
운 좋게 득템한 아이템에 드란이 기분 좋은 듯 입안 가득 함지박만 하게 미소를 지었다.
사실 드란이 한 유저들끼리의 살인은 PK(플레이어 킬)이라고 부르며, 살인을 할 때마다 카오틱 수치가 높아지며 살인마라는 칭호가 붙여진다. 하지만 드란은 상관없다. 왜냐? 당연하게도 드란은 유저이지만 상태로는 몬스터이다. 애초에 유저들도 자신을 보면 물불 안 가리고 공격할 것이 뻔할 뻔자이기에 드란은 전혀 미안함을 느끼지 않았다.
일단 얻어진 아이템들 중 드란은 예리한 롱소드는 팔기로 마음먹었고, 튼튼한 가죽 셔츠는 자신이 입기로 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무기만 바꿨지 방어구는 1레벨 때, 증정 받은 가죽 셔츠 한 장뿐이다. 더구나 드란의 거친 싸움으로 인해 가죽 셔츠는 이미 걸레라고 보아도 좋을 정도로 너덜너덜해진 것이 재단사에게 가져가서 수리를 요청하면 차라리 하나를 새로 구매하라고 할 정도로 심각해 보였다.
다른 유저라면 그런 가죽 셔츠 따위 그냥 휙 하고 버릴 터이지만, 드란은 그렇지 않았다.
“이것도 다 돈이란 말씀!”
꼬질꼬질 냄새를 풍기는 걸레에 가까운 가죽 셔츠를 인벤토리에 집어넣은 다음, 뒤를 돌아봤다.
“괜찮냐?”
“크르릉―!”
드란의 말에 새끼 웨어울프는 긴장을 늦추지 않고 금방이라도 달려들 자세를 취했다. 드란이 유저들과 전투를 치르는 동안 제법 회복을 한 모양이다.
“이봐, 난 너를 구해 준 사람이라고! 옛다! 이거나 먹어라!”
조금 남은 자그마한 고블린 고기를 냅다 새끼 웨어울프에게 집어던져 주자 녀석이 반색을 하며 침을 꿀꺽였다. 하지만 명색의 웨어울프족이라는 듯 차마 넘어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누가 또 알겠나? 먹다가 공격이라도 받을지 말이다.
“왜? 내가 껄끄럽냐? 하긴, 여우와 늑대이니. 당연한 건가? 그럼 난 볼일 끝났으니 저쪽으로 간다. 잘 가라.”
“컹컹!”
막 발을 옮기려던 드란에게로 새끼 웨어울프가 폴짝 뛰어와 낡은 종이 한 장을 드란의 손에 쥐어 줬다.
“컹컹컹!”
아직 새끼라서 그런지 웨어울프족임에도 불구하고 말을 하지 못하는 새끼 웨어울프는 낡은 종이를 툭툭 치다가 드란의 손을 한 번 할짝인 다음, 드란과는 다른 방향으로 가기 시작했다. 입에는 드란이 준 고블린 고기를 물고 말이다.
한편 드란은 웬 낡은 종이지? 라는 듯한 심정으로 종이를 펴 보았다.
종이는 제법 실력 좋은 지도사가 그린 듯, 무엇을 표시하는 듯한 그림이 있었다. 비록 오래전의 지도라서 흐릿했지만 못 알아볼 정도는 아니다.
딱 봐도 보물지도 아니면 던전 지도라는 생각에 드란의 눈이 반짝였다.
역시 착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는 건가 보다.
“심봤다!”
제7장 두더지(1)
푸르륵―
“푸하! 여기쯤일 텐데.”
수풀을 헤치고 나온 여우의 귀를 가진 얼굴, 드란이 주변을 요리조리 둘러보다가 다시금 낡은 지도를 바라봤다.
“분명 여기라고 적혀 있다고!”
계속해서 이곳을 주변으로 빙글빙글 돌자 화가 뻗친 드란이 승질을 부렸다. 하지만 그렇다고 떡하니 나올 던전이 아니다.
다시 돌아볼까? 라고 생각한 드란은 한순간 다리의 힘이 쭉 빠졌다.
“젠장! 너무 걸었나?”
더 이상 걸었다가는 던전을 발견해도 될 게 없을 거라고 여기고는 주변에 있던 제법 큰 바위에 털썩 앉았다.
끼기긱― 쿠구궁―!
“어? 뭐야?”
큰 바위의 앉은 채로 다리를 주무르던 드란이 퍼뜩 놀랐다. 갑자기 무엇인가 끼워 맞춰지는 소리가 들리다가 주변이 지진이라도 난 듯 울려 오니 놀라지 않을 수가 없다.
후우웅―
1분 정도의 시간이 지나자 지진은 멈추었고 주변은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 변한 것이라면 지진에 놀란 초식동물들과 조류, 그리고 드란의 얼굴 표정 정도?
“에휴, 뭐야. 괜히 놀랐네.”
드란이 말과 함께 다시금 큰 바위에 앉았다.
쑤우욱―!
“어, 어?!”
큰 바위에 앉으려 하던 드란이 ‘어!’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당연하게 있어야 할 뒤에 큰 바위가 사라진 채 웬 구멍이 뚫려 있었고, 구멍이 뚫렸다는 것을 모르고 앉은 드란은 그 구멍 안으로 그대로 추락해 버렸다.
구멍으로 떨어지는 드란의 입에서 자동적으로 욕지거리가 튀어나왔다.
“시밤바! 되는 일이 없어!”
*
“아야야.”
구멍 속으로 쏙 빠져 버린 드란이 쓰라린 엉덩이를 쓰다듬으며 울상을 지었다. 이게 무슨 날벼락인간 말인가?
여하튼간에 그렇게 엉덩이를 쓰다듬던 드란은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여긴 대체 어디냐?”
얼마나 깊게 떨어진지는 모르겠지만 칙칙한 땅의 냄새가 드란의 코를 찔렀다.
익숙하지 않은 냄새에 드란이 인상을 찌푸리던 중 무엇인가가 발견한 듯 환하게 미소 지었다.
“이건 자연이 아닌 누군가가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드란이 바로 앞쪽에 뻥 뚫려 있는 마치 땅굴을 파낸 모습에 고개를 끄덕이며 안으로 들어섰다.
그르륵―
파여진 땅굴의 크기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드란은 누워서 기어가고 있는 중이다.
드란이 기어갈 때마다 땅의 긁힘으로 인해 생명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기껏 구해서 입게 된 튼튼한 가죽 셔츠의 내구도가 감소되었다. 더구나 운 없게도 위에서 흙이라도 눈에 들어가면 장난 아니게 아프다.
“참아야 된다.”
새끼 웨어울프가 건네준 지도는 분명히 이곳을 가리켰다. 설마 자신의 목숨을 구해 준 드란에게 새끼 웨어울프가 은혜를 원수로 값을 리가 없다.
아니, 구미호니까 그럴 수도 있을지도 모르겠다.
드란은 결코 그럴 리 없다고 생각하며 머리를 조아리고는 다시금 앞으로 나아갔고, 이내 끝에 다다를 수 있었다.
“…….”
끝에 다다른 드란은 어이가 없다는 듯 눈을 동그랗게 치켜떴다.
“두, 두더지?”
드란의 말대로 지금 드란의 시야 앞에는 여러 마리의 두더지들이 손에 특이하게 생긴 드릴형의 무기를 장착시키고는 땅굴을 파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드워프들과 막상막하의 땅딸보와 같은 아담한 키를 가진 두더지들은 자신들을 바라보는 드란을 눈치채지도 못한 채 숨을 헐떡이며 땅굴을 파는 작업에만 열중하고 있었다.
“일단 들어는 가 봐야겠지?”
드란은 흙에 붙어 있는 두더지의 털과 몸을 접촉시키고는 재빠르게 나뭇잎을 머리에 썼다.
“둔갑의 술!”
펑―!
땅굴 안에서 힘들게 둔갑의 술을 발동시킨 드란의 몸이 조금씩 줄어들더니 이내 아담한 사이즈의 두더지로 변화되었다.
비록 손에는 드릴 같은 무기가 없지만 땅굴을 잘 파게 발달된 특유의 두더지 손톱이 드란의 손에 자라나 있었다.
“읏차!”
이제는 두더지로 둔갑한 드란이기에 조그마한 땅굴을 가볍게 일어나 두더지들이 작업을 하는 곳으로 천천히 걸어갔다.
“응? 뭐야? 처음 보는 얼굴인데?”
드란이 걸어오는 소리를 들었는지 작업을 하던 두더지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바라봤다. 그런데 두더지 얼굴이 다 거기서 거기인데 어떻게 다르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되는 드란이다.
“아, 예. 저쪽에서 일하다가 온 두더지입니다.”
“그런가? 하긴, 우리 두더지들이 이곳에만 있을 리는 없을 터이니. 난 이곳 두더지 제1호 땅굴 기지 대대장인 무토라고 하네. 자네의 이름은 무엇인가?”
작업을 마무리 짓고는 드란을 향해 이름을 물었다.
그에 드란이 재빨리 대답했다.
“아, 드토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그래, 이곳에 온 것은 역시 땅굴 작업을 도우려고 온 것일 터이지?”
땅굴 작업(몬스터 퀘스트)
제1호 땅굴 기지 대대장인 무토가 당신에게 땅굴 작업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두더지에게 땅굴을 파는 일은 당연지사인 일. 요청을 받아들일 시에는 작업용 도구가 무상으로 지급됩니다. 또한 땅굴 기지의 작업이 모두 끝마쳐졌을 경우에는 크나큰 보상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난이도:C+, 퀘스트 제한:두더지>>
어차피 거절해도 할 게 없다라고 생각한 드란은 가볍게 퀘스트를 승낙했다.
“자, 여기 작업용 도구라네. 두더지들은 손톱만으로도 땅굴을 파기가 가능하지만 이것들이 있다면 속도는 더욱더 빨라질 걸세.”
“감사드립니다.”
무토가 건네는 3가지의 물건을 드란이 고개를 끄덕이며 받아들었다.
‘이게 아까 그 두더지들이 사용하는 작업용 도구란 말이지?’
작업용 드릴(마법 B)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기에 웬만한 땅굴을 파는 것에도 가볍게 파낼 수 있을 듯하다. 또 잘만 개조하면 작업용뿐만 아니라 무기로도 사용이 가능해 보인다.
내구력:200/200 공격력:5∼8
사용 제한:힘 20 이상
옵션:공격 속도 500%
작업용 모자(마법 B)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기에 바위가 떨어져도 안전해 보인다.
내구력:150/150 방어력:10
사용 제한:힘 30 이상
옵션:바위 같은 것들이 떨어질 시 데미지 50% 경감
작업용 부츠(마법 B)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기에 돌이나 가시를 밟아도 안전해 보인다.
내구력:120/120 방어력:8
사용 제한:힘 25 이상
옵션:돌이나 가시를 밟을 경우 데미지 50% 경감
‘뭐냐 이 사기적인 내구력은.’
아이템을 확인하는 드란의 눈이 동그래졌다. 내구력이 무려 100을 넘는다. 게다가 드릴은 내구력 200에다가 공격 속도도 500%나 상승한다. 데미지만 5∼8이지 실질적으로 다른 무기들과 비교하면 25∼40의 데미지를 내는 셈이다. 물론 두더지가 사용하는 드릴의 특성상 그렇게 크기가 큰 편은 아니라 적중시키기에는 움직이지 않는 흙 같은 것이겠지만 말이다.
드란, 이곳에서는 드토인 드란이 작업용 도구를 모두 장착하자 제법 일하는 두더지 삘이 났다.
“크흠, 역시 우리 두더지들은 작업용 도구만 장착하면 웬만한 전사들보다도 강하지. 후후, 자 저곳의 두더지들을 도와 땅굴을 파 주게나.”
“알겠습니다.”
드란이 말과 함께 껑충껑충 뛰어서 작업하는 곳으로 향하자 일하던 두더지들이 환호성을 내질렀다.
“오우우우! 신참인가? 이거 잘됐군. 가뜩이나 힘들었는데.”
“흐흐흑! 드디어 신참에서 벗어나는 건가? 그간의 설움을 모두 쏟아내겠어!”
“…….”
왠지 모를 두더지들의 환호성에 드란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
“어이, 신참! 이것 좀 하란 말이야!”
“아, 네.”
“이것아, 그게 아니라고 몇 번을 말해!”
“아아, 네.”
“빨리빨리 하란 말이야!”
“……네.”
키도 거기서 거기인 두더지들이 명령을 내리는 것이 좀 어이가 없는 일이지만 무엇보다도 드란은 두더지들 때문에 미칠 지경이다.
‘현신해서 확 먹어 버려?’
라는 생각이 든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현신만 해서 거대해지면 한 입 거리도 안 되는 두더지들이 정말로 드란을 미치게 한다.
오늘도 어제와 똑같다.
이제 막 이곳의 신참 두더지로 오게 된 지 어언 3일.
드란은 오자마자 고참 두더지들에게 미친 듯이 갈굼을 당했다.
자기대신 땅굴 좀 파고 있으라는 등, 자신들도 못할 3명분의 일을 혼자서 못한다고 나무라는 둥, 정말 둔갑의 술을 풀고 싶을 일이다.
“어이 드토! 이것도 좀 해 봐.”
한 두더지가 씨익 웃으며 머리에 수증기를 내면서도 꿋꿋이 일하는 드란을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