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으로 바로가기

위/아래로 스크롤 하세요.


/(9)/


―그렇다냥. 네가 주인이라는 것을 인식시키기 위함이다냥. 네가 주인이기를 인식시켜 놓으면 잃어버려도 소환을 할 수가 있다냥. 물론 마나가 적으니 일정 범위에 들어와야 가능하겠지만 말이다냥.
“소환!”
―팔았다가 소환하는 등의 비열한 짓은 하지 말아라냥.
“그런 짓은 안 하거든?”
―진심인가 보구냥.
“당연하지.”
―말을 버벅거리지 않았다냥. 그보다 빨리해라냥. 적혀 있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인 것은 내가 알려 줘야 하니 말이다냥.
“알겠어. 그건 그런데, 이 가면과 이 조그마한 주머니는 또 뭐야?”
자신 스스로 피를 내야 한다는 생각에 괴로운 표정을 짓던 준혁은 나나의 입에서 튀어나온 빗자루와 보석을 제외한 하얀 가면과 작은 주머니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얼굴을 가리라고 만든 거다냥. 여러 가지 기능이 있지만 아직 쓸 단계는 아니니 나중에 알려 주겠다냥. 그것도 잘 숨겨 놓아라냥. 그리고 그 주머니에는 이 세계에서는 구하기 힘들 것 같은 여러 재료들이 들어 있다냥. 지금은 쓰지 못하겠지만 나중에 훌륭한 위카가 되면 아마 조금은 사용할 수도 있을 거다냥.
“왜 나는 조금밖에 사용 못하는데…….”
―이 세계에서 위카가 된다고 해도 내가 볼 때는 지식적인 측면이나 마나가 부족할 것 같아서 그랬다냥. 아, 빗자루가 있으니 그럭저럭 흉내는 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냥.
“빗자루?”
―나중에 다 알려 주겠다냥. 그러니 잔말 말고 그것들은 한쪽에 잘 숨겨 두라냥.
“이 좁은 방에 숨길 곳이 어디 있다고.”
―그럼 돈을 열심히 벌어서 큰 집을 구해라냥. 아니다냥. 어차피 숨길 필요도 없다냥. 보잘것없는 집에 뭐 훔칠 게 있다고 들어오겠냥. 한쪽에 잘 보관만 해두라냥.
“…….”
나나의 말 하나하나가 상처를 주었기에 준혁은 절로 고개를 숙였다. 우울한 마나를 뿜어내는 준혁을 보며 나나가 소리쳤다.
―어서어서 준비해라냥! 이제부터 제대로 된 마법을 배울 테니 머리가 제법 아플 거다냥.
“조금 아픈 것 따위는 신경 안 쓴다고! 마법을 쓸 수 있다니, 단순히 염력처럼 마나를 사용하는 것도 슬슬 질려 가고 있었는데!”
―배워도 바로 쓰기는 어려울 거다냥. 네 마나가 원채 적으니 말이다냥.
“윽!”
마법을 배운다는 말에 다시 의지가 불타오르려던 준혁은 마나가 적다는 나나의 말에 공감을 함과 동시에 다시금 좌절감을 맛봤다.
그렇지만 마나가 적다고 전혀 마법을 못 쓰지는 않았다. 준혁이 무난하게 마법 수련을 할 수 있도록 나나가 마나를 모으는 마법진을 설치해 놓은 상태였다.
―일단은 저 안에서 수련을 하면 될 거다냥. 물론 이론적인 것부터 시작해야 하지만냥. 정신 바짝 차려라냥. 혹독하게 할 거다냥!
“응!”
혹독하게 할 거라는 말에 망설이지 않고 대답하는 준혁을 나나가 의심스러운 눈으로 바라봤다.
―벼, 변태는 아니길 빌겠다냥.
“재미없는 장난은 그만하지?”
―크흠, 미안하다냥. 그런 수업을 시작하겠다냥.
‘응?’
나나의 말에 준혁은 묘한 느낌을 받았다.
불안감.
무엇인지 모를 불안감이 준혁의 감각을 자극했다. 무엇 때문인지 알아보려 했지만 표정을 바꾸는 나나로 인해 그런 생각은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준혁은 나나가 시행하는 마녀 수업에 집중했다. 불안감의 정체에 대한 것은 완전히 잊을 정도로 집중을 하며 수업을 들었다.
그 불안감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전혀 예상도 못한 채로.


6. 견습 마녀와 사역마


―귀찮다냥. 정말로냥.
“그렇지만 어쩔 수가 없잖아. 아직 내 능력이 부족하다고.”
준혁이 나나에게 미안하다는 듯이 연신 말했다. 자신의 능력이 부족하다는 말을 하는 준혁을 보며 나나가 슬쩍 고개를 돌렸다.
남에게 듣는 것도 그렇겠지만, 스스로 저런 말을 한다는 것도 무척이나 괴로울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나나가 보기에 준혁은 이제 겨우 마나를 조금 컨트롤 할 수 있게 된 상태였다.
첫 실전 마법 수련을 위한 재료를 구하는 것에 있어 힘든 점이 많은 준혁이었기에 결국 나나에게 부탁하게 된 것이었다.
―알겠다냥. 일단은 찾아보고 있으면 가져오겠다냥. 너도 과외 잘하고 와라냥.
“응. 참치 뜯어 놓고 갈까?”
―냥냥, 당연하다냥.
“조심해서 다녀와.”
―너야말로 잘 가르치거라냥.
인사를 나눈 준혁과 나나는 서로 다른 길을 향했다.
준혁은 은지가 살고 있는 조금 더 깊은 도심지로, 나나는 사람들이 없을 법한 산속으로 말이다.
귀찮아하기는 하지만 준혁을 돌보고 성장시켜야 하는 것은 나나의 몫이었다.
나나가 귀찮음을 무릅쓰고 산을 타기 시작했을 무렵, 준혁은 은지의 집에서 조금 난감한 상황과 대면한 상태였다.

“선생님, 예비 과외 후보생들이에요! 이쪽은 김지연이고, 이쪽은 이하은이에요. 모두 제 친구들이에요.”
“아, 안녕하세요.”
은지가 자신의 양쪽에 앉아 있는 소녀들을 소개하자 준혁이 어색하게 인사했다. 지연이라는 학생은 상당히 긴 생머리에 여고생답지 않게 성숙한 외모를 자랑했고, 하은은 조금은 차가운 표정에 인형 같은 외모를 가진 아이였다.
그런 둘로 인해 준혁은 중간에 끼어 있는 은지가 여고생에 맞는 상당히 귀여운 외모를 갖고 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다.
준혁이 은지와 그녀의 친구들에 대해 평가를 하고 있을 때 지연 역시 준혁에 대한 판단을 빠르게 마친 상태였다.
“진짜 니 말대로 순둥이 같으신 분이다.”
“당사자를 앞에 두고 그런 말을 하는 건 실례야.”
“쳇, 여기서도 저러네.”
지연이라는 소녀가 준혁을 살짝 놀리듯이 말하자 하은이 그런 그녀를 타박했다.
“죄송합니다. 아직 지연이가 철이 없어서요. 은지가 과외 선생님이 수업을 잘 가르쳐 주신다고 해서 한 번 들어 보려고 온 건데, 괜찮을까요?”
조금은 차갑긴 해도 상당히 예의가 있어 보이는 하은의 말에 준혁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우리 선생님, 수학 짱 잘 가르친다. 들어 보면 분명 환영할걸? 거기에 최근에는 영어도 조금씩 알려 주고 있어.”
정규 시간이 끝나고 나면 영어를 조금 알려 준 것을 상당히 자랑스럽다는 듯이 말하는 은지의 행동에 준혁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저희들한테는 신경 쓰지 마시고 평소 은지에게 가르치시는 대로 해 주세요.”
“그룹 과외 하는 건 어떨까요? 좀 싸게 해서.”
“그것도 나쁘지 않겠다.”
재잘거리는 은지와 친구들로 인해 준혁은 수업을 시작할 수가 없었다. 하은이 둘을 말리기는 했지만 가끔 어벙한 모습을 보이는 은지로 인해 대화가 끊어지지 않았다.
지금도 그랬다. 하은이 뭐라뭐라 열심히 말을 했지만, 은지는 준혁을 자랑하기에 바빴다. 은지와 친해진 것이 조금은 부담스러운 순간이었다.
그러나 그런 은지의 행동도 그녀의 어머니의 등장으로 막을 내렸다. 심지어는 준혁조차 살짝 웃음을 날려 주는 그녀는 카리스마에 움찔거릴 정도였다.
“그럼 수업을 시작할게.”
한 달이 넘는 기간 동안 과외를 하면서 은지와는 상당히 친해진 상태라 편하게 말을 한 준혁이 비로소 과외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수업은 듣는 사람만이 아니라 그 수업을 하는 사람 역시 집중을 해서 가르쳐 주어야만 했다. 더군다나 이런 일 대 일 과외는 더욱더.
학생이 모르는 부분을 모두 말한다면 괜찮겠지만 그렇지 않고 부끄러워하면 표정 변화를 보고 모르는 부분을 알아서 잘 짚어 주어야 했다.
그랬기에 과외를 하는 준혁의 모습은 조금 전의 어리숙해 보이던 것과는 전혀 다른 진지한 분위기를 풍겼다.
은지가 과외 시간에 상당히 집중을 하는 것 역시 준혁의 진지한 분위기에 같이 휩쓸린 영향이 컸다. 머리가 딱히 나쁜 것은 아니지만 집중하는 시간이 상당히 짧은 그녀의 약점이 극복되는 순간이었다.
“자, 오늘은 여기까지.”
“응? 오늘도 일찍 끝났네. 으음.”
언제나와 같이 빠르게 끝난 것 같은 느낌을 받으며 은지는 기지개를 쭉 켰다.
수업이 어렵지 않고 재미있기에 집중이 잘되는 것은 좋았지만, 바닥에 앉아서 하다 보니 자세가 불편해 항상 몸을 풀어 줘야 했다.
“오늘은 영어 안 알려 줘요?”
“친구들도 왔는데 조금은 놀아도 되잖아. 다음 과외시간에 알려 줄게.”
“넵! 놀아도 된대∼”
하은은 자신에게 안겨 오는 은지를 밀어냈다.
“수업은 잘 들었습니다. 저희가 방해가 되지는 않았겠죠?”
“아, 네. 조용히 계셔서…….”
“다행이네요.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되면 말을 편히 해 주세요. 저희들도 은지의 친구니까요.”
“네, 아니. 응.”
준혁은 어색하게 웃으며 대답을 하고는 서둘러 방을 나섰다. 지연이 도망치듯이 나가는 준혁을 잡으려 했지만 아쉽게 놓치고 말았다.
“쳇, 벌써 도망갔네. 이것저것 물어보고 싶었는데, 아쉽네.”
“또 볼 건데 뭘.”
“너야 과외를 하니까 또 만나는 거잖아.”
“너는 안 하게?”
은지의 말에 지연이 심각하게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은아,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지연은 돌연 가만히 있는 하은을 방패로 내세웠다. 그러나 돌발적으로 질문을 건넨 지연과 다르게 하은은 언제나 유지하는 침착한 표정으로 지연의 질문에 대답했다.
“나는 할 거야.”
“진짜?”
“응. 은지가 왜 잘 가르친다고 하는지 알 것 같아.”
“그런가?”
지연이 하은의 말에 살짝 의구심을 느낀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너도 과외하는 내내 집중했잖아. 어떻게 나보다 모르니?”
톡 쏘는 하은의 말에 지연이 새초롬한 표정을 지었다. 그렇지만 되짚어 생각해 보면 하은의 말이 맞았기에 아무런 대꾸도 할 수가 없었다.
“단순히 학원에서 문제 빨리 푸는 방법을 배우는 것보다는 지금 당장은 이렇게 차근차근히 알아 가는 게 좋을 것 같아. 나 선생님 번호 좀 알려 줘. 집에 가서 부모님께 말씀드리고 과외 수업 듣게.”
“그러지 말고 같이 과외 듣자.”
“일단 부모님하고 상의해 보고.”
“쳇, 하은이는 잠시라도 같이 있고 싶은 내 마음은 전혀 몰라 준단 말이야!”
“어설픈 연기는 안 통하니까 번호나 알려 줘. 시간도 늦었으니 집에 가 봐야 하고.”
“그러지 말고 우리집에서 함께 자고 가는 건 어때? 어차피 내일 휴일이잖아. 응? 지연아, 좋지?”
“나야 언제든지 콜이지.”
“나는…….”
“하은아∼”
“하은아아앙∼”
“윽!”
두 소녀의 애교에 언제나 차가운 표정을 유지하던 하은은 주춤거릴 수밖에 없었다. 두 소녀가 각기 다른 매력을 뿜어내는 것을 떠나 둘도 없이 소중한 친구였으니 말이다.
“부, 부모님께 연락을 드려 보고 나서 허락하시면…….”
“와∼ 하은이도 자고 간대. 나는 가서 이불 좀 가져올게. 아, 잠옷은 없으니까 옷장에 있는 편한 옷 아무거나 꺼내 입어.”
“흐응, 우리 은지는 이곳이 성장하지 않아서 뭘 입어도 불편한데∼”
“뭐?!”
지연의 말에 은지가 그녀에게 돌격을 했고, 결국 여고생이나 할 법한 작은 투닥거림이 일어났다. 그런 두 소녀를 보며 하은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자주 일어나는 일이기에 걱정 따위는 전혀 없는 표정으로.

* * *

준혁은 상당한 기대를 품은 상태로 집에 돌아왔다. 백이는 나나가 돌보기로 하였기에 동물병원을 찾아가는 일도 없어진 상태였다.
거기에 오늘은 처음으로 제대로 된 실습을 하는 날이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는 준혁의 발걸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벼웠다.
“나나야, 나 왔어.”
나나가 돌아와 있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집에 돌아온 준혁이지만 막상 방 안에 나나는 없었다.
왕.
하지만 아무도 준혁을 기다리지 않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나나 대신 백이가 집으로 돌아온 준혁을 반겼다.
“나나는 안 왔나 보네? 우리 불쌍한 백이, 밥도 못 먹고 있었겠네.”
준혁이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해도 안아 주자 기분이 좋아진 것인지 백이는 더욱 열심히 꼬리를 흔들었다.
준혁은 자신에게 귀엽게 애교를 떠는 백이에게 서둘러 사료를 챙겨 주었다. 나나가 나가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자신 때문이었으니 결국 백이가 밥을 먹지 못하게 된 것도 자신 때문이었다.
―그 녀석은 그만 돌보고 이거나 좀 받아라냥.
돌연 뒤에서 들려오는 나나의 목소리에 준혁의 목이 빠르게 돌아갔다. 거기에는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나나가 있었다.
“오래 걸렸네.”
―잘 보이지가 않았다냥. 하지만 다행히도 이 몸이 노력한 만큼 상당히 좋은 놈으로 잡아 왔다냥.
“죽은 건 아니지?”
―마나를 느껴 봐라냥! 아직 쌩쌩하게 살아 있다냥!
빤히 알 법한 것을 묻자 나나가 버럭 성을 냈다.
“마나가 조금 불안한 것 같은데…….”
―내, 내가 조금 거칠게 잡아서 그런 거다냥! 그러니 잔말 말고 마법진이나 준비해라냥!
“쳇, 알았어.”