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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화
제7장 두더지(4)


그런 두더지들의 눈은 오직 땅에만 집중되어 있고, 귀는 오직 프토의 공격 명령에만 집중해 있다.
“준비!”
프토의 말과 함께 요동치던 땅이 잠시 잠잠해졌다.
프토는 상황을 잠시 살핀 후, 다시금 잠잠해진 땅이 거세지자 소리쳤다.
“발사!”
펑! 펑! 펑! 펑! 펑! 펑!
발사음이 들리며 거대한 철포에서 무지막지한 크기의 철구가 튀어나왔다. 그리고 그와 함께 자이언트 웜들 역시 튀어나왔다.
“쿠에에엑―!”
6마리의 자이언트 웜들은 각각 땅을 뚫으며 입속으로 두더지들을 하나씩 집어 삼켰다. 이로써 또다시 6마리의 두더지들이 희생된 것이다. 하지만 자이언트 웜들도 무사할 수는 없다.
콰콰콰콰콰쾅―!
사방으로 흩뿌려진 철구들이 자이언트 웜들을 덮쳤다.
“쿠에에에에에엑―!”
가속도와 무게의 곱셈으로 엄청난 공격력이 붙은 철구의 위력에 자이언트 웜들이 곳곳에서 쓰러졌다. 더구나 아까 전투용 드릴에 공격을 받아 치명상을 입은 자이언트 웜은 그 자리에서 즉사해 버렸다.
더구나 하나 더 기쁜 일이 있었으니, 전투를 많이 치러 봤는지 철포에서 발포된 철구로 인해 사망한 두더지들은 없었다. 있다면 전투를 잘하지 않았던 신입들이 대체로 자잘한 부상을 입은 편이었다.
“크에엑―”
살아남은 5여 마리의 자이언트 웜들은 충격으로 그대로 넘어져서는 일어날 생각을 못하고 있다. 그러니 이들의 형은 어떻게 되겠는가?
“으드득!”
행동대장 아토가 눈을 잔뜩 부라린 채 쓰러져 있는 자이언트 웜들에게 다가갔다. 이후 일어날 일은 뻔하고도 뻔했다.
턱턱턱턱턱―
“쿠에에에엑―!”
쓰러진 5여 마리의 자이언트 웜들은 무자비한 두더지들과 행동대장 아토의 공격에 사이좋게 떡이 되었다.

*

두더지들과 자이언트 웜의 전쟁이 끝났지만 드란이 지급 받은 보상은 그리 크지 못했다.
“땅굴 지렁이 30여 개. 이게 끝이라고? 아이템은? 골드는?”
드란은 이제 땅굴 지렁이가 지겹다. 하지만 드란이 모르는 게 하나 있었으니, 바로 이곳 땅굴 기지의 두더지들에게는 화폐라는 개념이 없었다. 사실상 땅속에서 화폐가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그러니 자동적으로 두더지들에게는 땅굴을 파다 발견되는 광석들이 돈이요, 먹이인 지렁이들도 돈이다. 물론 웬만해서는 잡기 힘든 희귀 지렁이인 땅굴 지렁이의 가치는 더욱이 크다.
“감사드립니다!”
드란은 앞에 있는 두더지가 자신보다 땅굴 지렁이를 배는 많이 받자 눈이 화등잔만 해졌다.
그래서 따지고 보니 최전방에서 전투를 펼친 두더지들은 그 위험성이 크기에 땅굴 지렁이 150개를 지급 받았고, 그보다 약간 위험성이 덜한 전투용 드릴 부대들은 땅굴 지렁이 80개를 받았다. 드란으로서는 따지고 싶었지만 내심 양심에 찔렸기에 어쩔 수없이 넘겼다.
“에혀, 내 팔자가 이렇지 뭐.”
드란은 결국 한숨으로 무마하며 땅굴 지렁이가 든 주머니를 다시금 인벤토리에 넣었다. 이제 자신이 소유한 땅굴 지렁이는 총 80여 마리가 되었다.
옆을 보니 행복해하고 있는 닥토가 보였다.
“닥토, 왜 그리 기뻐하는 표정이에요? 무슨 일 있어요?”
닥토는 여전히 행복에 겨운 표정으로 대답했다.
“이 땅굴 지렁이, 사실 나는 먹지 않는데 말이야.”
“그런데요?”
“비록 30여 마리의 땅굴 지렁이라지만 좋은 물건을 구입하는 데는 충분하거든.”
“지렁이로 물건을 구입한다고요?”
드란이 닥토의 말에 황급히 땅굴 기지에 있는 무기점을 찾아갔다.
“어서옵쇼!”
무기점의 주인인 두더지가 넉살 좋게 웃으며 드란을 맞이했다.
드란은 그런 주인 두더지에게 가볍게 인사를 건넨 후에 물건의 목록을 뒤져 보고는 깜짝 놀랐다.

거대한 철포(마법 A)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다. 두더지들이 개발해 낸 무기로써, 거대한 철구를 한순간 발포시킬 수 있는 무기이다.
내구력:200/200 공격력:80∼200
사용 제한:힘 40 이상
옵션:공격 속도 ―500%
가격:땅굴 지렁이 20마리 or 그에 상응하는 광석

강화된 전투용 드릴(레어 F)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제작한 듯해 보인다. 알 수 없는 재질로 만들어졌으나, 그 강도와 내구도가 무척이나 대단하기에 땅굴을 파기에 무척이나 용이하다. 또한 특수 광석으로 코팅형의 강화도 했기에 그 강도가 더욱이 높아졌고, 전투용 드릴답게 예기가 충만하기 때문에 거의 모든 것을 뚫을 수가 있다.
내구력:200/200 공격력:10∼15
사용 제한:힘 30 이상, 민첩 30 이상
옵션:공격 속도 600%
가격:땅굴 지렁이 70마리 or 그에 상응하는 광석

“이, 이런 지렁이가 돈이라고?”
보통 강화된 전투용 드릴 같은 레어급의 무기는 골드로 치자면 300골드가 넘어간다. 즉, 현 돈으로 치자면 300만 원이라는 소리다.
‘이건 엄청난 거금이다!’
드란의 눈에 콩깍지가 낀 듯, 징그럽게 꿈틀거리는 땅굴 지렁이들이 이상하게 귀엽고 아름답게 보였다.
70마리가 300만 원이니까 적당히 나누기를 한다면, 한 마리당 4만 2,800원꼴이다. 그러니 150개를 지급 받은 두더지들은 무려 640여만 원을 한순간의 전투로 벌어 낸 것이다.
드란의 머릿속에서 자동적으로 빠르게 계산이 이루어지기 시작했다.
‘땅굴 지렁이는 돈, 일을 하면 받는 것은 땅굴 지렁이. 그러니 일을 많이 하면. 쉽게 돈을 번다!’
가볍게 계산을 마친 드란이 다급하게 대대장 무토에게 찾아갔다.
“무토 대대장님, 시키실 일이 있으십니까?”
드란의 물음에 무토는 자이언트 웜으로 인해 피해를 입은 것을 계산하면서 가볍게 대답했다.
“아직 땅굴 작업을 하지는 않을 거다. 우선은 피해 상황을 이해하고 회복해야 하니 말이다. 당분간은 쉬도록.”
“흐음, 그렇군요.”
드란이 한숨을 쉬며 고개를 뒤로 돌렸을 때, 드란의 눈이 크게 떠졌다.
닥토와 같이 안경을 쓴 두더지, 더구나 안경은 보통 안경과는 다르게 여러 가지의 물건들이 부착되어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이언트 웜들과의 전쟁 때 후방을 맡았던 기계 대장 프토라는 것을 드란은 알아낼 수 있었다.
“일을 구한다고 했나? 그거 잘됐군.”
프토가 입꼬리를 올리며 씨익 웃었다.

*

기계 대장 프토는 드란을 자신의 연구소로 데려오고는 짧게 말했다.
“혹시 자네, 위험하지만 땅굴 지렁이나 광석을 대량 받을 수 있다면 할 생각이 있는가?”
프토의 말에 드란의 귀가 쫑긋거렸다.
“무슨 일을 하면 되는 거죠?”
“간단하네, 내가 하는 연구에 도움을 주는 일일세.”
“그게 무엇이 위험하다는 거죠?”
말을 하는 드란은 문뜩 흑마법사 쿠벤이 생각났다.
‘설마 인체 실험을 하는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어지는 프토의 말에 드란의 얼굴이 굳어졌다.
“바로 웜의 약점을 연구하는 것이라네. 그러니 웜을 좀 많이 데려와 줬으면 하네. 아, 물론 살아서 생포해 오는 것이 더 좋지만 안 된다면 어쩔 수 없지. 참고로 이 연구는 나 프토와 자네가 알고 있는 의사 두더지인 닥토와 함께 추진하는 일이네. 잘만해서 웜의 약점을 알아내기만 한다면 더 이상 전쟁으로 인한 두더지들의 피해는 줄어지거나, 운이 좋을 경우에는 아예 없어지겠지.”
드란이 눈을 반개했다.
“그 거대한 놈을 어떻게 데려옵니까? 또 그 전에 그놈을 어떻게 이기라는 거죠?”
자이언트 웜의 위력을 멀리서 뼈저리게 느껴 본 드란이다. 그런데 그런 거대한 녀석을 죽이고 데려오라고? 왜 강아지한테 호랑이 잡아오라고 시키지 그래?
하지만 그런 드란의 생각을 읽기라도 했는지 프토가 걱정 말라는 듯 손가락을 들어서 까딱거렸다.
“이보게 뭘 모르나 본데, 이곳 땅굴 기지에서 머리가 제일 좋은 두더지는 닥토가 아닌 나일세. 물론 의료 쪽이나 신체에 대한 것은 닥토가 한 수 위이지만 말이야.”
“그래서 어떻게 하겠다는 거죠?”
드란의 물음에 프토가 잠시 기다리라는 말과 함께 한 방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약 3분여의 시간이 흐르자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메카닉 두더지에 탑승한 프토가 등장했다.
“이 메카닉 두더지를 빌려 주겠네. 또한 땅굴 지렁이도 넉넉히 주도록 하지. 어떤가? 해 볼 생각이 있는가?”

자이언트 웜의 표피를 구하라!(몬스터 퀘스트)
기계 대장 프토는 요즘 들어 자주 습격해 오는 자이언트 웜으로 인해 골머리를 썩고 있다. 또한 동족인 두더지들이 죽음을 당하는 것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기에 의사 두더지인 닥토와 함께 자이언트 웜의 표피를 연구하여 약점을 찾기로 마음을 먹었다. 자이언트 웜의 표피를 구해 프토에게 가져다 주도록 하자!
※퀘스트 수락 시, 메카닉 두더지가 임시적으로 주어지며, 사용이 가능해진다. 또한 자이언트 웜을 생포해 올 경우에는 보상이 더욱 크다.
<<난이도:B, 퀘스트 제한:두더지>>

드란은 당연히 승낙했다.
메카닉 두더지의 화력은 이미 충분히 보고 느낀 드란이다. 그 거대한 자이언트 웜을 떡으로 만드는 것은 물론이요, 되려 역으로 자이언트 웜을 갈아 버리기까지 한 최강의 화력을 지닌 무기가 아니던가?
또 거기다가 땅굴 지렁이까지 대량으로 주어진다고 하니 드란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
“좋았어, 메카닉 두더지에 장착할 무기는 알아서 고르도록.”
프토는 말과 함께 메카닉 두더지에서 내렸다.
“네? 무기는 장착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던가요?”
“후훗, 절대 아니지. 메카닉 두더지는 탄 사람의 마음대로 무기의 탈부착이 가능하다. 메카닉 두더지용 무기는 여기에 많으니 알아서 장착하도록. 대신 무토의 메카닉 두더지처럼 오직 하나만 장착할 수 있는 것도 있으니 신중히 고르도록 해라.”
드란의 물음에 답변해 준 프토는 드란에게 무기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일단 이것은 너도 알다시피 행동대장인 아토가 자주 애용하는 무기이다. 철구가 달린 둔기형 무기를 대량으로 부착시켜서 자이언트 웜의 정신은 물론 혼까지 쏙 뺄 정도로 팰 수가 있지, 하지만 10개나 되는 둔기를 조종하는 일은 꽤 힘들 것임으로 패스. 그리고 그 다음으로는 이것, 내가 애용하는 무기인 거대한 철포다. 최고 5개까지 부착이 가능하며, 화력으로는 최강이지만 공격 속도가 느려지기에 앞에 막아 주는 이가 없다면 별로 추천해 주고 싶지는 않는군. 그러니 이것 역시 패스다. 그리고 이것은 대대장인 무토가 사용하는 거대 드릴로 그 파괴력이 어마어마하지. 대신 조종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음으로 이것 역시 패스.”
그러면 나는 어쩌라는 것이냐? 라고 드란은 순간 내뱉을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참아 냈다.
“그렇다면 무엇이 좋을까요? 프토 님?”
“후훗, 바로 이거다! 나의 회심작이지.”
프토는 메카닉 두더지에 딱 맞아 보이는 로봇 팔을 보이며 실실 웃어 댔다.
“로봇 팔은 조종이 쉬운 편이야. 물론 그 만큼 화력은 비약하지. 하지만 이것에도 방법이 있지, 바로 로봇 팔에 이 철구형 둔기나 드릴을 장착하는 것이지. 그리고 내 특별히 이 메카닉 두더지에는 한 가지의 개조가 거쳐졌어. 바로 저기에 탑승하면 보이는 빨간색 버튼이 있을 거다. 그것을 누르면 무릎 부분의 방탄이 뜯어지며 거대한 철포가 두 개 등장하지. 물론 메카닉 두더지의 기계 특성상 발이 약하기에 오직 한 번만 사용 가능하지만 말이야. 그리고 또 하나, 바로 빨간색 버튼을 연속으로 두 번 누르면…….”
“두 번 누르면?”
프토가 손을 접었다가 확 폈다.
“펑! 바로 자폭 기능이지. 메카닉 두더지의 엔진 부분을 가열시켜 20초 후 폭발시키게 만드는 것이지. 그 화력은 족히 자이언트 웜 10마리를 저세상으로 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내 장담하지.”
“마음에 드는군요.”
고개를 끄덕이며 말하는 드란이었지만 속으로는 자폭 기능을 사용하지 않을 생각이다.
‘나까지 죽을 일 있어?’
자기 목숨은 끈질기게 아끼는 드란다운 생각이었다.

*

철컹철컹―
메카닉 두더지에 탑승한 드란은 두더지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땅굴 작업으로 파진 구멍으로 들어갔다.
“나 참, 그렇다면 내가 했던 땅굴 작업이 확장이 아닌 자이언트 웜에 쳐들어가기 위한 구멍이었다니.”
툴툴거리면서도 갈 수밖에 없는 드란이다.
그렇게 툴툴거리며 가던 드란은 메카닉 두더지의 조종서를 읽으며 가볍게 레버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참으로 간단한 것이, 메카닉 두더지의 사용법은 마치 100원 넣고 하는 게임 기기랑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드란은 초딩 때 미친 듯이 해 댔던 게임들의 기억을 살리며 메카닉 두더지를 조종했고, 그의 신들린 조종에 메카닉 두더지는 거칠 것 없다는 듯 쿵쿵거리는 소리와 함께 앞으로 나아갔다.
“어이, 드토! 힘내라고!”
“자이언트 웜들에게서 우리를 해방시켜 줘!”
앞으로 나아가면서 보이는 두더지들이 작업에 열중하던 것을 멈추고는 드란을 응원했다. 아마 드란이 일을 잘 해낸다면 이제부터 자이언트 웜의 습격을 받지 않게 되니 당연한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