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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화
제9장 삼미호(3)


리자드맨 마을은 고블린과의 전쟁 이후 무척이나 강대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문제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너무도 강한 힘은 화를 부른다. 아니나 다를까, 리자드맨 마을은 수많은 유저들에게 공격을 받았고, 이제는 고블린과의 전쟁 이전보다도 약해져 있는 상태이다.
리자드맨 마을에서 제일 강한 영웅 몬스터 리자드맨 히어로 하륵이 주변을 둘러보며 중얼거렸다.
“크륵, 왜 안 오시는 겁니까. 드륵 님이시여.”
드륵, 드란이 리자드맨의 모습으로 둔갑했을 때의 가명으로 이곳에서는 리자드맨 샤먼으로 알려져 있다.
하륵은 그런 드륵을 기다리며 끈질기게 쳐들어오는 유저들을 죽이는 입장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죽어도 다시 부활한다. 끈질긴 유저들의 공격에 리자드맨 마을은 이제 몇 번만 더 공격을 받으면 무너질 정도로 휘청거린다.
“저는 믿습니다. 드륵 님. 반드시 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하륵이 말과 함께 다시금 이곳 리자드맨 마을로 들어오려는 5명의 유저를 노려봤다. 바로 자신이 그토록 오기를 바라던 드란, 그리고 리베토 일행이었다.

*

“좋았어, 이제 리자드맨 마을로 진입이다. 흐흐.”
리베토가 자신의 앞길을 막는 리자드맨 한 마리를 가볍게 베어 내며 웃었다.
“좋았어, 가자고 그래.”
“그나저나 레스, 너 무슨일 있어? 왜 지금까지 리자드맨들을 하나도 죽이지 않는 거야?”
제법 똑똑한 축에 속하는 마법사 유저인 하룬은 제일 리자드맨들에게 분노했던 레스가 리자드맨들을 죽이지 않고 망설이는 모습을 자꾸 보이자 이상함을 느끼며 물어왔다.
그런 하룬에게 드란은 가볍게 대꾸했다.
“난 힘을 아끼겠어, 그리고 그렇다고 치면 저 라이스에게도 추궁을 해야 예의가 아닐까? 라이스도 아직 한 마리의 리자드맨들을 죽이지 않았잖아.”
드란의 말대로 라이스라는 유저 역시 리자드맨들을 죽이지 않고 그냥 걸어왔다. 하지만 왠일인지 하룬은 드란의 그런말에 입을 다시고는 고개를 돌렸고, 라이스라는 유저는 드란을 향해 대답했다.
“내가 노리는 건 리자드맨 히어로뿐이다. 잔챙이는 필요없다.”
“…….”
라이스의 말에 드란은 말없이 걸었다. 하지만 그러면서 이제는 회색빛으로 물들어서 사라져 죽은 리자드맨들을 바라보는 것은 잊지 않았다.
‘미안하다. 지켜 주지 못해서.’
리자드맨의 죽음에 한 번 묵념을 한 드란이 주먹을 꽉 쥐었다.
‘리베토 일행, 너희는 잘못 건드렸어. 리자드맨 마을과 하륵은 나의 친구다. 그리고 그들을 공격하는 너희는 나의 적이다.’
드란이 생각과 함께 리베토 일행과 리자드맨 마을로 들어서니 10여 마리의 리자드맨들이 등장했다.
“크르륵, 인간. 죽이겠다.”
“크륵, 용맹한 하륵 님과 지혜로운 드륵 님을 위해!”
리자드맨들이 호기롭게 외쳤다. 그리고 그중에는 드란 자신이 리자드맨일 때의 모습인 가명 드륵도 섞여 있었다.
하지만 그들의 외침에 리베토는 가볍게 비웃음을 보이고는 검을 쭉 뻗었다.
“웃기는 도마뱀 녀석들, 파워 웨이브!”
촤아악―!
검이 땅을 내려치자 리자드맨들을 향해 3개의 충격파가 날아갔고, 그 충격파는 리자드맨 3마리의 목숨을 앗아갔다.
당연하게도 리자드맨들의 레벨은 평균적으로 34에서 35인데 리베토는 그보다 더 상위인 42레벨이었기 때문이다.
“크륵, 녀석들 강하다. 하륵 님께 지원 요청을!”
“어딜!”
리자드맨 한 마리가 뒤로 빠지는 모습에 아렌이 활시위를 당겼다. 금방이라도 시위를 놓기만 하면 뒤로 빠지는 리자드맨의 심장을 명중시킬 수 있었지만 라이스가 아렌을 막았다.
“기다리는 리자드맨 히어로를 부른다고 하는데 왜 죽이려 하는가? 저놈은 내버려두자고.”
“으응? 뭐, 네 말이라면…… 알겠다.”
라이스의 말에 아렌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리자드맨을 놔주었다. 하지만 도망치지 않고, 달아나는 리자드맨을 엄호하던 6마리의 리자드맨들에게 활을 겨누었다.
“저 녀석들이라면 죽여도 되겠지?”
“마음대로.”
라이스가 고개를 끄덕이자 아렌이 활시위를 놓으며 리자드맨들을 꿰뚫었다.
“크르르륵!”
리베토와 아렌의 속사포 같은 공격에 나머지 리자드맨들이 비명을 지르며 땅에 몸을 뉘였다.
마법사인 하룬은 마나를 아끼기 위해서인지 라이스와 드란과 마찬가지로 구경을 하고 있는 상태였다.
“자, 이제 가 보자고.”
“그, 그래.”
드란이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며 회색빛으로 변해 사라져 가는 리자드맨들을 바라봤다.
‘미안하다.’
드란이 다시 한 번 묵념했다. 그리고 죽어 있는 리자드맨을 보며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고 몇 번이고 다짐하고 다짐했다.
“드디어 왔다.”
라이스가 처음으로 웃으며 말했다.
그런 라이스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엄청난 충격과 함께 땅을 울렸다.
“나의 동지를 죽인 인간 놈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

“나의 동지를 죽인 인간 놈들!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하륵이 눈을 붉게 물들인 채 등장했다. 당연하게도 동족인 리자드맨들의 죽음을 봤으니 분노하는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그런 하륵의 분노를 리베토는 깡그리 무시했다.
“드디어 납신 건가 영웅 몬스터! 보스 몬스터보다도 월등한 능력치의 몬스터, 과연 그 경험치가 어떨지 궁금하군. 그리고 무엇보다도 나의 복수를 이룰 수가 있…….”
푸욱!
듣기 싫은 파육음이 들림과 함께 말하던 리베토의 가슴팍에 거대한 장검이 꽂혀 있었다.
리베토가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채 뒤를 돌아보자 라이스가 교묘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커억! 무, 무슨 짓이…….”
“시끄러워 죽겠군. 너희는 이제 필요 없다. 잘 가라.”
푸화아악―!
이윽고 라이스가 검을 횡으로 그어 버리자 리베토의 몸이 반으로 조각이 나 버렸다.
“네, 네놈 무슨 짓을!”
리더이자 자신들의 친구였던 리베토가 라이스에게 죽음을 당하자 아렌과 하룬이 당황하며 공격 준비를 하려 했지만 라이스가 더욱 빨랐다.
애초에 궁수와 마법사 유저들은 근접전에는 무척이나 취약하다.
스아악― 푸욱!
“쿨럭!”
“커억…….”
라이스의 공격에 아렌과 하룬도 목숨을 잃었다.
동료였던 자들을 가볍게 죽여 넘긴 라이스는 칼에 묻은 피를 바닥에 흩뿌리며 레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란을 쳐다봤다.
“이젠, 네놈 차례다.”
말과 함께 돌격해 오는 라이스의 모습에 드란이 황급히 앞발을 모았다.
어차피 이제는 정체를 숨길 이유가 없다. 애당초 저 녀석은 지금 자신을 죽이려고 하니 말이다.
“바람의 술!”
푸화아악―!
“으읍…… 이런…….”
쾅―!
상급으로 오른 바람의 술의 위력은 가히 엄청나다. 세 명의 40레벨대 유저들을 가볍게 처리한 라이스조차도, 이 바람의 술의 위력에 안 날아가기 위해 검을 땅에 박은 채 버티고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갑작스럽게 속이 뒤집어진다는 거다.
“우웩―!”
똥을 얼굴에 박은 듯한 구역질에 라이스가 헛구역질을 하며 고통스러워했다.
바로 마법 공격 시 40% 확률로 구역질 유발 효과를 가지고 있는 레드 자이언트 웜의 눈이 가진 효과 덕이다.
“으으…… 네놈은 대체 뭐냐! 어떻게 로그 유저가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이지? 그리고 이 냄새는 대체…….”
라이스는 진심으로 리펙터 월드의 게임에 왜 입 냄새 기능을 넣었냐고 따지고 싶은 심정이 들었다.
원래 실질적으로는 아이템의 효과 덕이었지만 말이다.
한편, 무엇보다도 이해가 되지 않는 이는 바로 하륵이다.
“크륵, 이게 대체 어떻게 된 것이지?”
기세 좋게 등장을 했건만, 막상 자신이 한 일은 아무것도 없다. 그저 인간들끼리 치고받고 싸우더니 그대로 죽어 버렸으니 말이다.
그런 하륵의 눈에 전투를 치르는 드란의 모습이 보였다.
“저 기술은…… 우리 드륵 님의 것인데…… 어! 저, 저것은! 우리들의 증표!”
하륵은 드란의 위에 떠오른 리자드맨들과의 친구의 뜻을 상징하는 증표를 보고는 이제야 깨우쳤다.
“역시! 드륵 님은 우리를 구하러 오셨어! 그렇다면 적은 네놈이다! 블레이드 퍼니쉬!”
멀뚱멀뚱하던 하륵은 이제야 드란의 정체를 알아차리고는 자신의 칼을 빼 들어 라이스에게 휘둘렀다.
“이런, 젠장!”
아직도 가시지 않은 냄새 때문에 라이스는 고통스러워하면서도 죽지 않기 위해 몸을 있는 힘껏 비틀었지만, 하륵의 칼은 거대한 양손검이다. 어느 정도는 피할 수는 있겠지만 전부는 아니다.
스아악―
“크아악!”
몸을 비틀어 피했지만 그 대가로 오른팔이 잘려 나갔다.
왼손만 남은 라이스는 냄새의 고통과 하륵의 칼 공격에 의한 부상으로 미칠 정도로 괴로웠다. 라이스는 게임의 컨트롤을 위해서 싱크로율을 70%에 맞춘 괴물 중에 괴물이기에 그 고통은 더욱 심하리라.
“지금이다! 내려쳐라! 번개의 술!”
콰쾅―!
“끄아아악!”
번개를 제대로 맞은 라이스의 몸이 미친 듯이 떨기 시작했다. 번개의 술의 효과 중 하나인 마비 효과가 발동된 것이다.
드란은 공격을 멈추고 하륵에게 손짓을 했다. 리자드맨들을 많이 죽인 자들에게 복수를 하라는 것이다.
꾸벅―
리자드맨 히어로라는 명성이 있는 하륵이라지만, 리자드맨 샤먼은 자신보다도 우월한 존재. 그렇기에 하륵은 드란에게 고개를 꾸벅인 다음, 라이스의 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휘잉―
양손검에 의해 라이스의 목이 날아갔고, 이내 회색빛으로 물들었다.
그 모습에 드란의 행동이 황급해졌다.
“으아아! 나의 간들이!”
막상 죽이라고 할 때는 당당했지만 간을 찾는 모습은 추했다.
드란은 황급히 라이스의 간을 빼낸 다음, 점점 빛을 흩뿌리며 사라지고 있는 리베토와 아렌, 그리고 하룬의 시체에도 손을 찔러 넣어 간을 빼서는 재빠르게 인벤토리에 집어넣었다.
“큰일 날 뻔했네.”
유저들의 간의 가치는 특이 몬스터나 보스 몬스터에 맞먹는다. 그러니 생간을 씹는 고통을 아는 드란으로서는 영력의 증가가 대폭으로 일어나는 유저들의 간을 놓칠 수 없는 것이다.
한편 그 순간 눈물을 짜내고 있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리자드맨 히어로 하륵이다.
“돌아오셨군요!”
하륵은 눈물을 바가지로 흘리더니 이내 레스의 모습을 하고 있는 드란을 꽉 껴안았다.
“읍읍!”
참고로 리자드맨들의 키는 보통 인간보다는 큰 편이다. 더구나 하륵은 리자드맨 히어로, 그 키가 범상치 않다.
그렇기에 하륵으로서는 감동에 격해 끌어안는 것이지만 드란으로서는 말 그대로 온몸 헤드락이다.
“쿨럭!”

*

“리자드맨 샤먼! 드륵 님이시다!”
“크륵크륵크륵!”
리자드맨 샤먼이 되어 버린 드란이 마을을 구하자 리자드맨 마을에서는 오랜만에 축제가 벌어졌다.
리자드맨들도 하나의 인격체다. 그들도 술을 즐기고 고기를 즐긴다.
“크아! 고블린 고기의 맛이 죽여주는군.”
문제라면 고블린이나 오크들이 생으로 쪄서 나온다는 점이다.
“크륵크륵! 어! 드륵 님도 한 번 뜯으시지요?”
리자드맨 한 마리가 잔뜩 술에 취한 채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드란에게 오크 통 다리를 건네었다.
물론 드란은 가볍게 거절을 하려고 손을 들어 올리려 했으나 옆에는 하륵이 있었다.
“크륵, 드륵 님. 아― 하시지요.”
쩌억―
“어억!”
하륵의 손아귀의 힘 때문에 드란의 입이 자동으로 벌려졌고, 그 안으로 오크 통 다리 고기가 들어갔다.
오크 통 다리 고기를 씹는 드란의 얼굴에서 의외라는 듯한 표정이 나타났다.
“이건, 말 그대로 삼겹살 맛이잖아?”
돼지머리인 오크답게 맛도 돼지다. 그것을 알아차린 드란에게서 의외의 식탐이 보였다.
“크륵크륵! 리자드맨 샤먼님, 이것도 한 번 뜯어 보십쇼!”
“크륵! 이 녀석! 리자드맨 샤먼님한테는 나의 고블린 머리 고기가 먼저다!”
“저리 꺼져! 나는 오크 팔 고기가 있다고!”
“…….”
왠지 모르게 리자드맨들이 무서워지는 드란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