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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삑!
“다녀왔어요.”
때마침 대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문을 열리며 여자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오렴, 은지야. 인사하렴. 오늘부터 네 과외 선생님이 되어 줄 준혁 선생님이야.”
“과외 진짜로 하는 거예요?”
“그래. 네가 학원을 다녀도 진도를 잘 못 따라가는 것 같아서 따로 네 수준에 맞춰서 공부를 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네 아버지가 말씀하시더라.”
조금은 딱딱한 말투가 상당히 예의를 지키는 집안이라는 것을 알려 왔기에 준혁은 두 모녀의 대화를 들으며 바짝 긴장했다.
물론 딱딱한 집안 분위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자신이 가르칠 학생이 자신의 눈앞에 있었기 때문이다. 두 모녀의 대화가 끝나자 준혁은 자신이 가르칠 학생을, 학생은 준혁은 빤히 바라봤다.
“인사하지 않고 뭐 하니.”
“아, 안녕하세요, 준혁이라고 합니다.”
중년 여인의 말에 화들짝 놀란 준혁이 먼저 어색한 인사를 건넸다.
“호, 호호호호.”
그런 준혁의 어리숙한 행동에 중년 여인은 웃음을 지었고, 여학생 역시 킥킥거리기 시작했다.
“윤은지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선생…… 님?”
“오늘은 간단한 테스트를 한다고 하셨거든. 그러니 준비하렴.”
“에? 처, 처음부터 테스트라고요?”
“죄송하지만, 제가 처음 과외를 하는 거라…… 은지 학생의 실력을 확인해 봐야 해서요.”
“선생님, 어렵게 부르지 말고 그냥 은지라고 부르세요. 적어도 한 달은 할 테니 어느 정도 친하게 지내는 것이 좋잖아요.”
중년 여인이 나서서 조금은 어색한 사이인 두 사람을 중계하였다. 하지만 적어도 한 달이라는 말이 왠지 모르게 차가운 비수가 되어 준혁의 가슴을 쿡쿡 찔렀다.
“조, 조금이라도 공부를 할 시간을 주고…….”
“수학만을 할 생각이라서 그다지 오래 걸리지도 않을 거예요. 죄송하지만, 교과서나 문제집을 좀 볼 수 있을까요?”
자신의 성적을 보이기 싫은 것인지 은지가 거부의 의사를 표현했지만 준혁도 그렇고, 그녀의 어머니도 물러설 생각이 전혀 없다는 눈빛을 보냈다.
그녀의 어머니야 당연히 자신의 자식이 잘되길 바라는 것으로 그러는 것일 테고, 준혁 역시 자신의 첫 제자이기에 의지가 마구 불타오르고 있었다.
“으윽, 지, 진짜로 해야 해요?”
“물론!”
“해야지 제가 가르칠 수 있겠네요.”
“하아∼ 네에.”
은지는 대놓고 싫다는 표정을 지으며 힘없이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옷 갈아입기 전에 교과서를 선생님께 보여 드리렴.”
방으로 들어가려던 은지는 자신의 가방에서 수학 교과서를 꺼내 준혁에게 건네주고는 방으로 들어갔다.
준혁은 책을 받아 들고는 서둘러 책을 살피기 시작했다. 책이 깨끗하기는 했지만 계절과 상황으로 보아 거의 끝부분까지 나갔을 거라는 게 준혁의 생각이었다.
은지의 어머니는 그런 준혁을 조용히 옆에서 지켜봤다. 그녀에게는 도련님이자 남편의 동생에게서 성실하다고 추천을 받기는 했지만, 준혁의 첫 모습이 어리숙해 보였기에 걱정이 든 것이다.
하지만 교과서를 살피는 모습이 진지해 보여 자신이 잘못 판단했다고 생각했다.
‘도련님이 괜히 추천해 주신 것은 아닌 듯한데, 하지만 아직은 잘 모르는 일이겠지.’
그래도 준혁의 성품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 그녀는 다음 작업을 하는 준혁을 조금은 놀랍다는 듯이 바라봤다.
준혁은 자신이 가지고 온 노트에 무언가를 빠르게 적기 시작했다. 조심스럽게 훔쳐본 결과, 그것은 문제였다. 열 개가 조금 넘는 문제를 한순간에 써 내려간 것이다.
옆에서 지켜보던 은지의 어머니는 문제의 난이도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몰랐다.
그녀가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는 벌써 한참이 지났으니 말이다.
“다 갈아입었어요.”
“여기, 이것을 좀 풀어 보세요.”
딱 좋은 타이밍에 나오는 은지에게 준혁은 자신이 만든 문제는 보여 주었다.
“잠시 샤프하고 지우개를 가지고 올게요.”
“아, 여기, 이거 쓰세요. 선물이에요.”
일찍이 나나에게 사람들에게 잘 보이는 교육을 받고 온 준혁이었다. 아깝기는 하지만 제법 가격이 나가는 샤프와 지우개를 선물 겸 뇌물로 건네주었다.
“예? 고, 고맙습니다.”
얼떨떨하게 샤프와 지우개를 받아 든 은지가 준혁이 내 준 문제를 풀기 시작했다. 잠시 머뭇거리긴 해도 열심히 문제를 풀어 나가는 은지를 준혁은 주의 깊게 살폈다.
그것 역시 나나에게 교육을 받고 그러는 것이었다. 그녀가 어려워하는 부분이 무엇인지 눈높이를 맞추기 위해서였다.
선생과 학생이 바라보는 시선이 다르기 때문이었다. 지금 상황에서는 그 관점을 잘 맞추어 앞으로 과외를 할 때 부족한 점을 지적해 주는 것이 좋았다.
그랬기에 그녀가 막히는 부분을 확실하게 알아보기 위함이었다.
“나머지는 모르겠어요.”
조금 끄적이기는 했지만 몇 문제는 제대로 풀지를 못했다.
“채점은 안 하시나요?”
“채점을 하려고 풀게 한 것은 아니니까요. 그럼 오늘은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벌써요?”
채점을 하지 않는다는 준혁의 말에 은지의 표정이 급 밝아졌다. 하지만 그와 다르게 은지의 어머니의 표정은 궁금함에 물들었다.
자신의 딸이 어느 정도 실력인지 궁금해하는 것은 부모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름 은지의 기분을 배려해 묻지는 않았다.
“그럼 다음 시간부터는 확실하게 준비해 오겠습니다.”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신다면…….”
“선생님, 나중에 뵈어요∼”
첫대면과는 전혀 다른 두 모녀의 기분을 뒤로하고 준혁은 조금 서둘러 집을 나왔다.
“걸어갈까, 뛰어갈까?”
제법 거리가 됨에도 교통 수단을 이용할 생각은 전혀 없는 준혁이었다. 결국 운동 삼아 뛰어서 집으로 돌아온 준혁.
준혁은 집에 도착하기 무섭게 자신을 기다리고 있던 나나의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을 하고서야 훈련을 할 수 있었다.
하루의 마무리는 역시 마법 수련으로 끝내는 것이 일상이 되어 버린 준혁이었다.

* * *

탁.
준혁은 반듯하게 몸을 일으키기가 무섭게 울리지도 않은 알람 시계를 꺼 버렸다. 그러고는 작은 방 한 쪽에 걸려 있는 추리닝을 입었다.
오늘 하루도 방학 기간 동안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생활 중 한 가지를 시작하기 위함이었다.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생활은 두 가지였다.
두 가지가 반복된 생활이 구분되는 시점은 저녁 시간을 지나고부터 달라지는 것뿐이지만 말이다.
“나갔다 올 테니까. 백이 좀 잘 보고 있어.”
―갔다 와라냥.
눈도 안 뜬 상태로 가방을 메고 밖으로 나가는 준혁에게 인사를 하는 나나였다.
나나의 배웅을 받으며 준혁은 후드에 달린 모자를 뒤집어쓰고는 집을 나섰다.
―참으로 부지런하다냥.
처음 보았을 때에는 조금 나른한 느낌을 주는 준혁이었지만 마녀의 길을 걷고 난 뒤 처음 맞는 방학이 시작되자 규칙적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반복적인 생활하는 준혁이었다.
그 가장 첫 번째가 다섯시 반이 되면 기계적으로 일어나 밖으로 나가 하는 운동이었다. 지금도 운동을 위해 집을 나간 것이었다.
처음에는 나나도 몇 번 따라다녔지만, 이제는 따라다니기도 귀찮았기에 백이를 돌본다는 핑계로 집에 남은 나나였다.
그런 나나와 다르게 준혁은 조금씩 쌀쌀해지는 날씨에 몸이 둔해질 법한 상황에도 정해 놓은 운동 코스를 밟기 시작했다.
그의 등에 메여져 있는 큰 가방이 조금 어색하기는 했다. 하지만 가방 역시 준혁과 한 몸이라도 된 것인지 어느 정도 달리기 시작하자 어색한 모습은 사라진 상태였다.
규칙적으로 움직이며 평지를 달리던 준혁의 몸이 한쪽 등산 코스를 따라 오르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그의 속도에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전혀 숨이 거칠어지지 않은 상태로 준혁이 도착한 곳은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의 정상 부근에 있는 약수터였다.
아직 약수터에 도착한 이는 아무도 없었다. 날씨도 쌀쌀한데다 상당히 이른 시간이었다. 준혁은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는 가방을 내려놓고는 몸을 풀기 시작했다.
가볍게 준비운동을 한 준혁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군대에서 배웠던 기본적인 동작을 시작으로 몸을 움직이기 시작한 준혁은 상당히 비장한 표정이었다.
힘들어도 좋으니 휴가가 적고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보내 달라고 해서 배치받은 곳에서 배워 온 무술이었다.
특별히 대단하게 느껴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격투술에 대해서 아무것도 배워 본 적이 없는 준혁이 유일하게 할 줄 아는 것이었다.
만약 그런 것이라도 배우지 않았다면 간단하게 팔굽혀 펴기나 했을 법한 준혁이었다. 그러나 배운 것이 있었기에 지금에는 그것을 활용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몰랐지만 반복적으로 하다 보니 준혁은 확실하게 달라진 자신을 느낄 수 있었다.
마나.
그것을 알게 되고 함께하게 되자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 보였다. 그와 함께 준혁은 하루하루 성장을 하고 있었다.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은 움직임을 하였음에도 구슬땀을 흘린 준혁은 한구석에 자리해 앉았다. 그의 옆에는 그가 가지고 온 가방이 조심스럽게 놓여 있었다.
슬슬 사람들이 올 시간이었기에 괜히 멀찍이 떨어뜨려 놨다가 잃어 버리는 일을 사전에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물론 그럴 일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지만 소심할 정도로 작은 것 하나마저 아끼는 준혁이었기에 행동 하나하나가 한없이 조심스러웠다.
그렇게 자신의 것을 챙겨 둔 준혁은 차가운 바닥에 정좌를 틀고 앉아 눈을 감고는 명상에 빠졌다. 차가운 바닥에서 올라오는 냉기 때문에 바로 집중이 되지는 않았지만, 이내 익숙하게 느껴지는 마나를 느끼며 깊디깊은 명상에 빠지기 시작했다.
조금씩 사람들이 많아지자 준혁은 눈을 떴다. 눈을 뜬 준혁은 자신의 옆에 놓인 가방을 들어 약수를 받기 시작했다.
빈 플라스틱 병에 물이 가득 채워지자 가방에 넣고는 다시금 천천히 달리기 시작했다.
처음 올라올 때와는 다르게 무거워진 가방의 무게 때문에 뛰는 것이 불편할 법함에도 준혁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이 달리며 자신의 집으로 돌아갔다.
집으로 돌아가도 반복되는 하루만이 있을 뿐이지만, 전혀 지겹지가 않은 준혁이었다. 오히려 규칙적인 생활은 스스로가 원하는 일이었다.

* * *

―룬어와 수인은 다 외웠냥?
“응.”
―내가 고생해서 만든 거니 소중하게 생각해라냥.
“기존에 있던 것을 조금 바꾼 거면서 생색은…….”
―냐앙! 그것만으로도 어려운 일이다냥!
“알았으니 어서 마법이나 알려 줘.”
―순둥이가 자존심만 세졌다냥. 감히 누구의 머리에 손을 올리는 거냐냥!
발끈하는 나나의 행동이 귀여워 머리를 쓰다듬던 준혁은 물려 하는 나나의 행동으로 인해 손을 뒤로 뺐다.
아닌 척했지만 준혁 역시 나나의 말이 전혀 틀린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나나가 기존에 알고 있던 룬어는 이 세상에 맞지가 않았다.
결국 나나는 이 세상에 맞는 룬어를 찾아내야만 했다. 그랬기에 준혁은 상당히 뒤늦게야 룬어를 배우게 된 것이었다.
―한 번만 더 그래 봐라냥. 용서 안 하겠다냥. 그럼 시작 전에 룬어가 무엇이라고 했는지 말해 봐라냥.
“마나를 문자로 표기한 거.”
―그럼 수인은?
“룬어를 손으로 표현한 거.”
―기본적인 거니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하는 거다냥. 칭찬은 안 하겠다냥. 그럼 이제부터 시작하기 전에 저쪽에 있는 마녀들이 선물이라며 보내 준 것부터 받아라냥. 냐앙∼
돌연 나나가 입을 쩍 벌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마치 하품을 하는 것처럼 보여졌다.
하지만 나나가 벌린 입 안에서 상상할 수도 없는 엄청난 마나의 기운이 느껴지자 준혁은 진지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나나의 입에 검은 구멍이 생긴 것 같은 현상이 일어나며 기다란 것이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그것이 다름 아닌 빗자루라는 것을 알아차린 준혁이 신기하다는 듯이 빗자루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했다.
빗자루의 끝부분에는 주먹만 한 둥근 보석이 달려 있었다. 빗자루의 검은색과 조금 진한 붉은색의 보석이 조화를 이루며 묘한 매력을 발산하였다.
―그만 봐라냥. 네 실력으로 건드려 봤자 정신만 홀릴 뿐이다냥. 네가 봐야 할 것은 이것들이다냥.
묘한 느낌을 주는 칠흑의 빗자루와 그 빗자루에 달린 보석을 바라보던 준혁이 나나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아직 네 마나가 그 빗자루의 마나를 받아 내지 못해서 정신을 빼앗긴 거다냥. 그거는 한쪽에 잘 싸서 넣어 보관해 둬라냥.
“아, 알겠어.”
나나의 말이 있었음에도 준혁은 연신 빗자루에 신경이 쏠렸다. 결국 나나의 호통을 몇 번이나 듣고 나서야 빗자루를 냉장고의 뒤에 놓을 수 있었다.
그런 뒤 나나가 말한 것을 보게 되자 준혁의 눈이 반짝이기 시작했다.
“이거, 진짜 보석이야?”
투명한 색, 하얀색, 붉은색, 녹색의 네 가지 보석이었는데, 하나하나가 모두 영롱한 빛을 내뿜고 있었다. 크기 또한 주먹만 했기에 준혁의 눈이 동그래진 것이었다.
―진짜 보석이긴 하지만 팔면 안 된다냥. 네가 평생을 갖고 있어도 다 사용하지 못할 것들이 들어 있다냥.
“평생을?”
―돈으로 바꿔서 사용하라는 말이 아니다냥.
“나, 나도 알거든?”
떨리는 준혁의 목소리에 나나가 씨익 웃었다. 힘겹게 살아온 준혁에게 있어 눈앞에 있는 보석보다 큰 유혹은 없을 것이다.
조금은 측은하게 느껴지긴 했지만, 눈앞에 있는 보석은 절대로 팔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그 보석에는 마법 지식과 저주, 약초학과 마녀들만이 사용하는 의술이 담겨 있다냥. 마법 지식은 투명한 보석에 저주는 붉은 보석, 약초학은 초록 보석, 의술은 하얀 보석에 담겨 있다냥. 책으로 보기에는 너무 많은 양이기에 보석에 마법을 부여해서 만든 것이다냥. 내가 들어보니 각 분야에 특출난 마녀들이 웬일인지 지식을 나누어 줬다고 한다냥. 너는 정말로 복 받은 줄 알아라냥. 이렇게 말을 해 줘도 모르겠지만 말이다냥. 일단 각각의 보석에 네 피를 떨어뜨려라냥.
줄줄히 설명을 하는 나나를 뒤로하고 보석을 만지지도 못하고 있던 준혁은 나나의 마지막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피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