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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제7장 두더지(3)


차토의 말에 닥토가 반개한 눈으로 드란을 쳐다보았다.
“뭐냐, 이 울퉁불퉁 두더지는?”
“그러니까 말했잖아. 이 부은 얼굴 좀 낫게 해 달라고. 또 그놈 아토가 사고를 쳤단 말이지.”
차토의 말에 닥토가 크큭 웃었다.
“흐흐, 분명 저 애가 잘못했겠지? 고참에게 대들거나 아토에게 한 방 먹이거나 말이야. 아니지, 아토에게 한 방 먹였다가는 그대로 황천길이지.”
닥토가 말과 함께 자신의 방을 뒤적거렸다.
“이거면 돼.”
닥토가 건네는 흙빛을 내뿜는 약을 차토가 받아들고는 그대로 드란의 얼굴에 들이부었다.
“우웁.”

―닥토의 치료제 28호를 섭취하셨습니다. 치료제의 효과로 인해 얼굴에 붓기가 사라지고 쓰라림이 전부 사라집니다.

약이 얼굴에 묻자 울퉁불퉁하게 나온 혹들이 언제 나왔냐는 듯이 사라졌다. 그에 닥토는 당연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그러게 조심하라고, 아토는 한 번 화나면 물불 안 가리는 녀석이니 말이야.”
“네, 감사드립니다.”
닥토의 충고에 드란이 가볍게 대답했다.

*

“미안한데, 차토. 난 드토에게 할 말이 있어서 그러는데…… 먼저 가 있을 수는 없겠는가?”
닥토가 의외의 반개한 눈을 푼 채로 말하자 차토는 알았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고, 드란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무슨 일이시죠. 닥토 님?”
“잠시 기다리게나.”
닥토는 차토가 나간 뒤로도 약 3분간의 시간을 끌었고, 드란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거 정말 의외로군. 이 땅굴에서 동족을 만날 줄이야.”
“동족?”
갑작스러운 닥토의 말에 드란의 눈이 크게 떠졌다.
“설마…….”
“둔갑의 술, 해제!”
닥토가 앞발을 모으며 외치자, 드란이 둔갑의 술을 썼을 때와 똑같이 작은 연기가 일었다. 그리고 이내 연기에서 나타난 것은 어른 미남자의 모습을 한 꼬리 다섯 개를 지닌 오미호의 모습이었다.
“아직 이미호인가? 신기하군. 오미호의 성인식인 각성을 치르지 않은 채로 어른의 모습이라니. 아, 어찌 됐든 정말 반갑군. 이곳은 지렁이만 먹어 대는 두더지들만 있어서 말이야. 동족을 만나니 정말 반갑군 그래. 이름이 어떻게 되나?”
“아, 드란입니다.”
“그래? 나는 닥포라고 한다. 나이는 534살로서, 성인식을 마치자마자 세상 밖으로 나왔고 지금은 이곳에서 의사 두더지를 하는 신세이지.”
말을 하는 닥포에게 왠지 모를 기운이 품겨져 나왔지만 드란은 같은 종족이라 그런지 그 기운에 영향을 받지 않는 듯했다.
“그런데 저를 어떻게 알아보셨습니까?”
드란이 제일 궁금하던 점이다. 둔갑의 술은 같은 일족이라고 해도 웬만해선 눈치채기 어렵다. 그렇기에 드란도 닥포의 모습을 알아차릴 수 없었던 것이다.
닥포가 크게 웃으며 이유를 알려 주었다.
“간단해, 나의 치료제들에는 각각의 특이 효과가 있지만 딱 하나 공통되는 효과가 있지. 바로 상대방의 종족을 알아내는 효과이지. 장난삼아 만들어 낸 효과지만, 진짜로 효과를 보게 되는 것은 처음이네. 하하.”
“아, 그런가요. 그런데 왜 지금 이곳 땅굴 기지에 있는 거죠?”
드란의 물음에 닥포가 가볍게 대답했다.
“심심해서, 그리고 밖은 아직 나에게 위험하거든. 비록 각성을 마친 오미호라지만, 300살 이상인 상급에 속하는 웨어울프 일족에게 발견되면 그 즉시 목숨을 잃지. 그래서 이곳 세상에는 다른 일족의 마을들에 최소한 1명 이상의 동족들이 둔갑의 술로 숨어 있지. 물론 없는 곳도 있다.”
이후로도 닥포는 드란의 물음에 친절하게 답변을 해 주었다.
그리고 얻은 정보로 제일 신기한 것은 이곳에 존재하는 몬스터였다.
“거대 지렁이라고요?”
“그래, 자이언트 웜이라고 하지. 주로 먹는 것은 동족 빼고 다 먹는다. 잡식이지.”
두더지들은 지렁이를 먹는다. 하지만 거대 지렁이는 두더지를 먹는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 이런 너무 오랫동안 둔갑의 술을 풀어 뒀군. 미안하네만 잠시 둔갑을 하겠네. 둔갑의 술!”
펑―
꼬리 다섯 개의 오미호가 둔갑의 술을 펼치자 다시금 안경을 쓴 두더지인 닥토로 변화되었다.
“그럼 즐거웠다. 다시 보자구, 드란.”
“네, 닥포 님.”

*

오미호인 닥포와의 만남을 가진 후, 3일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운이 좋게 주말이었기에 드란은 아침밥을 먹고 재빨리 게임에 접속했다.
아침밥을 먹고 온 후 땅굴 기지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한창을 작업을 하고 있어야 할 두더지들이었지만 다급하게 움직이며 기지에서 각기 희귀한 무기들을 지급 받고 난 다음, 장착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드란이 그 모습에 고개를 갸웃거리며 저기서 작업용 드릴과는 비교가 안 되는 예기를 지닌 전투용 드릴을 장착하고 있는 차토를 향해 물었다.
“차토 고참님! 무슨 일인가요?”
“어? 드토로군! 자네도 어서 준비하게!”
“예?”
되묻는 드란의 모습에 차토가 장착을 마무리 짓고는 대답했다.
“전쟁이다! 자이언트 웜이 이곳으로 돌진해 오고 있다. 매번 있는 일이다. 드토, 자네도 어서 기지로 가서 무기를 지급 받고 오도록!”
“아, 알겠습니다.”
차토의 말에 드란이 황급히 땅굴 기지로 달려가자 그곳에는 행동대장 아토가 각가지 무기가 장착된 로봇에 탑승한 채로 드란에게 외쳤다.
“빨리 와라! 원하는 무기는 무엇이냐?”
아토의 외침과 함께 드란에게 퀘스트 알림음과 무기선택을 위한 프로필형의 정보가 나타났다.

전쟁! 자이언트 웜!(몬스터 전쟁 퀘스트)
자이언트 웜과의 전투. 자이언트 웜들은 대체로 지능이 떨어지기에 상대하기가 쉽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자이언트 웜은 거대한 몸체와 입에 자란 수천 개의 송곳니로 두더지들을 위협하며, 또 많은 두더지들의 생명을 앗아갔다. 용맹한 이여, 자이언트 웜의 습격을 막으시겠습니까?
<<난이도:B―, 퀘스트 제한:두더지>>

―철구가 장착된 둔기형 무기.
―거대한 철포.
―전투용 드릴.

“거대한 철포.”
당연하게도 드란은 유일한 원거리 무기인 거대한 철포를 선택했다. 이런 전쟁 속에서 근접전을 펼쳤다간 어떻게 될지 뻔히 아는 드란답다.
이윽고 무기를 선택한 드란에게 무게가 엄청나 보이는 거대한 철포가 주어졌다.

거대한 철포(마법 A) ―지급받은 무기(임시적)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다. 두더지들이 개발해 낸 무기로써, 거대한 철구를 한순간 발포시킬 수 있는 무기이다.
내구력:200/200 공격력:80∼200
사용 제한:힘 40 이상
옵션:공격 속도 ―500%

“역시 너도 거대한 철포를 선택한 건가?”
드란의 곁으로 어느새 의사 두더지이자 실제로는 오미호인 닥토가 미소를 지으며 어깨에 거대한 철포를 짊어지고 있었다.
“어? 닥포 님!”
“쉿! 여기서는 닥토다. 제대로 부르도록, 드토.”
“아, 죄송합니다. 그런데 닥토 님. 행동대장이신 아토랑 대대장이신 무토 님이 탑승하신 저 로봇들은 대체 뭐죠?”
무기를 지급 받는 순간부터 궁금했던 것이었다.
“아, 두더지들의 회심작이지. 메카닉 두더지다. 탑승이 가능한 로봇으로, 탑승이 안 된 채로도 작동이 가능하지.”
“멋지네요.”
드란이 눈을 반짝이며 로봇인 메카닉 두더지를 쳐다봤지만 어차피 자신의 것이 아니기에 곧바로 눈을 돌렸다.
파바바박―
닥토와 대화를 나누는 동안 두더지들은 전부 하나같이 단단하게 무장을 마쳤다. 그리고 이후 땅이 파지는 소리가 들리자 대대장인 무토가 크게 소리쳤다.
“전쟁이다! 제1호 땅굴 기지의 두더지들이여! 한낱 먹이에 불과한 자이언트 웜들을 제거하자!”
“와아아아―!”
대대장인 무토의 외침에 두더지들이 소리를 내지르며 사기를 올렸다.
한편 그들의 외침을 듣기라도 했는지, 거대 지렁이의 징그러운 생김새를 지닌 자이언트 웜들이 땅을 뚫으며 등장했다.
“쿠에에엑!”
8여 마리의 자이언트 웜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그런 자이언트 웜들에게로 제일 먼저 선두로 행동대장인 아토와 그 밑의 부대인 행동부대, 철구형 둔기 무기를 장착한 두더지들이 달려 나갔다.
“거대 지렁이들을 도살하자!”
이후로는 대대장인 무토와 전투용 드릴을 장착한 두더지들이 대열을 맞추며 돌격했다. 그리고 그중에는 차토도 섞여 있었다.
그리고 후방에서는 드란과 닥토, 그리고 드란이 싫어하는 고참 두더지인 엘토와 센토가 거대한 철포를 짊어지고는 후방에 같이 서 있었다. 물론 다른 두더지들도 꽤 많이 있었다.
“후방 보조들이여! 철포를 조준하라!”
역시 똑같이 후방에도 거대한 철포를 무려 5개나 장착한 메카닉 두더지를 탑승한 두더지가 크게 소리쳤다. 딱 보기에도 대대장인 무토나 행동대장 아토와 같은 동급의 포스가 넘쳐흘렀다.
“기계 대장인 프토다. 저 메카닉 두더지를 만든 선조의 피를 이은 후손이지. 등급으로 치자면 대대장인 무토에 비해 약하지만 실질적으로 이곳 땅굴 기지에 공헌한 것을 생각하면 기계 대장 프토가 더욱 많을 것이다.”
닥토가 싱긋 미소 지으며 보조 설명을 해 주었다. 드란은 그런 닥토에게 웃음을 건넨 다음, 기계 대장 프토의 말에 따라 거대한 철포를 등에 올렸다.
“으음…….”
거대한 철포의 무게가 장난이 아니기에 드란의 눈이 자동적으로 찌푸려졌지만 드란은 양호한 편이었다. 옆을 보니 엘토와 센토는 아주 그냥 죽을상으로 끙끙 대고 있으니 말이다. 그에 반해 바로 옆의 닥토나 프토의 옆에서 보조하는 이들은 거대한 철포를 장난감 다루듯 등에 걸쳤다. 아담한 체구의 두더지 특성상 두 개 이상의 철포를 걸칠 수는 없었지만 말이다.
콰콰쾅―!
“쿠에에엑―!”
마침내 격돌이 이어졌다. 처음으로의 격돌은 당연하게도 행동부대였다.
철구가 달린 둔기 무기의 특성상 명중은 힘들지만 데미지와 충격은 월등했기에 거대한 몸집의 자이언트 웜도 어쩔 수 없는 듯 이리저리 흔들며 고통에 겨운 비명을 내질렀다.
“으하하하! 죽어라! 망할 지렁이!”
메카닉 두더지에 탑승한 행동대장 아토는 메카닉 두더지에 장착되어 있는 10여 개의 철구를 미친 듯이 휘두르며 자이언트 웜 한 마리를 거의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떡을 만들어 놨다. 과연 괜히 행동대장이 아닌 듯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자이언트 웜들의 공격 기세는 무척이나 살벌했다.
“쿠에에에엑―!”
동료 하나가 죽은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 듯 7여 마리의 자이언트 웜들이 입에 나 있는 송곳니를 마구 돌리며 두더지들을 삼켜 댔다.
“끄아아아악!”
무참히 자이언트 웜의 입속으로 빨려 들어가서 믹서기가 고기를 갈듯 갈리는 두더지들의 모습에 눈이 자동적으로 돌아갔다. 피를 많이 본 드란 마저도 말이다.
‘내가 그렇게 될 줄 알고 이것을 선택했지.’
마음속으로 거대한 철포를 선택한 것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드란이다.
“으아아! 망할 지렁이 놈들! 우리도 갈아 주마!”
거의 40여 마리의 두더지들이 떼죽음을 당할 때쯤, 전투용 드릴을 장착한 부대들이 무거운 철구가 부착된 둔기를 든 두더지들을 돕기 위해 빠르게 돌격해 왔다.
무토는 자신의 부하들인 두더지들의 죽음에 눈이 제대로 돌아간 듯하다.
“죽어라!”
무토가 탑승한 메카닉 두더지는 여러 개의 무기들이 부착된 것과는 다르게 오직 드릴 하나만이 장착되어 있었는데, 그 크기가 장난이 아니다. 거의 자이언트 웜과 맞먹는 크기의 드릴을 보니 자이언트 웜들도 슬슬 피하려 했으나 놓칠 무토가 아니다.
두두두두두두두두두―!
거대한 드릴이 엄청난 속도로 회전하며 미처 땅으로 피하지 못한 자이언트 웜 한 마리를 그대로 갈아 버렸다. 자이언트 웜의 누런색의 피가 사방으로 낭자하는 모습은 징그러웠으나, 이미 두더지들이 갈리는 모습을 많이 본 터라 그렇게 잔인하지는 않았다. 또 어떤 의미로는 통쾌함까지도 느껴졌다.
“우리들도 싸운다!”
두두두두두두두―
전투용 드릴을 장착한 두더지들도 무토를 따라서 떼거지로 붙어서는 자이언트 웜을 공격했으나, 아쉽게도 치명상을 입혔을 뿐, 죽이지는 못했다.
“프토! 슬슬 발사해야 한다! 아마 이제 곧 자이언트 웜들이 2차로 공격해 올 것이 분명해!”
“고맙다, 닥토! 자 모두들 거대한 철포를 움직이는 땅에 조준하라! 단, 동료들이 있는 곳은 최대한 피해서 조준하도록!”
프토의 명에 후방에 있는 두더지들이 거대한 철포를 들어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