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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롭고 쓸쓸한 존재.
왠지 자신과 비슷하다는 느낌에 준혁은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그녀들이 묘하게 안쓰러워졌다.
―하지만 그것은 세상의 균형을 깨는 짓이다냥. 위케 급 마녀 한 명만 대륙에 나가서 소란을 피워도 상당히 시끄러워진다냥. 그렇기 때문에 마녀들은 자신들의 손으로 세상을 위협하는 마녀를 처단한다냥. 그리고 최소한의 피해로 죽은 마녀의 복수를 해 준다냥. 다른 마녀들이 하는 복수는 절제라는 것이 있기에 그와 같은 짓을 하는 거다냥. 자신의 마나를 제대로 컨트롤하지 못하게 되면 분노한 마음으로 인해 마나에 마음이 먹힐 수가 있다냥. 그러니 너도 조심해라냥. 마음의 평정심이 중요하다냥. 마나를 어떻게 대하냐에 따라 다르다냥. 항시 그것을 잊지 말라냥.
“알겠어.”
―마녀의 전설에 대한 것은 앞으로 틈틈이 알려 주겠다냥. 그럼 훈련을 시작하겠다냥. 이제 마나를 느끼게 됐으니 마법진을 지우겠다냥. 너는 다시금 마나를 모으듯 행하며 마나와 동조하는 연습을 해라냥.
“아, 알았어.”
마녀의 전설을 말해 준다고 할 때 나나의 눈이 반짝이는 것에 대해 준혁의 감각이 불안한 신호를 알려왔다.
왠지 힘들어질 것 같다는 불안감이 준혁을 감각을 지배했다.
“그보다 그 말끝마다 냥 자 붙이는 거, 귀엽다.”
찌릿.
불안감을 애써 날리기 위해 한 말이지만 준혁의 말에 나나가 눈을 가늘게 뜨고는 준혁을 바라봤다.
―은근히 변태다냥.
“뭐, 뭐가?”
―그런 게 있다냥.
이유를 말해 주지 않는 나나로 인해 준혁은 살짝 답답함을 느꼈다. 영문도 모른 채 변태가 됐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 순간에는 몰랐다.
그 이유를 듣는 순간이 준혁에게는 둘도 없이 슬픈 시간이 될 것이라는 것을.
* * *
나이 든 교수가 상당히 지루하게 수업을 진행하고 있었다. 태반이 1학년인 학생들은 그런 교수의 마력에 빠져 수업을 듣기보다는 밀려오는 수마를 견뎌 내기에 바빴다.
그렇지만 준혁은 달랐다. 앞에 있는 모니터를 방패로 살짝 주먹을 쥔 손 안에 펜을 놓고 집중을 하고 있었다.
수업에 집중해야 하지만 아침에 행한 훈련이 묘한 재미를 불러왔기에 자신도 모르게 수업 시간에서 딴청을 피우게 됐다.
‘또 됐다!’
아주 조금이긴 하지만 손에서 펜이 떨어졌다. 정확하게는 자신이 쥔 주먹 사이에 떠 있는 것이었다. 나나가 보인 것에 비해 턱없이 부족한 결과물이지만, 그것만으로도 상당히 즐거운 준혁이었다.
진보가 있다는 것이 눈에 보여서인지 기분이 더욱 좋아진 준혁이었다.
“자, 오늘 수업은 여기까지다.”
교수의 말이 끝나자 학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서둘러 하품과 함께 기지개를 켰다. 준혁은 교수가 나가자 갑자기 주변의 눈치를 살피기 시작했다.
‘어, 언제 끝난 거지?’
솔직히 이번 수업은 지루한 교수 때문에 열심히 수업을 듣는 준혁에게도 상당히 힘겨운 수업 시간 중 하나였다.
그런데 수업이 순식간에 끝난 것이 이상하게 느껴짐과 동시에 왠지 모르게 혼자 딴짓을 한 것을 누군가에게 들킨 것 같이 주변을 신경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행히도 주변에서 느껴지는 시선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서둘러 자리를 옮겼다.
‘이, 이 수업은 교과서를 읽어 주는 것뿐이니까 혼자서도 가능해서 그런 걸 거야.’
스스로를 정당화시키며 준혁이 향한 곳은 사람들이 잘 사용하지 않는 건물의 화장실이었다. 마나가 주는 매력은 처음 나나에게 거칠게 대했던 것이 무색할 정도로 준혁의 마음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 * *
나나는 평소와는 다르게 준혁의 집에서 얌전히 누워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모습일 뿐이었다.
나나는 현재 자신의 마스터이자 친우, 영혼의 동반자와 대화를 하고 있었다. 바로 준혁이 마녀가 되는 것을 허락한 샤센치량과 말이다.
[그 애는 어떤 것 같아?]
―나쁘지는 않다냥. 오히려 순진해서 걱정이다냥.
[그래. 그보다 그 세상은 어때?]
―묻지 말라냥. 너도 원하면 언제든지 나를 통해 볼 수 있지 않냥.
[하긴, 그렇지 뭐. 그보다 선물을 좀 보내 줘야겠지? 귀여운 제자가 생겼으니 말이야.]
―견습 마녀다냥. 아직은 필요없다냥.
[알아. 그래서 지금부터 준비 중이니까. 너는 최대한 정보를 모아 봐. 그 세계와 제자에 맞는 것을 만들어야 하니까.]
―알겠다냥.
[수고해서 잘 가르쳐 줘. 지식은 내 머릿속에서 얼마든지 꺼내도 되니까.]
―알겠다냥. 정말로 귀찮은 일만 시킨다냥.
[호호호. 너도 거기서 맛있는 음식 먹느라고 정신을 못 차리고 있잖아.]
―냐앙, 내가 하는 고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냥.
[너무 많이 먹지 마. 제자가 가난한 것 같으니까 말이야.]
―그건 알고 있다냥. 기왕이면 부잣집의 사람을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냥.
[바라는 것도 많다. 가서 내 제자나 돌보면서 그 세계에 대해 알아보도록 해.]
―내 제자다냥.
[내 제자지! 내 지식으로 가르치는 건데!]
―냥냥, 설명은 내가 하고 있다냥.
[으윽! 됐으니 가서 네가 할 일이나 똑바로 해!]
―걱정 말라냥.
투닥거리는 대화를 끝낸 나나가 기지개를 쭉 켜고는 일어섰다. 슬슬 자신의 제자를 찾으러 갈 시간이 되었다.
“냐옹∼”
나나가 날렵하게 뛰어올라 창문을 열고는 도도하게 길을 걷기 시작했다. 마나 하트를 각성시킨 준혁이 있는 곳을 찾는 것은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니 말이다.
* * *
―뭐 하고 있는 거냥?
“응?”
공강 시간을 이용해 마나를 다루는 수련을 하던 준혁은 돌연 들려오는 나나의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네가 집중을 안 해서 그렇다냥. 네가 멍하니 있으니 네 감각을 속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냥. 그보다 공부는 안 하냥? 장학금을 못 타면 일을 해야 한다고 하지 않았냥?
“자, 잠깐 연습하고 있었어. 감각을 잊기 전에 말이야. 아하하하.”
나나의 말에 찔리는 것이 있는지 준혁이 어색하게 거짓말을 했다. 어색하게 웃는 그 모습을 나나는 큰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는 노려봤다.
―됐다냥. 나야 네가 마녀 수련을 열심히 받으면 그만이다냥. 네가 일을 하든 말든 그건 다음 일이다냥.
“윽, 걱정 좀 해주지 않을래? 내가 일하게 되면 너도 참치 제대로 못 먹어.”
―괜찮다냥. 금전 감각은 있다냥. 네가 일을 하게 되면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거고, 돈은 더욱 많아 질 거다냥. 거기에 지친 몸을 회복시키기 위해서는 마나 훈련을 하는 것이 가장 좋지냥.
“…….”
그 말에 자신의 앞발을 핥고 있는 나나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을 겨우 억누르는 준혁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될 확률은 희박하다냥. 네가 수업시간에만 잘 듣는다면 네 집중력으로 충분히 따라 갈 수 있다냥. 오히려 더 나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냥. 그러니 너무 무리하지는 말아냥.
“알겠어. 그보다 밥이나 먹으러 가야겠다.”
―나도다냥.
“윽!”
지출이 늘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준혁이었다. 그렇지만 나나 역시 무언가를 먹고 살아야 하는 생명체였다.
‘너무 비싼 것을 먹으려는 게 문제지만.’
준혁이 화장실을 나서 걷기 시작했다. 그런 그를 유명하게 만들 나나 역시 뒤따르기 시작했다. 한 번쯤을 주변에 있는 이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나나로 인해 준혁은 신경이 날카로워졌다.
쏟아지는 시선은 준혁의 감각을 자극하기에 충분했으니 말이다. 연신 주변을 돌아보는 준혁은 불쾌한 기분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이게 다 요 고양이 때문이야.’
귀엽게 보일 법도 한 나나이지만 다른 때는 몰라도 이렇게 시선을 끌어모을 때만큼은 나나가 그렇게 얄미워 보일 수가 없었다.
그렇지만 그럼에도 자신에게는 스승이었고, 일단은 조금이나마 자신의 인생을 바꾸어 준 존재였다. 투덜거리기는 했지만 준혁에게 있어 무척 소중한 존재인 나나였다.
그렇게 한참을 더 사람들의 시선을 받으며 식사를 끝낸 준혁은 먼저 돌아가는 나나를 뒤로한 채 강의실로 향했다.
그 뒤의 강의들은 다행히도 집중이 잘된 상태로 들을 수 있었다. 단순히 잘되는 것이 아닌, 하나를 들으면 그 몇 배가 되는 양의 지식이 머릿속으로 들어왔다.
심지어는 교수가 가르치는 속도가 조금 느리다는 생각에 서둘러 다음 부분을 살펴보는 일도 생길 정도였다. 마법진에서 마나에 대해 느끼게 된 뒤로 조금씩 좋아지는 것을 느꼈지만, 오늘과 같은 적은 처음이었다.
머리가 어서 자신을 굴려 달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편의점에서 사람이 없을 때를 노려 훈련을 하는 것도 상당히 재미있었다.
“하루가 상당히 빨리 지나간 것 같단 말이야.”
―당사자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바쁘다는 것이거나 아니면 지금의 삶이 재미있다거나 둘 중 하나겠다냥.
“…….”
준혁은 나나의 말에 살짝 외면을 했다.
―부끄러움을 많이 탄다냥.
“됐거든?”
―알겠다냥. 그보다 한 번 해 봐라냥. 하루 종일 몰래 한 훈련을 말이다냥.
“하, 하루 종일 안 했거든?”
―알았으니 해 봐라냥.
“쳇.”
바닥에 배를 대고 엎드려 귀찮다는 듯이 말하는 나나의 행동에 준혁이 획 고개를 돌리고는 자신의 침대 위에 알람 시계를 올려놓았다.
“잘 보라고.”
준혁이 시계가 있는 곳을 바라보고는 한 손을 뻗었다. 솔직히 오늘 연습을 했지만 알람 시계만 한 무게에 도전하는 것은 처음이었다.
나나의 건방진 태도에 살짝 발끈하여 연습도 없이 도전을 한 것이었다. 어떤 결과가 있을지 모르고.
알람 시계에 정신을 집중하자 준혁은 심장을 간지럽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하지만 간지러움도 잠시였다. 곧 심장이 평소보다 조금 빠르고 강인하게 뛰며 주변으로 준혁의 의지를 전달했다.
다른 물건으로 연습을 했던 것처럼 잘 들어 올려지지 않는 알람 시계에 집중을 하며 준혁은 자신의 마나에게 명령했다.
주변에 있는 마나에게 부탁해 저 물건을 띄우라고.
“으음.”
준혁의 이마 위로 작은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히기 시작했다. 그것과 동시에 침대 위에 있던 알람 시계가 조금씩 흔들렸다.
하지만 저 정도로는 부족했다. 자신이 원하는 것은 적어도 오늘 아침 나나가 했던 것과 비슷한 높이까지 띄워 올리는 것이었다.
‘움직여!’
쿵!
태에엥.
―냐앙, 바보 같다냥!
“윽, 왜 그래? 힘 조절을 조금 못해서 그런 거야.”
한순간 불어넣은 의지로 돌연 알람 시계가 벽으로 날아가 커다란 소리를 내며 부딪친 것을 가지고 나나가 화를 내기 시작했다.
―그게 잘못됐다는 거다냥! 냥냥냥!
“으윽, 저리 가.”
나나가 준혁의 머리 위에 올라 앉아 작은 발로 머리를 토닥거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준혁이 몸부림을 치자 나나는 날렵하게 몸을 날려 바닥으로 내려섰다.
“내가 뭘 잘못했다는 거야? 아깝게 내 시계를 깨 먹기는 했지만, 그래도 띄우기는 확실하게 띄웠잖아.”
―그건 잘못된 거다냥! 마나를 그렇게 다뤄서는 절대 안 된다냥! 어디서 못된 것부터 배워 온 거냥!
“뭐가 잘못된 건지 확실하게 알려 주고 말해. 내가 뭘 어떻게 했다고…….”
―네가 처음 마나를 받아들였을 때의 느낌으로 마나를 이용하는 거다냥! 네가 처음 마나에게서 어떤 것을 느꼈냥. 분명 지금 느낀 것과는 다른 것을 느꼈지 않았냥! 네가 방금 한 것은 잘되지 않는다는 짜증에 강제적으로 네 몸을 혹사시킨 것으로도 부족해 주변에 있는 마나를 너무 강제적으로 움직였다냥!
“…….”
준혁은 할 말을 잃고 고개를 숙였다. 나나의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알람 시계를 날려 버릴 때의 느낌이 살짝 떠올랐다. 지금 생각해 보니 처음 마나를 느꼈던 때와는 전혀 다른 느낌.
―반성해라냥. 지금 네 실력으로는 조금 무리가 있다냥.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닌, 멀리 있는 것을 한 번에 들어 올리려 한다는 것은 말이다냥. 솔직히 그 적은 마나로 정확하게 저것을 흔든 것만 해도 괜찮게 해 낸 일이다냥. 그러니 그렇게 풀 죽을 필요는 없다냥.
“미안.”
―나에게 사과할 필요는 없다냥. 네가 사과해야 할 것은 마나다냥. 마법사들이 들으면 웃을 이야기지만 말이다냥. 아무튼 마나를 더 늘리도록 노력해라냥. 단순히 늘리는 게 아니라 마나에 대해 이해하는 것 역시도 말이다냥.
“알겠어.”
―나한테 참치는 주고 말이다냥.
결국 나나에게 피해가 간 것은 없지만 잘못한 죄가 있는 준혁은 군소리없이 나나의 주식이 되어 버린 참치캔을 꺼내 줄 수밖에 없었다.
시작과 달리 끝이 그다지 좋지 않은 하루라 생각하는 준혁은 곧 명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